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19
제120화
“후우. 귀찮아지겠군….”
공우재는 작게 중얼거렸다.
한숨을 내쉬는 그의 앞에 부하들이 서 있다.
이정근을 막아선 것이다.
그러나 이정근은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담긴 싸늘한 눈초리는 오로지 공우재만을 향했다.
“다졸의 공우재…. 대화 좀 하지.”
“…난 너랑 할 말 없는데.”
“없더라도 해라. 내가 있으니까.”
이정근이 차갑게 말했다.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 본다.
“…….”
“…….”
침묵의 끝은 공우재였다.
그가 픽 웃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좋아. 그렇게 나와 얘기하고 싶다니, 해봐.”
그러자 공우재의 부하들이 뒤로 물러났다.
이정근이 바로 주먹을 꽉 쥐었다.
“왕을 정하자.”
“뭐…?”
뜬금없는 말에 공우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이정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추도 헌터 교도소에서 가장 강한 1인을 정하자는 것….
그가 뜬금없다고 생각한 것은 표현 때문이었다.
왕(王).
가장 강한 1인을 정해봤자 교도소 안이다.
이딴 곳의 가장 강한 인간을 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그에게 이정근은 딴소리해댔다.
“못 알아들었나?”
이정근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킹핀을 정하자는 것이다. 이 교도소의 왕을.”
“…난 그런 거 관심 없는데. 그냥 너 하지 그래. 왕이란 거.”
“그럴 수는 없지.”
“흐음?”
“너처럼 달관한 듯 나오는 놈들이 꼭 나중에 뒤통수를 치거든.”
“일리 있는 소리군….”
공우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근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정근의 명령에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정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너 같은 놈들이야 뻔하지.”
“그래서? 그 킹핀이라는 건 어떻게 정할 거지?”
“당연히 실력행사로.”
“실력행사…? 교도관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지금 이 순간도.
공우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턱짓했다.
그들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다섯 명의 교도관이 서 있었다.
이곳을 노려보는 교도관들의 손에는 마나 충격기가 쥐어져 있다.
입을 꾹 다문 채 노려보는 교도관들에게서 낌새가 이상하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해 보였다.
하지만….
“지켜만 보고 있을 거다.”
이정근의 입에선 예상치 못했던 말이 나왔다.
“지켜보고만 있을 거라고?”
“그래. 딱, 저렇게. 내 장담하지.”
저 모습이 연기라는 소린가?
하하, 저놈들은 교도관이 아니라 배우가 돼야 했군.
공우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잡생각보다는 눈앞의 남자에 관해 생각할 때였다.
수감자들이 킹핀을 정하겠답시고 난리를 피우는데 교도관들이 지켜만 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의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관리문제였다.
수감자들의 리더가 정해져야 교도관들도 관리하기 편할 터였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는 이정근이 “내 장담하지.”라고 말할 근거가 되지 못했다.
수감자 주제에 교도관들이 나서지 않으리란 걸 장담한다면 그럴 만한 근거가 있으리라.
“…능력 좋은데그래.”
공우재는 순순히 이정근을 칭찬했다.
이정근이 교도관들에게 약을 쳤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목적은 분명 자신이 추도 교도소의 킹핀이 되기 위함일 터.
자신이 킹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이정근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게 헌터 교도소라고 해도 말이야.”
“그래, 그건 네 말이 맞군.”
한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는 군대에도 비리는 있다.
간부란 작자들은 생계형 비리라는 되지도 않는 단어를 붙여가며 뇌물을 받고 방산 비리를 저지른다.
누구보다 책임이 막중해야 할 군대의 간부들조차 그러는데 교도소의 교도관들이라고 어련할까.
그럴 리 없었다.
“…그런데 이곳엔 나만 있는 게 아닐 텐데.”
“그래. 다른 놈들에게도 놀자고 말할 생각이다. 네가 처음이었지.”
사실, 현재 추도 교도소는 폭풍전야와도 같았다.
뒷세계에서 한 무리를 이끌며 왕처럼 지냈던 범죄자들이 3명이나 새로 수용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교도소에서도 왕처럼 군림하길 바란다.
설령 좁아터진 우물의 개구리 같은 신세가 됐다고 해도.
