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43
제244화
푸르스름한 시스템 창에서 시선을 돌린다.
무기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스템 창을 읽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운이 좋은걸?
재주는 곰이 넘었는데 돈은 주인이 받는 꼴이니.
내가 홍수정 주인인 건 아니지만.
아니, 건물주니까 주인이기는 한가.
「마침 잘 됐군….」
“네?”
「관리인에게 말한 것이다.」
“아, 네.”
「잠깐, 자리를 피하도록 하지.」
“네….”
홍수정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기는 바깥으로 나가려다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오?
「…적맥주.」
“네?”
「맛있었다.」
“……!”
「또 부탁하지.」
“네, 네! 얼마든지요! 잔뜩 있어요!”
홍수정이 해맑게 대답했다.
역시, 시무룩하게 있는 것보단 해맑은 게 잘 어울린다.
“나도 이만 가볼게.”
“잘 가. 아. 아르카 개조는 며칠 더 걸릴 거야.”
“응, 기대하며 기다릴게.”
“그래야지.”
대답하며 유재이는 씩 웃었다.
자신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개조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지는걸.
「관리인.」
“어, 지금 나가!”
밖으로 나간 무기가 재촉했다.
어서 빨리 스킬을 가르쳐주고 싶은 모양이다.
두 사람에게 인사를 전하고 밖으로 나갔다.
무기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날 기다렸다.
아마 집으로 올라가 스킬을 가르쳐 줄 생각인 듯했다.
후후, 무기가 어떤 스킬을 가르쳐줄지 궁금한걸.
어라, 무슨 뜻이야?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니?
[어린나무는 무기가 어떤 스킬을 가르쳐줄지 알 것 같다고 전합니다.] [관리인에게 꼭 필요한 스킬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뭔가, 말이 앞뒤가 안 맞지 않아?
꼭 필요한 스킬이라면 기대할 만하잖아.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 [관리인에게 필요한 스킬이라고 관리인이 배우고 싶은 스킬인 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응? 뭔 소리래?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늘어뜨립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직접 겪으면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흐음…?
일단, 새싹이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대감을 조금 낮춰볼까?
[어린나무는 잘 생각했다고 전합니다.]띵.
새싹이에게 칭찬을 받은 순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우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집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기가 평소보다 높게 날아 거실로 갔다.
내가 자기를 올려다보게끔 한 거다.
스킬을 배우는 처지가 돼서 그런가?
왠지 학생이 된 기분인걸.
「그동안 관리인에게 꼭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한 스킬이 있었다.」
“그랬어?”
「음. 이 스킬은 분명 앞으로 관리인에게 많은 도움이 될 터.」
“오오. 기대되는데.”
기대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무기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고 있자니 그럴 수가 없었다.
저절로 기대감이 자라나는 느낌이다.
무기는 과연 무슨 스킬을 가르쳐줄까?
번개 속성이니까 관련 스킬을 가르쳐줄 것 같기는 한데….
버스트 모드는 아니겠지.
내가 비슷한 스킬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번개를 떨어뜨리는 스킬을 배우고 싶다.
무기가 뇌운을 불러들여 번개를 떨어뜨리는 모습이 무척 멋있었으니까.
한진환처럼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떨어뜨리는 모습도 멋있었고.
아, 그래.
번개로 결계를 치는 스킬도 좋겠는걸.
결계 스킬을 배워두면 여러모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테니까.
당연히 YES지.
스킬 가르쳐준다는데 NO 하는 바보가 어디 있어?
내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하기도 했고.
시스템 창에 떠오른 YES 버튼을 눌렀다.
스킬은 어떤 식으로 배우게 되려나?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다리자, 시스템 창이 사라졌다.
곧이어 나와 무기의 가슴 부근에서 흰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
「호오.」
우리 둘에게서 튀어나온 빛줄기가 허공에서 연결된다.
