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29
제130화
이 양반 여긴 언제 왔어?
나 나올 때만 해도 회장에 있지 않았나?
에디탓 그위친을 보자마자 떠오른 건 그런 생각이었다.
뭐, 내가 통화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니 먼저 오게 된 것일 수도…?
“…….”
에디탓 그위친은 창문 앞에 정좌하고 있었다.
뒤에 있는 테이블에 의자가 함께 있는데도 말이다.
의자에 앉는 게 불편한 걸까.
바닥에 정좌하는 걸 더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어떤 깊은 생각이라도 있는 것일지도….
겨우 앉아 있는 것만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그가 ‘최강의 사나이’이기 때문이리라.
S급 헌터들의 강함은 비등비등한 거로 알려졌지만….
각 등급에 해당하는 헌터들의 강함이 다 똑같지 않듯 S급 헌터들의 강함도 전부 달랐다.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의제를 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백분율로 따져 보자면.
한진환이 5%.
알레딩 밀러가 10%.
스미르노프와 리롄제가 15% 정도다.
남은 55%는?
당연히 에디탓 그위친이었다.
명실상부, 과반수가 인정하는 최강의 사나이인 것이다.
“…….”
음.
자리를 피해줘야겠다.
그는 아마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회장을 빠져나온 것일 테다.
이해한다.
나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보육원 아이들이 도희와 태천에게 달라붙을 때 홀연히 떠났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그 녀석들과 함께 있을 이유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려는데,
[세계수 어린나무가 따스한 시선을 느꼈습니다.]시야에 푸르스름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따스한 시선…?
지금 내게 시선을 보낼 사람이라고는 그위친뿐이었다.
아무래도 문을 여닫으려는 인기척을 느꼈나 보다.
그위친이 어느새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있었다.
가죽이 해골에 달라붙은 것처럼 삐쩍 마른 사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큰 눈이 인상적이었다.
TV에서나 보던 인물이 날 보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런데….
흠? 뭐지?
아까부터 조금 이상하다.
날 보는 그위친은, 뭐랄까, 자식을 보는 부모 같아 보였다.
새싹이가 말한 대로 따스함이 느껴지는 미소가 피어 있다.
“안녕…하세요?”
“…….”
나는 처음 마주친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행동을 취했다.
문제는 알아듣지도 못할 한국말로 했다는 거다.
바보같이.
hello라고 할걸.
날 무례하게 따라온 팬쯤으로 생각하면 어쩌지?
아니, 여전히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 있으니 그런 오해는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위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쪽도 잠깐 쉬러 왔습니까?”
“……!”
깜짝 놀랐네.
한국말을 할 줄 알아?
아니. 밀러처럼 마법을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방금 그위친은 오랫동안 한국말을 공부한 듯 완벽한 발음으로 말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쓸 때 나오는 특유의 어눌한 발음이 전혀 없었다.
그냥 한국 토박이가 말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 등 영어권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가 아시아의 한국말을 배웠을 리도 없으니, 마법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겠지.
그위친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내가 놀라게 했습니까? 미안합니다.”
아, 이런.
멀거니 서 있어서 오해한 모양이다.
S급 헌터란 존경과 경의의 대상이다.
때로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나도 후자의 경우로 겁을 먹었다고 착각한 듯했다.
사과하게 만들어 괜히 미안한걸.
“아니요. 한국말을 너무 유려하게 해서 당황한 것뿐입니다.”
“한국말? 지금 내가 한국말을 했습니까?”
“네?”
뭐라는 거야?
지금까지, 아니, 방금도 리롄제처럼 완벽한 한국말을 구사했으면서.
당황한 내 얼굴을 보곤 그위친은 싱긋 웃었다.
내가 당황함을 느끼는 것이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나는 드루이드입니다.”
“……?”
어쩌라고?
자기 능력 자랑하는 건가?
세상에 그위친이 드루이드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A급 헌터보다 강한 동물과 몬스터를 수십 마리나 길들인 세계 최고의 드루이드인데.
