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44
제145화
“그, 그러든지 말든지….”
그리 말하는 유재이의 얼굴은 붉었다.
평소답지 않게 상기됐기 때문일까?
귀여워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잠깐 날 바라봤다가 바로 시선을 피했다.
“뭐, 왜….”
그냥. 귀여워서.
방금 느낀 바를 털어놓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말했다간 손이 오그라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세계수 어린나무가 설렘을 느낍니다.] [어린나무는 달콤한 분위기가 보기 좋다고 전합니다.]설렘….
새싹이 너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런 거 정말 좋아하는구나?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전합니다.]최고의 가치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후후, 우리 새싹이.
사랑을 알긴 하나?
“왜, 왜 웃어?”
“어? 아….”
이런, 난 새싹이 때문에 웃은 거였는데.
그녀는 내가 그녀를 보고 웃은 줄 안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다.
나와 그녀 사이에 있는 홀로그램 메시지창은 내게만 보이는 것이었으니까.
우웅.
“아….”
손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한 번 울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동했다.
메시지가 아니라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도희였다.
음, 내가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어린나무는 방해를 받아 기분이 나쁘다고 전합니다.] [이놈의 스마트폰을 없애든지 해야겠다고 주장합니다.]없애긴 뭘 없애, 새싹아.
이 스마트폰 없어지면 너도 없어진다고.
그뿐인가?
이래 보여도 스마트폰은 관리인의 증표이기도 한 중요한 물건이었다.
파트리아는 성물을 건네받는 성직자처럼 소중히 다루기도 했었다.
“나 전화 좀 받을게.”
“어, 응. 받아.”
양해를 구한 후 전화를 받는다.
스마트폰 수화기 부분을 귀에 대자마자 도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오라버니? 지금 어디예요?
“아, 잠깐 나왔어. 왜?”
– …….
어라, 화났나?
한진환에게 허락을 받고 나오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지금 일하다가 빠져나와 농땡이 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금방 들어가…?”
– 후우….
도희는 한숨을 내뱉는다.
그러고는 내게 전화한 이유를 말했다.
사라진 나를 찾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황 장관이 왔어요.
“황 장관이? 왜?”
– 그걸 설명하고자 했는데, 오라버니가 여기 없네요?
“음….”
– 20분쯤 후에 회의 시작해요.
“회의?”
– 네. S급 헌터들도 전부 모이는 회의래요. 그러니까 어서 와요.
“응, 알았어. 빨리 갈게.”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흘 동안 얼굴 한번 내밀지 않더니만….
그들도 다 모이는 회의라니.
대체 무슨 일이람?
“아무래도… 가봐야겠는데?”
“아, 응. 그래야지.”
“그럼-”
“잠깐만요!”
홍수정이 나를 부른다.
바라보자 그녀는 마법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고 있었다.
웬 종이?
“왜 그래요?”
“도운 씨한테 보고할 게 있어서요.”
“보고…요?”
그녀가 나한테 보고란 걸 할 게 있나?
내가 그녀의 상관인 것도 아닌데.
건네받은 종이엔 정말로 맨 위쪽에 ‘보고서’라고 쓰여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해 보이자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잊어버렸을 줄 알았어요.”
“……?”
“포션이요.”
“포션…? 아.”
“기억났어요?”
“네, 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싹이 잎으로 포션 제작 맡겼었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며칠 밖에 안 지났는데 한 달은 된 것 같단 말이지.
“그거 벌써 완성됐어요?”
“네. 한 번 제작했었잖아요.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성질을 띠고 있어서 금방 제작할 수 있었어요.”
“헤에,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건네받은 보고서를 훑었다.
보고서에는 포션의 개수와 판매한 곳이 쓰여 있었다.
이번에 제작돼 판매된 포션은 총 25병이었다.
25병이면….
딱 절반의 절반이다.
역시, 파라솔처럼 큰 작은 전대 세계수 잎으로 만들었을 때하고는 수량에서 차이가 있다.
“저번보다 수가 적죠? 크기가 작아서 어쩔 수 없었어요.”
“아, 괜찮아요.”
“잎이 조금만 더 컸으면 효율 높게 제작할 수 있었을 텐데….”
