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26
제127화
15일 밤, 63빌딩에서 만찬회가 열렸다.
S급 헌터들을 환영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 모습을 촬영하고자 온 나라의 방송국이 접선해왔지만, 한국 정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전 세계가 한국의 방송을 찾아볼 수밖에 없도록 독점하기 위해서다.
물론, 거절할 때는 만찬회 모습을 각국 방송국에서 촬영할 경우 S급 헌터들이 불편해할 것을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한 이유로 정부도 만찬회의 시작 부분만 방송할 계획이었다.
만찬회에 참석하게 된 방송국도 단 네 개에 불과했다.
한국 공중파 방송 3사.
그리고 헌터 협회의 인터넷 방송.
협회 방송 진행자는 역시나 말단의 말단으로서 온갖 궂은일을 다 하는 공철이었다.
“안녕하세요. 죽지도 않고 또 돌아온 공철입니다.”
협회 방송은 원래 공철이 혼자 진행해왔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달리 ‘큰일’을 방송하게 됐다.
방송을 등급으로 책정한다면 ‘S등급’이리라.
그런 이유로 오늘 방송은 공철 혼자서 진행하지 않았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
공철이 옆을 가리킨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게 보이는 여자, 정하설이 드러났다.
그녀는 전 회차 방송에서 게스트로 나왔던 A급 헌터였다.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정하설 님이 또 초대되었습니다!”
“안, 안녕하세요! 정하설입니다!”
정하설은 공철에게 소개되자마자 밝게 인사했다.
푹 숙였다가 다시 올라오는 얼굴이 붉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앉아 있다는 게 쑥스러운 듯했다.
– 정하설! 정하설! 정하설!
– 정하설 그녀는 신인가. 정하설 그녀는 신인가. 정하설 그녀는 신인가.
– 극락, 극락, 극락, 극락, 극락, 극락, 극락, 극락!
– 하설 누나 귀여워요!
– 시커먼 남자 좀 치워줄래? 우리 하설 누나 좀 보게.
공철은 채팅창을 흘깃 보고는 씩 웃었다.
채팅창에서는 혼자 진행할 때는 느낄 수 없던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쉽네요. 여러분은 정하설 님을 더 못 보실 겁니다.”
– 진행자 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 뭔 소리?
– 개소리 ㄴㄴ
– 형 삐졌어?
– 우린 하설 누나를 볼 권리가 있다!
“하하. 여러분의 불행이 제 행복입니다!”
그리 말하자마자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엔 실실 웃던 공철과 딱딱하게 굳어 있던 정하설 대신 중년 남성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송무진’이었다.
채팅창은 금세 숙연해졌다.
– 앗, 아….
– ?
– 내 눈, 내 누운!
– 대통령이 갑자기 왜 나와!
– 나락, 나락, 나락, 나락, 나락, 나락, 나락, 나락, 나락
– 대통령 좀 치워줄래? 우리 공철이 형 좀 보게 ㅠㅠㅠㅠㅠㅠㅠ
– 다시 보니 우리 공철이 형이 선녀네 ㅠㅠㅠ
– 형 돌아와. 형 보고 싶어!
화면은 원래대로 바뀌지 않았다.
“…이만 말을 줄이겠습니다. 지금을 즐겨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송무진 대통령의 인사는 아주 짧았다.
현재 이곳의 주인공이 그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박수와 함께 송 대통령이 단상에서 내려왔고, 카메라는 각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S급 헌터들로 돌아갔다.
처음 화면에 잡힌 건 리롄제였다.
리롄제는 수제자인 리우이호와 술잔을 기울이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리롄제, 헌터는….”
공철이 화두를 던졌다.
그는 이름 뒤에 어떤 호칭을 붙여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고민 끝에 무난하게 헌터라는 단어를 붙였다.
“…S급 헌터로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죠?”
“네. 맞아요. 93세이시니까, 올해로 S급 헌터가 되신지 50… 53년이 지났습니다.”
“와, 53년…. 대단하네요.”
공철과 정하설이 한마디씩 던졌다.
이어 카메라는 막심 스미르노프를 찍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멀거니 앉아 있었다.
그 때문일까.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서도 가만히 있었다.
– 와, 잘생겼다….
– 근데 기분 나쁜 일 있나? 왜 저러는 거?
– 아니, 스미르노프 원래 저래.
– ㅇㅇ 과묵하기로 유명함.
– 평소라면 저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았을걸?
– 그럼 지금은 왜 있음?
– 이태천 때문이겠지. 만나고 싶다고 했었잖아.
