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11
제111화
방 안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려 있다.
거울은 그러나 단순한 거울이 아니다.
내 모습을 비추지만, 옆방에서는 이 방을 들여다볼 창이다.
한쪽에서만 보이는 매직미러다.
즉, 나는 지금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나 보던 취조실에 들어와 있었다.
마치 영화 속 등장인물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흥미로웠다.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그런 내게 한 남성이 질문을 던진다.
[헌터 협회 헌터 관리 4팀 팀장 최기우]나를 만나고자 집까지 찾아왔던 협회 사람이다.
개미굴 독점권을 판매했고, 병원에 병문안을 오기도 했었다.
의식을 차리지 못했을 때 찾아왔기에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흠….”
나는 그가 한 질문을 머릿속에 되뇌었다.
왜 그랬느냐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정확히는, 눈앞에 있는 최기우에게 대답하기 곤란했다.
내 스킬에 대해 말해줘야 할 테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해줘도 괜찮겠지만….
그걸 확신할 수가 없어 묵비권을 행사했다.
최기우는 묵묵부답인 날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묵비권을 행사하시려는 겁니까? 이럴수록 곤란해지는 건 도운 씨예요.”
글쎄, 과연 내가 곤란해질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오해로 비롯해 취조실까지 오게 됐지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오해만 풀리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나갈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오면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해줄 생각이다.
최희석이나 한진환 같은.
“도운 씨.”
“네.”
“우리 이렇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저희도 도운 씨가 이상한 짓 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거 압니다.”
“음….”
“그러니 쉽게 갑시다, 네? 왜 그랬는지만 말해주세요. 그럼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도돌이표도 아니고.
최기우는 또다시 왜 그랬는지 물어왔다.
나는 그에게 이유를 말해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러자 차분한 태도로 나를 대하던 최기우가 감정을 드러냈다.
그 감정은,
[세계수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향한 불만을 느꼈습니다.]불만이었다.
쾅!
최기우가 책상을 거칠게 치며 날 부른다.
“도운 씨!”
그가 감정을 드러냈기 때문일까?
이 방에 없는 이들도 감정을 드러냈다.
[어린나무는 아니꼬운 시선들도 느꼈다고 전합니다.]새싹이가 매직미러를 통해 이곳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느꼈다.
“지금 선배님께서 내일 있을 일로 얼마나 바쁜지 압니까!”
“압니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가 얼마나 바쁜지는 전화 통화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협회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었으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선배님을 불러달라고 해요?”
“그래야 제가 입을 열 거니까요.”
“아니, 그냥 말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대체 왜 쓰레기를 땅에 파묻은 겁니까!”
왜 쓰레기를 땅에 파묻었냐고?
그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쓰레기를 파묻은 일을 떠올렸다.
***
퀘스트를 깨기 위해 철제 쓰레기통을 뒤집었다.
사람 한 명쯤 거뜬히 들어갈 정도로 큰 쓰레기통에서 각종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안타깝게도 쓰레기통 크기와 비교하면 내용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꼴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뭐야, 저 사람 왜 저래?”
“보지 마, 정신 이상한 사람 같은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됐어. 그러다 괜히 귀찮아질라.”
따위의 말들도 해댔다.
그 말들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아르카로 땅을 팠다.
금세 파낸 구덩이에 쓰레기를 파묻고, 다시 흙과 벽돌을 덮는다.
그러는 동안 내게 뭐라고 하던 사람들은 떠나가 버렸다.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해 자리를 피한 것이 분명했다.
“…잘 됐군.”
덕분에 나는 조용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고 알테라-쇼넴을 쓸 수 있었다.
두 손에 마나를 모으고 땅에 갖다 댔다.
땅이 꺼지며 마나가 솟아올랐다.
마나는 그대로 내 바지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향해 날아들었다.
[B등급 전대 세계수 퀘스트 관리인의 길(초급)] [알테라-쇼넴 1000번 쓰기(929/1000)]쓰레기통 하나를 전부 비워내자 33회가 채워졌다.
남은 건 71회.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좋아. 다음 쓰레기통을 찾아 헤매볼… 아.”