[세계수 어린나무는 크기가 전부가 아니라고 전합니다.] [어린나무는 자신의 이파리에는 귀여움이 담겨 있다고 강조합니다.]나는 괜찮아도 새싹이는 안 괜찮은 거 같다.
아니, 이파리에 귀여움이 담겨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잖아.
[어린나무는 관리인이 밉다고 전합니다.]정말로?
나 미워?
우리 새싹이 토라질 거야?
근데 어째.
그 모습도 귀여운걸?
“…….”
잠깐 반응을 기다렸지만, 새싹이는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았다.
정말 토라졌나?
스마트폰 화면을 보려고 하는데, 홍수정이 말을 이었다.
나는 화면 대신 그녀를 봤다.
“판매처는 저번처럼 헌터 협회로 했어요.”
그 말대로 보고서 가장 아래쪽에 판매한 곳과 금액이 간략하게 쓰여 있다.
[헙터 협회, 7억 5000만 원.]25병에 7억 5000만 원.
저번에 판매했을 때랑 같은 금액으로 판매했군.
잘했는걸?
“도운 씨가 그걸 원할 것 같아서요.”
“잘했어요. 고마워요.”
“헤헤….”
그녀가 예상한 대로, 나는 포션을 비싸게 팔 생각이 없었다.
비싼 값에 파는 게 목적이었으면 애초에 도희를 찾아갔을 터.
도희라면 1병당 3000만 원이 아니라 5000만 원 정도에도 팔았을 거다.
그럴 만한 수완이 있는 아이니까.
“자, 그럼….”
홍수정이 마법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러고는 포션과 종이컵을 꺼냈다.
투명한 캔에 담긴 포션은 커피처럼 검은빛이 돌았다.
캔커피?
이번 포션에선 커피 맛이라도 나나?
“우리 시음식 해요!”
“오, 좋죠. 기대되는데요?”
“후후.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뭘 또 시음식까지….”
유재이가 중얼거리자 홍수정이 흘겨봤다.
오른손엔 투명한 캔을, 왼손엔 종이컵들을 든 채로.
“그래서 안 마실 거야?”
“누가 안 마신대?”
“그럼 컵 받으시고….”
홍수정이 나와 유재이에게 종이컵을 건넸다.
이어 김지연과 심윤진을 바라본다.
“두 사람도 마셔 볼래요?”
심윤진과 김지연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특히, 심윤진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 그래도 되나요!”
굉장히 마셔 보고 싶었던 듯하다.
뭐, 이해한다.
대부분 포션은 비리거나 무미(無味)하다.
하지만 홍수정이 만든 것들은 솔잎 맛이 나고 민트초코 맛이 났다.
그런 만큼 이번 포션의 맛도 궁금했을 터.
“…괜찮을까요?”
김지연은 심윤진과 달리 조심스럽게 물었다.
홍수정은 괜찮다고 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 엄지로는 나를 가리키면서.
“도운 씨가 허락한다면요.”
홱! 홱.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날 본다.
얼굴에서 기대감과 호기심이 내비쳤다.
이번에 새로 제작된 힐링 포션이 무슨 맛을 낼지 진심으로 궁금한 눈치였다.
저런 얼굴이라면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뭐, 술은 다 같이 마시는 게 제일인 법이니까 거절할 이유는 없다.
술이 아니라 포션이긴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좋아요. 같이 마셔요.”
“앗싸!”
“오, 고마워요. 맛 정말 궁금했는데….”
허락하자마자 두 사람이 밝은 얼굴을 하며 다가왔다.
홍수정이 그녀들에게도 종이컵을 나눠주었다.
그런 후 투명한 캔 뚜껑을 땄다.
치익!
어, 치익?
이 소리는… 설마?
“자, 어서 마셔 봐요.”
홍수정이 컵에 포션을 따르자마자 재촉했다.
나는 바람을 들어주고자 바로 포션을 마셨다.
단내가 나는 액체가 따끔하게 혀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역시….
뚜껑을 딸 때 났던 치익 소리의 정체는 탄산이었다.
“어때요? 톡톡 쏘죠?”
홍수정이 질문을 던졌다.
이어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포션을 마시는 세 여자를 보며 말을 다다 쏟아낸다.
