I can see the bulletin board after 5 second RAW - chapter (1)
5초 후의 게시판이 보여! 001화
1.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1)
올해로 서른세 살이 된 버펄로스의 백업 포수, 이경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버펄로스의 수석 코치, 박창화에게 2군에 내려가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 이다.
“코치님……
“그렇게 됐다, 경훈아. 미안하다.”
라며, 이경훈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박창화 코치.
하지만 인간적인 감정이라곤 눈곱 만큼도 담기지 않은 동작이었다.
박창화 코치에게 야속함을 느끼며, 이경훈은 생각했다.
‘2군에 내려가라고……?’
모든 프로 야구 선수가 그렇듯이, 주위의 기대를 받으며 입단했다.
포수로서는 상당한 타격 능력을 가 졌지만 포수로서는 부족한 수비 능 력까지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선수층 두터운 버펄로스에서 1군과 2군을 오가면서도.
그 두텁던 선수층이 도핑 스캔들로 절반이 날아가면서도.
그렇게 한국 프로 야구 리그 사상 최악의 구단이 된 버펄로스에서, 이 경훈은 악착같이 버텼다.
‘그래도 이번 시즌은 진짜 괜찮을 것 같았는데……
타격감은 전지훈련부터 최고조였 고, 새로 들어온 외국인 투수에게 전담 포수로서 지명도 받았다.
14년 전, 버펄로스 전신 구단에 입 단했을 때부터 약점으로 지적받은
수비 부분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 을 이뤄냈다.
하지만.
‘스미스! 그 새끼가 퇴출만 안 됐 어도!’
이경훈을 전담 포수로 지명한 외국 인 투수 제이크 스미스가 저번 달, 5월에 방출되었고.
제이크 스미스의 전담 포수였던 이 경훈의 입지도 흔들리게 되었다.
선발 출전 기회가 줄어든 것은 물 론이고, 제이크 스미스의 적응을 도 와주지 못했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아니! 나보고 어쩌라고! 스미스
그 새끼가 계속 볼만 던져댄 게 내 잘못이냐?’
결국, 선발 출전이 뜸해지면서 그 좋았던 타격감마저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이경훈은 여느 시즌과 같이 장점 옅은 그저 그런 백업 포수로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음 시즌부터 버펄로스의 감독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한 박창화 수석 코치에게서 2군에 내려가라는 말을 듣게 된 거다.
잠시 고심하던 이경훈이 박창화 코 치에게 물었다.
“감독님 지시입니까?”
이경훈의 말에, 박창화 코치가 피 식 웃곤 대답했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결정은 났 고, 프런트는 승인했어. 이게 누구 지시고 누구 의도든 이미 확정 사항 이다, 이 자식아.”
“하, 하지만 현장의 엔트리에 대한 권한은 감독님께……
“어이, 이경훈. 너도 현장 짬밥 먹 을 만큼 먹었잖아. 아직도 상황 파 악 안 돼?”
“혹시, 내년 시즌 버펄로스 감독이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자신이 버펄로스의 차기 감독 내정 자고 그 지위를 이용해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 으며, 박창화 코치가 이경훈에게 으 름장을 놓았다.
“경훈아. 잘하자. 엉? 그래야 내년 시즌도 선수로 뛸 거 아냐. 아니면, 너보다 몇 살은 어린 구단 직원들한 테 주임님 대리님 하면서 기록 배우 러 다닐래?”
구단, 버펄로스의 프런트에서 전력 분석원으로 일할 거냐는 말이다.
즉, 박창화 코치는 이경훈의 선수 생활을 볼모로 잡은 거다.
이경훈의 자존심과, 이제는 자존심 보다 더 비대해진 위기감을 자극하 기에는 충분한 협박이었다.
아내와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코치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진작 그랬어야지……
라고 말하며, 박창화 코치가 만족 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이길.
“그래도 다행인 줄 알아라. 너 대
신 올려볼 예정이었던 승중이 말이 다.”
“박승중 말씀입니까?”
이경훈은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전 지훈련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하지 못했던 앳된, 그런 주제에 덩 치는 엄청나게 컸던 신인을 기억해 냈다.