“내게 대화는 언어를 통한 것이 아닙니다.”
그위친이 차분히 덧붙였다.
수차례 설명해본 듯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
그런 건가…!
그의 말마따나, 그는 드루이드였다.
어떤 동물과도 소통할 수 있는.
뿐인가?
심지어 A등급 몬스터를 길들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언어는 그리 중요한 소통 수단이 아니다.
허. 신기한걸.
“심심하던 차였습니다.”
그위친이 팔을 뻗었다.
오른편에 있는 테이블을 향해서다.
“말벗이 되어 주겠습니까?”
말벗이 되어 주겠냐고?
혼자 있고 싶어서 온 거로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
뭐,
“좋습니다.”
나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위친의 제안이었으니까.
그는 같은 S급인 밀러조차 한 수 접고 물러나는, 그야말로 모든 헌터들의 정점에 서 있는 인간이었다.
또 하나.
시장통처럼 소란스러운 회장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던 점도 있었다.
도희랑 태천이 옆에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아마 지금 돌아가도 두 사람 옆에는 밀러와 스미로노프가 앉아 있을 거다.
나는 그위친처럼 테이블 앞의 바닥에 앉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야경이 아름다운 유리창 밖을 향해 앉았고, 나는 그 유리창에 등을 기대고 있다는 거다.
거리는 2M 정도 떨어졌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 너무 가까우면 서로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도운.”
어라?
그위친에게서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나를 압니까?”
“아까 회장에서 밀러가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녀가요?”
“네. 하얀 성녀의 오빠라면서 말해주더군요.”
“헤에. 영광이네요.”
S급 헌터들이 내 이름을 알다니….
이게 다 도희 덕분이다.
밀러가 도희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 이름이 거론된 것이니까.
그나저나.
밀러는 왜 그렇게 도희를 좋아하는 거람?
둘이 언제 만난 적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아. 맞아. 하시죠, 질문.”
손바닥을 들며 권하자 그위친이 바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부모님 중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
이해가 되지 않는 질문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
그게 뭘 뜻하는 건지 모르겠다.
인종을 뜻하는 걸까.
드루이드를 뜻하는 걸까.
“도운에게선 왠지 모를 그리운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그리운…?”
“네. 마치 가족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미국에 있는 내 가족들과.”
“으음?”
가족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라….
우리 조상 중에 인디언이라도 있었나?
뭐….
“그럴지도 모르죠.”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위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분 모두 어렸을 적에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우리 남매는 우리의 뿌리를 모릅니다.”
“아, 그렇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깊은 기억 속에 묻어둔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기로, 내 기억이 맞는다면, 두 분은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확신할 수 없다.
우리의 조상과 그위친의 조상이 같을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농담 같은 것이지만.
그런데 설령 같다고 해도… 그리운 에너지 같은 걸 느낄 수가 있나?
흠. S급 헌터라서 그런가?
“그렇다면 도운에게서 느껴지는 이 그리운 에너지의 정체를 알 방법이 없겠군요.”
“아마도요?”
“아쉬운 일입니다. 정말로.”
그리 말하는 그위친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 있어서 제삼자가 이 모습을 봤더라면 우리는 지금 나의 부모가 아니라 그의 부모에 관해 얘기한 것으로 착각했을 것 같다.
아.
혹시….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화면엔 푸른 빛을 내뿜는 새싹이와 주변에 앉아 있는 엘프들이 보였다.
나한테서 느껴지는 그리운 에너지….
그건 우리 새싹이에게서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드루이드인 그에겐 세계수의 마나가 그리운 것일 수도 있었다.
“게임…입니까?”
뭐, 그렇다고 세계수에 관해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리롄제나 스미르노프와는 달리 첫인상이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내가 세계수의 관리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줄 의리는 없었다.
스마트폰을 흔들며 말했다.
“네. 요즘 이 아이 덕분에 삽니다.”
[어린나무도 관리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고 전합니다.]아휴, 말도 예쁘게 하는 것 봐.
귀여워서 어떡해.
