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87
제188화
“조심하셔야 해요.”
문 앞에 선 이성훈이 경고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누가 보면 지가 내 여자친구라도 되는 줄 알겠네.
오.
스스로 말해놓곤 기분 더러운걸.
“알았다니까.”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거 같으면 도망치시고요.”
“내가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냐?”
“아. 그렇네요. 팀장님은 귀찮은 일에 휘말릴 사람이 아니죠.”
“그래, 그래.”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하는 사람이죠.”
“그럼, 그럼.”
“후우….”
한숨을 내쉰다.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안 가?”
“팀장님.”
“그럼 계속 서 있던가.”
“아니, 팀장님, 알았어요. 가면, 야! 백도-”
탕.
문을 닫았다.
바깥에선 계속 이성훈이 뭐라고 떠들어대는 게 들려왔다.
닫힌 문에 의해 잘 들리지는 않았다.
신경 쓰지 않기도 했고.
「바로 나갈 건가?」
“아니, 그전에 할 일이 있어.”
「뭐지?」
“독서.”
「독서?」
“응. 책 읽어야 돼.”
「책이라니. 관리인이?」
그리 물으면서 무기는 꼬리를 내 이마에 갖다 댔다.
금세 시원한 기운이 이마에서 느껴졌다.
무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열은 나지 않는데.」
“이 반응은 뭐지?”
탁.
꼬리를 쳐냈다.
무기는 내 손에 얻어맞기 전에 꼬리를 치웠다.
「아픈 것도 아닌데 책을 읽겠다고 하니 그러지.」
“넌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
「살면서 책이라곤 읽어본 적이 없는 인간.」
“…….”
「아닌가?」
“맞기는 해.”
「…….」
무기의 말마따나 난 ‘독서’라는 단어와 거리가 아주 멀다.
지금까지 읽은 책이라고는 만화나 소설이 전부였으니까.
그마저도 종이로 넘기며 읽은 적은 얼마 없다.
살면서 ‘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제대로 읽은 건 딱 2권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었다.
[세계수 어린나무는 경악합니다.] [제대로 읽은 2권의 책] [설마 ‘관리인 교본 시리즈’인지를 묻습니다.]오, 대단한걸?
어떻게 알았어?
“관리인의 교본 제3권.”
새싹이의 경악을 뒤로하고 스킬을 썼다.
무기와 친구가 된 보상으로 얻은 것이다.
허공에 떠오른 것을 보고 무기가 감탄했다.
「그 책은…!」
“알아?”
「알다마다. 디싱이 저술한 관리인의 교본 아닌가.」
“오.”
「그렇군. 그걸 읽는 거라면 더 방해하지 않겠다.」
그리 말하고는 무기는 소파 위로 날아갔다.
똬리를 튼 모습으로 날 바라보기만 했다.
말한 대로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반갑다, 세계수의 새 관리인이여.] [이렇게 또 책으로라도 만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그대가 어떤 선택을 하고 이 교본을 얻었을지….] [그걸 알지 못한다는 게 내게 얼마나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고 있는지 그대는 아마 모를 것이다.]“…….”
무기를 바라봤다.
아마 디싱이 말한 이 선택은 무기와 관련된 것일 듯하다.
즉, 그는 나와 무기가 만나게 되리란 걸 미리 알았다는 뜻이다.
어떤 선택까지 했는지는 모른다는 걸 보면, 미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인데….
[내게, 아니, 우리에게 궁금한 것이 참 많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대의 궁금증을 해갈(解渴)해주지 못하는 것을 진심으로 미안하게 여긴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그대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기 때문이니, 꼭 좀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럼, 이해해준 것으로 알고….]알긴 뭘 알아.
이 양반 또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네.
당신이 그럴 때마다 잠들기 전 당신을 향한 나의 저주 시간이 길어진다는 걸 알아야지.
교본을 빠르게 넘겼다.
예전과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다.
자만하지 말라는 것.
세계수를 도구로 여기지 말라는 것.
더 추가된 부분도 있었다.
이무기에 관한 것이었다.
-라는 문장들을 정리하자면.
이무기를 한낱 몬스터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몬스터로 취급해버리면 선택에 따른 운명으로 인해 정말로 그렇게 될 테니.
물론, 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이 귀여운 애들을 어떻게 도구로 여기고 몬스터 취급을 한단 말인가?
예전에도 생각한 일이지만, 디싱은 멍청이다.
병신이고.
[…다음으로 새로운 스킬에 관하여 설명하겠다.] [앞서 가르쳐주었던 두 가지의 스킬을 기억하는가?]기억하고말고.
가지치기, 세계수의 뿌리.
둘 다 유용한 스킬이다.
