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94
제195화
-라는 제목을 가진 영상은 아주 짧았다.
5분 남짓 되는 영상으로, 그 영상이 왓쳐 캐스트 실시간 랭킹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놀라워서다.
영상은 홉고블린 4만 마리가 각자의 무기로 땅을 구르는 모습으로 시작됐다.
회색빛의 마나에 둘러싸인 홉고블린들이 박자를 맞춰 땅을 구르자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울림이 느껴졌다.
울림은 곧 새로운 울림으로 바뀌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디던 발걸음이 빨라져 앞으로 물밀 듯이 달려나갔다.
그제야 홉고블린들의 적(敵)이 보였다.
양파 갑옷을 입은 자.
그자가 오른손 검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검지 끝에 푸른 마나가 모였다.
빠르게 모인 마나는 곧 푸른 구체를 만들어냈다.
푸른 구체는 점점 커졌고 형태가 조금씩 변했다.
지름이 1m 정도 됐을 때, 푸른 구체는 푸른 꽃봉오리가 되어 있었다.
꽃봉오리가 꽃잎을 살짝 벌렸다.
“끼에에엑!”
“끼익, 끼이익!”
홉고블린들이 함성을 질렀다.
한껏 벌어진 아가리에서는 연신 목청 찢어진 소리가 났다.
늑대 기수들이 양파 갑옷을 입은 사람 근처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꽃잎을 벌리는 꽃봉오리를 피해 옆으로 돌아간 늑대 기수들은 손에 꼬나쥔 도끼를 쳐들고 양파 갑옷을 향해 내리쳤다.
한 마리, 한 마리, 늑대 기수들은 투구니 흉갑이니 연신 쳐댔지만….
“끼엑?”
“끼엑! 키키엑!”
갑옷은 한 군데 찌그러진 곳도 없었다.
갑옷을 입은 사람도 멀쩡하게 서 있었다.
홉고블린들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으나 그것들은 그것을 생각지 않았다.
눈앞의 적을 없애기 위해 다음 준비를 이어나갔다.
커다란 늑대 기수 하나가 양파를 향해 돌진했다.
홉고블린 장군이 분명한 녀석이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가 하늘 높이 올라갔을 때, 홉고블린 장군의 몸에서 빛이 났다.
빛의 세기는 눈을 살짝 찌푸리게 할 정도였다.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높이 올라갔던 무기가 빠르게 내려갔다.
회색빛의 마나로 휘감긴 철퇴가 양파의 투구를 강력하게 내리쳤다.
콰앙!
홉고블린 로드와 양파를 중심으로 둥글게 바람이 일었다.
폭탄이 터진 듯 주변 공기를 높은 압력으로 밀어낸 것이다.
가공할 정도의 위력으로 내리쳐진 철퇴는 양파 모양의 투구를 깨뜨렸다.
그마저도 아주 작은 크기의 구멍을 냈을 뿐이었지만.
양파 갑옷을 입은 자는 멀쩡했다.
“……키익!”
푸른 꽃봉오리가 활짝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이무기가 투구의 구멍을 빠져나왔다.
이무기는 로드의 팔을 물고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이어 꽃잎 모양을 한 빛줄기가 로드를 덮쳤다.
푸른 빛줄기가 닿자 로드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다른 홉고블린들도 마찬가지였다.
빛줄기가 덮칠 때마다 소리가 줄어들었다.
리모컨으로 음량을 줄이듯 빛줄기가 지난 자리엔 홉고블린들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초록의 풀뿐이었다.
새로 자라난 풀숲만이 바람에 나부꼈다.
***
회의실은 조용했다.
도희도, 태천이도, 한재임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리플레이 화살표가 뜬 채 멈춰 있는 빔프로젝터 화면만을 쳐다봤다.
회의실 안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아닌 무기는 내 목에 감겨선 축 늘어져 있었다.
잠을 자는 것이다.
몰랐는데, 무기는 생각보다 잠이 많았다.
톡, 톡, 톡….
그들을 돌아보며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도희가 나를 불렀다.
“오라버니.”
“응.”
“너무해요.”
“잠깐! 이의 있어.”
