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30
제131화
속세는 여러모로 시끌벅적했다.
늘 혼란하고 소란스러운 곳이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번잡하고 어수선했다.
S급 헌터들이 한 나라에 전부 모이는 일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고….
전라남도에서 가장 끝에 있는 외딴 섬.
속세에 속하지 못하는 추도 헌터 교도소도 나름대로 요란스러워지려 하고 있었다.
진흙탕 속의 왕이 결정되는 날이어서다.
공우재, 성준현, 이정근, 킹핀.
그들 패거리는 동서남북 네 방위로 나뉘어 서서 서로를 노려본다.
“이런 곳에서 만나니 그 얼굴도 반갑지, 않군….”
동서남북 중 동쪽에 선 공우재가 성준현을 보고 말했다.
그의 패거리는 총 8명으로 전 다졸 길드원으로 구성됐다.
“그러냐? 나는 반가운데. 나 혼자 여기 수감 됐으면 억울해서 죽을 뻔했어. 한진환한테 고마울 정도야.”
서쪽에 선 성준현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성준현 패거리는 총 4명으로 전 기버 길드원으로 구성됐다.
“큭큭…. 내 부하가 되기 위해 모여줘서 고맙다, 등신들.”
남쪽에는 이들을 한데 모은 장본인인 전 A급 헌터 이정근이 서 있었다.
패거리는 총 15명으로 전 카니스 길드원으로 구성됐다.
마지막으로,
“…….”
북쪽에 현 추도 교도소의 보스인 킹핀이 서 있었다.
킹핀 패거리는 총 21명이었고 인원수가 가장 많았다.
수가 많은 만큼 다른 세 패거리와 달리 공통분모도 없었다.
각지에서 붙잡혀 온 수감자들로 구성된 패거리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탓에 구성원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교도소 운동장에 나와 있는 수감자는 50여 명.
그들은 하나같이 서로를 물어뜯을 듯 노려봤다.
그중 유일하게 공우재만이 타인을 노려보지 않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전라남도 끝에 있는 섬이어서일까?
“아스라이 멀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이 보였다.
별을 보러 여행을 온 것이었던가?
그런 착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였다.
물론, 밤하늘과 달리 그가 서 있는 곳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추도 헌터 교도소.
속세에서 격리된 이들이 돌아다니는 진흙탕.
그리고 그를 포함한 52명의 수감자는 곧 서로를 물어뜯을 터였다.
진흙탕 속의 왕을 결정하기 위해서.
공우재가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내리깔고 말했다.
“공언하지.”
다른 패거리들이 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감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공허했다.
“나와 내 부하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이곳의 왕으로 인정해주겠다.”
싸우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쳐서일까.
다른 패거리들의 눈빛에 당황스러움이 내비쳤다.
하지만.
“킹핀 대우를 해줄 것을 진심으로 약속하마.”
진심으로 약속한다는 말에도 각 패거리의 보스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 말할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롭기까지 했다.
그들은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저었고 입가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이정근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그런 게 통할 시기는 이미 지났어, 공우재.”
“…….”
“싸우고 싶지 않았으면 더 서둘렀어야지. 뭐, 애초에 통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래 보이는군.”
공우재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의 시선에는 지금 당장 부정적인 감정을 터뜨리고 싶은 이들이 보였다.
성준현이 쓴 것을 먹은 사람처럼 쩝쩝거렸다.
입을 악 벌리고는 혀를 마구 휘두르기도 했다.
“어후, 저 재수 없는 새끼. 만날 때마다 더 재수 없어지는 것 같네.”
“오? 마음이 통하는걸.”
이정근이 동의했다.
“이제 두 번째 보는 건데…. 왠지 재수가 없어.”
“내가 그 이유를 알지.”
“이유?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얼굴 때문에 아닌가?”
“그것도 있긴 하지.”
“킥킥.”
“그것보다 더 재수 없는 건 약쟁이 주제에 고고한 척을 한다는 거야. 완전 이율배반적인 새끼라니까?”
“고고한 척…. 큭,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군.”
“그렇지? 근데 저놈은 몰라. 지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그러더니 성준현은 공우재를 바라봤다.
마치 ‘공우재, 네놈은 네가 쓰레기인 것을 알아야 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정근과 킹핀이 성준현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킹핀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다른 두 명처럼 공우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공우재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부정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난 그런 척한 적 없다만. 쓰레기인 것도 잘 알고.”
“알기는 개뿔.”
“그래. 쟤 말이 맞아. 너 고고한 척해.”