다른 쓰레기통을 찾아 헤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서지혁과 최기정이 갖고 온 선물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 뱀 인간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에너지를 뺏을 수도 없고….”
이런 데서 에너지를 뺏었다간 무슨 오해를 받을지 모른다.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에너지를 뺏을 수도 없고….
“흐음. 가장 좋은 건 어디엔가 처박아두는 건데….”
문제는 이곳 유료 주차장에는 처박아둘 만한 곳이 없다는 점이다.
내 차는 지금 협회 지하 주차장에 있었다.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고 지하 주차장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거다.
헌터 협회 앞이었으니까.
밤낮이 없고 시간 개념도 부족한 헌터들은 늦은 시간에도 협회 앞을 어슬렁거리는 법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도 지금 그러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중얼거리며 뱀 인간을 내려다봤다.
놈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축 늘어져 널브러진 꼴이 꼭 쓰레기 같….
“…아?”
놈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눈앞의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온다.
은빛의 철제 쓰레기통.
그것은 둘레가 컸다.
폭의 길이도 길다.
마치, 사람 한 명쯤은 거뜬히 들어갈 듯이.
“이거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뱀 인간을 들어 쓰레기통에 처넣은 것이다.
그놈은 쓰레기통에 쏙 들어갔다.
마치 놈을 위해 맞춤 제작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 법이다.
“좋아, 완벽해.”
짧게 자찬을 한 후 다른 쓰레기통을 찾아 떠났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밤길을 헤맸다.
얼마나 쓰레기통을 찾고 땅을 파고 알테라-쇼넴을 썼을까….
나는 어느새 빛이 닿지 않는 뒷골목까지 오게 됐다.
뒷골목엔 쓰레기통이 없었지만, 나뒹구는 쓰레기들은 많았다.
담배꽁초와 찌그러진 캔 따위들을 땅에 파묻고 스킬을 썼다.
그때, 시야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드디어…!”
지금껏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였다.
알테라-쇼넴 쓰기 조건을 모두 달성했다.
이는 관리인의 길 퀘스트의 조건이 전부 달성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퀘스트 알림!] [세계수 관리인이 B등급 전대 세계수 퀘스트 관리인의 길 조건을 전부 달성했습니다.] [따스한 손길 10000번 쓰기(10000/10000)] [A등급 이상의 비료 1번 주기(1/1)] [알테라-쇼넴 1000번 쓰기(1000/1000)] [세계수의 뿌리 1000번 쓰기(1000/1000)] [성공 보상 – 전대 세계수의 수액] [퀘스트 보상받기를 클릭하면 보상이 우편함으로 보내집니다.] [보상받기를 클릭하시겠습니까? (YES/NO)]바로 퀘스트 성공 보상을 받았다.
전대 세계수의 수액은 곧바로 우편함으로 옮겨졌다.
화면 속 우편함에 New! 표시가 떠올랐다.
“수액이라….”
수액은 세계수의 마나를 최대 5만까지 저장할 수 있는 성질을 지녔다.
아르카가 마나 칼날을 뿜어낼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 만큼 좋은 재료 아이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제 와서 수액은 좀….”
아르카를 한 자루 더 만들 것도 아닌데 수액이 필요할까.
복용하기에도 조금 그렇다.
현재 마나가 260만이나 되니까.
겨우 5만 정도 더 늘어난다고 해봤자 기쁘지도 않다.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긴 하다.
낫긴 한데….
“계륵이구만….”
큰 쓸모는 없으면서 버리기에는 아깝다.
적당한 가격으로 파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우편함을 열었다.
열자마자 주황빛의 수액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주황빛…?
이상하다.
아르카를 제작할 때 쓰였던 수액은 주황빛이 아니었다.
재이네 대장간에서 주르르 구르다 포스기에 막혔던 모습을 기억한다.
확실히, 그때 수액은 초록빛이었다.
“…….”
화면 속 새싹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런 경우가 예전에도 있었다.
바로 전대 세계수의 나뭇잎이다.
활엽수와 침엽수.
두 종류였었다.
둘 다 전대 세계수의 나뭇잎이었지만 성질은 달랐다.
포션으로 만들었을 때 활엽수는 마나를 더 채워줬고, 침엽수는 체력을 더 채워줬다.