하나라도 없었다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
마나 과다증으로 인해 계속 몸이 터져 나가는 신세가 됐을 테니까.
[세계수가 세계수 관리인을 위해 만든 가지치기] [세계수의 마나를 잘 다루기 위해 내가 만든 세계수의 뿌리.] [그 두 가지 스킬은 말 그대로 세계수 관리인의 스킬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서술할 스킬은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세계수의 마법이다.] [스킬 발동이 전적으로 세계수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으음…?”
새싹이한테 달려 있다고?
그러니까….
이번에 얻을 스킬은 새싹이가 발동하고 싶지 않으면 발동되지 않는다는 건가?
어라…?
근데 이거 왜 익숙하지?
[그대가 세계수를 도구로 취급하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저 이용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만 취급해왔다면, 그대는 이 스킬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수가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니.]“헹. 내가 당신 같은 줄 알아?”
나와 새싹이는 애정이 깊은 사이라고.
당신과 전대 세계수와는 달리.
그치, 새싹아?
왼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본다.
화면 속 새싹이는 푸르스름한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니, 거기서 줄임표를 보내오면 어떡해?
형이 민망해지잖아.
[ ]공란은 더 안 되지!
정말 너무하네.
새싹이 너 조금 더 자란 상태가 되고 나서 너무 솔직하지 못해.
솔직한 우리 새싹이로 돌아와 줘, 제발.
“……뭐?”
뭔 빔?
아직 후유증이 다 안 났나?
이상한 글자를 본 것 같은데.
눈을 감았다가 뜬다.
[이 스킬의 이름은 ‘솔라빔’으로….]눈을 감았다가 떠도,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솔라빔’이었다.
“…….”
이거 괜찮나?
***
괜찮은 건지 모르겠는 스킬을 배운 후 빌딩 아래로 내려왔다.
바로 바깥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눈 가리고 아웅은 해야 할 것 같아 유재이의 대장간에 들르기로 했다.
[JY 대장간]그녀는 대장간 이름을 바꿨다.
뭐, ‘재이네’에서 ‘JY’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바꾼 이유는 바꿀 때가 돼서라고는 하는데….
아마 그녀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라.”
1층 판매대는 불이 꺼져 있었다.
무기가 말했다.
「재이는 밑에 있다.」
“그래?”
「그 이상한 인간과 함께 있군.」
이상한 인간, 은 홍수정을 뜻했다.
그날 이후 무기는 그녀를 그렇게 부르며 피해 다녔다.
홍수정도 참 여러모로 대단하다.
A+등급 몬스터를 피하게 하다니….
「주차장이란 곳으로 가 있겠다.」
“그래, 거기서 봐. 금방 다녀올게.”
「음.」
무기와 헤어지고 유재이가 장비를 제작하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딸랑….
문 위에 달린 방울이 울렸다.
“오.”
“앗!”
들어가니, 유재이와 홍수정이 보였다.
그녀들은 바닥에 앉아 초록색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두 사람이 먹는 초록색 아이스크림이라면, 민트초코가 분명하리라.
하필 먹어도….
“우리 주님 오셨네.”
“오셨습니까!”
편히 앉아 있던 홍수정이 무릎을 꿇는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인사를 저렇게 해?
유재이를 바라봤다.
그녀는 제 친구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주님?”
“건물주님.”
“아.”
“이사 다 끝났어?”
“주님도 같이 먹을래요?”
홍수정이 포장지를 뜯지 않은 숟가락을 내민다.
스마트폰을 쥔 손을 저어 거절한 뒤 유재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이사는 이제 절반 정도?”
“그래?”
“힝….”
홍수정은 분홍색 숟가락을 다시 내려놓았다.
나 민트초코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
“참! 중급 포션 판매 다 됐어요. 대금 보냈다던데, 확인했어요?”
“네, 확인했습니다. 비싸게 팔았던데요?”
이번에 들어온 돈은 총 10억 원이었다.
200병을 판매한 돈이니, 그녀는 포션 1병당 500만 원에 판매한 거다.
중급 포션은 원래 200만 원인데 말이다.
“프리미엄이이죠, 뭐.”
“프리미엄?”
“맛이요.”
“아.”
하긴….
지금까지 수정 공방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한 포션들은 전부 맛이 이상했다.
솔x눈 맛, 민트초코 맛, 펩x콜라 맛까지.
이번에 만든 건 그녀가 아니라 엘프들이었지만….
수정 공방에서 제조했으니 이번에도 맛이 특이하리라 생각할 거다.
정말 그렇기도 하고.
맥X….
“그런데 왜 200병만 판매했어요? 300병 나왔잖아요.”
“건네준 분이 꼭 저도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해서요.”
“아, 그랬구나.”
