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18
제219화
“덕분에 당신이 지금 살아 있는 거니까.”
“…….”
스윽.
서지혁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나태의 뺨을 쓰다듬던 손의 방향을 바꿔 뺨 위에 얹는다.
그대로 손가락을 모아 나태의 볼을 살짝 꼬집는다.
볼이 찹쌀떡처럼 말랑거리며 늘어났다.
“…뭐야?”
“원한다면, 죽이도록 해. 얼마든지 죽어주지.”
“…….”
“하지만. 나와 합의한 것을 잊지 마라. 그대가 직접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로 죽어주지 않아.”
“……귀찮아. 당신, 진짜 귀찮은 거 알아?”
“알고 있다.”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그녀의 볼을 톡톡 두드린다.
아프지 않게 조심스럽게 살살 꼬집었지만,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자업자득이니 감수해야겠지.”
“…….”
“다음부터 계약은 신중히 하도록. 귀찮다는 이유로 쉽게 합의한 그대 잘못이니.”
“…….”
“…….”
“…언제까지 만질 건데?”
“글쎄. 지금 마음 같아선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데.”
“죽여줘?”
피식.
서지혁의 입에서 공기 섞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녀의 질문에 대답한다.
“아까도 말했을 터다. 원한다면 하라고.”
“…….”
“다만.”
그는 손가락을 옮겼다.
나태의 볼을 살살 두드리던 손가락이 이젠 입술을 문질렀다.
“거부하는 것도, 날 죽이는 것도. 직접 하도록 해.”
“…….”
“그러지 않으면 들어줄 생각이 없으니까.”
“…….”
“지금 속으로 한숨 쉬었지?”
“…전언은?”
“말 돌리는 건가?”
“전언은.”
나태의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았다.
똑같은 말 또 하게 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것이다.
서지혁은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확실하게 전하고 왔다.”
“그래.”
“그대는 이제 어떡할 거지?”
“…잘 거야. 나가.”
“아니. 그걸 물은 게 아니다.”
“그럼?”
“계속 백도운을 도울 거냐고 물은 거다.”
“그건 이제 끝.”
“끝이라고?”
“식당 가르쳐줬으면 됐지. 주문까지 해줘야 해?”
“그건 그렇군.”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경고해줬으니 그녀가 할 일은 끝났다.
동맹 관계도 아닌데 걱정해주고 도와줄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제부터 할 일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또 그 결과에 따라 어떤 것을 취할지 방향을 정하면 그만이었다.
“…백도운은 이틀 후 중국으로 떠나지.”
그는 현재 상황을 중얼거렸다.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폭식은 백도운이 없는 한국으로 들어와 함정을 준비할 테고.”
“아마도.”
“녹지화 작업을 하는데, 반년쯤 걸린다고 했으니…. 폭식이 함정을 준비하는 기간으로서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야.”
“그럴걸.”
“함정이라…. 폭식이 백도운을 어떻게 불러낼지 기대가 되는군.”
“뻔하잖아.”
“인질로 부를 거다?”
“…….”
나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대답이 되었고, 서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 기대가 되는 거다. 백도운에게 인질로서 작용하려면 성녀나 기사는 돼야 하니까. 그 두 사람 정도가 아니면 놈은 죽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겠지.”
“…….”
“과연, 폭식은 백도운을 어떻게 불러낼까.”
“당신이라면 어떡할 건데?”
“나? 나라면…. 어떻게든 천칭의 균형을 맞추겠지. 수평이 될 때까지 추를 올리고 또 올려서.”
“…….”
서지혁이 올리겠다고 말한 ‘추’는 사람을 뜻했다.
백도운에게 소중한 백도희나 이태천을 천칭에 올리지 못한다면, 기울 수 있을 만큼 다른 사람들을 붙잡아 인질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그게 수백 명이 되든 수천 명이 되든 수만 명이 되든.
“…이해가 안 가네.”
“음?”
“당신은 정상이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 정상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증거.”
“…….”
“그런 당신이 왜 백도운을 돕고 동맹을 맺고 싶어하지?”
“그대도 돕지 않았나.”
“사사건건 날 귀찮게 구는 폭식을 치워버리겠다는 목적이 있었으니까.”
“그랬지.”
“…당신도 목적이 있는 거?”
“그렇지.”
“그게 뭔데?”
“…….”
서지혁은 대답하는 대신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의 가슴팍에 모여든 대량의 마나는 곧 천칭을 만들어 냈다.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바로 그 천칭이었다.
끼이익….