그러한 이유로 추도 교도소는 현재 네 개의 파벌로 갈라져 있었다.
공우재의 파벌.
이정근의 파벌.
성준현의 파벌.
그리고… 원래 추도 교도소의 킹핀이었던 남자의 파벌.
“언제 할 생각이지?”
“내일.”
“내일?”
“그래.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일이 벌어지거든.”
“아.”
공우재는 고개를 내렸다.
손에 쥐고 있는 신문의 1면이 보였다.
‘S급 헌터, 내일 드디어 전원 모여!’
그런 문구가 크게 적힌 기사였다.
“과연. 이런 이전투구 따위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어….”
S급 헌터들이 모두 모이는 날 밤.
진흙탕에서 네 마리의 개가 싸우게 되었다.
***
백운천에는 A급 헌터가 10명이 넘게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검기를 가르쳐줄까?
한재임 1, 2, 3 같은 놈들인데?
당연히 안 가르쳐줄 거다.
아직도 검기를 못 쓰냐며 놀리고 비웃기나 하겠지.
태천이는….
어휴, 걔는 안 된다.
검기 좀 가르쳐달라고 하면 “이렇게 하면 돼. 어? 안 된다고? 왜 안 되지?” 같은 말이나 해댈 게 뻔하다.
천재란 것들은 늘 그 모양이다.
도희도 태천이와는 다르지만 좋은 스승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였다.
아마 검기에 관한 이론과 논문을 열거하면서 가르쳐 들 텐데….
그걸 듣는 나는 꾸벅꾸벅 졸기나 할 테다.
그리고 졸면 어떡하냐고 꿀밤을 얻어맞겠지.
“…맛있긴 하네요.”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나는 한진환을 따라왔다.
그가 좋은 술집이라고 말했던 곳은 고층빌딩에 있는 고급 바였다.
이름은 ‘텐더’였다.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고급 바’를 붙여 읽으니 이해가 갔다.
‘고급 바 텐더’.
“…….”
바 주인의 네이밍 센스가 심히 의심됐다.
하지만… 고급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곳이기는 했다.
한 면 전체가 창으로 된 이곳은 야경이 내려다보였고, 그것을 안주 삼아서 술만 마셔도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한진환이 시켜준 술 자체도 맛있었고.
이름이 뭐였더라….
맥캘란이었던가?
바텐더가 “유러피안 셰리 캐스크 특유의 중후한 향과 진듯한 맛이 일품인 술입니다.”라고 설명해줬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유러피안 셰리 캐스크…가 대체 뭔데?
그냥 영어 단어를 나열한 느낌만 들었다.
뭐, 그래도 확실히 비싼 가격만큼 맛은 있었다.
향이 깊고 진득한 맛이 일품이다.
“그거 아냐?”
대뜸 질문하는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흐흐흐’하고 삼류 악당처럼 웃고, 거절하지 못할 비열하고 달콤한 제안을 했던 사람과 동일인인가 싶다.
“당연히 모르죠.”
말을 안 해줬는데 어떻게 알아?
“진심으로 나를 따라잡으려고 하는 놈은 없었어.”
“어라, 그래요? 선배가 목표라고 떠드는 놈들 많지 않았나? ‘제2의 한진환이 되겠다’라는 둥 ‘한진환과 어깨를 견주는 헌터가 되겠다’라는 둥… 그렇게 떠드는 놈들 있었던 거 같은데?”
“그래. 네 말마따나 떠드는 놈들은 많았지. 하지만 진심으로 따라잡으려고 한 놈은 없었어. 오늘까지는.”
“오늘까지는…?”
“조주현.”
“아.”
“그 녀석, 진심으로 나를 따라잡을 생각이더군.”
흐음.
한진환을 따라잡을 생각이라….
근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조주현이 따라잡으려고 하든 말든?
“그렇군요…?”
“…관심 없어도 있는 척은 좀 해라, 자식아. 그래도 선배가 하는 말인데.”
억, 들켰네.
“술값 네가 낼래? 어차피 여긴 검기 배우려고 따라온 거니까 안 내줘도 상관없지 않나?”
그건 안 될 말이지.
