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a job as a fantasy Hero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용사가 된 초반에는 방금 은정이 언급한 과거의 그 일 대한 궁금점을 풀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와서는 조금 뒤로 미뤄놓은 느낌이 있었다.
“그러게. 나도 그 이유를 고민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었네. 워낙 고민해야 할게 많아서. 하하.”
지훈은 요 몇 달간 그 일에 대해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고민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런 것은 사치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훈의 상황을 알고 있는 시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지훈의 말에 동의했다.
“방금 말씀하신 거 보니 이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따라서 다음 스텝을 결정하시려는 거 같던데. 그 시간에 다른 업무를 하느니 한번 그거에 대해 알아보는 게 어때요?”
“알아본다라…….”
“오늘 업무는 500만 원짜리잖아요? 그 정도면 한두 번 정도는 업무 건너뛰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회의 때 수도권 외의 지역의 요괴 출현에 대해서도 걱정하셨으니까 겸사겸사해서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제 치안유지활동에 관해 회의를 나누던 중 잠깐 지방의 치안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도 의논이 되었었다.
당분간은 각 지역의 고문들을 중심으로 해서 자경단들을 모집해서 처리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무진도사가 머물고 있는 대전, 박 신부가 머물고 있는 부산, 보현선사가 머물고 있는 강릉을 중심으로 한 거점중심방어체계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지부장님이 사고가 난 곳이…….”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고속도로였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지훈이 핸드폰을 켜 지도 어플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기억을 더듬어 사고가 난 곳을 찾았다.
높은 대관령을 쌩으로 타 넘기 때문에 한때 고속도로였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험한 도로.
“지금은 456번 지방도라고 부르는 모양이군요.”
* * *
“와. 여기서 떨어지신 거예요? 어마어마한 높인데요?”
“정확한 장소는 여기가 아니고 저쪽 근처일 거야. 저 숲 어딘가에 떨어졌으니 살아난 거 자체가 기적이지.”
지훈과 은정이 가드레일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쪽에는 시영이 보현선사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지난주에 은정이 했던 제안대로 셋은 지훈이 사고가 났던 곳 근처를 찾아왔다.
지훈 일행이 온다고 하니 보현선사도 할 이야기가 있다며 여기 오기 직전 강릉에서 합류했다.
“저기 아래쪽 숲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기 아래 보이는 마을을 통해서 산으로 들어가던가 아니면 저 위쪽 자연휴양림 입구를 통해서 들어가야겠지. 흠… 한번 가볼까? 다른 볼일도 있고.”
“다른 볼일이요?”
“뭐, 그건 가서 자세히 이야기할게. 선사님 어떤가요?”
지훈이 주변을 살펴보는 보현선사를 불렀다.
기감을 이용해 주위의 동향을 살피던 보현선사가 지훈 쪽으로 걸어왔다.
“아직은 괜찮네. 전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강원도는 평소에도 요괴들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요괴들에 대한 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네.”
“제설 같은 거군요?”
“적절한 예시군.”
강원도는 눈이 많이 오는 곳이지만 그만큼 대비가 잘되어 있다.
그와 반대로 부산 같은 곳은 눈이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눈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
이에 대한 비판점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눈이 자주 오지 않는 곳은 눈에 대한 대비보다 다른 재해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네 말대로 앞으로 요괴들의 등장이 더 잦아지고 그 수준도 올라간다면 상황은 역전될 가능성이 있지.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이곳은 치안유지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걸세. 늙은이 몇 명만이 살고 있는 마을이 대부분인 이 지역은 요괴의 소굴이 되는 거지.”
“흠… 안 그래도 그에 대한 대비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출발하시죠.”
보현선사와 은정이 뒷자리에 지훈이 조수석에 시영이 운전석에 앉았다.
차는 시영이 지윤에게 빌려온 것으로 넷이 타기에는 아주 적당한 크기의 차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지훈은 업무용 차를 몇 대 구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신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저기로 들어가면 되겠네요.”
“네. 그런데 확실히 사람이 적긴 하네요. 아니 사람이 적다기보다 동네 자체가 조용하네요.”
“하하. 이쪽은 대부분 이렇죠. 흔히 말하는 시골? 그런 느낌의 마을이 대부분이에요. 저는 익숙한데 시영 씨는 익숙하지 않은가 보군요.”
“저도 언니처럼 이런 게 익숙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차라리 이런 게 나은 것 같아요. 사람이 너무 많으면 짜증 나거든요.”
뒷자리에서 툴툴거리는 은정을 향해 짧게 웃어준 지훈이 창문을 열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히터로 인해 따뜻했던 차 안에 공기를 순환시켰다.
지훈은 외부에서 들어온 찬바람에서 인간이 아닌 것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도 이미 요괴들이 잔뜩 있군요. 그나마 여기 사람들에게 위협이 안 된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겠네요.”
“여기라면… 괜찮을 걸세. 요괴들이 움직이기에는 이곳을 지키는 영물이 부담될 테니.”
“하조(賀鳥)라고 했던가요? 이 근처를 지키는 영물이?”
지훈의 물음에 보현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조라면 사람의 얼굴을 한 새의 모습을 한 영물로 주변 존재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거나 병을 치료를 해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굳이 말하면 힐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힐러는 귀족인가?”
“무슨 말인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한계점이 뭔지 대충 예상이 가긴 하는군요…….”
“그렇네. 아까 말한 그 문제점이 적확히 들어맞는 곳이기도 하지. 도착했군.”
일행이 도착한 곳은 길 끝쪽에 위치한 펜션.
