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dicate the world to my Russia RAW novel - Chapter (66)
025. 작전의 이름은 개혁이다(3)
6.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사람마다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뜨거운 가슴으로 일단 저지르고 보거나.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이것저것 따져보며 신중하게 접근하거나.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운 바르클레이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신뢰할 수 없는 자와 어찌 협력하란 말씀입니까? 더구나 세간의 평에 따르면 뮈라는 나폴리의 왕에 등극한 뒤로 오만함이 극에 달했다더군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배신할 게 뻔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그 녀석한테 지시한 건 그저 나폴레옹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게 유도하라는 것뿐이었으니.”
“바라는 대로라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오?”
바그라티온의 물음에 내 눈빛은 한층 더 강렬해졌다.
“그대들도 느꼈을 텐데? 작금의 나폴레옹은 번뜩이는 천재성만 내보일 뿐, 세세한 건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본래 나폴레옹은 개개의 전술을 절묘하게 이어 붙여 순식간에 전략을 완성하는 신기를 자주 보여주었다.
이건 마치 수많은 성냥개비를 이용해 재빨리 탑을 쌓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하지만 온 정신을 한 곳에만 쏟아도 모자랄 판에 신경 쓸 게 워낙 많으니. 자꾸만 자잘한 데에서 실수가 나올 수밖에.’
치질, 위통, 비만, 만성피로 등.
수많은 질병으로 고생하는 마당에 가뜩이나 전쟁도 잘 풀리지 않으니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갈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자 했다.
“나폴레옹이 내놓는 전략은 수많은 단점을 덮어버릴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뽐낼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라도 어긋남이 생기게 된다면 그 틈은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벌어지겠지.”
“그렇다면 제가 해야 할 일은 뮈라가 활개 치도록 상황을 유도하는 것뿐입니까?”
“그건 그대의 판단에 맡기겠다. 대신 작전 수행에 필요한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얘기하거라. 얼마든지 지원해줄 테니까.”
“…… 알겠습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렇게까지 믿음을 보내주는데 신하 된 도리로서 어찌 거부하겠는가.
결국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물러나고 말았다.
회의가 끝난 뒤.
자신의 막사로 돌아온 바르클레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후우. 야생말처럼 멋모르고 날뛰는 그놈을 대체 어떻게 이용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쉴지언정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본래 군인이라는 게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직업이 아니던가?
‘게다가 니콜라이 전하는 현명하신 분이다. 분명 내게 이런 임무를 맡긴 이유가 있을 텐데…… 아무래도 그 녀석의 머리를 빌려야겠군.’
바르클레이는 제1서부군 휘하 참모 중 하나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말끔한 인상을 한 초로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불렀나?”
“음. 잠시 논의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바르클레이보다 열여섯 살이나 많은 베니히센은 오래전부터 나폴레옹과 싸워온 백전노장이었다.
심지어 아일라우 전투 등에서 큰 활약을 보이며 나폴레옹에게 쓴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늙은이 주제에 야망이 보통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바르클레이의 걱정이 들어맞았는지 베니히센은 설명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사령관. 이건 절호의 기회일세. 잘만 하면 독일계라고 차별받던 우리가 러시아군의 주류로 부상할지도 몰라.”
원 역사에서는 어떻게든 바르클레이를 쫓아내고 사령관직을 꿰차고자 온갖 로비를 펼쳤던 그였다.
하지만 니콜라이 황태자가 군에 개입하기 시작한 뒤.
머지않아 폭발적으로 규모가 늘어나리란 걸 직감한 그는 어떻게든 니콜라이의 눈에 들기 위해 준비해왔다.
‘그동안 기회가 오기만을 잠자코 기다렸거늘. 드디어 한 건 제대로 하는구나!’
바르클레이는 들뜬 표정의 베니히센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방비 태세를 갖춘 우리 군을 습격하게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심지어 뮈라와는 제대로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현 상황을 곰곰이 되짚어본 베니히센은 한 가지 힌트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저들의 욕망을 이용하는 건 어떤가? 물자를 일부러 흘리고 다니거나 적들에게 공적을 세울 기회를 준다든가. 생각해보면 방법은 많을 것 같은데?”
