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27
제128화
만찬장에는 각자 앉을 곳이 배정돼 있었다.
나는 길드를 탈퇴한 몸이었지만, 백운천 길드 테이블에 앉게 됐다.
이 테이블에 배정해준 사람이 정말 고마웠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앉을 뻔했으니까.
혹은 한진환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앉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테이블엔 지금 단상에 서서 말하고 있는 대통령이 앉을 테고….
내가 아무리 직위 같은 거에 막론하는 놈이라고 해도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앉는 건 사양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적 같이 굴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우웅, 우웅, 우웅….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 진동은 만찬장에 들어온 뒤로 끊임없이 계속 이어졌다.
전화가 오는 건 아니고, 메시지가 오고 있는 거였다.
발신자는 두 명.
김재식과 지상욱이다.
그 둘은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느냐는 내용으로 연신 메시지를 보내왔다.
주로 ‘배신자!’라느니 ‘너무합니다!’라느니 따져댔는데….
조금 억울하다.
미리 말해주면 그게 서프라이즈냔 말이다.
“오. 이거 엄청 맛있네.”
스마트폰 진동을 무시하며 앞에 놓인 음식을 집어 먹는다.
테이블엔 만찬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음식들이 즐비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걸 먹는 이 테이블의 인간들 절반이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거다.
나와 태천이는 ‘음미’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처럼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야, 이것도 맛있어. 먹어봐.”
태천이 내 그릇에 음식을 덜어주었다.
흰살생선 스테이크였다.
바로 한 입 퍼먹으니, 혀에서 진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다.
이거 무슨 생선이지?
살면서 먹어 본 물고기는 고등어와 광어같이 저렴한 것들이 전부였다.
뷔페에 있는 냉동 참치도 먹어 보긴 했지만….
“이거 뭔 생선인지 알아?”
“알겠냐?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어서 먹기나 해.”
어휴. 이태천….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놈.
A등급 길드의 마스터가 됐으면 좀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떻게 여전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걸까.
맛있는 걸 먹었을 땐 그 정체를 파악해놔야 하는 법이다.
“야, 이 멍청아.”
“이놈이 누구 보고 멍청이래?”
“이 생선이 뭔지 알아놔야 다음에 사 먹지.”
“……!”
흰살생선 스테이크를 한입 크게 퍼먹던 태천이 우뚝 멈췄다.
날 바라보는 두 눈이 제 손처럼 커졌다.
“이, 이 똑똑한 새끼…!”
“그치?”
“재임아, 이 생선 이름이 뭐냐?”
태천이 옆에 앉아 있던 한재임에게 물었다.
평소처럼 떨떠름한 얼굴을 짓고 있던 한재임은 질문을 받자마자,
“하아아아….”
거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앉은 도희도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재임처럼 거세지는 않았다.
차분하게 감정을 가라앉히는 듯이 보였다.
한숨을 다 내쉰 한재임이 대답했다.
“달고기.”
“달고기? 그런 생선이 있었어?”
“제주도와 영남에서 사는 생선이야. 성경에 나오기도 하고.”
“성경? 이 녀석이 성경에 나온다고?”
“예수가 베드로에게 ‘호수에서 가장 먼저 잡히는 물고기의 입에서 은화가 한 개 나올 것이니, 그것으로 너와 나의 세금을 납부하라’라고 하는데, 그게 그때 잡힌 생선이야.”
“헤에, 그래?”
태천이 감탄하면서 달고기 스테이크를 바라봤다.
나도 그랬다.
성경에 나온 생선이라고 하니까 뭔가 새로운 맛처럼 느껴졌다.
그런 우리를 보면서 한재임이 작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둘 다 좀 적당히 처먹어, 지금 여기 분위기 파악 안 돼?”
분위기 파악이라….
한재임도 머리는 좋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분위기 파악이 사람 밥 먹여주는 게 아닌데.
“바보, 분위기가 밥 먹여주냐?”
“이익…!”
“맞아, 너도 이거 먹어봐. 진짜 맛있다니깐?”
태천이 한재임에게 달고기 스테이크를 건넸다.
제 그릇에 담긴 것을 건네준 것이다.
쏘아붙이고 싶은 걸 참던 한재임의 얼굴이 확 풀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기까지 했다.
“…….”