성준현과 이정근이 공우재의 말을 부정했다.
서로를 보며 엄지를 내밀기까지 한다.
쓰레기들끼리 죽이 잘 맞는군.
공우재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말했다.
“약쟁이란 말은 어폐가 있지 않나? 내가 약을 만든 건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마약이 아니라 버프 포션을 제조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 말대로, 다졸은 대부분 버프 포션을 연구 제작해왔다.
사람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약물을 주로 연구해온 것이다.
뒷세계 길드답지 않게 건실해 보이는 연구였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못한 재료들로 불법 연구를 했다는 점이다.
불법으로 약물을 제작하고 충분히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약물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다졸은 충분히 정부에 수배될만한 길드였다.
성준현도 바로 그 사실을 따졌다.
“지랄. 그래서 당당해? 그렇게 정당한 연구면 식약처 허가받고 합법적으로 제작하지 그랬냐? 어? IRB(임상시험윤리위원회)에 일일이 확인받지 그랬어.”
“…….”
“거봐. 할 말 없지?”
성준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답하지 못하는 공우재를 보고 승자의 기분을 느꼈다.
공우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할 말 없군. 그 말로가 이런 곳에 처박힌 것이니.”
“이, 씹…!”
빠드득!
성준현이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이를 갈았다.
공우재가 순순히 인정하자 오히려 말싸움에서 패배한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미소가 나올 정도로 흐뭇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꼴을 지켜보던 이정근은 골 때린다는 듯 큭큭 웃었다.
웃음소리가 성준현의 분통을 또 한 번 터뜨렸다.
이 가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어디까지 떠드나 한번 지켜봤더니….”
잠자코 지켜보던 킹핀이 끼어들었다.
세 패거리의 시선이 킹핀에게로 향했다.
“나는 완전히 빼놓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네? 네놈들, 이거 감당 가능하겠냐?”
“오. 세게 나오시는데.”
이정근이 탄성을 흘렸다.
마음에 들었는지 손뼉까지 쳐댔다.
성준현도 이정근과 같은 감정을 느낀 건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공우재는 또 한 번 생각했다.
쓰레기들끼리 죽이 잘 맞는군.
“그래. 현 킹핀을 모시고 너무 우리만 떠들었군. 내 사과하지.”
그리 말하면서 이정근은 목을 기울였다.
손을 들어 올려 기울인 목을 잡아당긴다.
스트레칭을 시작한 것이다.
“너희를 모을 때 말했던 것처럼.”
“……?”
목 다음은 두 팔이었다.
팔꿈치가 하늘을 향하도록 왼팔을 들어 올리고 오른손으로 눌렀다.
두둑!
힘주어 당길 때마다 뼈 소리가 났다.
“웬만한 일로는 신경도 쓰지 않을 거다.”
스트레칭은 목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옆구리, 허리, 다리까지.
“그래. 몇 명쯤 불구가 되거나… 죽는다고 해도.”
“…….”
짝!
온몸의 스트레칭을 간단하게 끝낸 이정근이 손뼉을 한 번 쳤다.
그러고는 씨익 웃었다.
“그러니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놀아보자. 마지막까지 서 있는 놈이 왕이 되는 거다. 물론, 그 왕은, 내가 되겠지만.”
그 말에 세 패거리의 보스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니지, 아니지. 이곳의 왕은 나야.”
“멍청이들. 말이란 건 감당할 수 있는 말만 하는 거다.”
“후우….”
욕망. 탐욕, 분노, 참담.
네 패거리 사이에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조용한 소용돌이는 순식간에 터져 사라졌다.
이전투구.
추도 헌터 교도소의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누군가 신호탄을 쏜 것도 아닌데 그들은 동시에 눈앞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
갑자기 시작된 진흙탕 싸움은 패싸움이 으레 그렇듯 난전이었다.
초기에 두각을 보인 건 킹핀 패거리였다.
인원수가 가장 많아 다른 패거리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곧 세 패거리의 합공을 받아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가장 많던 인원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킹핀을 포함해 몇 명이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세 패거리의 합공이 멈췄다.
“…….”
“…….”
“…….”
더 공격했다가 킹핀을 단번에 마무리하지 못했을 경우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뒤치기를 당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성준현과 이정근은 킹핀의 무력을 모르기에 눈치를 살폈다.
단번에 끝낼 수 있을까.
끝내지 못했을 경우 저 두 놈이 가만히 있을까.
그런 고민과 걱정 때문에 나서지 못한 거다.
