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39
제240화
“으아….”
“죽겠다….”
백운천 6층 휴게실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김상철과 이재욱이다.
길드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막내들로, 성인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어렸다.
그런 두 사람이 휴게실에서 “죽겠다”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아저씨들 페이스에 따라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게 적당히 마시라니깐.”
술 때문이었다.
이재욱이 민트색 음료 자판기로 걸어가 음료수를 뽑았다.
덜컹, 덜컹.
각기 다른 음료수 두 캔이 차례차례 뽑혀 나왔다.
휙.
재욱은 그중 꿀이 그려진 음료수를 상철에게 던졌다.
“자, 마셔.”
“고마워….”
상철은 캔을 받자마자 뚜껑을 따고 마셨다.
꿀꺽꿀꺽.
조금씩 상철의 구겨졌던 얼굴이 펴졌다.
음료의 달콤한 꿀맛이 한 모금씩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마다 숙취를 없애주는 듯했다.
음료를 한 번에 들이킨 상철이 입술을 핥으며 캔을 내려다봤다.
“역시….”
“어때? 마시니까 좀 나아?”
“좀? 좀이 아니야. 아까까지만 해도 머리 깨질 것 같았거든? 근데 지금은….”
“지금은?”
“상쾌해! 나무 그늘에서 한숨 자고 일어난 것 같달까?”
“그 정도야?”
“‘위드 허니(Weed Honey)’…. 이러니까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지. 홍수정 님, 이런 엄청난 걸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철이 빈 캔을 향해 절을 하듯 상체를 숙였다.
딱!
그걸 지켜보던 재욱이 손에 쥔 음료 캔 뚜껑을 땄다.
손안에 든 음료를 마시고 싶은 욕구가 피어올라서다.
뚜껑을 따자마자 캔에 그려진 그림처럼 홍삼 냄새가 풍겼다.
재욱은 냄새만으로도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꼴깍….
그는 21살 청년답게 홍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에 쥐어진 홍삼 음료를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어서 빨리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마른침만 자꾸 넘어갔다.
꿀꺽꿀꺽.
재욱은 참지 않고 음료를 마셨다.
달콤쌉싸름한 홍삼 맛이 목을 넘어갈 때마다 그는 피로에 찌들었던 정신이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큰일 났네.”
“뭐가? ‘위드 밤(Weed Bomb)’은 별로야?”
“반대야 반대. 이거 중독될 것 같아.”
“그래?”
“네 표현을 빌리자면, 나무 그늘에서 30분 정도 멍하니 쉰 것 같은 느낌?”
“헤에. 그것도 한 번 마셔볼까….”
상철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본인이 말한 대로 음료 자판기에서 위드 밤을 뽑아 마시기 위해서였다.
“헉…!”
상철은 일어나다 말고 멈췄다.
자판기 앞에 서 있는 두 남자 때문이다.
백운천 길드의 간부 서인철과 이현욱이 자판기에서 재욱이 마신 음료를 뽑고 있었다.
덜컹, 덜컹.
“…안녕하십니까!”
“안,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두 사람을 발견한 상철이 상체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재욱도 의자에서 일어나 상철을 뒤따라 힘껏 인사했다.
상품 출구에서 위드 밤을 꺼내던 서인철이 “푸핫!”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인철이 웃을 때마다 귀에 달린 칼 모양 귀걸이가 달랑거렸다.
“군대야? 뭘 그리 깍듯이 인사해.”
“괜찮으니까 편하게 앉아.”
“그래, 그래. 우린 군기 같은 거 안 잡아.”
인철과 이현욱이 부드럽게 말했다.
특히, 인철의 가벼운 분위기는 두 사람에게로 하여금 휴게실 의자에 다시 앉고 싶게 했다.
물론 생각만 들었다.
재욱과 상철은 정말 그리 행동하지는 않았다.
어떤 신입이 간부 앞에서 편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괜찮습니다!”
“네. 지금 굉장히 편합니다!”
“그래? 그럼, 뭐….”
인철이 현욱에게 위드 밤을 건네고는 상철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둘렀다.
상철은 제 어깨에 둘려지는 팔의 감촉을 느끼며 몸을 움찔거렸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상철은 뱀이 몸을 훑는 듯한 께름칙함을 느꼈다.
킁, 킁킁.
“어젯밤 술 많이들 마셨나 봐?”
“아, 아닙니다.”
“아니긴, 씻고 왔는데도 술 냄새가 나는구만.”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우리 나이에 밤늦게 술도 마시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
“나는, 말이야.”
“…네?”