“이번엔 탄산을 주입해봤어요! 마셔봤는데 맛이 밍밍하더라고요.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었달까? 그게 뭘까 고민하다가… 재이를 보고 떠올랐죠!”
“어? 나?”
“응. 재이는 톡톡 쏘는 게 매력이잖아!”
“너 지금 나 싸가지 없다고 돌린 거지?”
“헤헤헤.”
홍수정은 고개 돌리더니 웃기만 한다.
거기서 고개를 돌리고 웃으면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유재이는 “이게…!”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물론 진짜로 마음먹고 휘두른 건 아니고, 장난으로 휘두른 거였다.
어깨를 얻어맞았는데도 홍수정은 까르르 웃어댔다.
반면.
“말도 안 돼….”
“이건….”
심윤진과 김지연은 당황의 늪에 빠져 있었다.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로 종이컵을 노려본다.
“이, 이거… 그거지?”
“네. 그거네요.”
“어떻게 포션이 콜라맛….”
“그것도 라임맛이 첨가된 콜라맛이에요.”
“라임맛 콜라…. 꼭 살 안 찔 것 같네….”
김지연이 중얼거린다.
홍수정이 재빠르게 그녀를 향해 검지를 뻗었다.
검지에 찔린 사람처럼 김지연은 살짝 고개를 뒤로 당겼다.
갑자기 검지를 내뻗자 당황한 듯했다.
“그거예요! 살 안 찌는 콜라. 그게 딱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라임향을 추가했죠. 제로 슈가 하면 펩x잖아요?”
“에에, 그래도 난 좀 아쉽네요. 나는 코x콜라가 더 좋은데.”
“뭐? 콜라 하면 펩x지!”
“뭐라고요? 언니 실망이에요. 콜라는 코x콜라죠! 아, 나 펩x랑은 겸상도 안 하는데….”
“어쭈, 이게?”
당황의 늪에서 빠져나온 그녀들은 다투기 시작했다.
코x콜라가 최고라느니 펩x가 최고라느니.
어린애도 아니고 뭐 그런 거로 싸우나 싶다.
유재이도 그리 생각했는지 고개 절레절레 젓고는 남은 포션을 털어 마셨다.
그녀도 코x콜라나 펩x나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듯하다.
“도운 씨는요?”
“그래요. 둘 중에 뭐가 더 좋아요?”
그녀들은 내게 질문했다.
뭐가 더 좋냐고?
나는… 아무거나 상관없었다.
심지어 대형 마트에서 파는 1000원짜리여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딱히…? 콜라는 그냥 콜라죠.”
“네?”
“뭐라고요?”
“개인적으로는 같이 먹을 음식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치킨이라거나 피자라거나.”
“…….”
“…….”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두 사람은 빤히 날 쳐다보기만 했다.
한 명은 입을 떡 벌린 채로, 다른 한 명은 입을 다문 채로.
포션을 마신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던 홍수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여자는 또 왜 이래?
“불쌍해….”
“네?”
“도운 씨 혀가 불쌍해요! 그러니까 솔x눈을 맛있게 먹지!”
“아니, 솔x눈은 맛있잖아요.”
“민초가 맛이 없으면서요? 혀가 멀쩡하면 그럴 리 없어요.”
“그게 무슨 해괴한 논리예요?”
“당신 민초 싫어해?”
유재이가 도중에 끼어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심각해 보였다.
청천벽력.
그 단어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 무슨 겨우 민초 싫어한다고 그런 얼굴을 해…?
“…안 싫어해.”
“정말?”
“그럼. 즐겨 먹지 않을 뿐이야. 가끔 먹으면 치약 같고 좋…-”
“……!”
아, 실수했다.
방금 한 말, 민초 좋아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이다.
민초에서 치약 맛이 나는 게 아니라 치약이 민트 맛인 거야!
그런 반박이 바로 들어오곤 하던 말이었다.
“…….”
“…….”
하지만… 그녀는 내게 반박하지 않았다.
가만히 날 쳐다보기만 했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침묵 때문이었을까.
그게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반박을 해줬으면 싶었다.
어휴, 백도운 이 멍청한 놈아.
치약 이야기는 왜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