그가 바라보자 소환된 천칭이 곧바로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위로 올라간 접시를 바라봤다.
“서지혁.”
“응?”
“천칭. 폭식. ‘7대 죄악’, 스미르노프, 밀러, 리롄제.”
그는 위로 올라간 접시를 바라보며 단어를 나열했다.
천칭을 바라보며 단어를 나열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나태는 바로 알아차렸다.
서지혁은 언제나처럼 똑같이 저울질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러나 아래로 내려간 접시에 무엇을 올려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올려놓았기에 반대편 접시에 뭘 올려놓든 기울기가 변동하지 않는 것일까.
“최동훈, 윤건, 최희석, 한진환.”
끼익….
천칭의 기울기가 미세하게 변동했다.
한진환.
그 이름에 반응한 것이다.
S급들의 올려놓았을 땐 변동하지 않았었던 천칭이 왜 A+급인 한진환을 올려놓자 변동한 것일까.
그녀로서는 그 이유를 알 겨를이 없었다.
서지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음 이름을 말했다.
“이태천.”
끼익….
천칭이 아까보다 조금 더 기운다.
“백도희.”
끼익.
아까보다 더 기울었다.
“한진환, 이태천, 백도희? 이 녀석들은….”
나태는 여전히 그가 천칭에 무엇을 올려놓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반대편에 올린 이름 중 천칭의 기울기를 변하게 한 이름들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서지혁이 그녀가 발견한 공통점을 말했다.
“백도운.”
덜컹!
그 순간, 천칭이 수평을 이뤘다.
어떤 이름을 올려도 조금씩 기울기만 했던 천칭이 완벽한 수평을 이뤘다.
“…뭐야.”
“…….”
“저기에 올린 거 뭐야.”
서지혁은 나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어루만져서 빨갛게 됐던 나태의 뺨은 원래의 피부색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걸 또다시 붉게 물들게 하겠다는 듯 뺨을 쓰다듬는다.
“백도운은 세계(世界)다.”
“……!”
“그게 내가 동맹을 맺고 싶은 이유지. 세계가 없으면…, 이러지 못하니까.”
“못…!”
서지혁은 나태에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입술만 살짝 닿은 키스였다.
입술이 맞닿고 5초 정도 흘렀을 때쯤,
“…….”
그는 입술을 떼며 눈을 떴다.
그러고는 옆을 돌아봤다.
무테안경을 쓴 메이드가 서지혁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뭐 하는 겁니까, 천칭?”
메이드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가 바뀌었다.
나태의 목소리에서 리넨의 목소리로.
나태가 리넨의 몸에서 빠져나간 것이 분명했다.
“아쉽군.”
“뭐가, 말입니까…?”
“지금 내게 이런 살기를 보이는 게 네가 아니라 그녀였다면 좋았을 것을.”
“유언은! 그게 답니까?”
“합의하자, 리넨.”
“시끄러워!”
리넨은 사납게 소리쳤다.
그녀의 살기가 세찬 마나로 변하며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서지혁을 걸터앉았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격렬한 마나에 휩싸이지 않도록 뒤로 물러났다.
리넨의 보랏빛 마나는 격동적으로 뿜어졌지만, 침대에 누워 눈가리개를 한 채 자는 주인에겐 1mm도 닿지 않았다.
“감히 주인님의 입술을 탐한 죄! 목숨으로 갚아야 할 거다!”
미세한 컨트롤로 조종되는 마나가 서지혁을 덮쳤다.
***
정 세실리아 수녀를 보육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보육원에 도착했을 때, 연락되지 않는 그녀 때문에 원장 아줌마와 동료 수녀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정 세실리아를 보자마자 엉엉 울기 시작했을 땐 간담이 서늘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다음으로는 울음을 그친 아줌마한테 혼났다.
헌터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두 번이나 입원하냐는 것이었다.
도희와 태천이는 나를 혼내는 아줌마를 말리는 대신 오히려 성질을 더 돋웠다.
아마 기회다 싶었던 거겠지.
“내가 뭐 입원하고 싶어서 했나….”
[세계수 어린나무는 그래도 흐뭇했다고 전합니다.]“그렇긴 해.”
화면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새싹이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특히, 새로 자라난 푸른 꽃을 통해서.
“아. 꽃 확인하러 간다는 걸 깜빡했네.”
날도 밝았겠다, 엘프들도 다 깨어 있겠다.
지금 찾아가서 물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고개를 틀어 베개처럼 베고 있던 무기를 바라본다.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던 무기는 깰 생각이 없는 듯하다.
