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0
제10화
어느 장소에서든 가면을 쓰고 있으면 이목을 끈다.
탁자 위에 놓인 마법 주머니도 시선을 잡아끄는데 한몫했겠지.
100명도 수용 가능한 21층 회의실엔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나를 향했다.
대놓고 보지는 않았다.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시선만 힐끔힐끔 돌려 나를 봤다.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마법 주머니는 또 뭔지, 궁금해하는 눈치다.
차라리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목이 덜 쏠렸을까?
“괜찮으세요?”
김민주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물었다.
나도 가면을 톡톡 두드리면서 작게 대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요.”
가면 때문에 이목이 쏠렸지만, 그 가면 덕분에 얼굴이 가려져 민망하지 않았다.
그래도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면 뻘쭘함을 느꼈을 거다.
혼자 있지 않게 배려해 준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에게 감사해야겠다.
김민주는 내 오른 검지가 두드리는 스마트폰을 슬쩍 내려다보고는 빙긋 웃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원정대원이었군요?”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원정대를 소개받기 위해서였다.
홍유릉 게이트 원정에 관한 설명을 듣는 것도 겸했고.
그런 장소에 그녀와 로비에서 봤던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이 와 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내 예상대로 그녀들이 전부 헌터라는 것.
어쩐지 눈빛이 많이 본 그것이다 싶더라니.
“전투팀은 아니지만요. 저랑 언니들은 보급팀 소속이에요.”
“보급팀이요?”
김민주와 그녀의 동료들을 바라봤다.
원정대에서 보급팀은 대개 단순한 육체노동을 하곤 한다.
그녀들은 그런 담당을 할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 원정대엔 참가해 보신 적이 없나요?”
“네?”
참가한 적이 없긴 하다.
일개 사무직원이 원정대에 어떻게 참가할 수 있을까.
원정대와 관련된 경험으로는 게이트 앞에서 도희와 태천이를 응원차 배웅한 게 전부다.
“그럼 간략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응?
아무래도 뭔가 오해를 한 듯하다.
원정대에 참가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A등급 길드에서 한 팀의 팀장을 맡고 있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설명할-”
“보급팀은 ‘이동용 마나 발전기’를 갖고 다니는 팀을 뜻해요.”
내 입보다 김민주의 입이 더 빨랐다.
그녀는 오해를 풀 그 시간을 주지 않고 보급팀에 관해 설명했다.
잠깐만, 내가 아는 보급팀이랑 의미가 다른데?
뭘 갖고 다닌다고?
“이번엔 해체업자들은 배제됐어요. 이번 원정 목적은 우담화를 채집하는 거니까요.”
“잠깐만요.”
“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이동용 마나 발전기?”
“아. 네. 홍유릉 게이트는 독기와 냉기가 강력한 곳이니까요. 이동용 마나 발전기가 있어야 저희 보급팀이 버틸 수 있죠.”
“…….”
일대 그룹….
어처구니가 없는 곳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마나 발전기는 게이트에서도 일반인들이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 주는 물건이다.
편리하지만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마나 발전에 쓰이는 마법석의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비싸서 해체업자를 관리하는 대형 길드만 사용한다.
그걸 이동용으로 개조해서 원정에 갖고 다닌다?
“그런 거였나….”
“네?”
일대 그룹의 길드가 단기간에 성장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해체업자들이 배제됐다는 말로 추측할 수 있었다.
원래는 그들도 합류한다는 뜻이니까.
즉, 이 사람들은 다른 길드가 게이트 앞까지 사냥한 몬스터 사체를 짊어지고 일일이 되돌아오는 동안 사냥과 해체를 동시에 진행했다는 거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남은 건 전투팀이겠군요?”
“네. 전투팀은 연후 오빠를 포함해 총 6명의 A등급 헌터들로 구성됐어요.”
“그럼-”
벌컥!
구성원을 물어보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우연후였다.
그가 처음 보는 남자와 함께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복면을 코에 걸친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나를 쳐다봤다.
