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38
제239화
리롄제의 손은 작은 용처럼 보였다.
사냥감을 향해 날아가는 용은 도운의 목에 도달해 한껏 입을 벌렸다.
그 순간,
“아르카.”
도운이 한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도운의 왼손에서 나무로 만든 검이 튀어나왔다.
리롄제는 그 검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검이 아니라 기(氣)의 칼날을 만들어내는 칼자루라는 것도 알았다.
기의 칼날에 담긴 위력이 웬만한 검기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당국이 알아냈을 땐 얼마나 놀랐었던가.
한국의 모든 헌터가 A급 헌터 수준의 검기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리 생각하고 진땀을 빼기까지 했었다.
하나.
그래 봐야 나무로 만든 것.
리렌제는 그것을 통째로 꿰뚫을 생각으로 왼손을 멈추지 않았다.
콰앙…!
“허어…?”
하나 리롄제의 손은 멈췄다.
멈춰야만 했다.
아르카를 꿰뚫지 못한 탓이다.
꿰뚫기는커녕 그의 손가락들은 나무에 박히지도 못했다.
그는 그걸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의 칼날을 만들어내는 걸 본 순간부터 평범한 나무가 아닐 것이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한들….
“못 뚫겠지?”
도운은 웃었다.
리롄제의 멈칫거림을 놓치지 않고,
“이게 원래 그래.”
오른손 검지로 리롄제의 옆구리를 노린다.
“이놈…!”
리롄제는 왼손을 거두고 다시 내뻗었다.
용의 입처럼 보였던 손은 딱 하나의 손가락만 펼쳐져 있었다.
가운뎃손가락만 펼쳐진 왼손이 곧 도운의 오른손 검지와 맞부딪쳤다.
쩌엉!
중지와 검지가 부딪친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쩌엉, 쩌엉!
둔기와 둔기가 맞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허공에 연달아 울려 퍼진다.
울리는 횟수가 총 열 번쯤 되었을 때, 도운이 아르카를 휘둘렀다.
리롄제는 예상했다는 듯 몸을 반쯤 돌려 손쉽게 피했다.
그 순간,
푹, 푸푸푹!
웬 나무뿌리들이 리롄제를 향해 떨어졌다.
리롄제는 제 몸을 꿰뚫을 기세로 달려드는 나무뿌리들을 모조리 피했다.
붙잡거나 쳐낼 수도 있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들의 정체를 예전에 보았던 적이 있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운이 왼손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중얼거렸다.
“아까워라….”
“귀여운 짓을 하는구나.”
“조금만 더 귀여워해서 붙잡혀주지 않을래요?”
“그 기술이 이무기를 떨어뜨리는 걸 보았거늘. 쉬이 당해주겠느냐?”
“하긴….”
투콱…!
리롄제가 왼손을 땅에 쑤셔 넣었다.
푸학!
1초도 안 돼서 바로 빼냈는데, 그와 동시에 땅이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땅에 균형을 잃은 도운이 일순 휘청거렸다.
도운은 바로 균형을 잡았으나 리롄제는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한 발을 내디뎠다.
“……!”
그러자 순식간에 도운의 앞에 서 있었다.
마치 둘 사이의 거리가 삭제된 듯했다.
리롄제가 또다시 용의 입처럼 변한 왼손을 뻗는다.
도운은 제 목으로 쇄도하는 손아귀를 향해 왼손을 집어넣었다.
목이 붙잡히는 것보다 손목을 붙잡히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거다.
손목이라면 상황의 여의치 않을 경우 잘라낼 수 있었으니까.
도운의 손목을 붙잡은 리롄제는 웃으면서 말하다가,
“함께 땅속으로 들어가….”
이내 멈췄다.
손아귀에서 기이한 감촉이 느껴진 탓이다.
리롄제는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이 인간의 손목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손목 위에서 푸르게 빛나는 나무껍질 때문일까?
전혀 인간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의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린 나무의 나뭇가지를….
***
“흠….”
리롄제는 제 왼손을 내려다봤다.
손아귀에는 허공만이 담겨 있었으나 방금까지 붙잡고 있던 도운의 손목 감촉이 여전히 느껴졌다.
꽈악….
리롄제는 주먹을 쥐었다.
평범한 나무의 가지였더라면 그것으로 으스러졌을 터였다.
