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88
제189화
안성평야 A등급 게이트 관리소.
그곳의 관리인 ‘김비운’은 야간 당직으로 일하는 중이다.
긴긴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의 업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따금 게이트를 찾아오는 A급 헌터들의 얼굴과 신분증을 빤히 들여다보면 되는 일이다.
또 관리인인 그를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든 퍽 자유로웠다.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스마트폰 게임이다.
톡, 톡, 톡, 톡….
왼손 검지와 중지가 빠르게 번갈아 가며 화면을 두드린다.
그럴 때마다 화면에선 망치 그림이 떠올라 둥근 바위를 두들겼다.
“넌 대체 어디까지 커질 생각이냐….”
김비운은 중얼거리면서 화면을 두드렸다.
톡, 톡, 톡.
철커덩, 철커덩.
톡, 톡, 톡, 톡.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 사이 사이에 거센 쇳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보지도 않고 알아차렸다.
판금 갑옷을 장착한 사람이 걸을 때 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A급 헌터가 안성평야 게이트에 진입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왼손으로 바꿔 들며 고개를 들었다.
습관처럼 미소를 짓고 앞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십시오. 안성평야 게이트입, 니다….”
김비운은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눈앞엔 예상한 대로 갑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다만, 갑옷은 그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보통 봐왔던 갑옷과 크게 다른 점이 있었는데, 바로 부피가 대단히 크다는 점이었다.
투구, 흉갑, 건틀릿, 심지어 다리를 보호하는 그리브까지 전부 다.
마치 둥글게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일까?
김비운의 머릿속엔 한 가지 채소가 떠올랐다.
양파…?
이 양파는 뭐야?
“안녕하세요.”
“네? 아, 네, 네. 안녕하세요….”
김비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그러고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 당황의 늪에 빠진 그가 손을 뻗은 것은 그동안 수백 번이 넘게 했던 동작이어서다.
몸에 밴 기억이 저절로 행동을 취하게 한 것이다.
양파가 자격증을 내밀었다.
“…으응?”
김비운은 자격증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격증에는 대상자의 이름과 사진, 헌터 등급이 쓰여 있기 마련이었다.
양파가 제출한 자격증도 그랬다.
[금지온 – A급 헌터]이름과 헌터 등급이 쓰여 있다.
다만, 문제는 사진이었다.
사진엔 얼굴이 아니라 흰색 가면을 쓴 모습이 담겨 있었다.
미친놈인가?
“얼굴…을, 확인해야 하는데요.”
“아, 잠시만요.”
양파는 커다란 양파처럼 생긴 투구를 벗었다.
그 모습은 마치 밭에서 양파를 뽑는 듯이 보였다.
양파처럼 생긴 투구를 벗자 그 아래엔 흰색 가면이 드러났다.
자격증 사진에 담긴 가면과 같은 것이었다.
“…….”
“…됐나요?”
“…….”
“저기요?”
“네? 아, 그러니까…. 음, 잠시만요.”
김비운은 흰색 가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눈앞의 가면과 사진 속 가면은 똑같아 보였다.
문제는 그 가면이란 것이 이벤트 가게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가면이라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이 흉내를 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김비운은 자격증 아랫부분을 바라봤다.
그곳엔 헌터 협회의 인증 마크가 찍혀 있었다.
우선 이 자격증이 ‘진짜’인지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인증 마크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파앗….
곧 인증 마크에서 초록색 불빛이 떠올랐다.
헌터 협회가 발급한 자격증이라는 증거였다.
이 헌터가 흰색 가면을 쓴 채로 자격증을 발급받는 것을 협회가 동의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책임 문제에 있어서 김도윤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중에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격증은 진짜였습니다.”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평소처럼 밝게 웃으며 자격증을 돌려주었다.
“네, 본인 확인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철커덩….
흰색 가면은 투구를 씀으로써 다시 양파가 되었다.
참 이상한 인간이다.
김비운은 그리 생각했지만, 왜인지 양파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인물에게서 친근함마저 느꼈다.
그건 아마 둘이 똑같기 때문일 거다.