– 아, 맞네.
– 흐음. 좀 심상치 않네.
– 뭐가?
– 둘 별명이 웃기잖아. 폭군. 기사.
– 억 ㅋㅋㅋ 그러네 ㅋㅋㅋ
– 폭군이랑 기사 ㅋㅋㅋ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안 어울려 ㅋㅋ
다음으로 카메라는 알레딩 밀러와 에디탓 그위친을 찍었다.
두 사람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대화가 즐거웠는지 밀러가 그위친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댔다.
활기찬 분위기 덕분인지 스미로느프의 테이블과 달리 그곳에 앉은 사람들은 서로 대화도 나누고 음식도 맛있게 먹었다.
그위친이 뭐라고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밀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아….”
정하설이 탄성을 흘렸다.
긴장한 나머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녀는 A급 헌터다.
그것도 솔로 플레이로 활동하는 A급 헌터.
웬만한 사람들보다 시야가 훨씬 넓다.
그렇기에 그녀는 옆에 앉은 공철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알아차렸다.
S급 헌터들의 눈길이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하설은 그들이 왜 저곳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가 방금 알아차린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현장에 있는 카메라맨이었다.
카메라맨은 S급 헌터들의 눈길이 모인 곳으로 카메라를 슬쩍 돌렸다.
그곳에는 백운천 멤버들이 앉아 있었다.
“앗…!”
정하설이 놀라서 외마디 소리를 흘렸다.
카메라맨도 그녀처럼 당황한 듯 다급하게 백도희를 줌인했다.
그녀는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흰 눈으로 만든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 방금 봄?
– 봄 ㅋㅋㅋㅋㅋㅋㅋㅋ
– 이태천 ㅋㅋㅋㅋ
– 역시 우리 기사님 ㅋㅋㅋㅋㅋㅋ
– 저런 자리에서도 먹는 걸 참지 않지 ㅋㅋㅋㅋㅋ
– 도희 누나 부끄러워하는 것도 ㄱㅇㅇ♡
– 우윳빛깔 백도희 우윳빛깔 백도희 우윳빛깔 백도희
– 재임 오빠 수줍어하는 모습이라니. 이건 귀하네요.
그녀는 정말로 차분하게 앉아 있던 게 아니었다.
차분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는 백도운과 이태천 때문이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소리다.
도희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두 사람은 주변 상황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게걸스럽게 처먹고 있었다.
“어, 그, 아. 음식, 음식 이슈가 있었어요…. 아, 아니. 이게 아닌가.”
공철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동안 카메라가 천천히 줌아웃했다.
다시 한재임과 맞은편에 앉은 태천, 도운이 등장했다.
도운과 태천은 더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지 않았다.
테이블에 있던 음식을 모조리 비웠기 때문이었다.
도운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태천은 빈 그릇을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을 다시 채우려는 것이 분명했다.
– 억 ㅋㅋ 먹는 걸 참지 않는 이태천2 ㅋㅋㅋㅋㅋㅋ
– 시간, 장소, 상황? 우리 기사님은 그런 사소한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아!
– 암. 먹는 게 더 중요하지 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채팅창은 한동안 ㅋㅋㅋ로 도배됐다.
그것이 끝난 건 한 시청자가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질문은 도운에 관한 것이었다.
– 야, 근데 백도운은 저기 왜 있는 거냐?
질문의 기저엔 도운에 대한 의심이 담겨 있었다.
시청자들은 그 의심에 찬동하기도 했고, 반대하기도 했다.
– A급 헌터기는 함?
– 이태천 친구라서 따라간 거 아냐?
– 뭐래. 어중이떠중이 모이는 자리도 아니고 그럴 리 있겠냐?
– 백도운 A급 헌터 맞음. 며칠 전에 한진환 추천으로 올라감.
– 추천으로?
– ㅇㅇ
– 뭐야, 그럼 수준 미달일 수도 있는 거 아님?
– 한진환인데 아무나 추천했겠냐.
– 이 말이 맞지. 리롄제 맞이한 것도 백도운인데. 실력이 되니까 나갔겠지.
– 그러려나?
– 백운천 놈들 다 나간 걸 보면 돈 쓴 거 아님?
– 지랄 ㄴㄴ 우리 기사님이 그럴 것 같냐?
– 성녀님께선 그런 짓 안 하신다.
– 그 성녀님이 사실은 백발 마녀라는 말이 있던데.
– 응 네 얼굴.