“후후, 그렇군요.”
그위친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고개를 돌렸다.
자연히 나와 그는 침묵 속에서 밤인데도 밝은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침묵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위친이 나에게서 그리운 에너지를 느껴서일까.
나도 그에게서 편안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다만….
옆에 있는 사람이 그위친이 아니라 유재이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나도 모르게, 아주 잠깐.
***
“왜 혼자 와?”
우연후가 우채연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운을 데리고 오겠다던 동생이 홀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혹시 도운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나 싶어 백운천 테이블을 돌아본다.
하지만 백운천 테이블에는 여전히 백도희와 이태천 그리고 밀러와 스미르노프만 앉아 있었다.
“……?”
“…바빠 보이셔서.”
우채연은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싸늘함이 느껴지는 얼굴과 목소리에 우연후와 오주한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차례차례 질문을 던졌다.
“바빠 보였다고?”
“혼자 나간 사람이 왜 바빠? 아. 지인 만났나?”
“…….”
우채연은 대답하는 대신 포크와 나이프를 집었다.
다른 손으로는 소고기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집어 들었다.
제 오빠를 돌아보며 묻는다.
“이거 나 먹어도 돼?”
“어, 그럼. 당연하지.”
우연후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그녀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제 앞으로 가져갔다.
능숙한 자세로 스테이크를 부드럽게 썰었다.
하지만 그녀는 썰어낸 스테이크를 먹지 않았다.
전부 다 썬 후에 먹으려고 그러나?
그런 생각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몇 초도 안 돼서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먹기 좋게 썰어낸 스테이크 조각들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썰어낸 조각들을 다시 썰기 시작했다.
잘게, 잘게.
“…….”
“…….”
우연후와 오주한은 그 모습을 잠자코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일 있었나 본데.”
“호텔 사람 중에 팬이 있었나?”
“에이, 팬이라면 이런 곳에서 말을 걸지는 않지.”
“그렇긴 하네. 애초에 그런 거였으면 채연이가 그냥 돌아왔을 리 없겠군.”
“그래.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면 될 일이니까. 저렇게….”
무서운 행동을 할 일은 아니야.
우연후는 말끝을 흐렸다.
오주한도 그처럼 더 말을 잇지 않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두 남자의 시선을 보지 못한 듯 중얼거렸다.
“쓸데없이 감이 좋아서는….”
“뭐라고, 채연아?”
“감?”
“…….”
그녀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고기를 잘게 썰던 행위도 멈췄다.
팔짱을 낀 채 “쯧!”하고 혀를 찰 뿐이다.
두 사람은 다시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분명한데…. 그게 뭘까?”
“흐음. 감이 좋다는 걸 보면, 도운 씨가 도망이라도 친 거 아냐?”
“도망? 굳이?”
“그러니까.”
“혹시….”
“시끄러워요.”
우채연이 한마디 쏘아붙이듯 말했다.
소곤거리던 우연후와 오주한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눈빛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혹시 뭐?’
‘그 여자 때문인 거 아니야?’
‘그 여자?’
‘채연이가 싫어하는 여자 말이야.’
‘채연이가 누굴 싫어해?’
‘왜 있잖아. 윤진이가 나가 있는 대장간 주인.’
‘아. 유재이 씨?’
‘그래. 그날 빌딩에서 보니까 둘이 뭔가 밀접해 보이-’
“시끄럽다니깐.”
또다시 우채연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방금 우리가 입으로 대화를 나눴나?
“…….”
“…….”
아니.
두 사람은 확실하게 입을 다문 채 눈빛으로만 대화를 나눴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해왔기에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있어 가능한 기술이었다.
물론, 100% 무조건 올바르게 예상하는 건 아니어서 가끔 틀릴 때도 있었다.
입으로 말하지도 않았는데 왜 시끄럽다고 한담?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도 어렸을 적부터 그들과 함께 자란 사람이라는 점이다.
“…….”
“…….”
그렇기에, 우연후와 오주한은 모든 생각을 정지했다.
약간의 억울함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