양파의 왼손은 김비운의 왼손처럼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고 화면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톡, 톡, 톡, 톡, 톡, 톡….
화면 두드리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울린다.
양파 갑옷이 물었다.
“…지금 하는 거, 혹시 ‘키우기류(類)’입니까?”
“아, 네. 그렇습니다.”
“역시…. 화면 두드리는 손 박자가 딱 그럴 것 같았습니다.”
“하하, 저도 혹시나 하고 있었는데….”
“게임 이름이 뭔가요?”
“아, [돌 키우기]입니다.”
“돌 키우기…?”
“아마 모르실 겁니다. 이게 망겜 중의 망겜이라서….”
“그거 아직도 운영합니까? 2년 전에 출시된 거잖아요.”
“헐. 이거 아세요?”
“알죠. 키우기류 게임 Worst 5에 꼽히는데.”
“억, 잘 아시네요.”
김비운은 킥킥 웃었다.
웃을 때마다 화면을 두드리는 왼손가락이 춤을 췄다.
동료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꼈다.
“지온 님이 하시는 게임은 뭔가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세계수 키우기]입니다.”
“어, 세계수 키우기? 그거 운영 끝났잖아요?”
“네? 끝났다뇨?”
“1달, 아니 2달 전인가? ‘세계수 새싹이 자라났습니다’라는 공지와 함께 게임 리스트에서 내려갔어요.”
“어라, 그랬어요? 그건 몰랐는데요.”
“하고 계시면서 몰랐다니…. 어? 잠깐만요. 설마….”
김비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양파는 자신의 본체를….
양파처럼 생긴 투구를 긁적였다.
“…네, 생각하신 대롭니다. 내가 새싹이를 자라나게 한 녀석이에요.”
“아이고! 이거 훌륭한 분을 몰라뵀네요!”
불쑥!
김비운은 상체를 창구 바깥으로 내밀었다.
오른손을 재빠르게 뻗어 양파의 오른손을 낚아챈다.
“대박…! 키우기류 게임에서 정말로 키워내신 분 처음 봤어요!”
“아하하, 나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와. 이게 정말 키워지긴 하는구나…. 왠지 희망이 생기는데요?”
“음….”
양파는 그를 잠깐 바라보다가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붙든 모습이 되었다.
물론, 그들의 왼손은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꼭 키워내실 수 있을 겁니다.”
“오, 오오…. 키워내신 분이 말씀하시니까 설득력이 장난 아닌데요?”
“돌멩이가 커서 무엇이 될지 궁금하네요.”
“역시…! 제가 바로 그게 궁금해서 이걸 계속하고 있었거든요!”
“바로 그 정신입니다!”
톡, 톡, 톡, 톡, 톡.
두 사람 사이에 화면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흐음…. 이상한걸?”
제자리에 멈춰 선다.
게이트에 진입하고 나서 벌써 30분은 걸은 것 같은데, 홉고블린은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안성평야 게이트의 홉고블린들은 로드가 사는 성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지금 이곳은 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홉고블린 수가 적은 것은 당연한 거였다.
그렇다고 한들, 한두 마리 정도는 따로 돌아다닐 만도 한데….
그 한두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니?」
“홉고블린 말이야.”
「음?」
“한 마리도 나오질 않잖아.”
주변을 돌아본다.
풀이 나 있는 들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일(一) 자로 그어진 지평선은 거리감을 잃게 했다.
또 홍수정이 구해달라고 부탁했던 적맥도 보이지 않았다.
적맥이야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면 나타나겠지만.
「설마, 관리인. 몰랐던 건가?」
“으응? 뭐를?”
「홉고블린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 말이야.」
“그런 게 있어?”
「후우….」
무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들부들, 몸이 살짝 떨린다.
무기가 내 귓가에서 한숨을 내쉰 탓이다.
「홉고블린들이 나타나지 않은 건 나 때문이다.」
“어?”
「내 냄새를 맡고 도망쳤다는 뜻이다.」
“아.”
무기는 홉고블린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생물이다.
