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30
30
이변 (2)
‘저놈이…….’
유진이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엘런은 반응하지 않았다.
어디 얼마나 더 지껄이나 지켜보기로 했다.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보니 무언가 켕기는 게 있나 보구나. 네 스승이 증거를 가지고 왔는데도 더 이상 발뺌할 것이냐?”
자크가 눈짓하자 유진은 품에서 천주머니를 꺼냈다.
“그것은 무엇인가?”
도어는 유진이 꺼낸 천주머니를 보며 물었다.
그 주머니는 척 보기에도 음산한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엘런이 흑마법 실험을 한 후 미처 처리하지 못한 부산물입니다. 저도 저의 제자가 흑마법을 공부했다는 사실이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발견했고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르륵.
유진이 천주머니를 풀자 검은색의 마나를 품고 있는 구체가 나타났다.
“아아.”
검은 마나가 뿜어내는 스산한 기운에 모두 뒤로 물러섰다.
“엘런이 그럴 리가 없어. 저는 엘런이 공부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 왔습니다. 하지만 흑마법 같은 걸 공부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킨버가 엘런을 두둔했다.
하지만 자크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정학 기간에도 혼자서 따로 지냈다고 하더군.”
자크는 이어서 말을 계속했다.
“누가 자신이 흑마법을 공부한다고 말을 하고 다니겠는가. 저놈이 숨어서 그걸 공부했다면 어쩔 것이냐?”
“그건…….”
자크의 말에 킨버는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엘런이 공부하는 것은 많이 봐 왔다.
하지만 그는 분명 단독으로 행동하는 적이 많았다.
“난 결백하다. 정학 동안 오로지 책을 읽고 공부만 했을뿐. 이건…….”
“그만!”
도어는 사람들의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막았다.
“그것은 척 보기에도 흑마법의 부산물 같아 보이는군. 하지만 그것을 엘런이 한 것이라고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도어의 질문에 유진은 기다렸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엘런이 정학 동안 있던 여관에서 챙겨 온 것입니다. 여관 주인이 방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지요. 아마 그 방을 조사해 보면 아직 남아 있는 부산물들이 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런의 기숙사에서도 똑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허어.’
엘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섣불리 변론하려고 나서면 안 된다.
유진이 꿍꿍이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뒤통수를 치고 나올 줄이야.’
흑마법을 연구한다고 누명이 씌워진 이상 이 상황을 완전히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다.
어설프게 면피하는 수준으로는 앞으로 계속해서 엘런에게 꼬리표가 붙어 다닐 터.
‘시간이 필요하다. 유진 녀석을 완벽히 논파할.’
자신은 일개 아카데미 학생.
그에 반해 유진은 어엿한 마법사다.
지위에서 차이가 났으니 유진을 논파하기 위해선 완벽한 ‘물증’이 필요했다.
“일단 이 문제는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네. 하지만 엘런의 정황증거가 유력하니 조사할 동안 그를 아카데미 내의 감옥에 송치하도록.”
도어의 말에 교직원들이 움직였다.
“진정해, 엘런. 아직 확정된 게 아니고 조사차 잠시 있는 거니까.”
교직원들은 엘런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게 영 수상했다.
혹시나 그가 마법이라도 난사한다면 큰 피해가 있을 수도 있었다.
“…….”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엘런은 따로 저항하지 않았다.
‘유진, 내가 저놈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겁이 많은 놈이라 이런 일은 준비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냉정해져야 했다.
지금 상황으로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 봤자 아무도 들어 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 조사만 받는 거야, 조사만.”
엘런이 팔을 내밀자 교직원들은 안심했다.
* * *
덜컹.
쾅.
쇠창살이 닫히며 커다란 소리를 냈다.
간수는 열쇠를 짤그랑거리며 엘런의 눈에서 멀어졌다.
‘내 동선까지 파악해서 철저하게 계획한 일이었다. 유진 같은 놈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엘런의 머릿속에는 자크 체들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전 생에서는 본 적이 없던 마법사였다.
‘체들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놈이니 그자가 손을 썼을 거야.’
인제 와서 후회한다고 한들 소용이 없었다.
감옥으로 내려오는 동안 완전히 냉정을 찾은 엘런이었다.
