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42
제143화
“…….”
한진환을 만나고 이틀이 지났다.
S급 헌터들은 여전히 잠잠했다.
대신 각국 연구원들이 경기장의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연구원들은 세계에서 최초로 원래대로 되돌아온 던전의 진상을 완벽하게 밝혀내겠다는 듯 열심이었다.
이는 미국 연구진들도 그랬다.
비밀을 아는 그위친이 있는데도 그러는 것을 보면, 그는 나에 관해 밝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언젠가 뇌물, 아니, 선물을 줘야겠다.
S급 헌터가 바라는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마는.
“하아….”
“후우….”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부터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한숨의 주인은 한국 연구원들이다.
그동안 경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조사해왔던 한국 연구진은 어젯밤 모든 조사를 잠정적으로 끝낸 상태였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보고서 작성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하아, 이걸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나나….”
김태석이 서류 더미에 깔린 채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사실, 나는 어젯밤 조사를 끝낼 거라고 말하는 그에게 알아낸 것이 있는지 넌지시 물어봤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라고 힘없이 말했다.
아니.
한국 연구진이 알아낸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이 숲에서 ‘엄청나게 정순한 마나’가 뿜어지고 있다는 것.
딱 그것 하나만을 알아냈다.
물론, 그 정순한 마나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정체를 바로 앞에 두고서도 말이다.
하하하.
그 때문에 김태석은 말했었다.
“아마도 여긴 시험의 탑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이한 곳’으로 결정이 날 것 같습니다.”
라고.
그 말은 들은 나는 이곳이 시험의 탑처럼 사용될 듯하다고 생각했다.
정부와 협회는 원인은 몰라도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할 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이곳은 산림욕을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로 몰리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게이트의 마나에 피로해진 헌터들이 휴식하러 오는 휴식처가 될지도 모른다.
“후우….”
“하아….”
“에휴….”
연구원들이 한숨을 내쉰다.
아마도 저들의 모습은 다른 나라 연구진의 미래일 거다.
그위친처럼 나와 이곳을 연관 짓는다면 모를까.
그러지 못한다면 각국 연구진들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시간만 축내다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아….”
“후우….”
“드르렁….”
“에휴….”
연구원들의 한숨 사이에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코 고는 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태천이가 드러눕듯이 내 어깨를 기댄 채로 자고 있었다.
일하러 온 것인데도 만사태평하게 널브러졌다.
뭐, 이곳에 태천이를 탓할 사람은 없었다.
이럴 때 태천이를 혼내는 역할을 도맡은 도희조차 내 옆에서 졸고 있었으니까.
태천이처럼 완전히 태평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도희도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릴 것처럼 졸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우리끼리 휴가를 온 것만 같았다.
다 함께 산림욕을 즐기러 온 기분이랄까?
[세계수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존경을 보냅니다.]엥…?
갑자기?
나는 어깨에 기댄 태천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선 새싹이가 푸르스름한 빛을 뿜고 있었다.
갑자기 나한테 존경을 왜 보내?
[어린나무는 졸면서도 따스한 손길로 자신을 어루만지는 관리인에게 감탄했습니다.]얼씨구?
내가 졸았었어?
[어린나무는 관리인이 졸았음을 가르쳐줍니다.] [주변 인간들의 한숨 소리와 코 고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이라고 전합니다.]내가 깜빡 졸았었다고?
전혀 몰랐었는데….
피곤을 느끼지 않는 몸이라고는 해도, 역시 무료함은 이겨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심심함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도희조차도 꾸벅꾸벅 조는데.
[어린나무는 관리인이 자면서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합니다.]에이, 설마.
아무리 내가 게임에 미쳤다고 해도 자면서까지 두드리는 건 좀….
그런 걸 과연 ‘경지’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조언합니다.] [관리인은 할 수 있다며 열정적인 응원을 보냅니다.]“…….”
응원이 참 그렇네.