경계하는 건 아니다.
남자의 얼굴에서 ‘진짜 가면을 쓰고 있네?’라고 말하는 듯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일대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예요. 이름은 ‘오주한’이구요.”
짧게 설명해 준 김민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 옆에 앉아 있던 동료들도,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일어났다.
앉아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곧 정면 한가운데에 선 우연후가 회의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니까. 다들 바쁜데 금방 모여 줘서 고마워.”
그러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괜찮습니다.”, “당연히 와야죠!”라고 대답했다.
옆에 앉은 김민주와 동료들도 “응, 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계가 느껴지긴 했지만, 사이는 다들 좋아 보였다.
그 모습에서 가식이나 어색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 놀라웠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오늘 여러분을 모은 건 드디어 식물 채집 전문가를 찾았기 때문이야.”
회의실에 있는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우연후가 말한 식물 채집 전문가가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와 있는지 알았기 때문일까?
호기심이 전부였던 시선엔 이제 놀람과 감탄이 담겨 있었다.
“음, ‘지온’ 씨 일어나 줄래요?”
우연후가 가리킨 사람은 바로 나다.
자격증에 따듯한 손가락을 새길 수 없어 새로 지은 이름이다.
마음 같아선 그냥 쓰고 싶었지만.
따듯한 손가락이라고 쓰여 있으면 누가 봐도 위조한 자격증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지온.
‘손가락 지’에 ‘따뜻할 온’을 쓴 거다.
내가 지은 건 아니고, 우 회장의 비서 엄주아가 제안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운천 길드의 이성훈 씨가 소개해 준 식물 채집 전문가, 지온 씨.”
“…지온입니다.”
그냥 이름을 말하며 고개만 까딱 숙였다.
미사여구 붙여서 소개해 봐야 뭐하겠는가.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 손뼉을 쳐 주었다.
무슨 손뼉까지 쳐….
가면을 쓰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뻘쭘하게 새빨개진 얼굴로 서 있을 뻔했다.
“지온 씨, 그것을 보여 주세요.”
“그것?”
“네.”
“아.”
설지초를 말하는 거다.
사람들에게 내 능력이 증명됐음을 보여 주려는 거겠지.
그의 의도를 파악한 나는 바로 탁자에 놓인 마법 주머니를 들었다.
이 마법 주머니도 그가 설지초를 담으라고 준 거였다.
설지초를 그렇게 꺼내 놓고 다녔다간 큰일 난다나?
맞는 말이어서 군말 않고 받았다.
그 대신이지만 부탁받은 간단한 일이 하나 있었다.
“여기요.”
마법 주머니에서 설지초를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오른손에 들린 버섯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거다.
“지온 씨는 나와 아버지 앞에서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손과 얼굴로 향한다.
몇몇 사람들의 입에선 “와아!”하고 크게 감탄하는 소리가 나왔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고맙습니다. 지온 씨 덕분에 드디어 동생을 위해 홍유릉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 말하고는 우연후는 내게 정중하게 몸까지 숙이며 인사했다.
정직한 사람이라서 저렇게 진지하게 행동하는 걸까.
그럴 리 없었다.
그의 행동은 계산된 쇼맨십이다.
“우린, 앞으로 이틀 후 홍유릉 게이트에 진입합니다. 내 동생, ‘우채연’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기에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고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지금 이 자리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원정대 리더는 우연후고 주인공도 그다.
그는 품에서 실링 왁스가 찍힌 스크롤을 꺼냈다.
“원정 기간은 열흘! 우린 그 기간 안에 우담화를 채집하고 홍유릉 게이트를 빠져나올 겁니다.”
스크롤에 대한 설명은 없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우담화까지 가는 지름길이 그려진 지도일 거다.
9년 전 홍유릉 게이트에 원정을 떠났던 바이오 길드와 파르메스 길드한테서 구매했으리라.
김민주가 작은 목소리로 사과해 왔다.
“죄송해요.”
