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57
너의 초식이 보여 157화
십천간편(9)
야차는 다가오는 하운평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는지, 뒤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청아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한쪽 다리를 꽉 잡고 있었고, 발로 밟아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때 하운평이 턱밑까지 파고들었다. 그의 손은 야차의 머리를 겨누었고, 하얀빛으로 번쩍였다.
끼이이잉. 콰아앙.
동굴 안을 환히 밝힐 정도로 큰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은 야차의 상체를 다 덮을 정도로 커졌고, 앞으로 쏘아졌다. 야차는 피하려 했으나 빛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
쿠우웅.
결국 야차의 거대한 몸뚱이는 바닥에 쓰러졌다. 빛이 사라진 후에 확인해 보니, 야차의 어깨부터 윗부분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허억. 헉.”
하운평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청아를 붙잡고 도와주었다. 그녀는 일어서지도 못했다. 한쪽 다리가 반 이상 갈라져 있기 때문이었다.
와아아아.
그때 부회주를 비롯하여 수십 명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남궁보가 구진만에게 소리쳤다.
“뭐 하는가? 어서 동교부터 챙겨.”
“그, 그래.”
동시에 남궁보는 하운평에게 달려가서 도와주었고, 구진만은 동교에게 달려갔다.
동교가 살아 있는지, 몸은 괜찮은지 확인한 뒤 아이를 자신의 등에 업었다. 큰일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러곤 하운평이 있는 곳으로 가서 달려드는 적들을 상대했다.
‘쉽지 않겠는걸.’
청아는 심하게 다쳤고, 하운평은 지쳤다. 구진만은 동교를 신경 쓰느라 몸을 사렸고, 오직 남궁보만 분투하는 상황이었다.
끝까지 싸우면 누구 하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흑천문의 무사들이 물러났다.
부회주가 후퇴를 명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필요한 것들만 챙기고, 도망치듯 떠났다.
정인 군주가 군사들을 이끌고, 동굴 밖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탓이다.
* * *
흑천문이 물러나고, 동굴 안은 인간의 시체들과 죽은 요괴들만 즐비했다. 또 흑천문이 도망치면서 불을 질렀는지 화기도 느껴졌다.
하운평은 구진만과 남궁보에게 말했다.
“동교를 데리고, 먼저 밖으로 나가십시오.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될 겁니다.”
“너는?”
“저도 나갈 겁니다.”
하운평은 청아를 보면서 말했고, 두 사람은 자리를 피해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딱 보기에도 청아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두 사람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사실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지금은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군.’
남궁보는 몸을 돌렸고, 구진만 역시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하운평에게 전음을 보냈다.
[도와줘서 고맙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은혜는 꼭 갚겠다.] [저도 목적이 있어 한 행동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것보다 동교를 잘 돌봐주세요. 원치 않던 힘 때문에 힘들었을 겁니다.] [그 원치 않은 힘은……. 사라진 건가?] [네에.]조금 그 빛이 생각났고, 하운평이 그 힘을 가져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진만은 오히려 그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등교를 위해서라도.
[만약 도움이 필요하시면 하남성의 무적문으로 오십시오. 그리고 오늘 본 것들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물론이다.]하운평은 두 사람이 떠나는 걸 보지 않았다. 사실 그에게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청아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는 령으로 존재했고, 신체는 강시의 것을 빌린 것에 불과했다.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다쳐도 청아가 다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청아에게 말했었다.
아무래도 이 신체는 못 쓸 것 같다고. 일단 강시의 몸을 가지고 나간 후에, 나중에 더 좋은 신체를 찾아주겠다고.
하지만 청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었다.
[아니야. 운평. 이제 신체는 필요 없어.]하운평은 그 말에서 이별을 느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남궁보와 구진만을 따라가지 않은 이유였다.
반면 청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사실 벌써 돌아갔어야 했어. 하지만 인간 세계가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시간을 끌었는데, 이제야 기회가 된 것 같아.”
“……환상기국으로 돌아갈 거니?”
하운평이 힘들게 물었다.
“그래야지. 이제 그곳에 있는 친구들도 보고 싶고, 내가 할 일도 미룰 수가 없거든. 가 봐야 해.”
하운평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청아는 이곳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환상기국 속에 그녀의 집이 있고, 그곳의 삶도 있었다.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와 헤어지는 느낌을 싫어했다.
하지만 청아는 환하게 웃었다.
“까르르. 운평. 우리가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다시 놀러 와도 되고, 네가 와도 된다고.”
“그래.”
하운평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또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을 것이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다시 만나면 되지.”
“그렇지.”
“그런데 돌아가는 방법은 알아?”
“여러 가지 방법이 생각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 있어.”
청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하운평을 가리켰다. 정확히 말하면, 십천간편을 떠올린 것이다.
여러 세계와 차원을 마음대로 건널 수 있는 물건이니, 청아의 환상기국으로 가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하운평은 십천간편과 대화하면서 그것을 확인했다.
‘가능은 하지. 하지만 시간이 필요해.’
‘천천히 해.’
하운평은 그가 준비하는 사이, 청아를 업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아쉬움을 달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조용한 곳에서 십천간편이 환상기국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청아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운평. 재미있었어. 그리고 고마웠어.”
“나야말로 정말 고마웠어. 또 즐거웠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작별인사를 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웃으며 헤어졌다.
하운평은 씁쓸한 기분으로 청아의 령이 빠져나간 천령강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없는 그것은 단순한 강시에 불과했다. 하운평은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게, 그것을 땅속 깊숙이 묻었다.
