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85
185
연합의 도래 (3)
* * *
“내가 말하는 연합은 그저 각 나라의 군이 각자의 지휘체계를 가지고 협력만 하는 것이 아니오. 한 명의 지휘관 아래 모두가 모여 한 나라의 군처럼 움직이는 것이오.”
라뷔에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회담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엘런과 수도 없이 연습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몬스터의 대침공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헬라 왕국이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 이 시기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오.”
라뷔에가 제시한 연합군은 서부 대륙의 역사 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랬기에 선뜻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은 일원화된 연합군이 각자에게 얼마나 이득이 될지를 계산하느라 바빴다.
라뷔에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엘런과 눈을 맞췄다.
‘그대의 말대로인 것 같소.’
아라카에서 돌아온 엘런은 곧바로 라뷔에에게 연합군을 결성할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그로서도 타국의 지휘관에게 자신의 군을 넘겨주는 것이 불안했다.
엘런은 그런 라뷔에에게 연합군의 전략적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에게 설득된 라뷔에는 토마르 왕국의 대표로서 연합군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다른 이들의 표정도 자신이 처음 엘런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똑같이 변했다.
“토마르의 국왕은 제가 제시한 연합의 개념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것 같군요.”
그 소리 없는 수 싸움을 가장 먼저 깬 것은 교황 트리에스테였다.
그녀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귀국의 제안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요. 에레네스 역시도 일원화된 연합군 창설에 찬성을 표합니다.”
그녀의 찬성이 있자, 스티어드 왕국의 국왕도 찬성표를 던졌다.
몬스터의 침공을 직접 겪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연합군은 좋은 제안이었다.
오히려 서부 대륙 최강국 에레네스나 몬스터와의 전투를 비교적 잘 수행하고 있는 토마르의 전력이 들어온다면, 방어가 더 수월해질 수도 있었다.
“크흠.”
그러나 크트론과 브룩 왕국의 국왕들은 여전히 난색을 보였다.
특히나 브룩의 국왕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허점을 치고 들어온 라뷔에에게 놀란 상태였다.
라뷔에가 대규모 군대 전략론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도리어 반격을 맞은 꼴이었다.
“귀국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는 알겠소.”
그들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라뷔에는 엘런과 함께 준비한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는 회담장 한가운데 펼쳐져 있는 서부 대륙의 지도를 가리켰다.
“몬스터들이 귀국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겠지요. 만일, 몬스터들에게 왕국이 무너진다고 해도 기껏해야 토마르나 스티어드 헬라 정도라고 예상하지 않으셨소?”
“그런 것까지는 아니오.”
크트론과 브룩의 국왕은 라뷔에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그들의 정곡을 찌른 말이었지만, 대놓고 그 말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귀국들의 앞에는 에레네스가 버티고 있으니 몬스터들에게 침공당할 일은 없을 테고, 오히려 3개의 왕국이 무너지게 되면 얻는 것이 더 많아진다고도 생각할 것이오. 그러나 이것을 보시겠소?”
스윽스윽.
라뷔에는 금화와 은화를 몇 개 꺼내더니 지도에 올려놓았다.
다른 이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지금까지 몬스터들이 등장한 곳을 표시한 것이오. 금화는 대규모 침공이, 은화는 소규모 침공이 있었던 곳이오. 다들 여기서 보이는 게 있소?”
언뜻 보기에는 산발적으로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금화와 은화였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규모 공세가 이루어진 후, 그 주변으로 소규모 공세가 이어지는 방식이오. 금화가 있는 지점들 사이에는 말로 달려도 일주일이 걸리는 거리가 존재하오. 그러나 이들은 단 이틀 만에 이 사이를 뛰어넘어 공격했소.”
꿀꺽.
목이 메말랐는지 누군가가 침을 큰 소리로 삼켰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는 자가 없을 정도로 모두의 집중은 라뷔에의 손가락으로 갔다.
“이들은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 확실하오. 게다가 이들의 진행 방향은 에레네스의 서쪽, 바로 크트론과 브룩 왕국이 있는 곳이오. 이런 상황임에도 귀국들은 그저 방관만 하시겠소? 지금을 놓치면, 다음은 귀국들이오.”
온화한 말투, 그 속에 담겨 있는 묵직한 본론.
라뷔에의 언변은 지금까지 엘런이 만났던 달변가들과는 전혀 다른 무엇인가 있었다.
엘런은 이것이야말로 로미우가 가져야 할 언변술의 가장 최상위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크트론과 브룩 측의 표정도 볼 만했다.
그들은 라뷔에가 놓아둔 동전에선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모든 동전을 훑어본 그들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헬라 왕국의 수도였다.
순간적으로 그들의 눈에는 그곳이 자신들의 수도와 겹쳐 보였다.
“알겠소. 크트론도 찬성을 표하겠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브룩도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겠소. 함께하도록 하겠소.”
결국,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니 그들도 연합군 창설의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결정이 되었군요.”
트리에스테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질 이 연합군의 수장을 뽑아야 하지 않겠어요?”
“연합군의 대표는 에레네스의 크루세이더나 신관 이 맡는 게 가장 좋지 않겠소? 이를테면 교황님의 뒤편에 있는 한센 경이나 도란 경 말이오.”
라뷔에의 입장에서는 토마르가 수장의 자리를 가지면 좋았겠지만, 이것이 가장 구색에 맞았다.