하지만.
“공우재!”
“저, 저놈?”
공우재는 고민 따위 하지 않고 달려 나갔다.
“멍청한 놈! 너는 생각이란 게 없는 거냐!”
킹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초반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으려던 계획이 전부 무너졌기 때문이다.
킹핀 앞에 선 공우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생각? 너 따위를 쓰러뜨리는 데 생각이 필요하나?”
“뭣?”
“내가 너보다 강한 게 확실한데.”
“그게 무슨… 커헉!”
퍼억!
공우재가 킹핀의 복부를 후려쳤다.
한 방에 몸이 반으로 접혀 턱이 아래로 내려왔다.
퍽!
킹핀의 턱이 거칠게 돌아갔고, 힘없이 무너졌다.
단 두 방에 킹핀이 쓰러진 것이다.
“저놈이, 저렇게 강했다고…?”
성준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에게 공우재는 버프 포션으로 강해지려고 버둥거리는 약쟁이일 뿐이었다.
직접 제조한 약을 못 먹게 하면 언제든 해치울 수 있는 약자였다.
성준현의 판단은, 사실 옳았다.
단.
이곳이 속세였더라면.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마나 흐름을 방해하는 수갑을 찬 곳이 아니었다면.
공우재가 둘을 돌아봤다.
“나는 너희처럼 축복받지 못했다.”
“뭐…?”
“지닌 거라곤 D등급 스킬인 ‘검기 다루기’가 전부였지. 검기를 다루는 데 아주 조금 도움을 주는 스킬로, 그마저도 검기를 발현시키지 못하면 쓸 수조차 없었어.”
“갑자기 왜 신세 한탄을 하고 지랄이야? 등이라도 토닥여달라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그걸로 됐, 다…!”
스킬 보정 하나 없이 맨몸으로 A급 헌터가 된 남자가 두 쓰레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
진흙탕 싸움은 30분도 채 안 돼서 끝이 났다.
싸움이 끝난 운동장에는 두 부류의 인간들이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서 있는 자들.
앓는 소리를 내며 누운 자들.
서 있는 사람은 총 9명으로 공우재와 그의 부하들이었다.
“대장.”
“흠?”
돌아보자 공우재의 부하들이 한곳을 가리켰다.
“저희가 의자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짜잔.”
“어때요?”
“여기 앉아요.”
그곳엔 정말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보기에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의자는 아니었다.
만드는 데 쓰인 재료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정근과 성준현.
그들이 사이좋게 포개져 있었다.
“뭘 하나 싶더라니….”
공우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도 의자에는 앉았다.
앉자마자 아래쪽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친놈들….”
그 꼴을 보고 전(前) 킹핀이 중얼거렸다.
가장 먼저 리타이어 했던 전 킹핀은 이제 몸을 가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시선을 느낀 공우재가 질문을 던졌다.
“다시 할 건가?”
“…….”
“미안하지만, 인정하지 못하겠더라도 또 받아줄 생각은 없다.”
“…나도 다시 할 생각 없어. 네놈이, 아니. 그쪽이 새 킹핀이다.”
“그러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그랬나. 그럼 지금 이 둘을 깔고 앉은 건 너였을 텐데.”
빠득.
전 킹핀은 이를 갈았다.
지금 와서 후회해봐야 변하는 건 없었다.
자신은 졌고, 그들이 정한 룰에 따라 킹핀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지금 이 순간부로 공우재가 추도 교도소의 새 킹핀이었다.
공우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승자가 됐음에도 그는 한숨이 나왔다.
겨우 이전투구에서 승리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후우….”
“왜 그러십니까?”
“별이 참 많다 싶어서.”
“네?”
공우재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잡을 수가 없군.”
별을 붙잡고 싶은 것인지 손을 꽉 그러모은다.
바로 그때,
쾅!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응?”
갑자기 왜 벽이 무너진단 말인가?
공우재는 오늘 밤 처음으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가 주먹을 그러모았다고 해서 벽이 무너질 리가 없었다.
벽이 무너지며 피어오른 먼지 속에서,
“켁, 켁…! 어우, 먼지…. 푸훕!”
귀에 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 더벅머리를 한 갈래로 대충 묶은 여자.
검은 뿔테 안경으로 차가운 눈매를 가린 여자.
그리즐리 베어처럼 거대한 짐승을 타고 나타난 유혜주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연신 콜록댔다.
“허…!”
내뻗은 주먹 앞에 있는 유혜주를 보고, 공우재는 난생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