“…이의요?”
“난 억울해!”
영상에 찍힌 것은 분명 나였다.
무기까지 함께 찍혔으니 내가 아니라고 발뺌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울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억울하다고요?”
“그렇잖아. 내가 뭐 일부러 찍히고 싶어서 찍혔나? 나도 찍히고 싶지 않았어.”
“그렇죠.”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도희와 태천이는 동의했다.
심지어 한재임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유명인들이라 파파라치를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의외로 관대한걸.
흠. 그럼 뭐 때문에 날 소집한 거지?
“누가 저거 갖고 뭐래요?”
“어? 아냐?”
“아니에요.”
“그럼…?”
“이삿짐이요.”
“아.”
그 순간, 머릿속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
어제 이성훈에게 했던 말이다.
남은 이삿짐은 내일의 백도운이 알아서 할 거라던….
도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맡겨달라면서요.”
“그랬지….”
“그래놓곤 도망을 쳐요?”
“걱정하지 마! 어제 다 얘기 끝난 거니까.”
“얘기요?”
도희는 태천이를 돌아봤다.
태천이는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어 한재임을 바라보지만,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녀석과 얘기를 끝냈을 거라는 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일일 터였다.
“그래. 오늘의 내가 하기로 어제의 백도운과 다 얘기했어.”
“하아….”
“지금 올라가서 마무리할게. 공범자인 이성훈이랑.”
“됐어요.”
“어?”
“이미 제가 태천 오라버니랑 다 했어요.”
“앗, 아….”
미안한 마음을 담아 도희와 태천이를 바라봤다.
도희는 괜찮다는 듯 눈을 한번 깜빡이고는 말을 이어나갔는데,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희가 문을 바라봤다.
“…들어와요.”
허락이 떨어지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이성훈이다.
녀석은 상체를 푹 숙여 인사를 했다.
이야, 저놈 봐라.
나한텐 한 번도 저렇게 깍듯이 인사한 적 없는데.
저놈은 심지어 취직한 날 처음 봤을 때도 안 저랬었다.
“무슨 일이에요?”
“방금 배수현 국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이성훈은 바로 대답했다.
저놈이 저렇게 공손함을 내보일 줄 아는 놈이었나….
“또요?”
“네. 백 팀장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보고 계시는 영상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저거요?”
“그렇습니다.”
나를 포함해 다들 스크린을 바라봤다.
스크린에는 여전히 리플레이 화살표가 떠 있었다.
풀숲이 자란 땅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는 소리다.
영상 때문이라면….
“오해를 풀러 온 것 같네.”
“오해요?”
“어. 어제 저기 같이 있었거든.”
“배수현이랑 오라버니가요? 단둘이?”
“아니. 최희석도 같이 있었어.”
“아아.”
“백도운. 오해를 풀러 온 것 같다는 건 무슨 소리냐?”
한재임이 물었다.
스크린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거, 영상으로 공개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었어.”
“제안…. 이미지 때문이겠군.”
“맞아. 근데 난 싫다고 분명히 거절했어.”
“그렇겠지. 영상을 올린 건 다른 놈들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아마 ‘멋대로 올렸다’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찾아온 것 같은데.”
“음.”
한재임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태천이를 바라본다.
태천이는 목을 긁적이며 이성훈에게 말했다.
“모시고 와.”
“넵.”
이성훈은 바로 문을 닫고 나갔다.
배수현을 데리러 간 것이다.
5분쯤 지났을까?
이성훈이 배수현과 함께 회의실로 돌아왔다.
배수현 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함께 있었다.
아마 A급헌터관리부 소속의 부하 직원이겠지.
“모시고 왔습니다.”
“수고했어요, 나가봐요.”
“네.”
한재임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성훈도 똑같은 미소를 지은 채 공손히 인사한 후 회의실을 나갔다.
사이 좋게 가식적인 모습을 보니 참 좋군….
한재임이 미소를 유지한 채 팔을 뻗었다.
의자에 앉으라고 권한 거다.
배수현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해입니다.”
예상한 대로네.
세 사람은 조용히 날 바라봤다.
내가 당사자였으므로 발언권을 넘겨준 거다.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대답했다.
