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25
제126화
63빌딩 앞은 밤인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정문 앞에는 레드 카펫이 깔렸고, 사람들은 그것을 사이에 두고 가로수처럼 서 있었다.
또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 같이 빌딩 반대 방향을 향했다.
빌딩 쪽으로 들어오는 차량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기다림은 제법 길어졌으나 사람들의 얼굴엔 지친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기다린 만큼 기대감이 더 커져 벅찬 설렘이 느껴졌다.
그 광경을 촬영하는 카메라맨들과 상황을 설명하는 리포터들의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일 때문에 나온 것이었으나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얼굴에 흥분과 열기가 느껴졌다.
“으, 떨려….”
지상욱이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렸다.
떨린다는 말처럼 긴장이 제법 컸는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서 있기도 버거워 보였으나 사람들로 분주한 곳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는 손을 뻗어 옆에 서 있는 여자의 어깨를 짚었다.
그보다 키가 훨씬 작고 어깨를 움츠러뜨린 여자, 이시형은 그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괘, 괜찮아?”
“으으, 아니…. 안 괜찮아. 심장 터질 거 같아.”
지상욱이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
이시형은 탄성을 흘렸다.
얼굴도 살짝 붉혔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6월의 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열기가 올라와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넌 괜찮아?”
“어? 뭐, 뭐가?”
“너 사람 많은 곳 싫어하잖아.”
“아…. 괘, 괜찮아. 아직은….”
아직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지 않을 거란 소리였다.
지상욱은 힘내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오늘 같이 와줘서 고마워.”
“아, 아니야. 나도 오고 싶었어.”
그리 대답하며 그녀는 싱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지상욱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면서도 친구를 위해 함께 와 주었다.
고마움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이시형은 지상욱이 그저 친구라서 와 준 것이 아니었다.
“네가 거절할 거 같아서 형님한테도 같이 가자고 말했었는데….”
지상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말한 ‘형님’이란 도운을 뜻하는 거였다.
그는 도운에게 같이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문자를 보냈었다.
도운은 “상황이 되면 거기서 보자.”라고 답한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본단 말이지…. 많이 바쁜가?”
“난 그래서 다행이지만….”
“어? 뭐라고?”
“아, 아냐! 아무 말도 안 했어!”
“으응? 뭐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시형은 “내가 언제?”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뻔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에 지상욱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너는 촬영 안 해도 돼?”
“촬영?”
“응. 네 채널에 올리면 좋을 것 같은데.”
지상욱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눈에 방송국에서 나온 카메라들이 들어왔다.
방송국 카메라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엔 스마트폰이나 작은 카메라로 촬영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현재를 소장하기 위해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상욱이 이시형에게 그런 질문을 한 건 후자의 경우였다.
이시형은 도운을 비난하는 동영상을 올렸던 시탑TV의 주인이었다.
“아… 응. 안 해도 괜찮아. 내 방송 콘텐츠랑 안 어울리는걸.”
“방송 콘텐츠… 문제야?”
“그럼. 주된 콘텐츠에서 벗어나면 시청자들은 떠나는 법이거든.”
“그래도 S급 헌터들인데? 영상 올리면 조회 수가 엄청날 거라고.”
“조회 수 때문에 S급 헌터들 영상을 올리고 싶지는 않아.”
“오. 뭔가 멋진걸….”
“…….”
물론, 전부 거짓부렁이었다.
그녀가 촬영하지 않는 건 조회 수를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애초에 초상권을 침해하는 시험의 탑 영상을 올리는 짓 따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가 카메라를 꺼내 들지 않은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일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이지! 이지!
“앗….”
이시형이 메고 있던 핸드백에서 소리가 울렸다.
스마트폰 알림 소리다.
그녀는 얼굴이 살짝 붉힌 채 스마트폰을 꺼냈다.
“잠, 잠깐만….”
“응. 천천히 해.”
스마트폰을 확인하던 그녀의 눈이 커졌다.
두 눈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입으로 튀어나왔다.
“어? 이 사람이 왜 이 자리에…?”
의문이 입에서 절로 나왔을 때,
“오! 왔다, 왔어!”
“오오!”
“누구야! 누가 가장 먼저 온 거야!”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빌딩 쪽으로 리무진 한 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수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차량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상욱아. 이것 좀….”
그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 있는 지상욱에게 닿지 못했다.
지상욱도 다른 사람들처럼 흥분해서는 소리를 질러 댔다.
“왔다! 시형아, 드디어 왔다구!”
소리를 질러 대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시형의 어깨를 붙들더니 마구 흔들었다.
제 말이 무시당하고 제 몸이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구 흔들리는데도 그녀는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가슴을 부여잡는 지상욱을 봤을 때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제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붕붕 저었다.
“누구? 누가 왔어?”
그녀는 키가 작았다.
사람들에게 파묻힌 채여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시형이 눈을 가늘게 떠서 누가 내리는지 확인했다.
“어… 잠깐만. 지금 차가 들어오고 있어서….”
“응.”
레드 카펫의 끝에 리무진이 멈춰 섰다.
그 끝에 서 있던 남자 한 명이 걸어가 차 문을 연다.
차에서 가장 먼저 내린 건 리롄제였다.
“오오. 리롄제다! 중국의 리롄제!”
지상욱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도 내린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환호했다.
어린 사람들보다는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 더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
공항에서 리롄제를 맞이할 때 도운이나 조주현보다 한민현 장관이 더 설레발을 쳤던 것과 같았다.
“……!”