뭐, 이해를 못 할 건 아니다.
음식에 대한 탐욕이 둘째가면 서러운 태천이 누군가에게 음식은 건넨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니까.
그 모습을 봤는지 못 봤는지, 태천이는 빈 그릇을 들고 일어나더니 어딘가로 성큼성큼 떠났다.
분명 새 달고기 스테이크를 받으러 떠난 것이리라.
그런 태천을 바라보던 한재임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백도운.”
“왜.”
“너라도 분위기 파악하자.”
“나라도? 태천이는 포기한 거야?”
“다른 테이블 시선 안 느껴지냐?”
“말 돌리는 거 보소.”
음.
다른 테이블의 시선이라….
안 느껴진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밀러, 스미로노프, 리롄제, 우 씨 남매, 조주현.
내가 앉을 뻔한 테이블에 착석한 한진환과 대통령….
주변 테이블에 있는 모든 이들이 우릴 보고 있었다.
“나도 원래는 분위기란 걸 파악해보려고 했거든?”
“…….”
내 말에 한재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꼴 어디를 봐서?
그리 따지고 싶은 눈초리였다.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근데 이거 진짜 맛있어. 너도 먹어 보면 생각이 바뀔걸?”
“생각이 바뀌긴…! 하아….”
한재임이 신경질을 내려다가 꾹 참는다.
남들이 다 보고 있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답답한 듯 포크를 집어 들고는 거칠게 달고기 스테이크를 찍었다.
입에 가져가더니,
“오?”
몇 번 씹다가 다시 봤다는 듯 그릇을 내려다봤다.
그래, 진짜 맛있다니까.
“음….”
하지만 녀석은 나나 이태천과 달리 본능보다 이성이 앞섰다.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냉정함을 유지하는 남자답게 점잖게 그것을 먹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그걸 보고 나는 웃음을 흘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위기 파악하라고 해놓고선 맛있다고 먹는 꼴이라니.
“웃지 마.”
“푸흐흐….”
“웃지 말라고 했다.”
“웃지 말라고 했다, 하면 내가 퍽도 안 웃겠다.”
“이 자식이-”
“어허.”
어느새 돌아온 태천이 한재임을 제지했다.
그릇엔 달고기 스테이크 산이 쌓여 있었다.
대체 몇 마리를 갖고 온 거야….
내게 뭐라고 쏘아붙이려던 한재임이 그것들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신성한 음식 앞에서 투덕거리는 거 아니야.”
“투덕거리는 게 아니라….”
“자, 자. 다 알아. 도운이가 또 시비 걸었지? 내가 미안해. 맛있는 거 먹고 화 풀어.”
그러면서 달고기 스테이크를 한재임의 그릇에 덜었다.
녀석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아주 좋아 죽네, 죽어.
“시비 안 걸었어. 자식아.”
“지랄. 또 비아냥거리면서 재임이 열 받게 했겠지.”
“아니라니까!”
“아니라니까~ 어, 그래. 잘했다.”
이어 내 그릇에도 그것을 덜었다.
내 말 안 믿는 눈치군.
뭐….
“음식 갖고 왔으니 참는다.”
“그럼. 마땅히 그래야지.”
“…나는 백도운과는 다른 이유로 참는다는 것만은 알아둬.”
“그래, 그래.”
그런 후 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세 남자는 동시에 그릇에 코를 박았다.
유일한 여자인 도희는 우릴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의자를 옆으로 빼서 멀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카메라에 함께 찍히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눈앞의 음식들을 참지 않았다.
“뭐, 그래도, 변한 것 같긴 하던데….”
점잖게 먹던 한재임이 화두를 던졌다.
나를 보며 말한 걸 보니, 내게 한 말인 듯했다.
변한 것 같다고?
내가 뭐 변한 모습을 보여줬던가?
평소랑 똑같았던 것 같은데?
기분 나쁘게 비웃고 쓸데없이 시비 걸고.
[세계수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그런 점은 좀 변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갑자기 뭔 소리야?”
“요새 아이가이온의 견제가 줄어들었어.”
“어? 그래?”
“뭐지, 그 몰랐다는 반응은? 네가 한 짓 아니었어?”
“어. 나 아닌데?”
“……흠?”
한재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나도 그랬다.
아이가이온의 견제가 줄어들었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뜬금없이 왜 줄어?