새싹이의 나뭇잎은 그 반대인 것 같지만.
아마… 수액도 그렇겠지.
세계수의 마나를 저장하는 성질이 아니라 다른 것을 저장하는 성질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선 홍수정에게 갖고 가 감정을 받아봐야겠다.
“음? 도운 씨?”
감정을 받아보기로 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는 얼굴… 같아 보였다.
“…아!”
분명 헌터 협회 소속의 사람이었다.
개미굴 던전 일로 집까지 날 찾아왔던.
무슨 팀인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팀장급이었던 건 기억한다.
이름이 아마….
“최…기우 팀장님?”
“오, 맞습니다. 절 기억하십니까?”
최기우가 눈을 조금 크게 뜨며 다가왔다.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았다.
난 한 번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 못하다.
내가 그를 떠올릴 수 있었던 건, 그가 병문안을 한 번 왔었기 때문이다.
‘최기우? 누군데 병문안을…. 아, 그 사람이다!’라면서 얼굴을 떠올렸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은 거다.
병문안을 오지 않았으면 기억하지 못했을 거다.
“기억합니다.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네? 저야말로 묻고 싶은데요? 도운 씨가 이런 뒷골목에까지 웬일입니까?”
전대 세계수 퀘스트를 깨서 방금 보상을 얻었습니다.
그리 말하지 않고, 왼손에 들린 스마트폰만 흔들어 보였다.
그는 내가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있다는 걸 안다.
스마트폰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아하.”
내 짐작대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질문을 던졌다.
“최기우 팀장님은 여기까진 왜 온 겁니까?”
“그게….”
최기우는 자기 콧잔등을 긁적였다.
주변 눈치도 살펴댔다.
조심스러운 태도….
아무래도 협회 관련 일 때문에 이곳으로 온 모양이다.
“협회 인근을 배회하는 이상한 남자가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예? 이상한 남자요?”
“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아시죠? 이틀 후에 있는….”
“아, 네. 압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 중에 그 일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온 방송 채널이 그에 대해 떠들고 있는데.
최기우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무지하게 바쁜데 말입니다. 웬 놈이 또 이렇게 귀찮게 해주는 건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네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상한 사람 본 적 없습니까?”
“이상한 사람이라….”
나도 쓰레기를 찾느라 협회 인근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신고할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물고 빨고 하는 커플.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건을 교환하던 남자들 정도다.
“아뇨, 본 적 없는데요.”
“후… 그러시군요.”
“다른 인상착의는 없었나요?”
“인상착의요?”
“네. 혹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니까.”
“아, 머리를 묶은 남자라고 합니다.”
응? 머리를 묶어?
갑자기 불안함이 느껴지는걸….
“그리고 쓰레기통을 뒤집어대거나 쓰레기를 땅에 파묻었다고 하더군요.”
“…….”
…나네?
“그러면서 이상한 저주 같은 걸 했다고 합니다. 현재 협회는 테러범일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주? 테러?
이런…. 썩 좋지 못한 오해를 사버렸는걸.
“음…. 그놈 말인데요.”
“본 적 있습니까?”
“아무래도….”
“아무래도?”
“나… 같은데요.”
“아, 나 같으시다고요. 예?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했어요?”
최기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썹은 위로 올라가고, 눈은 동그래졌다.
순진무구해 보이기까지 한다.
“무슨…? 지금, 도운 씨가 쓰레기통을 헤집고, 쏟아부은 쓰레기를 땅에 파묻었다는 겁니까?”
“…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원래는 마른세수하려고 했지만, 한번 덮고 나니 다시 손을 떼기가 두려웠다.
손바닥에서 얼굴의 화끈거림이 느껴졌다.
“파묻은 쓰레기에 이상한 저주를 걸고요.”
“그게, 저주는 아니었습니다. 마법이긴 한데….”
“그러니까 도운 씨가 그 테러범이라는 거잖습니까.”
“아니! 절대로 테러를 계획한 건 아니고요….”
대답하면서, 손을 살짝 치웠다.
최기우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 있기도 했다.
“……일단, 같이 가주시죠.”
“넵.”
쪽팔려 죽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