– 갑자기 내 얼굴이 왜 나와 이 새끼야. 물론 내가 못생기긴 했어.
– 백운천이 돈을 썼으면 백도운이 아니라 한재임이 나갔겠지. 백도운 길드 탈퇴했던데.
– ㄹㅇ?
– ㄹㅇ
– 왜 나갔대?
– 몰?루
카메라는 여전히 백운천 테이블을 촬영하고 있었다.
카메라맨의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이었다.
S급 헌터들은 왜 백운천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게 궁금해 이유를 알아내고 싶었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모습이 신기해서는 아닐 터였다.
또 카메라맨은 왜 아무도 S급 헌터들을 보여달라는 채팅을 치지 않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 백도운 저기 갈 만해.
– 백도운 따위가 뭔데 저길 갈 만해 ㅋㅋㅋ
– 정말이야. 나 백도운 싸우는 모습 봤거든.
– 봤다고? 어떤데? 뜬구름 잡는 소문만 있어서 강한지 약한지를 모르겠어.
– 소문이 어떤데?
– 이태천보다 세다던데? 원래 백운천 마스터가 백도운이었대.
– 야, 씨. 그건 너무 나갔다 ㅋㅋㅋㅋㅋ
– 그게 사실이면 지금까지 왜 힘을 숨김?
– 그러게 웹소설도 아니고 ㅋㅋ
– 그걸 내가 어떻게 앎? 소문이 그렇다는 거지.
– 아, 다 조용히 해봐. 싸우는 모습 봤다는 놈 얘기 좀 듣게.
– ㅇㅇ 다물겠음.
빠르게 올라가던 채팅창이 멈췄다.
싸우는 모습을 봤다고 한 시청자가 채팅을 이어나갔다.
– 저거 완전 미친놈임.
– 미친놈이라고? 왜?
– 내가 본 건 한진환이랑 대련하는 모습이었는데.
– 한진환이랑 대련?
– 실력이 있긴 한가 보네.
– ㄴㄴ 실력은 모르겠음. 금방 끝났거든.
– ??
– 뭔 소리야? 근데 왜 미친놈이야?
– 한진환 번개가 좀 세? 한 방만 맞아도 웬만하면 전기 통구이가 되는데.
– 그렇지. 뒷산 멧돼지도 한방, 사이클롭스도 한방….
– 뇌제한테 걸리면 무엇이든 평등하게 한 방이지 ㅋㅋㅋㅋ
– ㄹㅇㅋㅋ
– ㄹㅇㅋㅋ
– 근데 그걸 네 방 맞았는데도 멀쩡하더라.
또다시 채팅창이 멈췄다.
채팅창 관리자가 채팅을 치지 못하도록 동결한 듯했다.
– …….
– ?
– ??
– 뭐?
– 멀쩡했다고?
– 왜 멀쩡해?
– 어, 정확하게 말하면 멀쩡하지는 않았다. 팔이 떨어져 나갔었으니까.
– 뭐?
– 뭐가 떨어져?
– 아, 씨. 구라를 쳐도.
– 지금 백도운 안 보이냐?
도운은 음식을 빼앗기지 않고자 태천과 싸우고 있었다.
멀쩡한 두 팔로 열심히.
하지만 싸움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태천이 뭐라고 하자 도운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 꼴을 보던 도희와 한재임은 의자를 살짝 옮겼다.
고개도 절레절레 젓는 것이 꼭 둘에게서 떨어지고 싶은 듯했다.
– 누가 팔 떨어져 나간 거로 끝났대? 재생 스킬 있는 거 같더라. 팔 다시 돋아나던데.
– 팔이 돋아나?
– 도마뱀이냐? 다시 돋아나게?
– 재생 스킬로 그게 가능한가?
– A등급이면 가능하긴 할걸?
– 상상했더니 소름 돋네.
– 그뿐만이 아니야. 한진환이랑 대련할 때 정신 나간 놈처럼 웃음.
– 뭐?
– 팔이 떨어졌는데 웃었다고?
– 그냥 웃은 게 아니라 존나게 웃음.
– 말이 되냐? 팔이 떨어져 나갔는데 어떻게 웃어.
– 한진환 번개가 정전기도 아니고 ㅋㅋㅋ
– 아 진짜야, 병신들아. 그 웃는 꼴이 지금도 꿈에서 나온다고…!
채팅창은 도운의 얘기로 불타올랐다
그 사실을 모르는 도운은 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음식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다만, 귀가 간지러운지 연신 귀를 만져댔다.
그 모습이 방송을 타고 있는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