서부 대륙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에레네교였고, 에레네교의 교황이 있는 에레네스야 말로 연합군의 수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였다.
다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의견에 수긍했다.
그러나 라뷔에의 대답이 끝나자 브룩의 국왕이 손을 들었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소.”
“말해 보겠나요?”
트리에스테의 허락을 받은 브룩의 국왕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토마르의 국왕께서 말한 대로 이것은 서부 대륙의 운명을 건 전투임이 틀림없소. 여기서 연합군의 역할은 이 위기를 헤쳐나갈 아주 중요한 요소이오. 그렇기에 연합군 수장의 선출은 훨씬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의 시선이 라뷔에에게 돌아갔다.
“듣자 하니, 메카 평원에서부터 아주 뛰어난 무위를 보여주던 자가 토마르 왕국에 있다고 하던데. 혹 사실이오? 사실이라면, 그자야말로 연합군의 수장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겠소?”
그의 말에 다른 이들도 호기심을 가졌다.
“그런 자가 있단 말이오?”
“이번 몬스터 공세가 가장 거센 곳이 토마르지 않소. 만약 그가 없었다면, 토마르 왕국은 단 며칠 만에 헬라 왕국처럼 되었을 거라는 소리도 떠돈다고 들었소.”
그러자 회담장의 모든 시선이 라뷔에에게 쏠렸다. 당장 답변을 내놓으라는 눈빛이었다.
“브룩 국왕의 말이 사실이오.”
라뷔에의 대답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그 자신의 무위도 뛰어나지만, 특히 뛰어난 것은 바로 그가 전술적으로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오. 그는 대규모군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에 대해 아주 해박하오. 덕분에 토마르 왕국은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소.”
그의 설명에 회담장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 자가 있었으면, 진즉에 말하지 그러셨소? 연합군의 수장으로 정말이지 알맞지 않소.”
“그자는 누구이오? 그리고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오?”
소란 속에서 오직 교황 트리에스테만이 잠자코 그 장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척.
라뷔에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에 마치 실이라도 묶여 있는 것처럼 다른 국왕들의 고개가 이끌려 갔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은 정확히 엘런이 있는 자리에서 멈추었다.
“바로 내 호위기사의 자격으로 온 베리 경이오.”
“호오.”
“보기만 해도 안심이 되는 것 같소.”
“그대가 토마르 불세출의 전략가였군.”
그들은 기대감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엘런을 바라보았다.
“베리 공, 그대에게 직접 묻겠소. 연합군의 총지휘관 자리를 맡도록 하겠소?”
브룩의 국왕이 엘런에게 물었다.
‘이건 생각했던 전개가 아닌데.’
엘런은 연합군 총지휘관으로 자신이 추대되는 상황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는 에레네스의 대표성이 연합군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계산하지 못했던 것은 다른 국왕들의 절박함이었다.
그들은 몬스터들의 예상치 못한 침공으로 극도의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조금 전, 라뷔에의 설득으로 크트론이나 브룩의 국왕도 왕국의 안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들 역시도 아라카에서 있었던 이야기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에레네스의 신관과 크루세이더들이 투입되었음에도 메카 평원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불안감에 정점을 찍은 것은 헬라 왕국의 점령이었다.
여태까지는 에레네스가 지원군을 보내서 해결하지 못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아라카에서의 패배를 시작으로 헬라 왕국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에레네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런 사실은 에레네스에 대한 굳은 믿음 속에 균열이 생기게 했다.
그와 중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엘런이었다. 그는 에레네스가 하지 못한 것을 해내고 있는 인물이었다.
각 왕국의 왕들은 이제 종교가 아닌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휘하에 있는 것보다는 총지휘관이 릭을 사로잡는 것에 있어 유리하겠지.’
에레네스의 신관이라면, 메카를 더럽히고 성유물을 노리는 릭을 보는 순간 즉시 사살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엘런은 그에게서 얻어야 할 정보가 많았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릭은 사로잡아야만 했다. 자신이 총사령관이라면 그것이 훨씬 더 유리했다.
라뷔에가 엘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엘런에게 부탁한다는 의미였다.
에레네교의 손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토마르 왕국의 입장에서도 엘런이 총사령관이 되는 선택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처억.
엘런은 토마르 왕국 형식의 경례를 취했다.
“부족하지만 제게 맡겨만 주신다면, 몬스터들을 몰아내겠습니다.”
엘런의 대답에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트리에스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인제 보니 그대는 이프루를 방문한 적이 있었군요.”
엘런이 그녀의 표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쯤,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엘런의 몸이 움찔했다.
“무슨 말씀이오? 베리 경은 토마르의 기사로서 크루세이더 임명식을 거친 자가 아니오. 그는 순례 여행도 하지 않았소?”
라뷔에도 아뿔싸 하는 생각에 얼른 엘런을 변호했다.
그러나 트리에스테는 그런 엘런을 지긋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눈빛은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에레네 동산의 멘도사.”
그녀의 입에서 엘런이 가장 우려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분명, 이프루를 통과할 때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른 크루세이더를 만났을 때조차도 자신에 대한 의심을 느끼지 못했다.
라뷔에의 확실한 신분 보증이 있으니 애초에 신원을 검사하려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교황은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가져간 자로군요.”
움찔.
그 말에 가장 크게 반응한 것은 엘런이 아니었다.
“거기로 도망쳤었군.”
바로 트리에스테의 뒤에 서 있던 한센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듯한 기세로 그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