-엘런, 흑마법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 것인가? 내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마탑 내에 흑마법을 연구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없어지자 그제야 프로뱅이 입을 열었다.
“70년 전까지는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흑마법사 네트 때문에 흑마법이 금지됐죠.”
엘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간수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네트 님이?
“그 미치광이를 알고 있습니까? 그자는 혈마법을 위해 한 도시 전체의 주민을 희생시켰습니다. 그 후로 전 대륙의 마탑들은 피의 마법뿐만 아니라 상위 항목인 흑마법까지 금지했죠.”
혈마법은 마나에 인간의 피와 영혼을 추가로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그 힘은 매우 강력했으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인간이 희생되어야만 했다.
네트는 이 혈마법을 위해 한 도시에 거주하는 인간을 모두 원료로 삼아 버린 마법사였다.
-허어, 그 누구보다 진리에 도달하실 것 같은 분이셨는데, 어쩌다가 그런 짓을.
프로뱅 또한 흑마법사였다.
사형당하기 직전 리치화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흑마법사였기 때문이었다.
흑마법이라는 것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사악한 마법은 아니었다.
그저 기본 원소인 빛의 대비인 어둠을 사용한다는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흑마법을 사용할 때 검은 마나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아카데미에서도 흑마법 수업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그의 하위 마법 분야이던 혈마법 때문에 이런 악명이 씌워졌다.
“힘에 대한 갈구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마탑에서도 공개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짤그랑.
그때 간수의 열쇠뭉치 소리가 들렸다.
엘런은 재빨리 입을 닫았다.
“이쪽입니다.”
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온 모양이었다.
“평민 따위가 나와 대등할 수 있었던 것이 이런 요행 때문이었구나.”
엘런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간수가 데리고 온 이는 릭 체들턴과 레오나드였다.
“이곳은 학생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 아닙니까?”
엘런은 간수를 향해 불만을 표시했다.
“그런 건 너 같은 죄인이 판단할 사항이 아니지.”
‘또 보나마나 가문과 돈을 이용했겠지.’
엘런은 퉁명스러운 눈빛으로 체들턴을 쳐다보았다.
“내가 너 새끼 조심하라고 했지? 그러다 한 번에 갈 줄 알았다.”
레오나드가 옆에서 깐죽거렸다.
“넌 내가 나가면 뒈졌다.”
엘런의 말에 레오나드는 움찔하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그의 눈빛을 보자 그때 맞았던 곳이 다시 아파 오는 것 같았다.
“저는 흑마법을 연구한 적 없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니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 주십시오.”
“쯧쯧, 끝까지 입만 살았구나. 내 너의 꼴을 보려고 왔을 뿐이다. 철창 안에 있는 것이 영락없는 벌레로구나.”
체들턴의 명백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엘런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도발에 이성을 잃는 것은 한 번이면 족했다.
“레오나드, 가자꾸나.”
그런 엘런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체들턴은 몸을 홱 틀고는 출입문으로 향했다.
“넌 거기서 평생 못 나올 거다.”
체들턴을 따라가던 레오나드는 고개를 돌려 엘런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엘런이 답하기도 전에 얼른 몸을 내뺐다.
‘피라미들이 까부는구나.’
엘런은 속으로 가소롭다고 여겼다.
쿵.
그들이 나가자마자 다른 사람이 감옥을 찾아왔다.
바로 유진이었다.
“너는 장래가 촉망되는 제자가 맞다. 하지만 일단 내가 마법사로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시는 분이 여기까지는 왜 왔습니까, 스승님?”
엘런은 눈앞에 보이는 유진의 면상을 한 대 날려 주고 싶었다.
“심한 형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제자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해라. 그리고 혹여나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로스에 있는 너의 부모에게 피해가 가지 않길 바란다면 말이야.”
빠드득.
체들턴과 레오나드의 도발도 쉽게 넘긴 엘런이었다. 하지만 지금 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철컹!
“이 새끼가 진짜!”
엘런은 철창을 부서질 듯이 움켜잡았다.
“그럼.”
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부모님은 가만히 둬!”
그의 말을 뒤로하고 유진은 감옥을 나가 버렸다.
“젠장.”
자신이 어떻게 되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언급하고 협박을 한다?
‘유진, 네놈은 내가 철저하게 박살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