“압니다.”
“네?”
“처음부터 의심도 안 했어요.”
“아….”
“그리고 우린 이미 조사를 다 마친 상태입니다.”
한재임이 끼어들었다.
배수현이 녀석을 돌아봤다.
‘영상을 올린 건 다른 놈들’이라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정말 조사를 다 끝마친 상태였나.
영상이 공개된 지 몇 시간도 채 안 됐건만….
재수 없는 놈이기는 해도 일 하나는 참 잘 한다니까.
“조사를요?”
“네. 영상을 공개한 건 ‘굴베이그(Gullveig)’ 놈들이었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굴베이그….
우리 백운천처럼 짧은 기간에 A등급 길드가 된 놈들이다.
그 탓에 우리를 자기들 라이벌처럼 여기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우스운 일이다.
도희나 태천이처럼 ‘한국 최고’라는 타이틀이 있는 헌터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오해하지 않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리 말하고는 배수현은 날 바라봤다.
그녀는 오해를 풀러 온 것이었지만, 단순히 오해만 풀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백도운 헌터. 혹시 밤에 드린 서류 읽어 보셨습니까?”
“아뇨. 아직 못 읽었습니다. 안성에서 돌아온 뒤 바로 이곳으로 불려왔거든요.”
“아….”
대장간에서 영상을 보고 난 후 도희에게 전화가 왔었다.
“올라와요”라고 말하고 끊은 걸 보면, 내가 나갔다 돌아온 걸 알고 있던 게 분명하다.
뒷머리에 머리띠라고 읽고 위치추적기라고 부르는 것이 달려 있었으니, 뭐….
적맥을 수정 공방에 내려놓고는 올라왔을 때, 일찍 출근한 이성훈이 날 이곳으로 안내했다.
“오늘 찾아온 건 오해를 풀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건네드린 서류에 있는 퀘스트 중 하나를 제안하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잠깐만요.”
도희가 끼어들었다.
배수현은 내게서 시선을 돌려 도희를 바라봤다.
도희는 용건이 내게 있는 듯 그녀가 아니라 날 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몇 건 받아들였어요?”
“다섯 건.”
“…….”
홱!
도희가 고개를 돌려 배수현을 노려본다.
날카로운 시선이 닿자 그녀는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옆에 앉은 부하 직원도 마찬가지로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10초 정도 흘렀을까.
이내 배수현은 도희를 바라봤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백도운 헌터가 직접 받아들인 겁니다.”
“…….”
“저흰 분명히 다시 생각할 시간을 드렸었고요. 그렇죠?”
“정말이에요?”
배수현과 도희가 날 바라본다.
뻔뻔한 것 보소.
다시 생각할 시간은 그녀가 아니라 최희석이 줬었다.
뭐, 함께 왔으니 ‘저희’라는 단어에 그녀도 포함되긴 하지만.
“주긴 줬어.”
“그것 보십시오.”
“…좋아요. 오라버니가 받아들였다면야.”
“그럼 본론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러세요.”
“한재임 헌터.”
“네?”
“영상 리플레이 좀 해 줄 수 있을까요?”
“…….”
한재임은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재생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
리모컨을 집어 든 채로 태천이를 돌아봤다.
태천이의 의지를 물어본 것이다.
동영상 하나 재생하는 건데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태천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
녀석은 곧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고, 빔프로젝터가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중반 부분으로 넘겨줄래요?”
“중반 부분?”
“네. 백도운 헌터가 푸른 꽃을 소환한 후 빛을 쏘아내는 장면이요.”
“알겠습니다.”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영상이 빠르게 진행됐다.
금세 푸른 꽃이 소환되어서는 홉고블린을 지워나갔다.
4만 마리의 홉고블린이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에 풀숲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저거요.”
달칵.
배수현이 손을 뻗자 한재임이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영상 속에선 풀숲이 자라나다가 멈췄다.
“저거 때문에 찾아뵌 겁니다.”
“…풀이 자라나는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배수현은 한재임의 질문에 대답하며 날 바라봤다.
풀이 자라나는 것….
그것 때문에 날 찾아왔다고?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