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14
114
성장 (2)
* * *
‘파이어볼.’
화륵.
어떤 마법사가 지금 떠오른 불덩이를 보았으면 놀랐을 것이다.
첫째로, 아무런 주문을 외우지 않았는데 마법이 발현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불덩이의 개수 15개가 넘어갔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했다.
하지만 이것은 엘런을 아는 이였다면 그리 놀라울 것도 아니라며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엘런이 침묵의 마법사라 불리게 된 결정적인 능력이었고 자주 보여 주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이 있었다.
엘런의 뒤에 떠오른 파이어볼은 보통의 것보다 7배는 큰 것이었다.
슈우우웅.
단순히 산술적으로 일반적인 파이어볼 100개의 화력을 자랑하는 불덩이들이 일제히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그것들이 내뿜는 화력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혹자는 그것을 보고 궁극의 화염계 주문 헬파이어라며 소리를 지를 수도 있을 정도였다.
“후우.”
그 방화의 장본인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숨을 길게 내쉴 뿐이었다.
‘대단하긴 하군.’
엘런은 자신에 손에 들려 있는 스태프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굴트에게 넘겨받은 전설급 아티팩트, 도트의 스태프였다.
백색으로 길게 뻗어 있는 스태프의 몸체, 초승달 모양의 장식, 그리고 끝에 박혀 있는 커다란 보석.
그 보석은 영롱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굴트가 가지고 있을 때의 검은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침식하고 있던 네트의 영혼을 빼내자 도트의 스태프는 자신의 원래 색깔을 되찾은 것이었다.
-이제 도트의 스태프 사용법도 익숙해진 것이냐?
‘감은 잡히는 것 같습니다.’
호족의 마을을 떠난 엘런은 곧장 남쪽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이 광활한 초원을 빠져나가려면 최소 10일 동안 말을 달려야 했다.
엘런은 그동안 바쿤다에게서 배운 고대 마법과 굴트에게서 받은 도트의 스태프 사용법을 익히기로 했다.
‘고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인 고대어의 심상. 그 심상을 이용해 내 무영창의 마법을 사용하면 고대 마법의 위력을 낼 수 있다.’
고대어라는 건 결국 현대 마법사들의 주문과 같은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단어의 심상.
세계에 대한 계산은 그 심상에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엘런은 고대어의 심상을 익혀 고대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엘런은 아니었다.
그는 숙달을 위해 하루 대부분 시간을 심상을 익히는 데 사용했다.
바쿤다가 보여준 마법을 기억하며 반복적으로 심상을 떠올리자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숙달해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도트의 스태프에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어느 정도 선에서 막혀 있을 때, 마치 운명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도트의 스태프였다.
‘단순히 계산 보정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도트의 스태프가 가지고 있던 계산 보정 기능은 다른 계산 보정 아티팩트와는 원리가 달랐다.
도트의 스태프는 사용자가 고대어의 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식 계산의 보정 기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초원을 통과하는 동안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어.’
엘런은 10일 남짓한 시간 동안 남쪽으로 내달리며 도트의 스태프를 이용한 고대 마법 사용법을 익혔다.
그리고 엘런의 눈에는 트라키아 초원의 이정표가 보였다. 한 남자가 자신을 붙잡고 정말로 들어갈 것이냐고 물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이제 프로드로 가서 조금 쉬어야겠어.’
물론 여기서부터 프로드 왕국까지도 거리가 꽤 멀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부터는 여관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트라키아 초원은 망망대해와도 같았다.
그곳의 경관은 항상 일정했다.
엘런은 밤마다 드넓은 초원에 누워 하늘을 이불 삼아 덮고 잤다.
먹을 것은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만약 엘런이 엘리너스에서 채집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굶어 죽었을 수도 있었다.
‘이제는 따뜻한 수프에 고기를 먹고 싶다.’
중간에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기 위해 몬스터 요리를 했지만, 그것은 맛이 아니라 영양소 보충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엘런의 눈에 익숙한 표식이 들어왔다.
‘이건?’
이정표에 남아 있는 미세한 흔적. 그것은 아르곤에서 사용하는 표식이었다.
‘이곳까지 왔었구나.’
발리체를 떠날 때, 왕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흔적을 숨기며 나왔다.
그럼에도 자신의 위치를 찾아낸 것을 보며 그는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 표식을 해석한 엘런은 더 이상 그 표정을 유지하고 있을 수 없었다.
“이럇.”
두두두.
고삐를 당긴 엘런은 방금까지 떠올리고 있던 따뜻한 수프며 편안한 잠자리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
‘프로드 왕국이 위험하다.’
가빈은 발리체에 정보원을 남겨 놓았다고 했다. 그에게서 자세한 정보를 들어야 했다.
엘런은 달리고 있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 * *
“폐하, 고센 제국의 병력이 이제 대놓고 국경을 노리고 있습니다.”
북동의 세드릭 백작이 다급하게 말했다.
“크흠.”
알베르토의 앓는 소리가 현재 프로드의 상황을 대변했다.
고센 제국과의 전쟁이 끝난 지 3년도 흐르지 않았는데,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상황이었다.
“항복을 선언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전쟁을 한단 말인가.”
프로드 왕국과의 전쟁에서 고센 제국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들은 재빠르게 항복을 선언한 탓에 국경의 일부만 주는 것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 고센 제국의 현 황제인 에밀리오 고센은 모든 지지를 잃어버렸다.