하나 도운의 손목은 나무껍질 모양으로 푸른 빛을 뿜어낼 뿐 으스러지지도 바스러지지도 않았다.
『리롄제.』
“음.”
쿵….
데이모스가 리롄제 옆으로 머리를 내려놓는다.
단순히 머리를 내려놓았을 뿐인데 땅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래, 상대해본 기분이 어떤가?』
“평범한 놈이 아니란 건 알겠더군.”
『그런가.』
“자네가 답지 않은 말투로 대하는 것도 알 것 같았고.”
『호오?』
“저놈은, 아니.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과연.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로고.』
“…….”
리롄제가 데이모스를 바라봤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인간.
그 인간 중에 도운이 포함돼 있는지 포함돼 있지 않은지 궁금했다.
하지만 리롄제는 굳이 의문을 입으로 묻지 않았다.
그 궁금증은 직접 해결해야 할 것이지 남에게 들어서 해결할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데이모스도 굳이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관리인이라….”
『…….』
“저것이 무엇을 관리하는지는 역시-”
『여는 말해 줄 생각이 없으니 묻지 말도록.』
“그럴 줄 알았지….”
『음? 생각보다 불만이 없는 얼굴이로군?』
“이제부터 알아내면 그만인 일. 하여, 고민이긴 하네.”
『고민?』
“저것을 애제자의 호적수로 인정하고 경쟁하게 두어야 할지. 시건방진 후배로 인지하고 철저하게 짓밟아야 할지.”
『…….』
“그게 고민이라네.”
그리 말하면서 리롄제는 데이모스를 힐끔 바라봤다.
레드 드래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다.
데이모스는 그러나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의 평소와 같이 무료한 태도는 리롄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역시 노부의 본심을 꿰뚫어 보는 데이모스를 떠보는 건 무린가.
리롄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흰 수염을 문질렀다.
그러기를 몇 초….
도운과 무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떠나기 전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일 터였다.
“…그럼. 슬슬 돌아가 보도록 해야겠군.”
『그래. 부탁을 들어줘 고맙다.』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어 내가 즐거웠느니. 인사 나누시게.”
그러면서 리롄제는 데이모스에게서 멀어졌다.
곧 도운과 무기가 리롄제를 지나쳐 걸어왔다.
도운이 데이모스 앞에 서고는 밝게 웃었다.
『떠나는 거요?』
“네. 이곳 일 빨리 마무리하고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말씀해주신 것도 있고.”
『그렇군….』
“…데이모스 님?”
도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데이모스의 얼굴에서 그리움이 엿보인 탓이다.
얼마 전의 도운이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무기의 친구로서 얼굴을 보고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된 덕분에 드래곤의 얼굴을 보고서도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데이모스는 도운과 무기를 차례차례 바라봤다.
또,
『익숙한 것…들을 볼 수 있어 좋았소. 덕분에 과거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지.』
도운의 오른손에 쥐어진 스마트폰도 응시했다.
도운은 슬쩍 스마트폰 화면을 돌렸다.
데이모스의 눈에 화면이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럼 또 찾아뵐까요?”
『…….』
“데이모스 님?”
『아니. 그러지 마시오.』
“네?”
쿠궁….
데이모스가 머리를 들었다.
커다란 머리가 허공으로 떠오르면서 자연히 시선이 내려갔다.
내려다보는 시선 때문이었을까?
도운은 그에게서 단호함을 느꼈다.
『배려는 고마우나 그럴 필요 없소. 앞으로는 여를 찾지 마시오.』
“찾지 말라고요?”
『말했듯. 여는 이방인이오. 아무리 관리인이라고 해도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소.』
“하지만….”
『…….』
“…….”
도운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한들 데이모스의 의지를 꺾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듣기 좋은 말을 해도 레드 드래곤의 귀를 간지럽히지는 못하리라.
드래곤은 스스로 말한 대로 이 세상의 이방인이기에.
그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은 이곳이 아니었기에.
『관리인이 또 찾아온다고 해도 여와 만날 수는 없을 거요.』
“네. 그럴 것 같네요.”
도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양은 데이모스의 결계가 쳐져 있었다.
그와 만나려면 결계를 우회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의 허락이 필수였다.
데이모스는 고개를 돌렸다.
