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37
제238화
톡.
이태천은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했다.
진동이 멈춘 스마트폰에서 도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여보세요? 내 목소리 들려?
“어, 잘 들려.”
– 아. 다행이다. 연결 안 될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 스피커폰으로 돌렸어.”
– 스피커폰? 도희랑 같이 있어?
“네. 나 여기 있어요.”
“재임이도 함께야.”
– 아, 그래.
“…….”
“하하, 지금 화산이야?”
– 역시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아니야.
“아니라고?”
태천이 도희와 재임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닿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머릿속엔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어디에 있는 거지?
“너 지금 어디 있는데?”
– 평양.
“평양? 북한 평양?”
– 어. 리롄제랑 같이.
“……?”
“…설마. 오라버니 레드 드래곤 만나러 간 거예요?”
– 오, 역시 우리 도희.
“……!”
도희가 몸을 발쯤 일으켰다.
원래 일어나 있던 재임은 반대로 주저앉고 싶은 듯 무릎을 살짝 굽혔다.
레드 드래곤을 만나러 갔다니….
“미친. 오라버니가 거길 왜 가요!”
– 나 만나고 싶다고 해서.
“그렇다고 갔어요, 거길? 쫄래쫄래?”
– 응.
“이 바보…!”
–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잘 대해주더라.
“……!”
– 무기랑 아는 사이이기도 했고. 지금 둘이서 즐겁게 대화 중이야.
“…….”
도희는 입을 다물었다.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잘 대해주는 드래곤.
그 정보가 도희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세계수와 드래곤은 어떤 관계인 걸까.
잘 대해준다는 걸 보면 좋은 관계인 것은 분명한데….
그럼.
이곳으로 드래곤을 보낸 건 이무기 때처럼 세계수인 걸까?
“…….”
–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아니라고요?”
– 어. 다른 놈이래.
“다른? 그렇다면….”
도희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는 거다.
태천은 도희를 바라보다가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운이 재임을 불렀다.
– 그보다. 한재임.
“뭐냐?”
재임이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도운이 자신을 불러 적잖게 놀랐다.
도운이 있을 때 그는 언제나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꼴이 되곤 했었다.
– 너 크라우드 어디 있는지 알아냈어?
“…….”
– 못 알아냈나 보네.
“웬일로 날 부르나 했더니. 신경 건드리려고 그런 거냐?”
– 내가 그렇게 할 일 없어 보이냐?
“그리 보인다만.”
– 그래. 그게 바로 나, 백도운이지.
“…….”
– 그런 너를 위한 선물. 데이모스 씨가 크라우드 놈들은 제주도에 있을 거래.
“데이모스?”
재임이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엔 태천과 도희도 함께였다.
크라우드의 정보보다도 도운이 말한 ‘데이모스’가 누구인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도희였다.
“데이모스…. 설마, 레드 드래곤 이름이에요?”
– 맞아. 데이모스 모노스. 그게 이름이야.
“헤, 근데 님이 아니라 씨야? 엄청 친해졌나 보다? 네가 세계수 관리인이라서 그런가?”
– 그보다는 선물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
“선물?”
– 어. 꽃 한 송이 따다 줬거든.
“꽃…?”
– 새싹이 꽃 말이야.
“아아.”
태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운이 말한 새싹이 꽃은 평범한 꽃이 아니었다.
설령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세계수 꽃은 귀한 것이리라.
도희가 중얼거리다 멈추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세계수한테, 꽃이 자라났어요?”
– 어? 내가 말 안 했었나?
“그리고 그 꽃을 드래곤한테 선물했고요.”
– 응! 잘 보이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
“흐응.”
– 왜 그래? 잘한 거 아냐?
“난 안 줬으면서.”
– 어…?
“…….”
꼴깍.
태천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소리가 제법 커서 자신도 놀랐다.
다치지 않은 왼손으로 목을 움켜쥔다.
그러고는 도희를 바라봤다.
그녀는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 도운의 사진을 실물인양 노려보고 있었다.