황권이 줄어든 상황에서 귀족들이 득세했고 정국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본디 전쟁은 국가의 안정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
내부부터 흔들리고 있는 고센 제국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전쟁을 준비할 리가 없었다.
“폐하, 그것은 고센의 제3 황자인 알폰스 고센이 원인일 것입니다.”
그 말을 한 것은 로미우였다.
로미우는 국왕의 명에 따라 국정에 참여하여 식견을 넓히고 있었다.
“제3 황자 따위가 어떻게.”
알베르토의 말대로 알폰스 고센은 황위 계승의 가장 후순위인 제3황자였다.
하지만 고센의 위기는 그에게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그의 냉철한 분석과 번뜩이는 아이디어, 그리고 황제에 준하는 카리스마는 귀족들을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알폰스에 의해 국정은 금방 안정을 찾아갔다.
이윽고 에밀리오 황제는 제3황자 알폰스에게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지시했다. 바야흐로, 새 황제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고센의 영광을 되찾을 성전을 준비하겠다.’
대리청정 선언 후, 그가 가장 먼저 선언한 것은 바로 영토의 수복이었다. 그를 위해 고센은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알폰스의 공포정치는 귀족들의 표면적인 반발을 잠재울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언제 터져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영토의 수복을 이유로 들어 프로드 왕국을 공공의 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되찾은 영토에 대한 포상을 후하게 걸어 귀족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유도했다.
“그렇다 해도 무리하게 전쟁을 준비한다면 주변국들은 어쩌겠다는 말인가.”
고센 제국은 동부 대륙의 패권을 가진 국가였다.
당연하게도 가장 광활하고 비옥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주변국은 그 영토를 부러워했지만, 감히 제국을 상대로 선공을 감행할 국가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제국은 정국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병력의 대부분이 프로드의 국경으로 집결했다. 하이에나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기에 알맞은 조건이었다.
“에다인 왕국에서도 북서쪽 국경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어째서! 에다인 놈들은 우리가 없어지면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가 될 것을 모르는 것인가.”
알베르토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부 대륙의 최강국이 경쟁국을 점령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음 차례는 주변의 다른 국가들일 것이다. 그것이 힘의 논리였다.
그런데 저 멍청한 에다인 놈들이 제국과 힘을 합쳐 프로드를 치려 하고 있었다.
알베르토의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군사를 반으로 나눠야 한다. 하지만 저들은 모두 온전한 군사들이다. 양쪽 모두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로미우는 생각에 잠겼다.
비대칭 전력이라고 불리우는 그랜드 마스터와 7서클 대마법사를 투입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은 아바마마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전쟁 중에 왕의 경호를 포기하는 것은 곧바로 전쟁의 패배를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적들은 그 틈을 노려 암살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카드 경과 탑주 둘 중 하나만 투입할 수 있고 우리는 한 곳을 버려야 한다.’
로미우는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한 곳을 버리면 그곳의 병력은 시간을 끌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분명히 둘 다 살릴 방법이 있을 것이다.’
로미우는 지금까지 자신이 보았던 책을 모두 떠올렸다.
분명히 이 지식들 중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할 전략이 있을 것이다.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쪽 모두를 살릴 방법이 없었다.
귀족들은 서로 파를 나누어 어느 지역을 지켜야 할지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로미우의 귀에는 그 소리가 멀게만 들려왔다.
‘저들은 어째서 하나를 버리려 하는가? 어느 지역이든 프로드의 땅이고, 프로드의 병사이며, 프로드의 국민이 있는 곳이다. 어떻게 그것을 버린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로미우는 혼란스러웠다.
‘엘런만 있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세상을 구하겠다면 길을 떠났던 엘런이 떠올랐다.
그는 세상을 구하러 갔지만, 그 때문에 프로드가 위험에 처했다.
그것이 엘런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누군가에게 기대려 해서는 안 된다. 내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로미우는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의 불순한 생각을 털어 버렸다.
이미 엘런이 해 준 것들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자꾸만 그에게 기대려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턱.
누군가 자신의 손등에 손을 올렸다.
이곳 회의장에서 왕자의 손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아바마마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소자는 지혜가 모자라 도저히 방도를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로미우의 말에 알베르토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너의 신념이라면 네가 이끌어 갈 프로드는 참으로 따뜻할 것 같구나.”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언쟁을 벌이던 귀족들도 어느새 입을 다물고 그의 움직임을 좇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다, 정치에서는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갈 수는 없다. 어떤 것을 얻고 싶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합당한 무엇인가를 내주어야 하지. 이번엔 너의 선택을 보고 싶구나.”
로미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소를 위한 대의 희생. 그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정치는 선택이다. 그 선택에 국왕으로서의 철학이 담겨있기만 하면 된다.”
로미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국가, 영토, 국민. 프로드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떠올랐다.
번쩍.
로미우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서는 확고한 의지가 보였다.
“너의 눈만 보아도 만족스럽구나.”
알베르토는 로미우가 어떤 답을 내놓든 상관없었다.
그들의 전력이 프로드 왕국을 파멸로 이끌 정도는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센 제국도 전쟁을 오래 유지할 힘은 없을 것이다.
이번 피해는 크겠지만, 프로드 왕국은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왕자의 선택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부터 로미우가 생각한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귀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멍해졌다.
“이상입니다.”
로미우의 눈빛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너의 선택인가?”
“그렇습니다.”
알베르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선택을 존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