이 펜션의 뒤쪽으로 숲과 산이 펼쳐져 있어 이곳에 차를 세워놓고 가면 될 것 같았다.
갑자기 나타난 지훈 일행 때문에 의아한 표정을 한 주인이 펜션 안에서 밖으로 나왔다.
조수석에서 내린 지훈이 주인에게 다가가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주인이 기쁜 표정으로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여기서 하루 묵기로 했습니다. 그냥 큰 방으로 하나 빌렸는데 괜찮죠?”
지훈이 다시 차로 돌아와 일행에게 그렇게 말했다.
은정과 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사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차에서 내리는 보현선사에게 지훈이 물었다.
구겨진 승복을 손으로 탁탁 피며 보현선사가 지훈의 질문에 답했다.
“나는 저녁에 할 일이 있네. 내가 연락하면 나를 데리러 올 사람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러면 일단 짐을 풀고 나오면 되겠구만. 바로 올라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펜션 주인을 따라 펜션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방에다 짐을 풀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던 터라 정리가 잘되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급하게 구한 숙소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주인에게 잠시 산을 둘러보겠다고 말한 뒤 밖으로 나온 일행은 길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디인지는 알고 가시는 건가요?”
“아니. 뭐 그냥 느낌 따라가는 거지. 주위를 기감으로 느껴가면서 어디 뭐가 있나 하면서 걷다 보면 나오지 않겠어?”
평소와 달리 느긋해 보이는 지훈의 모습에 은정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시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은 시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둘을 흘깃 바라본 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지금은 딱히 계획을 짜서 행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요. 그냥 천천히 둘러보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팀장님… 아니 지부장님에게 볼 수 없던 모습이라 조금 놀랍네요.”
“하하. 그런가요? 저도 뭐 항상 빽빽하게 사는 건 아닙니다.”
지훈이 웃으며 대꾸했다.
시영은 왠지 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떠올라서 슬쩍 웃고 말았다.
“그리고 뭐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어차피 몇 달 지나면 다시 다르게 불러야 할 텐데.”
회사가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 지훈은 TCS Korea의 대표로 부임하게 된다.
아마 그때가 되면 강지훈 대표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저는 왠지 팀장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네요.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된다니까요. 하하.”
넷은 작게 난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니 어느새 일행은 소나무 숲속에 들어와 있었다.
이런 광경은 처음 봤는지 시영과 은정 모두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들어온지 몇 분 안 된 거 같은데 주위가 온통 나무뿐이네요.”
“그러게요. 마치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이에요.”
“뭐 서울 근처에서만 살면 보기 힘든 광경이긴 하죠.”
숲이 울창한 만큼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운도 도시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함께 걷고 있는 시영도 그러한 차이점을 느낀 것 같았다.
아직 은정은 경험이 적어 잘 모르겠지만 시영은 도시와 이곳의 차이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곳은 요괴가 더 자주 나타나려나요? 뭐랄까 기운 자체가 확연히 다르네요?”
“확실히 느껴지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요괴들이 나타나는 빈도는 도시보다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리고 그 수준도 높구요. 하지만 도시와 달리 이곳은 이미 요괴들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 그 생태계 내에서 해결이 되죠.”
“해결이 된다는 게?”
“예를 들어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하급 요괴들은 바로 먹이가 되어 사라진다는 거죠. 어느 정도 수준이 높으면 좀 달라지겠지만요.”
그래서 오히려 낮은 수준의 요괴들은 이곳이 아닌 사람들이 많은 도시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게다가 방금 지훈이 예를 들었던 다른 지역의 요괴들 같은 경우 생태계 내에서 배척당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어렵다.
그와 반대로 이곳의 생태계와 어울리는 요괴들은 그나마 적응하고 살아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해서 이곳의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거기에다 사람들은 점점 도시로 몰려들게 되니 자연스럽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러한 지역은 요괴들의 구역으로 정착되고 있구요.”
“그래서 거점지역방어체계를 구축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뭐 그런 이유도 있죠. 땅 전체를 지키는 것보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지키는 게 더 나으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이제는 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험한 곳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지훈은 좀 더 기감을 넓혀 주위를 확인해보았다.
확실히 많은 요괴들이 숲과 산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냥 평이하네요.”
“이 정도가 평이한 거군요?”
시영이 자신의 기감에 잡히는 요괴들의 수를 세어보며 그렇게 반문했다.
“이쪽은 대부분의 지역이 이 정도인 건가요?”
“엄밀히 따지면 우리나라에 이 정도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는 곳은 지리산 정도밖에 없습니다. 규모로 따진다면야 이곳이 넘사벽이지만요.”
“그러고 보니 지리산 쪽으로는 한 번도 안 가봤네요?”
“거기야 뭐 너무 알아서 잘 굴러가서 문제인 곳이라. 하하.”
지훈의 의미심장한 말에 시영이 무언가 물어보려던 찰나 지훈이 시영의 말을 막았다.
“왜 그러세요?”
“흠… 선사님? 혹시 이거 느껴지시나요?”
“뭐 말인가?”
보현선사가 지훈의 옆으로 다가가 지훈으로부터 설명을 듣고는 지훈이 가리키는 곳으로 기감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어느 지점에서 기운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기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패턴이 일정하네요. 저기에 뭐가 있는 거죠?”
지훈의 물음에 보현선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몇 분 후 선사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기억나는구만. 하지만 이상하군.”
“이상하다고요?”
“그렇다네. 내 기억이 맞다면 저곳에는 오래된 서낭당이 있을걸세. 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은지 50년이 넘었을 텐데… 이상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