그 후에 정인군주를 찾아갔다.
정인군주는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그녀는 차갑게 물었다.
“왜 기다리지 않았지? 나와의 약속을 어기다니, 죽고 싶으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안이 급해서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소수로 먼저 움직였습니다.”
“무슨 사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아니라면, 가만있지 않겠다.”
하운평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반운도사는 모산파를 배신하고, 사악한 무리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괴이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이계에 사는 위험한 생물을 이쪽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뭐? 이계의 생물?”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하운평은 구진만과 동교, 십천간편의 내용만 빼고, 모두 설명했다.
그리고 반운도사의 동굴로 직접 안내했다.
불이 탄 곳도 있지만, 여전히 바닥에는 야차의 시체가 있었다. 고루투라는 요괴처럼 소멸되지 않아 설명하기 용이했다.
야차의 시체를 직접 본 후, 정인군주는 하운평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하운평은 고루투가 말했던 고루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놈은 놓쳐 버리고 말았구나. 부회주가 데려갔을까? 아니면 흑지주가?’
그때 정인군주가 물었다.
“그러니까, 네가 이들을 물리쳤다고? 혼자서?”
“아닙니다. 저 혼자 이 많은 이들을 상대할 수는 없죠. 제 사부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사부?”
“네. 열두존자의 일인이신 권왕 파해천입니다.”
“아아. 열두존자.”
정인군주도 무림의 열두존자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대단한 무공도 들었었고, 그들의 힘이면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대의 사부는 지금 어디 있지?”
“도망친 무리들이 있어 쫓아갔습니다. 저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남았고요.”
“으음.”
조금 이상하고, 수상한 부분도 있지만, 하운평의 설명은 타당했다. 결국 정인 군주는 직접 싸우지 못해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가기 전에 하운평에 상을 줄 테니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하운평은 할 일이 있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군주는 그에게 작은 옥패를 주었다.
“내가 아끼는 물건이니, 나중에 나에게 와서 돌려주어야 한다.”
속으로는 자신 몸속에 있는 요괴를 없애주고, 반운도사의 사태를 잘 막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정인 군주는 어려서 표현방식이 서툴렀고, 나중에 꼭 찾아오라는 말을 돌려서 언급했다.
하운평은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모산파의 무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하운평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무엇보다 반운도사를 잡았고, 그가 죄를 저지르기 전에 막은 것에 감사했다.
다만 반운도사의 상태가 이상해진 걸 의아해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상한 주술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산파의 배신자이니, 모산파에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
하운평의 설명에 모산파의 장문인은 대충 대답했다. 그는 끝내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하운평을 무시하지는 않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감사의 의미를 표했다.
모산파에서 아끼는 장중태검을 주었고, 모산파의 손님을 뜻하는 단패도 만들었다. 물론 다른 모산파 도사들도 하운평을 같은 도사로 인정했다.
하운평이 이곳을 정리하는 동안,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하늘 위에, 초어처럼 생긴 커다란 요괴가 떠 있었다.
고루잠이란 요괴였다. 그리고 그 위에 흑지주가 앉아 있었다.
그는 하운평의 활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고,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관찰했다.
“앞으로가 재미있겠어. 힘내라. 녹안석의 주인.”
그리고는 고루잠의 머리를 살짝 두드렸다. 그러자 고루잠은 그의 말을 알아듣는 듯, 구름 위로 떠올라 어디론가 날았다.
* * *
내가 원하는 건 모두 얻었다.
십천간편을 얻음으로 여의구의 엄청난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크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청아와 헤어진 것이 더 크게 다가왔다.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지만, 가슴이 허한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이대로 천학관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방향을 틀어서 무적문으로 향했다.
사부님이 보고 싶었고, 새로 얻은 능력이나 염마왕과 있었던 일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도 의논하고, 정인군주에게 말했던 변명도 알려줘야만 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사부님이 무적문에 없었다. 방대일 총관이 대신 설명했다.
“열흘 전에 떠나셨습니다. 목적지는 말하지 않으셨고요.”
“그래요?”
나는 아쉬움에 사부님이 머물던 방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방 총관에게 물었다.
“별일은 없었죠?”
“무적문의 일을 물어보시는 거면, 나쁜 일은 없었습니다. 너무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것밖에는요.”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무적문의 식구들과 인사하고, 술도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열흘이나 지났지만, 그래도 사부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조금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서신 한 장만 무적문에 도착했을 뿐이다.
결국 사부님은 만나지 못하고, 무적문을 떠나야 하나?
그때 방대일 총관이 물었다.
“혹시 천학관으로 가실 겁니까?”
“아무래도 졸업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설마 정말 천포가 되실 건 아니시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천학관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퇴를 해도 괜찮았다.
술법은 배웠고, 천음신공도 얻었다. 몇몇 학생들과 친분을 맺거나 계약관계를 맺어 후일도 도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선회가 마음에 걸렸다.
그들이 하는 짓은 정확히 염마왕이 걱정하는 것들이었고, 이번에 만난 흑천문도 백선회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백선회의 회주가 ‘천포’라고 했다.
이런 것들을 자세히 알아보려면, 실제로 천포가 되어 무림맹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무적문이 잘 돌아가고 있으나, 어떤 단체이든 수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문주님이 없는 지금은 소문주님께서 수장이 되셔야 합니다.”
사부님이 올 때까지 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총관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십천간편과 천음신공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