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88
‘이제 부모님과 상인이만 찾으면 돼.’
생존이 확인도니 이상, 설동은 최후의 목적을 위해 움직여야 했다.
애당초 그가 제주도에서 아득바득 올라온 이유가 오로지 가족 때문이다.
그 가족의 생사가 확인됐으니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하지만 어떡해? 휴대폰만 쓸 수 있다면 연락이라도 되겠지만….’
사실상 연락은 끊겼다. 본인의 휴대폰도 비행기 추락 때 박살이 난 지 오래였다.
“후…. 아니야. 방법은 있을 거야.”
설동은 비틀거리면서 나섰다. 육체적인 외상은 없어진지 오래지만, 정신적 충격은 남았다.
그렇게 걸어가는데, 그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들인 것이 아마도 이 아파트 사람들일 게 뻔했다.
설동은 그렇게 이해할 때였다.
“괴물!”
“괴물이야!”
듣기 싫은 소리가 귓속을 울렸다.
“결국, 이거야?”
이제는 익숙해진 상황. 설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그들이 뭐라 하던 설동은 지금 쉬고 싶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익숙하다. 자신의 특수한 능력을 본다면, 누구나가 다 그러니까.
오히려 쉽게 받아들여 주는 이들이 특이한 거였다.
‘꺽정이네나, 지금 하연이나….’
참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고 생각한 설동이었다.
그때, 금발로 염색한 여성이 별안간 뛰어나왔다.
“은지야! 가까이 가지 마!”
뒤에서 누군가 그렇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설동은 이 소녀의 시선이 자기가 아닌 원숭이 좀비라는 걸, 깨달았다.
“…….”
이 원숭이 좀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동은 모른다.
납치한 여자인지, 가족인지도 모른다.
그저 원한이 있을 거라고 추측될 뿐.
은지는 원숭이 좀비를 걷어찼다.
“망할 새끼! 더럽고 추잡한 새끼!”
“….”
설동은 무시하고 지나갔다. 곧장 어른들이 달려 나와 은지를 붙잡았다.
“은지야! 위험하잖아!”
“왜요? 이미 죽었잖아요.”
“그게 아니라….”
이들은 설동을 힐끗 본다. 본래 그냥 가려던 설동은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게 아니라 뭐. 내가 있어서 위험하다고? 위험했으면 너희는 진작 내 손에 뒤졌어.”
“아니, 말을 그런 식으로….”
“지네는 좋은 말을 했나? 가는 게 고와야 오는 게 곱지. 나한테 감사나 해라.”
“뭐라고?”
남자들 몇몇 눈빛이 바뀌었다.
설동은 그들을 비웃으며 원숭이 좀비를 발로 찼다.
“이놈한테 눌려서 아무것도 못 하던 놈들이 그러면 무서워할 거 같아?”
순식간에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그나마 인간의 모습인 설동은 만만했는지, 하나둘 다가오고 있었다.
설동은 이럴 때 자기가 해야 할 행동은 확실하게 알았다.
언제나처럼 같다. 자기에게 시비 걸던 이들에게 하듯이 한 대 먹이고 기세에서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설동은 다가가면서도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렸다.
‘만약 그때 내가 참았다면?’
피난민센터에서도 그렇고 그와 마찰을 일으킨 자들은 대부분 마지막까지 대립했다.
그 결과 많은 친구를 잃었다.
설동은 그 생각이 순간, 머리에 들었지만 그렇다고 멈추기에는 감정이 더 앞섰다.
그렇게 발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잠시 만요!”
그때였다. 뒤쪽에서 도하연이 달려 나왔다.
“갑자기 왜 싸우려고 하는 거죠? 모두 진정해요!”
언제나처럼 최악으로 번질 뻔한 마찰이 기적적으로 멈췄다.
도하연은 설동을 뒤로 물렀다.
“굳이 우리가 왜 싸워야 하죠? 저 괴물을 잡았잖아요.”
원숭이 좀비를 가리키며 도하연은 이곳에 나온 아파트 주민에게 외쳤다.
“이 사람이 이상해요? 우리를 위해서 저 괴물하고 싸워서 이겼어요. 이럴 때는 고마워해야 하잖아요. 이 사람은 감염자가 아니에요. 그냥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사람?”
의문의 소리에 도하연은 머리를 긁었다.
“좀 특이한 사람. 지금 이곳은 이제 위험이 없어졌잖아요. 우리 동료이고, 유능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어떤지 보셨으면 현재 우리에게 엄청나게 필요한 사람이란 걸 아실 텐데요?”