자면서도 게임을 하라는 응원이라니….
우웅, 우웅, 우웅!
새싹이의 이상한 응원에 어처구니없어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이 연거푸 진동했다.
스마트폰이 이렇게까지 진동한 건 재식과 상욱이 서운함으로 메시지 폭탄을 보낸 이후 처음이었다.
바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는 홍수정이 보낸 것이다.
[아르카 개조 다 됐어요!] [제가 방금 감정했거든요?] [완전 대박이에요!] [재이는 신이에요!] [우린 유재이교를 만들어야 해요!] [세계수와 재이의 콜라보는 역사에 길이 남을]“……?”
홍수정의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 났다.
텐션이 높아서 더 보내올 줄 알았는데 도중에 끊겼다.
마치 누군가 메시지 보내는 것을 막은 것처럼….
아.
유재이가 막았겠구나.
바로 옆에 있을 테니까 스마트폰을 빼앗은 것이리라.
우웅.
[아르카 개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어.]유재이가 메시지를 보냈다.
[그, 수정이가 과장한 거야.] [너무 기대하면 안 된다?] [알았지?] [아. 언제 갖다 줄까?] [지금은 바쁘려나? 언제 갖다 주면 돼?]흐음….
그녀의 말대로 홍수정은 장난을 친 것일 테다.
신이라느니, 유재이교를 만들어야 하느니….
아무리 개조가 잘 됐기로서니 그래야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르카 개조가 성공적이라는 것 자체는 사실일 터….
어서 빨리 두 눈으로 실물을 보고 싶다.
좋아.
보고 싶으면 봐야지.
나는 결정을 내렸으므로 바로 행동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이다.
“드르렁, 컥…!”
내 어깨에 기대고 있던 태천이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제법 거세게 퉁겨졌는데도, 녀석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드르, 드르렁….
코를 골며 자는 것을 이어 나간다.
아무튼, 자는 데 누구보다 진심인 놈….
태천이 대신 도희가 졸다가 깨어났다.
눈을 깜빡이며 나를 올려다본다.
“오라버니…?”
“미안, 깼어? 괜찮아, 별일 없어. 더 자도 돼.”
“으응, 어디 가시게요?”
“아. 한 선배한테 좀 다녀올게.”
진짜 목적지는 재이네 대장간이지만.
그 전에 한진환한테 가야 하긴 한다.
결계에서 나가려면 그의 허락이 필요하니까.
“한 선배…? 아, 하암. 네. 다녀오세요.”
도희는 하품하면서 흔쾌히 허락했다.
한 선배한테 간다고 하니 일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니면 잠에 취한 나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뭐, 어느 쪽이든 나한테는 잘 된 거다.
별일 없이 도희의 마수에서 도망칠 수 있었으니까.
무료함 만세!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동생이 불쌍하다고 전합니다.]에이, 도희가 뭐가 불쌍해?
불쌍한 건 동생에게 감시받는 처지인 내가 불쌍하지.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궤변을 들을 생각이 없습니다.] [이파리를 흔들며 관리인만큼 이상한 인간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너무하네.
뭘 또 확신까지 하고 그래.
어딘가에 한 명쯤은 더 있겠지.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어린나무는 그럴 리 없다고 단언합니다.]***
[어린나무는 아까 단언했던 것을 철회합니다.] [관리인의 말대로 이상한 인간이 하나쯤 더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어린나무는 인간을 잘 모르겠다고 고충을 토로합니다.]“으음….”
나는 이마를 긁적였다.
새싹이가 단언한 것을 철회하고, 내 말을 인정해 주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낯부끄러운 감정을 느꼈다.
뭐랄까.
이게 도희가 나와 태천이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아닐까…?
“후우…. 뭐 하는 겁니까?”
한숨을 내쉬며 질문을 던졌다.
한 손에 고급 양주를 병째 들고 있는 한진환에게.