“으음.”
본래 바르클레이는 이런 비현실적인 조언을 귀담아듣는 편은 아니었다.
얄팍한 수작질에 넘어갈 나폴레옹도 아닐뿐더러 자칫 잘못하면 저들의 사기만 올려줄 테니까.
하지만 니콜라이가 어떤 지원이든 아끼지 않겠다고 하니 댐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아이디어가 샘솟기 시작했다.
“좋은 의견입니다만 좀 더 구체화해야겠군요. 저들이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말입니다.”
이런 부류의 작전은 한 편의 연극과도 같았다.
배우, 무대장치, 소품, 장소 설정 등등.
주연과 조연을 맡아줄 배역은 차고 넘쳤으니 이제 나머지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만 남았다.
‘예산과 시간이 충분하다면야 제대로 만들어보지 못할 이유도 없지.’
바르클레이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농락당하는 프랑스군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7.
바르클레이가 떠난 뒤.
나는 바그라티온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조금 있으면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민병대가 도착할 것이다. 혹시 그대가 나 대신 맞이해줄 수 있나?”
“알겠소. 주둔지를 만드는 것까지 도와주도록 하지.”
그렇게 쿠투조프와 단둘이 남게 되자 이것저것 물음을 던졌다.
“병력은 잘 추슬렀나? 신식 무기들의 성능은 괜찮았고?”
“이미 다 서신으로 보내드린 내용 아닙니까?”
“그래도 직접 말로 전해 듣는 거랑은 또 다르지.”
그에 쿠투조프는 머리를 긁적이며 보고를 올렸다.
“비전투손실을 최소화하고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은 결과 대략 16만 명쯤은 될 겁니다. 무기야 사거리와 위력이 대폭 늘어난 만큼 아주 효과적이었고요.”
평소 쿠투조프와는 서신을 통해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편이었다.
게다가 가끔은 이렇게 직접 찾아와 얘기를 들었으니 러시아군의 현황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물론 게으른 성품의 쿠투조프는 괜히 앓는 소리나 해댔지만.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세세하게 보고를 올려야 하는 겁니까? 저도 맡은 바 업무가 많단 말입니다.”
“그게 자네의 일인데 어쩌겠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수고해주게.”
하지만 쿠투조프는 그게 빈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후우. 저도 슬슬 은퇴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나중에 뒷선으로 물러나면 막심 같은 애들이나 잘 키워보라고. 돈은 넉넉하게 챙겨줄 테니까.“
”끄응. 말년에도 고생이겠군요.“
공교육을 확대하고 전문적인 인재를 육성하려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넓은 땅을 다 버려두어야 할 테니까.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지.’
당장 군대만 놓고 봐도 나중엔 정말 100만이고 200만이고 필요해질 텐데.
그 자리를 죄다 낙하산으로 채울 순 없지 않은가.
쿵쿵. 웅성웅성.
때마침 저 멀리서 대군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막사 밖으로 나와 그 광경을 바라보던 쿠투조프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전하. 대체 얼마나 데리고 온 겁니까?“
”대충 4만 정도다. 나중에 후발대까지 합치면 최소 3만은 더 늘어나겠지.“
그 말에 쿠투조프는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전에 언급했던 7만이라는 게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숫자란 말인가? 그동안 주민들을 착실하게 챙기며 후퇴시킨 것도 전부 이때를 위해서였군.’
하지만 저들 대부분이 일평생 농사나 짓던 징집병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후방에만 박아놓고 있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 같군요. 자칫 습격이라도 당한다면 대혼란이 벌어질지도 모르고요.“
”어허. 저들을 무지한 농노와 같다고 생각하지 말게. 기본적인 사격훈련과 함께 사상 교육까지 확실하게 받은 민병대니까.“
”허어. 저들 모두가 민병대라고요?“
그렇다면야 어설프게나마 총질은 가능할 테니 쓸 만은 하겠으나 여전히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몇 날 며칠을 싸워도 버틸 수 있는 체력과 전략적 움직임 따위는 기대하기 힘들 테니 방어선을 중심으로 버티는 게 고작이겠지.
