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80
너의 초식이 보여 180화
철혈문(2)
방추여는 심사관의 설명을 듣고 보니, 낭인 생활이 쉽지 않아 보였다.
“낭인이 된다는 건, 쉽지 않네요.”
심사관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꾸했다.
“그렇죠. 하지만 낭인지부의 소속이 되면 다릅니다. 지부에서 일거리를 주니까, 따로 일을 찾을 필요가 없죠. 그리고 소속된 회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지원을 해주기도 하고요. 다치면 낭인지회의 소속의 의원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장점이 있습니다.”
“장점요?”
“바로 낭인지부의 소속 일급 낭인들이라면, 특급 낭인으로 바로 승격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저 같은 실력이면, 일 년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특급 낭인패를 받을 수 있죠.”
“정말인가요?”
“그럼요. 그러니까 당장 특급 낭인 등급으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떼돈을 버는 거죠.”
방추여는 자신도 모르게 심사관의 말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특급 낭인이 되어 돈을 많이 버는 상상을 했다.
심사관은 은근한 목소리로 그녀를 유혹했다.
“방 소저, 이런 제안은 아무에게나 하지 않습니다. 소저 같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신 분들만 드리는 겁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네에에. 관심은 있는데요.”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지부의 소속이 되기 위해서는 간단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거든요.”
“계약서요? 지금 당장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잖습니까? 마음먹은 김에 바로 해버리죠?”
“그래도, 잠깐 생각할 시간을…….”
“당연히 생각할 시간을 드리죠. 일단 삼 층으로 올라가시죠. 그곳에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고, 충분히 생각할 시간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방추여는 얼떨결에 심사관 손에 이끌려 삼 층으로 올라갈 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귓가에 전음이 들렸다.
[신중히 생각하시오. 낭인지부 소속이 된다는 뜻은, 강력한 족쇄로 묶일 수도 있소.]가득수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방추여는 찬물을 마신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급할 것 없잖아. 조금 더 알아보고, 낭인지부 소속이 되어도 늦지 않아.
그녀는 머리가 좋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심사관의 말발에 정신이 팔렸다는 걸 깨닫고, 즉시 걸음을 멈추었다.
심사관은 다시 한번 그녀를 보챘다.
“방 소저, 빨리 올라가시죠?”
“죄송합니다만, 심사관님. 생각해 보니 오늘은 안 되겠네요. 제가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했어요.”
“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계약서를 작성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아니에요. 지금도 늦었거든요. 일단 오늘은 일급 낭인패만 받고 나중에 다시 올게요.”
그녀는 도망치듯,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서둘러 가득수가 들어간 방으로 들어갔다.
심사관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는지, 방 앞에 서서 기다렸다.
그녀가 나올 때 다시 설득할 생각이었다.
“마침 저희 지부 소속 낭인 자리가 비어서 이런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다음에는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꼬셔야겠어.”
그는 중얼거리면서 다짐했고, 어서 방추여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심사관이 방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걸 알고, 낭인패를 받은 후,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 * *
방추여는 나중에 다른 낭인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낭인 지부의 소속 낭인이 된다는 건, 족쇄 혹은 노예를 의미했다. 일단 계약서를 작성하면 지부에서 원하는 일은 무조건 해야 한다. 그리고 다치면 의원을 소개시켜 주지만, 돈은 본인이 내야 했으며, 바가지를 쓰기 일쑤였다.
또한 가장 큰 제약은 계약된 오 년 동안은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일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경험 있는 낭인들은 모두 기피하는 일이었다.
방추여는 방금 전에 큰일 날 뻔했다는 걸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장 옆에 위치한 낭인객잔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낭인들을 위한 휴식처 같은 곳으로 낭인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식사와 숙박을 제공했다. 또 낭인들에게 들어오는 일거리나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이것 역시 방금 낭인들에게 물어서 얻은 정보였다.
‘그래.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물으면서 배워야지. 세상에 공짜로 얻는 건 없어.’
그러면서 낭인객잔 안을 둘러볼 때였다. 그곳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어머, 저 사람은…….’
가득수였다.
그녀보다 일찍 나가서 찾지 못했는데, 이곳에 있었다. 그는 벽에 걸려 있는 벽보들을 읽고 있었고, 방추여는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대협. 조금 전에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가득수는 그녀를 힐끔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벽보 하나를 유심히 보더니, 객잔을 나가 버렸다.
방추여도 그 벽보를 봤다.
[이천오십이호. 철혈문 낭인 모집.내부 분쟁 때문에 낭인을 모집하고 있으며, 급여는 낭인 등급에 따라 차등 지급. 기한은 열흘에 한 번 연장되며…….]
방추여는 어떤 일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경험과 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득수를 믿었고, 그래서 그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곧장 낭인 객잔을 나갔다. 멀리 걸어가는 가득수를 발견했고, 경공까지 사용하며 그를 쫓아갔다.
“대협. 같이 가요.”
하지만 가득수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발걸음을 빨리했고, 귀찮아한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방추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그를 놓치지 않으려 했고, 결국 두 사람은 철혈문까지 도착했다.
가득수는 철혈문의 입구에 있는 무사에게 말했다.
“낭인을 모집한다고 해서 찾아왔소.”
“저도 이분과 같이 왔습니다.”
방추여가 이어서 말했다.