리롄제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다음으로 내린 리우이호도 적잖이 당황한 듯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둘 다 수백에 달하는 인파가 모여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조금 더 익숙한 리롄제가 곧 능숙하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대부분을 차지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그 가운데,
“……어?”
지상욱은 당황하고 있었다.
환호하려던 동작 그대로 멈춘 채로.
리무진에서 내리는 도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도운은 한 장관과 조주현 다음으로 내렸다.
“도, 도운 형님?!”
“아… 몰랐구나?”
“뭐? 넌 알았어?”
“아니, 몰랐어.”
“……?”
알고 있던 것처럼 말하더니?
지상욱은 그런 얼굴로 이시형을 쳐다봤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아까 그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알았어.”
“그게 뭔데?”
“보면 알아.”
화면에는 인터넷 신문 기사가 떠 있었다.
공항에서 리롄제 일행을 맞이하는 한국 환영단의 모습이 담긴 기사였다.
환영단 멤버는 세 명이었다.
그중 맨 오른쪽에 서 있는 꽁지머리 남자는 지상욱에게 익숙한 얼굴의 남자였다.
백도운.
그가 평소와 달리 멀끔하게 차려입은 채로 서 있었다.
“헉…!”
지상욱이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붙잡았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던 이시형의 손이 포개졌다.
그녀는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앗!”
혼자 중얼거리던 지상욱은 깨달았다.
도운이 보냈던 문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명 도운은 문자로 답했었다.
‘상황이 되면 거기서 보자.’라고….
“그동안 연락이 왜 안 되나 싶더라니! 오늘 이러려고 말 안 했구나!”
상욱이 깨달음을 얻은 그 순간,
“오.”
귀가에 들릴 리 없는 도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리적으로 절대로 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둘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먼데다가 주변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상욱의 귓가엔 도운의 “오”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아마도 그가 도운과 시선이 딱 마주쳐서이리라.
“형님….”
“헤에.”
같은 이유로, 도운이 흥미로운 듯 탄성을 흘리는 소리도 들었다.
왜 그런 탄성을 흘린 것일까.
지상욱은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나머지 현재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이시형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서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손에 붙들린 스마트폰을 쥔 것이었지만.
제삼자가 멀리서 보기에는 연인끼리 손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 좀 해주지이!”
그 모습 그대로 지상욱은 소리쳤다.
도운은 씩 웃으며 그를 지나쳤다.
리롄제를 뒤따라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외적으로는 아니었지만, 내적으로는 덩그러니 남은 기분을 느낀 상욱은 옆에 있는 이시형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하, 진짜. 너무한 형님이라니까. 그치?”
“으응. 그러게….”
그녀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살짝 낮아져 있었다.
지상욱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발견했다.
이시형의 두 손을 꽉 쥐고 있는 제 두 손을.
서둘러 두 손을 거뒀다.
“아, 미안…! 아팠지?”
“어, 아, 아냐. 좋….”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붕붕 저었다.
제 입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꾹 참는다.
지상욱은 왜 저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홱 돌려 리롄제를 바라봤다.
S급 헌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해서였다.
“백도운….”
반면 이시형은 도운을 쳐다봤다.
그녀는 도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험의 탑에서 지상욱을 향해 돌팔매질할 때부터 싫었다.
비난하는 영상을 올렸던 것도 대신 복수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초췌한 몰골로 찾아온 지상욱이 도운과 화해했다는 말을 해왔다.
화해라기보다 맞고 온 몰골이었으나, 그녀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정말로 맞고 온 거라면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걱정된 것이었다.
그녀는 그러나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얼마 가지 않아 깨달았다.
그날부터 지상욱이 “도운 형님 말이야.”라고 화두를 던지며 자꾸 그에 관한 얘기를 떠들어 댔기 때문이다.
“아….”
지상욱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이 아쉬워했다.
리롄제가 손을 한 번 흔들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가 이시형을 쳐다봤다.
“와. 방금 진짜 심장 떨어질 뻔했어.”
“그랬어?”
“응. 도운 형님이 거기서 나올 줄 정말 몰랐거든. 진짜 ‘형이 왜 거기서 나와?’였다니까.”
“아하하, 정말 그렇네.”
“아무래도 나 약 올리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단 말이지…. 아까 봤지? 나랑 눈 마주치고 웃는 거.”
“응. 봤어. 못된 사람 같아.”
“어, 아니, 못된 건 아닌데….”
지상욱은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그녀의 입에서 “못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줄 몰랐다.
“또 들어온다!”
“오오!”
“누구야! 이번엔 누구냐고!”
사람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리롄제가 타고 왔던 것과 같은 검은 리무진이 부드럽게 빌딩 앞으로 달려와서다.
곧 리무진이 레드 카펫 앞에 멈춰 섰다.
누가 내릴지 기대감에 차오른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만 끊임없이 울려 댔고….
아까처럼 레드 카펫의 끝에 서 있던 남자가 걸어가 차 문을 열었다.
차 문이 열리자 막심 스미르노프가 내렸다.
뒤이어 이태천이 바로 내렸다.
그러자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커다란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환호 소리는 거의 여자들의 목소리로 이뤄졌다.
잘생긴 남자 옆에 잘생긴 남자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완전히 100% 여자들의 환호성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태천이 혀어어엉!”
남자의 목소리도 울려 퍼졌다.
이태천 팬이라는 이유로 제주도의 한라산 게이트를 주 활동지로 삼은 B급 헌터.
지상욱의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이시형은 이 장소에서 이태천을 흘겨보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지상욱을 탓했다.
지상욱, 이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