고교 야구에서 타자로 탈 수 있는 상이란 상은 죄다 휩쓸고, 작년 신 인 드래프트에서 버펄로스에 전체 1 번으로 지명됐던, 대단한 유망주다.
“그래. 그런데, 그분께서 원정 가는
차에서 주무시다 목에 담이 왔다네? 예전 같았으면 빠따를 후려서 정신 개조를 시키는 건데……
“코치님. 그럼……
“그래. 2군은 3일 후에나 가라. 1 군 등록 수당도 챙기고, 짐도 좀 싸 놓고, 가족이랑도 시간 보내고.”
“예……
그리하여, 이경훈에게 사흘의 유예 가 생겼다.
결국은 2군에 내려가게 될 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주변 정리를 할 시간이 생겼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고도 없이 2군 통보를 받고 내 려가서 그 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 던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어쩌면, 이경훈도 머지않아 그들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버펄로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최하 위권에 있다.’
그런 버펄로스가 포스트 시즌 진출 권까지 올라간다는 건, 냉정하게 말 해서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리고 버펄로스의 차기 감독이 될 것이 매우 유력한 박창화 코치가 이 경훈을 2군에 보내고 1군으로 올리 기로 한 박승중은 작년 최고의 신인
이면서 이경훈과 같은 포지션인 포 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선수가 버 펄로스의 백업 포수 역할을 맡게 될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 젠장••••••
2020 시즌 한국 프로 야구.
9위, 버펄로스의 백업 포수는 서른 세 살의 이경훈이 아닌, 스무 살의 박승중이 될 거다.
박승중이 갑작스럽게 심각한 부상 을 입게 되거나, 아니면.
‘내가 각성해서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차게 되거나.’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건 이경훈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몇십 번의 기회를 받았으며, 몇 번 인가는 움켜쥐기도 했지만…….
결국, 그 기회는 이경훈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오늘 퇴근하면 와이프한테 말해야 겠다. 한동안은 못 만날 테니, 내일 은 외식이라도 시켜줄까……
그저, 자신이 처하게 된 상황에 적 응하려 할 뿐이었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 6연패 가 말이 되냐!”
“프로냐? 어? 너희가 프로야? 어?”
“나가 뒤져! 제발!”
9위, 버펄로스와 7위, 미사일즈 간 의 시즌 7차전.
기어코, 6회 초 수비에 아홉 번째 실점을 내주며 9 대 0의 스코어가 되자 버펄로스의 홈 팬들이 처절하 게 절규하기 시작했다.
그리 아름답지 않은, 차마 입에 담
지 못할 폭언이지만 버펄로스의 선 수들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저 폭언 조차도 고맙게 생각하는 선수도 있 었다.
한국 프로 야구의 암흑기를 연상케 하는, 저 천 명도 채 안 되는 관중 들이 없었더라면 이 구단, 버펄로스 는 진작 해체됐을 테니까.
관중석의 진행 요원조차 자제를 자 제하고 있을 정도로 답 없는 상황에 서, 버펄로스는 선발 출전한 주전 선수들을 대거 교체했다.
어차피 지게 생긴 경기니, 선수들
의 체력 안배라도 시켜주는 게 낫다 는 판단이었다.
그런다고 해서 다음 경기에서 이긴 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그 덕에, 원래대로라면 2군에 내려 갔어야 하는 선수 이경훈이 버펄로 스의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이경훈이 주심에게 고개 숙여 인사 하곤 캐처 박스에 자리하며 생각했 다.
‘내게는 이 경기가 이번 시즌 마지 막 1군 경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시즌 마지막이 아닌, 인생 마
지막 1군 경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애써 떨쳐내며, 이경훈이 자 신이 처하게 된 상황을 파악하기 시 작했다.
‘6회 초, 원 아웃. 주자는 1루에 하나, 2루에 하나. 1사 1, 2루 상황 이다. 점수 차이는 9점 차이. 주전 을 다 빼버렸다는 건…… 이 경기 포기하겠다는 거지.’
그렇다면.
‘여기서 한두 점 정도 더 주는 건 아무런 문제 없다는 거다. 추가 실 점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아웃 카 운트를 잡을 확률이 가장 큰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때.
“..?|”
이경훈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들이 ‘읽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