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the bulletin board after 5 second RAW - chapter (175)
5초 후의 게시판이 보여! 177화
43. 네 거야! (5)
몇주전.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있었던 일이다.
특정 상황에서의 라이브 배팅을 진 행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도중 헨 슬리 맥도웰 벤치 코치가 이경훈에 게 지시했다.
“경훈! 2루 베이스로!”
이경훈이 2루 주자인 1사 2루 상 황에서의 시뮬레이션 게임이 시작된 거다.
타자는 계약이 늦어져 스프링 트레 이닝에 뒤늦게 합류했음에도 불구하 고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고 있 던 라시헌이었고.
쐐액
딱!
라시헌은 잭 블레이크의 포심 패스
트볼을 밀어 쳐내며,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었다.
2루 주자 이경훈이 홈 플레이트를 밟기엔 충분한 안타였다.
1루 베이스를 찍은 뒤 그라운드에 서 나온 라시헌을 향해 이경훈이 고 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스윙 좋네, 라시헌.”
“밀렸습니다.”
확실히, 정타와는 거리가 있는 타 구이기는 했다.
이경훈이 격려하듯 말했다.
“타자가 인 플레이를 만들었다는
게 이긴 거지. 괘념치 마라.”
“예.”
라고 대답하면서도 불만스러운 표 정을 다 지우지는 못한 라시헌이었 다.
오늘, 라시헌의 스윙 연습 횟수가 늘어날 거라고 이경훈은 확신했다.
이경훈이 지나가듯 물었다.
“방금 같은 타구가 조금만 더 빗맞 았으면 수비수가 잡았을 것 같나?”
“메이저리그 3루수라면 잡을 수 있 을지도 모르죠. 시프트 걸린 유격수 가 잡아챌 수도 있고요.”
“흐..”
TZ1 •
이렇듯, 스프링 트레이닝 도중에 라시헌과 야구에 대해서 종종 대화 를 나눴었던 이경훈이었다.
야구 외의 화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라시헌과 편하게 말을 섞으 려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은근히 도움이 된다. 좌타자의 시 점에서, 유격수의 시점에서 야구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해야 하 나……
라시헌 역시 이경훈과의 대화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듯, 이경훈의 물 음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이경훈과 라시헌의 대화는 이내 토 론과도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1사 2루가 아닌 무사 2루였으면 어떻게 쳤을 거냐?”
“한 점이 중요한 상황이고, 제 뒤 에 좋은 타자가 있다면 땅볼이 되어 도 2루수 쪽으로 굴려서 이경훈 선 배님을 3루 주자로 모셨을 겁니다.”
“모시다니……
재밌는 표현이었다.
이경훈이 되물었다.
“2루수가 시프트를 하고 있는 상황 에서는? 전진 수비로 3루에서 아웃
시키려고 하는 거지.”
이경훈의 물음에 라시헌이 잠시 생 각하곤 대답했다.
“2루 주자가 이경훈 선배님이라면 개의치 않을 겁니다.”
“왜?”
“2루수가 아니라 투수가 잡더라도 너끈히 세이프되실 테니까요.”
그렇긴 하다.
라시헌의 아부 아닌 아부에 이경훈 이 껄껄대며 대답했다.
“그건 모르지. 네 타구가 라인드라 이브로 잡혀버리거나, 내가 피치 아
웃에 걸릴 수도 있는 건데.”
“그렇게 되면, 이경훈 선배님께서 는 아웃 안 되시겠죠.”
천재 후배에게서 묘한 믿음을 사버 렸다는 생각에, 이경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냐? 번트를 대되, 시프트를 넘겨버리는 거다.”
“푸시 번트를 하라는 말씀이십니 까?”
“시프트는 깨부숴야 제맛이지.”
라시헌이 아까보다 조금 더 생각하 곤 대답했다.
“한국 프로 야구 리그에서는 제 타 석에서 전진 수비가 나왔던 적이 거 의 없었습니다. 어렵지 않게 뚫을 수 있으니까요. ……그걸 이용해서 스퀴즈를 성공시켰던 적도 두세 번 있었지만…… 푸시 번트라니.”
라시헌이 미간을 바짝 좁히더니 심 각하게 말했다.