쿠투조프의 표정을 살핀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내기 하나 할까?“
”갑자기 무슨 내기 말입니까?“
”앞으로 보름 안에 병사들 사이로 섞여든 민병대는 위대한 선구자이자 구원자로 추앙받을 것이다. 내 말이 사실로 판명되면 나중에 만들 군사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어주게.“
”예?“
쿠투조프의 얼빠진 얼굴을 뒤로한 나는 민병대를 향해 소리 없는 외침을 날려 보냈다.
‘군대 내 처우 개선과 체계적인 예비군 제도 도입, 여기에 이주 시 정착지원금에 100% 취업 보장까지. 아주 종합 패키지 세트로 준비해놨으니까 홍보만 제대로 해달라고.’
원래 차르 즉위 기념으로 몇 개는 아껴두려고 했는데 그냥 이번 기회에 화끈하게 풀어 재껴버렸다.
과연 얼마나 뜨거운 반응이 터져 나올지.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8.
바르클레이와 니콜라이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계략을 꾸미는 사이.
프랑스군 내부는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폐허가 된 스몰렌스크 위에 수백 개의 천막이 늘어선 가운데.
뮈라는 유독 큼직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장군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의무장교의 물음에 뮈라는 일부러 감정을 억누른 목소리로 답했다.
“레이네르 장군이 바그라티온과 싸우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상태는 괜찮나?”
“아…… 솔직하게 말하자면 가망이 없습니다. 한번 확인해보시죠.”
“으음.”
몸 곳곳을 붕대로 감아놓은 채 깊은 잠에 빠진 레이네르는 누가 봐도 심각해 보였다.
개중에서도 왼쪽 다리 하나가 완전히 날아가 버린 모습은 수년 전 오스트리아에서 죽음을 맞이한 장 란 원수를 떠올리게 했다.
‘이거 참 묘한 일이로군.’
아스페른-에슬링 전투는 나폴레옹에게 공식적인 첫 패배라는 치욕을 안겨준, 다시는 재현되어선 안 될 참사였다.
그런데 그때의 일이 연상되는 걸 보니 왠지 모를 불길함이 밀려들었다.
뮈라가 숙연한 표정으로 레이네르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 고함을 내질렀다.
“뮈라! 네놈이 어째서 여기 온 것이냐. 썩 꺼지지 못할까?”
“하. 네 원수. 나보고 사람의 도리도 하지 말란 말인가?”
고개를 수그리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이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네 원수는 당장이라도 한판 붙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네가 제대로 싸우기만 했더라면 레이네르의 군단이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합공을 펼쳐서 바그라티온을 역으로 포획할 수도 있었거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일을 그르쳐놓고도 뻔뻔하기 그지없구나!”
“크하하! 그게 전부 내 잘못이라고? 스몰렌스크 요새 하나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요?”
네, 다부, 외젠, 포니아토프스키 등이 지휘한 요새 공방전에서는 무려 70%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하지만 네 원수는 도저히 그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다.
‘배후를 공략한다는 최선의 수를 그르치게 만든 건 어디까지나 이 녀석의 잘못이거늘. 뭐가 그리 잘났다고 까부는 것이냐!’
눈깔이 뒤집힌 그는 당장이라도 결투를 신청하겠다는 듯 장갑을 벗어 던지려 들었다.
그 모습에 뒤늦게 들어온 다부는 황급히 병사들을 불러들였다.
“다들 뭣들 하느냐. 네 원수를 붙잡아라!”
“이익! 놔라, 놔!”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다부는 매서운 눈으로 뮈라를 노려보았다.
“괜히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나가주게. 자세한 건 다음에 논의하도록 하지.”
“크흐흐. 알겠습니다. 적어도 여기서는 제가 환영받지 못할 것 같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뮈라는 전혀 불편한 기색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자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저번 전투에서의 패배한 지휘관들이 죄다 이쪽으로 몰려온 틈을 타 나만의 세력을 만들어야겠다. 이건 폐하께서 친히 허락하신 일이니 감히 누가 가로막겠는가!’
밖으로 나온 뮈라는 곧바로 제롬이 머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자신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될 프랑스군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