엘프들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10병은 따로 챙겼다.
50병은 도희와 태천이에게 절반씩 나눠줬고, 나머지 40병은 주변 지인들에게 챙겨 줄 생각이다.
당연히 유재이와 홍수정도 그 주변 지인에 포함된다.
인벤토리에서 8병을 꺼내 두 사람에게 4병씩 건넸다.
“오. 나 주는 거?”
“앗. 고맙습니다, 주님!”
홍수정이 또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아까부터 왜 이래.
아이스크림 먹다가 취하기라도 했나.
유재이는 투명한 용기에 담긴 포션을 흔들었다.
입맛을 다시지 않는 걸 보면, 맛에 관해선 이미 들은 것 같다.
그러다가 날 쳐다봤다.
“…이거 주려고 온 거야?”
“아니, 겸사겸사. 나 방어구 좀 빌려줘.”
“방어구? 그림자의 눈은 어쩌고?”
“아, 그건 입을 수가 없어서.”
“왜? 손상됐어? 줘. 바로 고쳐줄게.”
그녀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아이스크림 위에 꽂았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망치를 꺼내 들며 일어난다.
귀수산 등껍질로 만들었다던 망치다.
“괜찮아.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어, 아니야. 다른 이유로 빌려달라는 거야.”
“……?”
고개를 갸웃거리며 망치를 놓는다.
다시 자리에 앉지 않고 날 바라본다.
무슨 이유인지 말해보란 뜻이다.
“그림자의 눈 착용하면 나인 거 들키잖아.”
“뭐야, 당신 몰래 나가려고?”
“응.”
“…….”
유재이는 날 빤히 바라봤다.
걱정…이 담긴 얼굴은 아니다.
조금 아쉬운걸.
“그럼, ‘안성평야 게이트’에 다녀와 줄 수 있어?”
“안 말려?”
“당신이 말린다고 들어?”
“안 듣지.”
“무기 씨랑 같이 가는 거지?”
“응.”
“그럼 괜찮아.”
뭐지, 이 믿음은.
나 기절했을 때 얼마나 친해진 거야.
이 정도면 호감도가 나보다 유재이랑 더 높은 거 아닌가 몰라.
“…뭐, 산책할 겸 새로 얻은 스킬 확인할 겸 나가는 거니까 어딜 가든 상관은 없어.”
“잘됐네, 그럼.”
“안성평야는 왜?”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수정이. 수정이한테 듣고 있어. 1층에서 갑옷 갖고 올게.”
“응.”
유재이는 벽에 있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그녀를 바라보다 홍수정을 바라봤다.
홍수정은 플라스틱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차가운 걸 먹어서 머리가 띵한 듯했다.
“뭐가 필요해요?”
“으응….”
기억하기로, 안성평야 게이트는 A등급이다.
이름처럼 평야로 유명하며, 등장하는 몬스터는 ‘홉고블린’이었다.
놈들에게서 얻어야 하는 게 있다면, 굳이 그곳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홉고블린은 B등급 몬스터였으니까.
다른 게이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놈들이었다.
그런데도 유재이는 안성평야 게이트를 콕 집어 말했다.
그곳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거다.
“‘적맥(赤麥)’….”
“적맥?”
“그걸, 구해 와 주세요.”
“그게 뭔데요?”
“그건….”
홍수정은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어지러운 게 도통 가시질 않는 모양이다.
조심 좀 하지.
“홉고블린들이 먹는 곡물…이에요.”
“곡물이요?”
“네. 생긴 게 꼭 붉은 보리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죠.”
“붉은 보리…. 그거 사람이 먹어도 돼요?”
“아하하, 당연히 안 되죠. 식중독으로 끝나면 다행일걸요?”
“만들려는 게 독약이에요?”
“설마요.”
그럼 뭘 만들려는 거지?
뭐, 전문가가 알아서 하겠지.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는 법이니.
“얼마나 구해 올까요?”
“많이요! 아주 많이!”
“많이…?”
“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흐음. 뭐, 알겠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감사해요, 주님!”
“그런데 계속 주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싫어요?”
“싫다고 해야 하나. 무슨 사이비 교주가 된 같아서 좀….”
쿵!
“그런, 데요….”
쿵, 쿵!
위에서부터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유재이가 갖고 오는 갑옷이 무거운 모양이다.
도와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유재이가 끙끙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녀가 갖고 온 갑옷은 그녀의 몸을 다 가릴 정도로 커다랬다.
그리고….
“그건….”
“응? 이거 알아?”
“알아. 나 그 게임 해봤어.”
해봤다 뿐인가.
심지어 제법 재미있게 했다.
처음 시작할 땐 ‘유다희’ 씨랑 절친 사이가 될 줄 몰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