철혈문의 무사는 두 사람을 힐끔 보더니, 옆에 있는 쪽문을 가리켰다.
“이곳으로 들어가서 계속 직진하시오. 그리고 ‘괘룡당’이라 적힌 곳에 들어가면 되오.”
“고맙소.”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무사의 말대로 쪽문을 통해 계속 걸어갔다.
십여 장쯤 걷다가 갑자기 가득수가 걸음을 멈추었다. 방추여도 자연히 멈추었고, 가득수가 물었다.
“어디까지 쫓아올 셈이오?”
방추여는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제가 낭인 일을 잘 몰라서요.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도움은 이미 드렸잖소?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알아서 일을 하시면 됩니다. 일행인 척하지 마세요.”
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방추여는 끈질기게 부탁했다.
“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 하는 일이라서요. 이왕 도와주시는 김에 끝까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나중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나는 바쁜 사람입니다. 다른 낭인에게 부탁해 보세요.”
“그, 그럼, 그 다른 낭인을 만날 때까지만 도와주세요. 제가 뻔뻔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오직 대협만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부디 도와주세요.”
“휴우. 믿을 수 있다라? 그 믿을 수 있다는 기준이 뭡니까?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을 텐데요.”
그러자 방추여는 자신 있게 말했다.
“낭인지회에 있을 때, 모른 척할 수도 있었는데, 저를 도와주셨잖습니까?”
“딱 한마디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는 겁니다. 저를 유혹하려 했거나,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더 좋은 말을 건넸을 테니까요. 정말 귀찮지만, 순수하게 저를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딱 한 말씀 해주셨겠죠. 그것 때문에 믿음이 간다는 겁니다.”
다소 억지가 섞여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가득수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왜 낭인이 되려는 겁니까? 아직 나이가 어리고, 또 소저 실력이면, 다른 좋은 곳에 갈 수 있을 건데요.”
“할아버지가 아프세요. 돈이 급하게 필요한데, 낭인이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낭인이 돈을 많이 번다고요? 누가 그러던가요?”
“저희 마을의 감 씨 아저씨가요.”
가득수는 실소가 흘러나왔다.
물론 낭인도 큰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상위권의 몇 명만 그럴 뿐이고, 대부분이 가난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인생이 대부분이었다.
그사이 그녀는 부연설명을 늘어놓았다.
정리해 보면, 할아버지에게 무공을 배우며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큰 병에 걸려 쓰러졌다고 한다.
치료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했고, 그러다 이웃집 감 씨에게서 얘기를 들었단다. 무공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낭인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그래서 낭인패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게 불과 어제 일이었다.
참으로 대책이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였다.
“휴우. 실례지만 몇 살입니까?”
“여, 열아홉 살입니다.”
“나를 따라다니려면 지켜야 될 것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거짓말이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방추여는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열…… 여섯입니다.”
가득수는 잠깐 고민하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용히 따라오시오. 아주 약간의 도움만 드릴 겁니다. 그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낭인을 만난다면, 바로 헤어지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충고하자면, 저는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괜찮은 낭인을 찾아보세요.”
“네.”
방추여는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말을 놓겠다.”
“저도 그게 편합니다. 대협.”
“대협이라 부르지 마라.”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생각해 보니, 가득수도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방추여가 물었다.
“형님이라 할까요? 낭인들은 전부 호형호제한다던데.”
“남녀 사이에 무슨 형제 타령이냐?”
“그렇죠? 으음…….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있으니까, 아저씨라고 할까요?”
“……그냥 형님이라 불러라.”
그렇게 두 사람은 일행이 되어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괘룡당’이라 적힌 곳에는 이미 이십여 명이 넘는 낭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눈에 띄지 않게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낭인들이 들어왔다.
방 안에 있는 숫자는 서른 명이 넘어가고, 벌써 반 시진이 지났다. 하지만 철혈문의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마냥 이렇게 기다려야 할까?
방추여는 의구심이 생겼고, 옆에 있는 가득수에게 물었다.
“형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하지만 가득수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이분도 오늘 처음 왔는데, 알 리 없지.’
그때 바로 앞에 있는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철혈문에서 낭인을 뽑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소. 주기적으로 계속 뽑고, 급여도 괜찮기 때문에 멀리 있던 낭인들도 찾아오는 실정이지.”
방추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저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물어봤는데요?”
“그러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겁니다. 소저가 철혈문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오. 오늘도 계속해서 낭인들이 들어온다는 가정하에 어떻게 할지?”
방추여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낭인이 올 때마다 설명을 하면 피곤하겠죠. 그러니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저녁쯤에 들어오겠군요.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한 번만 안내하면 되니까요.”
“바로 그거요. 그러니 앞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대략 두 시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겁니다.”
그는 밖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몸을 아예 돌렸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인사라도 합시다. 어차피 시간을 보내야 하잖소? 내 이름은 구자복이요.”
그는 덥수룩한 수염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가졌다. 목소리도 안정적인 저음으로 듣기가 좋았다.
“저는 방추여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득수는 눈을 감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방추여는 구덕수가 민망할까 봐 대신 말했다.
“이분은 가득수라고 합니다. 저희는 오늘 낭인패를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쪽 일에 대해 잘 모릅니다.”
“오오. 그러시군요.”
가득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추여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바꾸어 입을 다물었다. 만약 둘이 죽이 잘 맞으면, 그녀를 저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