오빠에게 혼자만 선물을 받지 못해 토라진 여동생….
-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것만큼.
“…….”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해줘야 하나?
태천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세계수 꽃을 실물로 본 적이 있었다.
도운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직접 보여줬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도희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라면서.
아마 3개월이 지난 지금 그 목걸이는 완성되어 J.Y. 대장간에 고이 모셔지고 있을 터였다.
도운이 돌아오면 직접 전해줄 요량이겠 지.
하지만 그 사실을 도희는 전혀 몰랐다.
서프라이즈를 위해 숨겼으니까.
“후우….”
그들 사이로 한숨 소리가 끼어들었다.
재임이 한심스럽다고 말하듯 그들을 바라봤다.
“본론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 아, 그,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혹시 폭식 위치는 물어봤나?”
– 물어봤어. 혼났고.
“혼났다고?”
– 자긴 탐지기 따위가 아니라던데.
“음….”
– 분위기가 험악해지진 않았으니까 농담이었던 것 같기도 해.
“어찌 됐든. 폭식을 찾는 데엔 그 드래곤의 힘을 빌리지 못한다는 거로군.”
– 그런 셈이지.
“그럼 차례차례 진행하는 수밖에. 우선 제주도에 사람을 보내도록 하마.”
– 어? 직접 안 가고?
“놈들을 쫓아내는 게 목적이라면, 그랬겠지.”
– 너희가 가면 경계하고 도망칠 거라는 소리지?
“그래. 그러니까 경계는 하겠지만 도망치지는 않는 정도, 가 적당할 거다.”
– 그럼 서인철 보내면 되겠네.
“…내 판단도 그렇다. 한두 명 정도 더 붙여서 보내면 되겠지.”
“재임아, 내려보낼 때 재욱이랑 상철이도 함께 보내.”
“그 둘을? 무리일 것 같은데.”
“따라다니지 말고 한라산 게이트에서 훈련 좀 하라 그래. 내 생각보다 성장 속도가 더디네.”
“그건 네 잘못이지.”
“어?”
“너희가 이상한 짓을 시켰잖아.”
“아….”
재임의 반박에 태천은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짓이란 도운을 쫓아다니게 한 일을 말하는 거였다.
태천은 그 명령을 내린 장본인으로서 할 말이 없어졌다.
변명하자면 도희의 말을 듣고 한 것이었지만….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해봐야 적당한 변명도 되지 못할 터였다.
해서 태천은 변명하지 않고 말을 돌리기로 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도운아.”
– 응?
“드래곤 실물로 보니 어떻디?”
– 크던데.
“감상이 그게 다야?”
– 강한 것 같기도 하고.
“장난하냐?”
– …이만 끊어야겠다.
“갑자기? 무슨 일 있어?”
– 나중에 말해줄게.
그리 말하자마자 도운은 바로 통화를 끊었다.
태천은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재임을 올려다봤다.
재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리롄제가 찾아온 것이겠지.”
“아. 그건가.”
태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임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
“…이만 끊어야겠다.”
톡….
태천이와의 통화를 끊는다.
스마트폰 화면엔 [세계수 키우기]가 떠올랐다.
톡, 톡, 톡, 톡…!
내 손가락은 새싹이를 열심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앞을 바라본다.
길게 자란 흰 수염을 문질러대며 서 있는 리롄제가 보였다.
그는 조금 큰 소리를 내야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관리인에게 경고합니다.] [눈앞의 인간이 관리인을 향해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고 전합니다.]새싹이 경고는 오랜만인걸.
그래도 이젠 도망치라고는 안 하네?
예전과 달리 싸워 볼 만하다는 거겠지.
감개무량하네.
“이런.”
내 생각과 달리 리롄제의 목소리는 별로 크지 않은데도 귓가에 뚜렷하게 들렸다.
마치 바로 옆에서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방해된 것 같군?”
능청스럽기가 그지없구만, 아주.
눈빛이 말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난 아마 스마트폰을 통해 전달되는 태천이의 목소리를 하나도 듣지 못했을 거다.