그는 나를 돌아보더니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안주로 먹고 있던 노가리 대가리가 마구 흔들렸다.
이미 죽은 노가리가 어지러워할 것으로 보이는 건….
아마 내가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오! 백도운! 금방 왔네?”
금방 오긴 뭘 금방 와?
이 양반 술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가 본데?
“…무료함이 크긴 컸나 봅니다. 이러고 있게?”
그래서 나는 한진환이 아니라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질문했다.
그와 함께 술판을 벌인 남자.
조주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나도 이래도 되나 싶던 차였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기는….”
“정말 괜찮대도. 안 취했어, 나.”
“술 마시는 사람이 하는 말인데 믿어도 될는지….”
“푸, 흐흐흐.”
그는 내 말에 바람이 샌 것 같은 웃음을 흘렸다.
이미 맛이 간 거 같은데.
이 양반 무슨 일 벌어지면 어쩌려고 이래.
아니, 내가 할 말은 아닌가.
방금까지 졸았었으니….
난 두 사람이 벌여놓은 술판을 바라봤다.
땅콩, 쥐포, 말린 오징어 등 까먹은 안주들.
고급스러워 보이는 빈 양주병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두 사람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나 의문이 생긴다.
“…괜찮으실 겁니다. 어제랑 그제도 이러셨는데, 금방 괜찮아지셨거든요.”
“어제, 그제? 잠깐. 그럼 나랑 만난 이후로 쭉 이랬다는 거예요?”
“네.”
“그러니까, 그 말은… 주현 씨도?”
“아하하.”
조주현이 평소답지 않게 웃음이 헤펐다.
날 보고 흘겨보면 흘겨봤지 웃을 인간이 아닌데….
이놈도 맛이 간 건가?
“후우….”
나 정말 자리 비워도 괜찮으려나?
문제 생기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문자 온 거 때문에 나가봐야 해?”
“……!”
얼씨구?
한진환의 입에서 문자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는 피식 웃고는 노가리를 통째로 씹으며 말했다.
“뭘 놀라냐? 여기 내 결계 안인데. 내가 모르는 일은 없어.”
잠깐.
결계 안에서 모르는 일이 없다고?
그렇다면….
지금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알고 있다는 거?
아니, 그전에….
“쉬이….”
한진환이 노가리를 입술 앞에 세로로 갖다 댔다.
방금 알아차린 것을 괜히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스미르노프가 널 찾아갔던 것도 알고 있다구?”
“…….”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알지.”
“…….”
스미르노프를 말해?
그위친이 아니라?
그는 노가리 아가리를 내게 향했다.
“개인적으로 너의 그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걸 좋아하긴 한다만…. 조금 조심하길 바라.”
“…….”
“상대는 보고 설쳐야지. 네 상상을 뛰어넘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게 S급 헌터라고?”
“…새겨듣겠습니다.”
“말은 잘하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으면서.”
당신 때문이잖아.
그위친과 했던 얘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난 그게 궁금하다고.
그때 한진환은 한창 결계를 치고 있었다.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으니,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뭐…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는 내 오른손을 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내 오른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그래도 조심하라고.”
[어린나무는 자신을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느꼈습니다.] [눈앞의 번개 마나 소유자에게 경악을 느낍니다.]헐….
설마 새싹이를 알아차린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정체를 알아차렸다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지 않았겠지.
확신에 찬 시선으로 바라봤을 터.
한진환.
취해 보였던 그의 눈이 이젠 그리 보이지 않았다.
“다녀와도… 되겠네요.”
“아까부터 그래도 된다 말했잖아. 그치이?”
“네, 그렇습니다.”
조주현이 바로 맞장구쳤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진환이 아하하 웃는다.
웃는 모습에서 술 냄새가 났던 탓일까?
놀랍게도 한진환은 다시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때문에 나는 정말 나가도 되는 건지 다시 불안해졌다.
“…….”
에이.
뭐, 별문제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