“좋네요. 정말로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번트 모션이 나오는 순간, 수비수들은 바로 달려 나올 테니 허 들도 낮아지겠죠. 문제는 푸시 번트 를 대기 쉬운 구종이 올 타이밍을 알아야 한다는 건데……
“까짓거, 내가 알려주마.”
가벼운 잡담 중에 나온 우스운 농 담 같은 아이디어였지만.
툭!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스의 귀중하디 귀중한 득점이 되었다.
라시헌의 푸시 번트가 내달려온 애 리조나 스네이크스의 1루수를 조롱 하듯이, 그 키를 넘겼고.
1루 베이스에 백업을 들어갔던 2 루수마저 바로 잡아내지 못하는, 명 백한 인 플레이가 되었다.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아군마저도
속여야 했지만, 3루 주자 시저 스타 는 어떤 사인도 전달받지 못한 상황 에서도 당황하지 않으며 집중을 유 지 했고.
“세이프!”
라시헌의 푸시 번트가 인 플레이로 선언을 받자마자 홈 플레이트로 쇄 도하면서 득점을 올렸다.
그리고.
“비켜!”
등 뒤, 지척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에 시저 스타가 반사적으로 빠르게 홈 플레이트에서 비켜났고.
타다다닥!
탁!
2루 주자 이경훈까지 홈 플레이트 에 닿을 수 있었다.
혼란한 상황을 정리하듯, 주심이 두 팔을 가로로 그으며 외쳤다.
“세이프!”
2 대 0.
라시헌의 기습 푸시 번트가 샌프란 시스코 타이탄스의 활로를 뚫었다.
어안이 벙벙한 J. D. 라이언 앞에 서 시저 스타가 비명을 지르듯 환호 했다.
“이런, 미친! 언제 여기까지 달린
거예요, 경훈!‘?”
“네가 베이스 사이에서 와리가리하 고 있을 때.”
“개쩔잖아……! 부디 제 손을 잡고 일어서주십시오, 폐하!”
“기꺼이.”
이경훈이 시저 스타의 도움을 받으 며 일어서서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스 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시저 스타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 으면서 말했다.
“혹시, 작전이 걸렸던 거예요? 큰 일 났네. 사인 못 봤다고 혼나겠 어…
“아니. 라시헌 독단이었다.”
“엥? 왜요?”
“내가 그러라고 했거든.”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스의 더그아웃 에 먼저 돌아와 동료들에게 열렬하 게 얻어맞고 있는 라시헌에게 향하 기 위해서는 라시헌과 같은 경험을 해야 했다.
“이봐! 경훈이 왔어!”
“워! 워! 워! 워!”
“어떻게 들어온 거야! 젠장!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냐고!”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스의 선수들의
터널을 지나온 이경훈이 라시헌에게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고맙다, 라시헌.”
“그때 말씀 나눴던 그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형을 봤어요. 아니나 다를까, 사인을 내고 계시더라고요.”
라시헌은 이경훈의 사인을 확인하 고 푸시 번트를 댔고.
이경훈은 라시헌에게 사인을 내고 도루를 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더블 플레이로 이닝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도박보 다도 도박 같은 플레이였지만.
이경훈에게는 도박이 아니었다.
[2년째비정규직 : 스퀴즈만 생각한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에 경종을 울려 주는 플레이가 나왔군]
[2년째비정규직 : 현장의 분위기가 짐작이 가]
[이런야근은그만두길바라는 : 거거거 거거 푸시 번트라니]
[이런야근은그만두길바라는 : 상상도 못 한 결과라고]
[램스 직원 아님 : 이경훈까지 득점 한 게 제일 신기해]
[램스 직원 아님 : 타이탄스 벤치에
서 낸 작전인가?] [BMI 를믿지마거울을믿어 : 이제는 제이슨 킴벌리가 정말 ‘그 기록’을 달 성한다고 해도 이 장면밖에 생각 안 날 것 같아] [BMI 를믿지마거울을믿어 : 정말로 엄청난 경기야] [BMI 를믿지마거울을믿어 :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도너드 : …….]
그렇게,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스가 균형을 깼고.
제이슨 킴벌리가 벤치에서 일어나, 마운드로 향했다.
8회 초의 시작이었다.
쉬이 이 익.