리롄제는 그 정도로 태천이와 통화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방해됐냐고 묻는 그에게 긍정해주고자 고개를 끄덕였다.
뚜벅뚜벅….
그가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왔다.
“이무기에 이어 드래곤까지…. 자넨 대체 정체가 뭔가?”
“글쎄요? 정체랄 게 딱히 없는데요.”
“관리인(管理人).”
“…….”
“저 둘은 자네를 그리 불렀지.”
곧 리롄제가 멈춰 섰다.
거리가 이제 한 10m 정도 되려나?
멈춰 선 그가 고개를 돌린다.
무기와 데이모스가 있는 곳을 향해서다.
둘은 오랜만에 만난 사이답게 즐거운 듯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드래곤과 ‘해츨링’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 무기는 레이독치온을 써서 크기가 작은 상태로 변신했을 뿐 해츨링이 아니었지만.
리롄제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관리(管理)…. 자넨 대체 무엇을 관리하고 있나?”
“아무것도요?”
톡, 톡, 톡, 톡…!
새싹이를 어루만지며 간단히 대답했다.
리롄제가 뭐라고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걸 말해주겠나.
아직 유재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가지고 간 게 있으니 그녀도 여러모로 짐작이야 하고 있겠지만.
리롄제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향했다.
톡, 톡, 톡….
꾸준하게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손가락을 보는 거였다.
아무래도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게임을 해대는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흠. 말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내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직접?”
“이런 식으로 말이네…!”
탕…!
리롄제가 오른발로 바닥을 굴렀다.
그러자마자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
리롄제의 눈이 커졌다.
설마 자신의 마나를 막아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차단한 건 내가 아니었지만, 그 사실을 굳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나저나 우리 새싹이 별걸 다 할 줄 아네?
[어린나무는 놀라기는 이르다고 전합니다.]이르다니? 왜?
[어린나무는 리롄제가 보낸 마나를 파악했습니다.] [관리인을 감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차단하지 않았더라면 관리인이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사실을 들켰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합니다.]어라, 그랬어?
그럼 나 방금 큰일 날 뻔했던 거잖아.
네 덕분에 잘 넘긴 거고.
잘했어, 새싹아.
톡, 톡, 톡, 톡.
새싹이를 칭찬하며 리롄제를 바라본다.
그는 답지 않게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 하는 겁니까?”
“好极了.”
“……?”
뭐라는 거야, 이 영감탱이가.
[어린나무는 관리인을 칭찬한 거라고 전합니다.]아, 칭찬이었어?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칭찬을 받다니.
조금 민망한걸.
리롄제가 흰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예전에도 내 기(氣)를 감지해냈었지…. 이젠 막아내기까지 하는군?”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닌데요.”
“…아쉬운 일이로고. 그날 주변 사정 보지 않고 알아냈어야 했거늘.”
“이젠 늦었죠.”
“글쎄…. 아직 알아낼 방법은 있을 것 같네만.”
그리 말하며 리롄제는 표정을 굳혔다.
날 지그시 바라보는 눈.
굳게 닫힌 입.
살짝 내려간 입꼬리까지….
무슨 소릴 하려는 건지 알겠다.
날 기절시켜서 찬찬히 알아보려는 게 분명하다.
이 못돼먹은 영감탱이 보소.
이런 데서 실력행사를 하려고 해?
“…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 나는 리롄제다.”
“흐응….”
한쪽 눈썹을 치켜뜬다.
이어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리롄제.
그 이름이 대수롭냐고 말하듯.
내게는 그저 허명(虛名)에 불과하다고 말하듯.
도발이 먹힌 걸까?
리롄제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
스윽.
그는 오른발을 뒤로 조금 물렸다.
동시에 왼손을 배꼽 앞까지 살짝 올린다.
그의 얼굴은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굳은 표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화면을 두드린다.
톡, 톡, 톡, 톡….
톡, 톡….
톡.
화면을 두드리던 내 검지가 멈춘 순간.
리롄제가 내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