여긴 고층빌딩에 있는 고급 바 아니랄까 봐 가격이 장난 아니었다.
술 마시는 데에 그런 거금을 썼다는 걸 도희가 알게 된다면….
“와…! 정말 그랬습니까? 기분 나쁘시겠네요. 아니, 그런 후배가 나왔다는 건 좋은 거니까,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하!”
“그런데 어떻게 진심인지 아닌지 파악한 겁니까? 과연 대단~한 통찰력이십니다. 이야, 꼭 본받고 싶은데요?”
“…….”
한진환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날 쳐다봤다.
황당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더 할까요?”
“됐다. 그만해라. 엎드려 절 받기도 적당해야지, 원.”
그러더니 앞에 놓인 술을 마신다.
그 비싼 걸 소주처럼 한입에 털어 마시고는 앞에 있는 바텐더에게 맥캘란을 한 잔 더 주문한다.
“…넌 바라는 게 뭐냐?”
“네?”
“헌터 왜 하고 있냐고.”
이 양반 아까부터 왜 이래.
술 마시면 진지해지는 유형의 사람인가?
답지 않게시리.
근데 난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거든.
“헌터로서 몬스터들에게서 국민을 지킨다는 의무를 열심히 이행하기 위해서죠. 또 한국 최초의 S급 헌터가 되고 싶기도 하고요. 제2의 한진환으로서요. 하하!”
“…….”
바텐더에게 새 맥캘란을 받던 한진환이 황당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몇 초 후 피식 웃었다.
“지랄도 풍년이다. 널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네가 그렇게 모범적인 놈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
“하하….”
“뭐, 말하고 싶지 않으면 됐어.”
됐다고?
대답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나 보군.
그럼 뭐 하러 물어본 거래?
“부탁 좀 하자.”
“부탁이요?”
“그래.”
“흠.”
진지한 소릴 해대더니….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나 보다.
부탁이라….
A+급 헌터가 스스로 하지 못해서 내게 부탁할 일이 대체 뭘까.
아마도 내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무진장 귀찮은 일일 거다.
부정적인 상황일수록 정확한 내 감도 부탁을 받지 말라는 경고를 울려댔다.
그러니….
“싫은데요?”
거절하도록 하자.
한진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또다시 맥켈란을 소주처럼 털어 마신다.
“들어는 보고 거절하지?”
“귀찮은 일이잖아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모르겠다뇨?”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해. 그런데 그게 어렵거나 귀찮은 일인지는….”
한진환이 씩 웃었다.
“잘 모르겠는데.”
삐, 삐, 삐, 삐.
경고가 미친 듯이 울려댔다.
직감이 절대 받지 말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A+급 헌터가 할 수 없는 일.
그게 어렵지 않고 귀찮지 않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거절할게요.”
“하하.”
한진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부탁을 바로 거절당했는데 기분이 상한 것 같지도 않다.
앞에 서 있는 바텐더에게 맥캘란 한 잔을 더 부탁한다.
그러고는….
“그래도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기 부탁을 말하려고 했다.
“아니, 싫다니까?”
“10년 전이었던가? 내가 웬 점술가 아가씨를 만났거든? 그때 예언을 하나 받았어.”
“저기, 이봐요? 내 말 안 들려요?”
“무표정한 얼굴로 예언을 해대서 그런가? 그날 분위기와 목소리가 도저히 잊히지 않더라고.”
한진환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싶은 내 표정을 봤음에도 말이다.
지금이라도 성역으로 도망칠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한진환이 히죽 웃어댔다.
방금 한 생각을 읽은 듯이.
“…뭐라고 했는데요.”
나는 포기하고 맞장구를 쳐주기로 했다.
부탁이야 듣고 나서 안 들어주면 그만이지, 뭐.
“내가 선구자가 된다더라.”
“선구자요?”
“그래.”
“뭐… 좋은 거 아니에요?”
선구자(先驅者).
앞서 달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주로 숭고한 목표나 진화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쓰이는….
뭐람. 부탁을 빙자한 자랑하기?
“문제는 이제부터야.”
“뭔데요?”
“선구자가 되는 건 좋은데….”
“좋은데?”
“죽어서 된다네?”
…뭐?
죽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