전투 의지란 것을 꺾어버릴 정도로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다.
말 그대로 상위종(上位種)과 조우하게 된 홉고블린들이 선택할 길은 하나였다.
무기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
정신 나간 홉고블린이 아니고서야 앞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
이런 바보 같은.
“그런 거였군….”
「몰랐을 줄이야…. 알고서 몰이를 하는 거로 생각했는데.」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 [백무기는 관리인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합니다.] [그 점을 이른 시일 내에 고쳐야 할 거라고 조언합니다.]응.
안 전해줄 거야.
“…그런 거 아니었어.”
「그런 것 같군.」
“이리저리 돌아다닌 게 뭐 어때서. 적맥도 찾아야 하는데.”
「관리인이 나사 빠진 인간이었다는 걸 깜빡한 내 잘못이다.」
신랄하게 말하고는 또다시 한숨을 내쉰다.
흠, 흠흠.
멍청한 건 나였으므로 따질 말이 없구만.
무기의 한숨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내게 제안을 해온다.
「내게 몰이를 맡겨 보겠나?」
“몰이? 이런 평야에서 그런 게 가능해?”
몰이 사냥은 몰아넣을 곳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이름에 붙은 대로 ‘평야’였다.
몬스터들을 몰아넣을 만한 장소가 전혀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무기는 자신 있게 말했다.
「실망하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야…. 어디 우리 무기 실력 좀 볼까?”
「3시 방향으로.」
“오케이.”
곧바로 무기가 제시한 방향대로 걸었다.
한동안 그렇게 걸었을 때,
「10시 방향으로.」
무기가 방향을 바꿨다.
15분 정도 걷다가 왼쪽으로 확 방향을 꺾었고, 마지막으로 1시 방향으로 꺾었다.
꺾고 나서 20분 정도 걸었을까?
[어린나무가 감탄을 보냅니다.]“오…?”
홉고블린들이 보였다.
한눈에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홉고블린들이.
대략 느낌적인 느낌으로 수백 마리는 되는 듯했다.
놈들은 진형을 갖춘 채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기세등등한 거 보소.
자기들 숫자 많다 이건가?
그래 봐야 몇 백 정도면서.
「내 실력이 어떤가?」
“인정. 대단한데? 새싹이도 감탄했어. 어떻게 한 거야?”
「몰이란 무턱대고 몰아넣는 게 다가 아니다. 도주 경로를 사전에 차단해가며 도주 의지를 꺾는 것이 진정한 몰이지.」
“아~ 완벽히 이해했어!”
「못한 거 같은데.」
“했다니까.”
「…….」
얘네 봐라.
다 이해했다니까?
사실대로 말해도 믿질 못하면 어떡해.
[어린나무는 관리인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다고 전합니다.]깨달은 거?
그게 뭔데.
[세상엔 믿을 인간을 믿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깨달았다고 전합니다.]히힛.
새싹아. 너의 성장에 형은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어쩜 하루가 멀다고 쑥쑥 성장하는 거니.
“그보다.”
「응?」
“도주 의지를 꺾은 대신 다른 의지를 불타오르게 한 것 같지 않아?”
턱짓으로 홉고블린들을 가리켰다.
녀석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려는 듯 날 꼬나보고 있었다.
물론, 꼬나보고 있기만 했다.
놈들에게 나는 인간이 아니라 상위종으로 느껴질 테니….
그러는 건 당연했다.
「어쩔 수 없는 일.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
“사… 아니, 500마리 정도 되려나?”
「왜, 너무 많은가?」
많냐고?
홉고블린은 B등급 몬스터였다.
그런 놈들 500마리가 날 노리고 있다?
확실히 말해 줄 수 있었다.
“우문을 묻는구나.”
「…그건 내 흉낸가?」
“응. 어때?”
「다시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그렇게 별로야?”
「후우….」
“그러면 뭐, 내 스타일 대로.”
「……?」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면서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린다.
세계수의 뿌리는커녕 아르카조차 꺼낼 필요가 없는 일이다.
“저 정도쯤이야, 검지 하나로 충분해.”
그저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