“응? 아. 아니, 괜찮습니다.”
“하지만 연후 오빠가….”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오빠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사이다.
차마 “사람들의 기분을 끌어올리려고 당신을 이용했잖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겠지.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미 사과받은 일이에요. 당신까지 사과를 더한다면, 무게가 너무 무겁죠.”
“…아!”
그렇다.
우연후가 지금 날 이용한 건 이미 서로 얘기가 끝난 일이다.
멋대로 일을 저질렀으면 기분이 나빴겠지만….
나는 설지초를 담은 마법 주머니를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따듯한 손가락 씨.”
우연후는 마법 주머니를 건네고는 대뜸 사과했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인간이 나한테 뭔가 했었던가?
설지초를 마법 주머니에 넣고 나서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갑자기요?”
“21층 회의실에서 조금 이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1층 회의실이라면 그의 원정대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런 거였나.
나는 그가 내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마도 그의 원정대는 나 같은 사람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을 거다.
오랜 기다림은 사람들을 지칠 대로 지치게 했을 테고.
그가 날 이용해서 하려는 건 사람들의 텐션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이용하는 건 괜찮은데, 쓸모가 있겠어요?”
“괜찮…은 겁니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괜찮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길드의 간부로 활동했던 만큼 사람들의 텐션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우리도 길드원들의 텐션을 끌어올리고자 자주 서로를 이용했었다.
주로 이용하는 쪽은 도희였고 이용당하는 쪽은 나와 태천이였다.
그게 보기에 좋았고 설득력도 더 강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와 태천이가 도희를 이용하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라.”
진짜로 안 떠오르는데…?
***
나는 도망치듯 일대 그룹을 빠져나왔다.
원정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어서다.
민주 씨와 그녀의 동료들이 방패막이가 돼 주지 않았더라면….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빌딩을 빠져나오자마자 내가 향한 곳은 남산의 대장간이다.
제작을 맡겼던 팔뚝 보호대를 챙기기 위해서다.
또 A+등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만큼 장비도 좀 구할 생각이었다.
우연후에게 부탁해 볼까도 했지만, 오늘 본 그의 성격상 이것저것 과하게 챙겨 줄 거 같아서 그만뒀다.
“어서 오십시오!”
대장간에 들어서자 대장간 주인이 우렁차게 인사를 해 왔다.
그는 마른 수건으로 방어구의 먼지를 닦아 내고 있었다.
“장비 가지러 왔습니다.”
“장비? 무슨 장비 말입니까?”
“무슨 장비냐니, 팔뚝 보호대요. 어제 놀 가죽 가져와서-”
“아아! 해체 실력 좋던 그 양반! 가면 쓰고 있어서 못 알아봤습니다.”
“엥? 가면?”
왼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손끝에 피부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건 가면의 매끄러움이었다.
여기까지 가면을 쓴 채 온 건가.
어쩐지 사람들이 흘겨보더라니….
“여기 있습니다.”
대장간 주인이 팔뚝 보호대 한쪽을 내왔다.
나는 곧바로 그것을 착용했다.
끈을 잡아당기는 것으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어 착용감이 좋았다.
“혹시 B등급 장비 있습니까?”
“D등급 장비는 있습니다만.”
대장간 주인은 두꺼운 팔을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하긴, E등급 게이트 앞의 대장간에서 B등급 장비를 찾은 게 잘못이었다.
“B등급 장비가 필요한 거면 대장장이 하나 소개해 줄 수 있는데, 해 줄까요?”
“오, 그래 주시면 고맙죠.”
“기다려 봐요. 주소 적어 줄 테니.”
말이 끝나자마자 대장간 주인은 수첩을 꺼내와 주소를 휘갈겨 썼다.
그러고는 수첩에서 종이를 뜯어 내게 건네주었다.
“근데, 장비를 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네? 아, 자격 제한을 건 대장간인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
“실력이 좋다고 인성도 좋은 건 아니라서요.”
그런 사람을 왜 소개해 줘, 이 양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