……팡
제이슨 킴벌리의 연습 투구, 커브 를 받은 이경훈이 고개를 짧게 끄덕 여 보이고선 생각했다.
‘회전 좋고, 궤적 좋다. 당연히 1회 보다는 힘이 떨어져 있지만, 타자를 잡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걱정 되는 건……
일찍이, 8회의 마운드를 경험하지 못했던 제이슨 킴벌리가 자신의 투 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거기에, 노 히터라는 대기록까지 달렸다. 나도 이렇게 긴장이 되는데, 제이슨은 말이 아닐 거다.’
투수가 흔들려 버린다면, 이경훈의 리드도 의미가 없다.
결국, 이경훈의 리드를 따라 투구 하는 건 투수, 제이슨 킴벌리다.
“플레이!”
[2년째비정규직 : 이제 불과 다섯 타자만 남았군]
[2년째비정규직 : ‘그 기록’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에
[이런야근은그만두길바라는 : 방금 타구는 위험했네]
[이런야근은그만두길바라는 : 어쩌면 이번 이닝에 ‘그 기록’이 깨질지도 모 르겠는데]
선두 타자를 유격수 앞 땅볼로 잡
아내며, 원 아웃을 올렸지만.
“볼! 베이스 온 볼스!”
다음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하면서, 주자를 1루 베이스로 내보내고 말았 다.
이경훈이 주심에게 새 볼을 건네받 으면서 차분하게 생각했다.
‘5초 후의 게시판대로라면 중견수 플라이 아웃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옆으로 빠지는 볼 에 의한 볼넷이었다.
때가 됐다.
“타임 부탁드립니다.”
이경훈이 오늘 처음으로 마운드에 방문을 했다.
이경훈이 제이슨 킴벌리에게 처음 으로 한 말은.
“경기 시작 전에 생각했던 오늘의 목표가 뭐였지, 제이슨?”
제이슨 킴벌리가 진지하게 생각하 곤 입을 열었다.
“6이닝…… 아니지. 7이닝은 버티 는 거요. 그게 내 목표였어요.”
“솔직하게 말해라, 제이슨.”
이경훈의 다그침에, 제이슨 킴벌리 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
다.
“6이닝 1실점, 아니면 7이닝 2실 점. 연봉 고과로 치면 같으니까요.”
“지금이 몇 회지?”
“……8회 초요.”
“몇 실점 했지?”
“어…. 아직 안 했네요.”
“그런데, 뭐가 문제지?”
이경훈이 제이슨 킴벌리의 가슴을 가볍게 때리곤 말을 이었다.
“너는 이미 네 목표를 이뤘다. ‘그 기록’이 욕심나게 됐겠지만, 초기의 목표만은 달성한 거다. 그런데, 도대
체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쫀 거냐? 밑져야 본전이라고. 기록이 깨지든, 여기서 얻어터져서 패전 투수가 되 든, 너는 이미 승자다.”
이경훈이 제이슨 킴벌리에게 볼을 넘기며 말을 맺었다.
“이 경기는 네 거야! 그러니 네 마 음대로 해라!”
흔들리고 있었던 제이슨 킴벌리의 마음을 다잡기에는 충분한 말이었 다.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이경훈에게, 제이슨 킴벌리가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알아요, 경훈? 경훈은 내가
올라와 줬으면 하는 때에 귀신같이 올라오더라고요. ……고맙다는 말이 에요!”
“집중이나 해.”
“라저!”
라고 대답하며, 짧게 경례까지 해 보이는 제이슨 킴벌리에게 이경훈이 피식 웃어주곤 캐처 박스로 돌아왔 다.
그렇게, 집중력을 되찾은 제이슨 킴벌리는 1사 1루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며 8회 초를 마쳤고.
9회 초의 마운드에도 올라와, 117 구째를 투구했다.
쉬이이익…….
딱!
빗맞은 타구가 높이 뜨자, 이경훈 이 포수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2년째비정규직 : 노 히터의 대미가 포수 파울 플라이 아웃이라니!] [2년째비정규직 : 기막히네!]극점에서 추락을 시작한 타구에 집
중하는 동안, 이경훈에게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팡!
그 순간.
“흐아아악……!”
제이슨 킴벌리의 포효를 시작으로 소음에 빠졌다.
지금, 이경훈, 제이슨 킴벌리가 노 히터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