인철의 말을 듣고, 상철은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게이트에 들어온 듯한 감각.
강대한 몬스터를 눈앞에 둔 듯한 감각.
상철은 인철의 “나는, 말이야.”라는 말을 돌이켜 보았다.
답은 손쉽게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꿀꺽….
상철은 침을 삼키며 현욱을 바라봤다.
위드 밤을 마시던 현욱은 상철의 시선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현욱이 동굴 같은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저음의 목소리는 마치 동굴로서 비를 피하게 해주는 듯했다.
“나도 인철이랑 비슷하게 생각한다.”
“…….”
단순한 착각이었다.
동굴이 아니라 수렁이었다.
비를 피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였다.
상철은 폴더처럼 몸을 반으로 접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재욱도 상철처럼 몸을 반으로 접어가며 용서를 구했다.
“킥….”
인철은 그 꼴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러다가 상철의 등을 두드렸다.
상철은 버튼이 눌린 것처럼 상체를 다시 들어 올렸다.
“알겠으니까 그만하고, 따라 나와.”
“네?”
“갈 데가 있어.”
“갈 데 말입니까?”
“어. 공항으로 갈 거야.”
“공항…입니까?”
상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항에 갈 거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철은 설명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위드 밤을 다 마시고는 현욱과 함께 휴게실을 떠났다.
상철과 재욱은 서로를 바라봤다.
간부와 함께 공항으로 가는 것.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공항….”
“우리가 왜 공항을?”
“글쎄.”
“앗, 설마…!”
“설마 뭐?”
“김상철 이 멍청아. 오늘 도운 형님 중국에서 돌아오시는 날이잖아!”
“그러고 보니…. 어? 잠깐. 그렇다면…!”
“그래…! 우리가 도운 형님 마중 나가는 거야!”
“아, 아아!”
짝.
상철이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러다가 재욱과 함께 고개를 돌려 휴게실 바깥을 바라봤다.
바깥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철과 현욱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뒷모습에선 재욱과 상철을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빠, 빨리 가자!”
“어, 어!”
재욱과 상철은 부랴부랴 휴게실을 나갔다.
곧 휴게실에는 민트색 음료 자판기만 덩그러니 남았다.
***
톡, 톡, 톡….
전용기에서 나오자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그렇군.
그동안 중국 사막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 한국은 벌써 가을이었다.
내 목을 휘감은 채로 자는 무기의 시원한 몸이 3개월 전처럼 고맙지만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백도운 헌터.”
전용기에서 내리자, 날 마중 나온 이들이 인사를 해왔다.
마중 나온 이들은 두 무리로 나뉜다.
한쪽은 정부 쪽 사람들이고, 다른 쪽은 백운천 길드원들이다.
정부 쪽은 배수현이 리더로서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녀를 포함한 정부 쪽 사람들의 인사를 대충 받으며 백운천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
“…백도운 헌터?”
백운천 길드원들을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게 이상하게 보였던 걸까.
배수현이 나를 부른다.
길드원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손에는 흰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저건 뭐지?
“3개월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러게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고생 많았죠.”
“하하.”
배수현이 짧게 웃었다.
참 많은 뜻이 함축된 웃음이다.
짜증스러운 감정과 불쾌함이 조금 느껴졌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정부를 대표해 A+등급 퀘스트의 성공적인 완수를 감사드립니다.”
이어 다른 이들도 감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움은 이미 장첸 소장한테 받을 만큼 받았다.
이 이상 받는 건 배를 더부룩하게 만들 뿐이다.
“그보다, 들고 있는 건 뭡니까?”
“아. 백도운 헌터에게 드리려고 가져온 겁니다.”
“나한테요?”
“네.”
그녀는 손에 든 흰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건네받자 그녀가 그것에 관해 설명했다.
“다음으로 추천해 드리는 A+등급 퀘스트의 정보입니다.”
“…나 방금 막 한국 도착했는데요.”
“네, 알고 있습니다.”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바로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한 번 훑어봐 주십사, 하는 거죠.”
“네, 뭐. 훑어보겠습니다.”
언젠가.
심심하거나.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말이지.
이어 고개를 돌렸다.
날 마중 나온 백운천 대표들을 보기 위해서다.
“…….”
“…….”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구만.
마중 나온 놈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뭐냐.”
“뭐가 뭐냐.”
한재임이 질문으로 대답했다.
녀석에게서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여성, 최희주를 쳐다봤다.
내 얼굴에 담긴 감정을 읽은 걸까?
최희주는 발끈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야. 나도 너 마중 나오고 싶지 않았거든?”