도하연의 목소리는 발성법부터 제대로였다. 배우를 허투루 한 게 아니게 또박또박 그리고 크게 모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불편한 분위기는 금세 사라지고 있었다. 도하연이 나서서 중재하자 설동도 더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연아, 난 좀 잘래. 너무 졸려.”
“그래? 그럼 같이 가.”
도하연은 빠르게 그의 뒤에 붙었다. 그리고 무언가 깨달은 듯 아파트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잡혀 온 여자 중에 임산부가 있었거든요? 7층에서 지금 출산 중일 거예요. 가족이라도 계시면 가보세요.”
“윤선이 언니가요? 아, 배가 엄청 불렀기는 했는데.”
은지가 반응했다. 동시에 같이 잡혀 온 여자들이 단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개월은 같이 동고동락했으니 의리로라도 같이 함께하고 싶었다.
“7층 어디죠?”
“아니, 잠깐만. 임산부인데 지금 청결해야 하잖아! 몰려가면 안 돼!”
나이가 든 여성이 외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아, 그러네.”
“근데, 의료장비도 없는데 어떡해…….”
“일단 필요한 거 뭐 없나?”
분위기는 다시 출산 쪽으로 몰렸다. 남자들은 일단 자기 집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우리 집!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우리 산 거 맞지?”
설동은 허무해졌다.
“와…. 싸울 줄 알았는데….”
도하연은 그런 설동의 팔짱을 꼈다. 둘이 아직 사귀지도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대담하게 말이다.
“사람이란 거 예민해지면 말 하나로 크게 변하잖아. 지금 아직 경황이 없다고 우선시할 걸 다시 찾은 거지. 이제 걱정하지 마. 그리고 화 좀 줄여. 진짜 조마 조마한다니까?”
“네가 내 애인이야?”
“하면 안 돼?”
도하연은 자연스럽게 옆에 붙은 채로 속삭였다. 설동은 볼을 긁었다.
“상관없는데, 괜찮겠어? 너, 연예인…….”
도하연은 그 말에 대한 대답을 키스로 대답했다. 도발적인 키스에 설동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윙크를 하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연예인 도하연은 제주도에서 죽은 지 오래야. 난 그냥 도하연이고. 알게 뭐야.”
설동은 그 과감성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그러면…. 우리도 따로 방을 잡아야 하나?”
“급하기도 하네. 하나 씨한테 가볼까?”
도하연은 감염자 시체로 가득한 그들의 아지트를 가리켰다.
이제 다랑 아파트는 달라졌다.
아기와 함께 찾아온 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설동 일행은 주민들과 힘을 합쳤다.
“이 아파트 단지 전체를 돌 겁니다. 감염자를 처리하고 식량을 모아서 관리하죠.”
이들의 주도로 이제 잔당 정리에 들어갔다. 해방된 아파트 주민은 대략 60명. 많다면 많지만, 이곳이 아파트 단지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인원이 죽거나 감염자로 변한 거였다.
문제는 식량이었다. 60명의 인원이 갑자기 생기니, 버틸 식량이 이제는 별로 없었다.
설동은 여기서 해결사로 나섰다. 그는 난간을 통해 침투하며 남은 감염자들을 처리하고 나선 거다.
무엇보다 그는 물려도 변하지 않는 엄청난 체질의 남자.
아파트 주민들은 그가 앞장서서 감염자를 처리하는 것에 감탄했다.
“그냥 휙휙 들어가네.”
“아니, 물려도 변하지 않는데. 체질이 그렇다는데?”
“진짜…. 무섭네. 근데 확실히 우리한테는 되게 유용해.”
처음에는 괴물이라면 기피하는 사람들도 몇 날 며칠 설동의 작업을 옆에서 봐오자 신뢰로 바뀌었다.
“문짝을 뚫을 공구가 있다고?”
이제 주민들은 설동이 난간뿐 아니라, 아예 문짝을 뜯어낼 기기들을 가져다주었다.
“지금 아저씨가 문짝을 뜯는데 안에서 소리가 나거든요? 물러나요!”
문짝이 강제로 뜯기고 감염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보이는 건, 설동이 들고 있는 도끼. 귀신같이 머리에 찍히면서, 감염자는 쓰러졌다.
“역시, 설동이네!”
시간이 흐르고, 이들은 설동에게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해졌다.
이들이 아파트 단지를 일주일에 걸쳐 돌았고, 모은 식량은 60명이 한 달 정도 버틸 수준이었다.
그것도 아낀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설동은 역시나 외부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이야 정 안되면 하천이라도 가서 먹던가. 하지만 다른 건, 그러지 못하니.”