도운의 옆에 둥실둥실 떠 있는 무기를 보기 위해서다.
『이름이 바뀔 아이야.』
「…뭡니까?」
『관리인을 잘 부탁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 넘치는 모습은 보기 좋구나.』
그리 말하고는 데이모스는 다시 도운을 봤다.
그에게선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 주저함이 느껴졌다.
『…….』
“…….”
『…나뭇가지가 열쇠가 되리니.』
“네?”
『잘 가시오, 관리인.』
그 인사와 동시에, 붉은 연기가 떠올랐다.
데이모스가 순간이동 마법을 쓴 것이다.
대화를 더 이어나갈 생각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안녕히.”
레드 드래곤을 올려다보던 도운은 짧은 인사말을 던지고선 마법으로 들어갔다.
***
“술맛이 아주 좋은걸….”
화산의 밤하늘에서는 무수한 별들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저런 별들을 볼 수 있는 건, 화산에 사람들이 얼마 살지 않은 덕분이리라.
이성훈이 술을 따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팀장님.”
“응?”
“괜찮아요?”
“뭐가?”
“무기 님이요….”
이성훈은 고개를 돌렸다.
따라서 시선을 옮기니, 무기가 보였다.
무기는 굉장히 호강하고 있었다.
리롄제의 제자들이 그를 귀한 보배처럼 대하고 있었다.
폭신해 보이는 방석에 앉혀 놓고는 잔에 술이 떨어질 때마다 곧바로 채워 넣었다.
또 음식을 기다란 젓가락으로 먹여주는 데다가 양옆에서 커다란 부채를 든 남녀가 시원하게 부채질을 해댔다.
옛 중국 황제들이 저런 삶을 살지 않았을까?
단언컨대.
저 인간들 전부 용 오타쿠임이 분명하다.
리롄제의 제자라서 용을 좋아하게 된 걸까.
용을 좋아하는 것이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인 걸까.
“…괜찮아.”
“안 괜찮을 것 같은데요. 이러다 무기 님이 남겠다고 하면 어떡해요?”
“걱정도 팔자다.”
“제가 보기엔 할 만한 걱정 같단 말이에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파티나 즐겨.”
“정말이죠? 정말 괜찮은 거죠?”
“그렇다니까.”
“그럼….”
이성훈은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딴 주제를 물었는데, 아마도 정말로 궁금했던 건 이것이었던 듯하다.
“리롄제 님이랑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셨어요?”
“별거 아니었어.”
“아니긴. 거짓말하지 마요.”
“응?”
“별거 아닌데 리롄제 님이 왜 팀장님을 계속 주시하는 건데요.”
이성훈이 눈짓으로 리롄제를 가리켰다.
무기와 다르게 쳐다보지 않는 건, 혹시라도 리롄제와 눈이 마주쳤다가 말을 걸까 봐 걱정스러운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리롄제는 평양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 계속 날 바라봤었다.
그것도 애제자인 리우이호와 함께.
아마 평양에서 있었던 싸움 때문이겠지.
[세계수 어린나무가 관리인은 훌륭했다고 전합니다.] [멋진 싸움이었다며 관리인을 치켜세웁니다.]칭찬 고마워.
근데, 아직 멀었어.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앗.
혹시 눈치 못 챘어?
[……?]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설명해주길 요구합니다.]정말 눈치 못 챘나 보네.
저 영감탱이 나랑 싸울 때 왼손 하나로만 싸웠어.
오른손은 한 번도 안 썼다구.
기술도 땅에 관련된 것만 썼고.
제자들을 지룡이니 천룡이니 나눈 것을 보면, 아마 하늘에 관련된 기술도 갖고 있을걸?
[……!] [어린나무는 몰랐다고 전합니다.]도중에 멈춰서 다행이야.
아마 계속 싸웠으면 무기의 힘을 빌려야 했을 테니까.
그래, 그래.
그 싸움은 너한테 맡길게.
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걸 생각해야겠거든.
[……?] [더 중요한 것?]데이모스가 한 말 말이야.
그게 자꾸만 내 머릿속에서 맴도네.
『나뭇가지가 열쇠가 되리니.』
아무래도 그 말이 예언 같이 느껴진단 말이지.
나뭇가지가 열쇠가 된다….
나뭇가지, 열쇠….
대체 그게 뭘 뜻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