“어떻게 된 거지? 최동훈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는데?”
나와 함께 놈을 봤던 태천이 의문을 흘렸다.
태천의 말대로다.
그날 최동훈은 다크서클이 짙은 눈으로 날 응시했었다.
‘후회할 것’이라며 비릿한 미소까지 지어 보였었다.
놈은 절대로 나를 향한 견제를 거두지 않을 터였다.
칼립스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버렸다는 말은 믿지 않았을 테니까.
“어느 날부터….”
한재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최동훈이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고 있어.”
“놈이?”
“어.”
“게이트에 진입해 있는 거 아니에요?”
“나도 그럴 줄 알고 알아봤는데, 아니었어. 게이트 진입 기록이 전혀 없더라고. 무엇보다, 아이가이온 놈들도 당황하고 있었어.”
“당황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확신했지. 최동훈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잠적한 게 분명하다고.”
최동훈이 잠적했다…?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말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한재임이다.
태천이 듣고 있는 자리인 만큼 확신할 수 없다면 애초에 말 자체를 꺼내지 않았으리라.
정말로 최동훈이 잠적을 했다는 거다.
“허…?”
그놈이 갑자기 왜?
“나는 그래서 백도운 네가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나?”
“그래.”
“거 뜬금없네. 대체 뭐 때문에?”
“그야… 너는 그런 짓을 할 놈이잖아.”
“…….”
아니.
이놈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대체 내 이미지가 어떻게 돼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당연히 내가 했을 거로 생각하는 걸까.
뭣보다 최동훈은 랭킹 21위에 랭크된 헌터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의 헌터가 아니다.
아직은.
“얼굴을 보니 아니었나 보군. 쯧. 괜히….”
한재임이 절레절레 젓는다.
말끝을 흐렸지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얼굴에 하고 싶었던 말이 다 쓰여 있었다.
괜히 칭찬했군.
그리 말하고 싶었으리라.
그래도, 뭐랄까….
나를 향한 부정적인 기세가 누그러든 것 같다.
저번에 백운천 본사에서 사과했던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아.
백운천 본사라고 하니 떠올랐다.
“참.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 우리 이사하자.”
“이사요? 갑자기 왜요?”
“나 빌딩 샀거든.”
“빌딩을 샀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도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태천과 한재임은 눈을 찌푸렸다.
호기심보다는 의심이 앞선 것이다.
내가 또 무슨 장난을 치는 건가 싶은 모양이다.
“한 선배가 찾아왔을 때 통화했던 거 기억나?”
“기억나. 신논현에 있다고 했었잖아.”
“맞아. 그때 나 빌딩 구매하고 있었어. 저기 일대 길드의 마스터 우연후한테서.”
검지를 내밀어 우연후를 가리켰다.
내가 가리키자 세 사람이 그를 쳐다본다.
그는 갑자기 시선이 모여 당황했지만, 그러면서도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세 사람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한다.
“못 믿겠으면….”
“물어보라 이거지?”
“응.”
그럼 말해줄 것이다.
내게 1530억 원에 달하는 빌딩을 판매했다는 것을.
도희가 당연한 의문을 던졌다.
“오라버니가 돈을 어디서 나서요?”
솔방울 팔았어.
라고, 솔직히 말할까 하다가 관뒀다.
한재임이 있어서다.
이 녀석은 내가 세계수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역시.
녀석이 의심스러운 듯 따져 묻는다.
“설마 범죄에 가담한 거냐?”
“범죄라니…. 넌 대체 날 뭐로 보는 거냐.”
“말 돌리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 너 최동훈 담갔지? 방심하고 있을 때 푹. 맞지? 민망해서 말 못 하는 거지?”
“아니라니까 그러네.”
“정말 아니죠?”
도희의 얼굴에 의심의 꽃이 피어올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희마저 의심하다니….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마구잡이로 저지를 것 같나…?
그런 의문을 품으며 태천이를 바라봤다.
나 대신 말 좀 해달라는 제스쳐였다.
그러나… 태천이는 관심이 없는 듯 달고기 스테이크를 처먹고 있었다.
우걱우걱.
세상의 모든 달고기를 없애겠다는 듯한 소리만 들려왔다.
“…….”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이래야 내 하나밖에 없는 친구 새끼지….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