“그럼 그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지. 뭐 하러 굳이 나와서 얼굴을 붉히냐.”
“…내가 가장 여유로워서 그랬다. 왜!”
최희주가 앙칼지게 따지듯 말했다.
얼굴이 살짝 붉은 것을 보니, 여유로운 게 부끄러운 듯했다.
A급 헌터가 여유롭다는 건 일이 없다는 걸 뜻하는 것이었으니….
한재임에게 물었다.
“도희랑 태천이 많이 바쁘냐?”
“새삼스럽군.”
“그렇긴 한데….”
녀석의 말마따나 두 사람은 늘 바쁘다.
천공의 기사가 되고, 하얀 성녀가 된 순간부터.
바쁘지 않은 나날이 바쁜 날보다 적었다.
그래도 날 마중 나오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는 건 좀 이해가 안 간다.
그 두 사람이라면 바쁘더라도 날 마중 나올 줄 알았는데.
내 얼굴 보겠다고 만사 제쳐놓고 무주 개미굴까지 쫓아왔던 놈들이니까.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그럼 차라리 재욱이랑 상철이 데려오지 그랬냐. 저것보단 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뭐? 저거? 너 지금 나한테 저거라고 그랬어? 죽을래, 진짜?”
최희주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마음 같아선 날 한 대 때리고 싶은데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참는 듯했다.
뭐, 안 참는다고 뭘 할 수도 없겠지만.
“기억 안 나냐?”
“응?”
“그 둘은 지금 다른 공항으로 가는 중이다.”
“다른 공항이라면, 김포?”
“그래.”
“거긴 왜… 아.”
질문이 하기도 전에 답이 나왔다.
며칠 전 통화할 때 태천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려보낼 때 재욱이랑 상철이도 함께 보내.”
“한라산 게이트에서 훈련 좀 하라 그래. 내 생각보다 성장 속도가 더디네.”
“…제주도 가고 있구나.”
“바로 그거다.”
한재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도, 라….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서 참 안타깝네.
***
서인철이 운전하는 차는 매끄럽게 달려나갔다.
김포 공항으로 가는 길은 뻥뻥 뚫려 다른 차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재욱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욱이 운전석의 인철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 서 부장님….”
“응?”
“이쪽은 김포 공항 가는 길 아닌가요?”
“응, 맞아.”
“네?”
“……?”
재욱과 상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꼴을 룸미러로 본 인철은 씩 웃었다.
“혹시 백도운 마중 나가는 줄 알았어?”
“네?”
“아니에요?”
“하하. 너희가 거길 왜 가. 거긴 다른 애들이 갔지.”
“네?”
“인철이는 한 번도 인천 공항에 간다고 한 적 없다.”
“……!”
조수석에 앉은 이현욱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재욱과 상철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를 바라봤다.
속았다…!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그가 말했던 대로 인철은 공항으로 간다고만 말했을 뿐 인천 공항에 간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걸 도운의 마중을 나가는 거로 착각한 건 그들이었다.
즉, 두 사람이 멋대로 속아 넘어간 거다.
“…그럼 저희는 지금 어디에 가는 거죠?”
“너흰 우리랑 제주도에 갈 거다.”
“제주도? 거긴 갑자기 왜 가는 겁니까?”
“나랑 인철이한테 훈련받으러.”
“훈련이요?”
“태천이가 너희 성장이 더디다고 한소리 했다.”
“…네?”
재욱과 상철의 등에 식은땀이 나왔다.
현욱이 방금 한 말이 두 사람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길드 마스터가 성장이 더디다고 말했다고?
다른 선배나 선임이 아니라 길마가 직접?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다.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하겠냐?”
“…….”
상철이 이마를 짚었다.
위드 허니를 마시고 나았던 두통이 다시 시작되는 듯했다.
재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위드 밤을 마시고 깨어난 것 같았던 정신이 도로 피로에 찌드는 느낌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온 힘을 다해 훈련에 임하겠습니다….”
“후후.”
현욱이 싱긋 웃었다.
두 사람의 다짐이 만족스러운 듯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상철아, 재욱아. 우리 제주도에서 다시 태어나자.”
“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죽어야겠지?”
“…….”
“대답해야지?”
“최선을 다해 죽겠습니다…!”
“음. 좋아.”
현욱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상철과 재욱은 울상이 되어 창밖을 바라봤다.
둘의 얼굴엔 조금이라도 더 차가 더디게 달렸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길은 여전히 뻥 뚫려 다른 차들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이 탄 차는 거침없이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