“그, 특전사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바깥을 정리하고 있다고 하던데….”
동현은 몇몇 별동대를 따로 조직해서 외부로 주로 나갔다.
주변 정리와 안전지대 확보가 주목적이었다.
이제 이 아파트를 아지트로 정한 이상, 주변의 안전 확보가 필요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감염자 사냥을 나가고, 주변 빈집을 털었다.
그 결과 이들이 아파트에 오기 전 본 그 공용 농장까지 다시 올 정도였다.
물론, 조촐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곳이었다.
주하나는 성민우와 같이 근처 마트를 털면서 씨앗 종자들을 가져왔다.
“이런 거는 보통 안 가져가죠. 약탈해도 누가 씨앗을 약탈하겠어요? 키우고 비료 주고 해야 할게 한둘이 아닌 데.”
채소 씨앗들이 밭에 뿌려지고, 이 근처로 이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물론, 사방에 트인 이곳에서 무작정 할 수는 없으니 남자들이 단체로 나서서 목책을 짓기 시작했다.
인원이 수십 명이니, 이전과는 다르게 그 속도는 빨랐다.
태희나 역시나 간호사였던 이곳 주민과 의사 하나랑 힘을 합쳐 단지 내에 간이 병원을 만들었다.
진짜 병원과 비교하면 한없이 부족하지만, 이런 상황에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때 훌륭한 의료시설이었다.
물론, 이렇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맞이한 어둠.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도하연은 그때, 한 가지 묘안을 내놓았다.
“정부 측과 연락해서 이곳에 다시 보내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녀의 말은 의외로 특효약이었다.
수십 명의 생존자, 그리고 자체적으로 자생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곳.
심지어 주변도 정리하지 않았는가.
정부 측에서도 이곳을 지원하면 자기들도 다시 서울을 차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휴대폰이야 남아돌고, 이들은 정부 측과 연락하는 데 성공했다.
“말투가 다들 딱딱한데?”
군인틱한 말소리에 당황했지만, 이들은 조사단을 파견한다는 말에 안심할 수 있었다.
전기가 통하지 않아 벌어진 두려움은 금세 해결되었다.
이들의 작업이 순조로워 지고 있을 때, 설동은 차를 타고 중랑구 근처를 헤매었다.
가족. 오로지, 그 생각으로 유상인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아니, 아예 자필로 쓴 전단지를 사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가 새로 얻은 휴대폰 전화번호와 다랑 아파트의 주소를 쓰고, 중랑구 곳곳에 붙였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았지만, 설동은 정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설동은 평소처럼 이 근처를 배회하고 다닐 때였다.
갑자기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은 전화. 하지만 가족이 아니라 주하나였다.
“설동 씨. 지금 돌 와주셨으면 하는데요?”
“뭔 일 있어요?”
“지금 입구 쪽에서 한 여성이 전단지를 보고 찾아왔거든요? 피도 흘리고 잘 먹지도 못한 거 같아서 보호 중인데, ‘상인이를 도와주세요.’ 라고 부탁하던데요? 유상인이면 설동 씨의….”
주하나의 다음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설동은 그 자리에서 핸들을 거칠게 돌렸다.
라서현은 홀로 살아남았다. 유상인이 잡혀가고 그녀는 상인의 부모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했다.
“구해야 해.”
나온 대답은 단순했다. 아니, 달리 수단도 없었다.
유상인을 보내고 이들이 숨어 있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라서현도 마찬가지였다.
신이문은 앞장섰다.
“우리 아들을……!”
위치를 아는 건, 이들뿐이었다. 라서현이 그들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신이문은 도주한지, 얼마 안 되어 다시 한 번 강민호의 본거지로 움직였다.
차량이 없기에 힘들게 걸어서 이들은 강민호 무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서 피투성이로 쓰러진 유상인이 보였다.
강민호 패거리들은 유상인을 묶어놓고 잔혹한 구타를 가했다.
“야! 거기까지! 죽으면 안 돼! 오래 괴롭히고 죽인다!”
강민호는 잔학했다. 절대로 유상인이 죽을 정도로 구타하지 않았다.
하지만 괴로울 정도로 고문을 가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 라서현은 두 눈에 핏발이 서는 걸 깨달았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유상인을 구하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강민호 패거리에게 손쉽게 파악된다.
세 사람은 울분을 참으며 기회를 노렸다. 어떻게든 밤까지 기다리고, 유상인을 구출하기로 말이다.
밤이 되자, 이들은 유상인을 한 천막에 집어 놓고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