씻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마치 바디필로우처럼 굽어 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그 모습은 스마트폰 갤러리에 소중하게 저장되어 있다.
깨워봤자 무기는 함께 입장하지 못하니까 혼자 훌쩍 다녀와야지.
누운 채로 화면에 있는 성역 입장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마자 시야가 변했고,
“관리인 님…?”
레지나의 목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돌아보니, 그녀는 새싹이 바로 옆에 앉아 알테라-쇼넴을 쓰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레지나. 잘 지냈어요?”
“아하하. 잘 지냈냐니, 우리 어제도 봤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엄청 오래된 것 같단 말이죠.”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에….”
손사래를 치며 주제를 넘겼다.
레지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수긍해주었다.
내가 관리인이니까 넘어가 주는 거겠지.
나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저 기분 탓인 것을 설명하려 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 그보다!”
짝!
레지나가 세게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내게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잘못하면 닿겠는데.
“감사합니다, 관리인님!”
“뭐가요?”
“꽃이요! 세계수님 꽃!”
레지나는 고개를 들고 새싹이를 바라봤다.
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위로 들었다.
새싹이의 나뭇가지에 푸른 꽃들이 예쁘게 자라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거 때문에 왔어요.”
“아, 꽃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으신 거군요?”
“네.”
“후후후후.”
레지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걱정 없는 웃음을 보이는 건 오랜만이었다.
요즘 웃다가도 날 걱정하느라 미소를 지우곤 했었으니까.
“세계수 님의 꽃으로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어요. 대표적인 사용법 두 가지만 말해보자면!”
“보자면?”
“첫 번째!”
레지나는 검지를 펼쳤다.
“꽃잎에 결정화(結晶化) 마법을 걸어 마법 아이템으로 사용하는 거예요.”
“결정화…?”
“네. 마력을 담아내는 보석처럼 사용하는 거죠.”
“아하.”
이어 중지를 펼친다.
그녀의 손은 V자를 그린 듯하다.
“두 번째! ‘엘릭서’를 만드는 거예요.”
“엘릭서요?”
“앗, 모르세요? 설명해드릴게요!”
“아니, 알아요.”
모를 리가 있나.
세상에서 가장 귀한 포션인데.
엘릭서는 복용자가 죽지만 않았다면 어떤 상처든 회복시키고, 동시에 다 써버린 마나를 채워준다.
여러 디버프 효과를 없애기도 하고, 감기 같은 잔병 따위는 씻은 듯 낫게 하기도 한다.
복용한 양에 따라서는 우채연이 앓았던 절맥증까지 차도를 보이게 할 수 있었다.
하트 브레이크의 후유증으로 고장이 난 심장도 고칠 수 있다는 말도 있기는 한데….
그건 그야말로 ‘설마’일 테지.
“실물로 본 적은 없지만요.”
그런 귀하디귀한 물건을 직접 보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지구에서는 유일하게 바티칸에서만 제조할 수 있는데, 장소가 장소인지라 ‘신의 눈물’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소속 성직자들에게만 나눠주기 때문에 시중에선 구매하지도 못한다.
이따금 암시장에 올라온다고 들었던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진품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사용돼요. 전대 관리인 님께선 화장품을 만들었던 거로 기억해요.”
“…….”
엘릭서를 만들 수 있는 꽃으로 화장품을 만들었다고?
이 미친 양반이.
아무리 피부에 양보하라는 게 요즘 세상이라고 해도 그 정도면 너무 아까워서 양보 못 하겠다.
“화장품도 좋지만.”
레지나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아무래도 내가 화장품 만드는 거에 솔깃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전혀 아니었는데.
“저는 부디 관리인 님께서 엘릭서를 만드는 데 쓰시길 바라요…!”
“그럼….”
“네.”
“화장품-”
“으으응…!”
레지나는 울상이 되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귀여워라.
더 놀리고 싶지만,
“…….”
파트리아가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그만해야겠다.
이 나이 먹고 장난으로 애 울렸다가 혼나고 싶지는 않다.
“…이 아니라. 엘릭서를 만드는 거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잘 생각하신 거예요!”
“아. 근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요? 뭔가요?”
“그게, 맛을 좀….”
“아. 저번에 만든 거 맛없었군요?”
“맛이, 없었다기보다… 호불호가 심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올바른 표현 같네요.”
“아하하! 네.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레지나는 까르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엘프들도 그걸 마시고 맛있는 엘프와 맛없는 엘프로 나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럴 때 보면 엘프들 입맛이 인간들 입맛이랑 비슷한 것 같다.
고기만 찾는 육식주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