상황을 설명하는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친구 백무기의 스킬이 관리인에게 전송됩니다.] [주의!] [완전히 전송될 때까지 움직이지 말아 주십시오.] [스킬 전송 중….] [전송 중….]전송 중이라는 문구가 떠오르자마자, 연결된 빛줄기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세계수의 뿌리를 써서 에너지를 빨아들일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놀랍군.」
“응?”
「이렇게 쉽게 스킬을 가르칠 수 있다니. 예상도 못 했다.」
“그러게…. 꼭 게임 같은걸.”
아니, 게임 맞나?
세계수 관리인인 동시에 [세계수 키우기]라는 게임의 플레이어였으니까.
[전송 중….] [전송 중….] [전송 완료.] [친구의 스킬이 완벽하게 전송됐습니다.]완벽하게 전송됐다는 메시지와 함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흰빛은 3초 정도 내 몸을 감돌고 나서 천천히 사라졌다.
나와 무기 사이에 연결됐던 빛줄기도 끊어져 서로의 가슴 속으로 사라졌다.
무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된 건가?」
“완벽하게 전송됐다고 뜬 걸 보면 된 것 같은데.”
「확인할 방법이-」
“아. 있어. 스킬 창!”
곧바로 스킬 창이 떠올랐다.
스킬 창에는 ‘NEW!’라는 문구와 함께 ‘이무기의 동시통역(A+등급)’이 떠 있었다.
[스킬창] [이무기의 동시통역(A+등급) – 알지 못하는 언어를 이해(理解)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살아온 이무기는 언어를 단순히 언어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껴 자신이 아는 언어로 재정립할 수 있다.] [자기 의지로 ON/OFF 할 수 있다.]“…….”
「…….」
“ㅎ….”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오는 법이라더니, 정말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허탈한 적이 있었나?
짧게 회상해보건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아마도 평생토록 최고로 허탈한 순간으로 남으리라.
동시통역이라니….
“무기야….”
「음.」
“동시통역…이, 나한테 필요해 보였어?”
「그리 보였다만. 그 스킬이 앞으로 관리인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자신한다.」
“…….”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그리 묻는 무기의 목소리는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고개와 꼬리를 축 늘어뜨리는 모습은 실망한 듯 보였지만, 목소리는 신이 나 있었다.
연기하는 거 보소.
“너….”
「음? 왜 그러나?」
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작작한 모습이 할 말을 잃어버리게 했다.
이 나쁜 놈.
번개 관련 스킬을 가르쳐줄 거로 생각했는데…!
내 기대를 이렇게 꺾어버려?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 [분명 관리인에게 경고했었다고 전합니다.]아무리 그래도 통역은 아니지.
번개 관련 스킬을 가르쳐줄 수도 있는 거잖아.
동시통역이 뭐야, 동시통역이!
[이무기의 동시통역(A+등급)]“…….”
통역 스킬 주제에 A+등급이지 말란 말이야.
우 씨…!
***
“후우우….”
C급 헌터 김재식은 시험의 탑 앞에서 숨을 길게 내뱉었다.
긴장감을 풀기 위해 심호흡했지만, 안타깝게도 잘되지 않았다.
허파 속에 공기가 제대로 드나들지 못한 탓이다.
그 탓에 재식은 심호흡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물에 빠진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
그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두 주먹은 핏기가 없다 못해 푸른 기가 돌 만큼 해쓱했다.
긴장감에 짓눌려 온몸이 차갑게 식은 것이다.
발끝조차 차가워졌음을 느낀 순간,
타악….
그의 앞에 누군가가 착지했다.
걸어오거나 달려와 멈춘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거다.
재식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
“안녕.”
아는 얼굴의 남자가 인사를 건넨다.
남자는 뒷머리를 생선 꽁다리처럼 묶었고, 연신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재식은 당황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도…!”
재식은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큰 소리로 도운의 이름을 불렀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틀어막은 채로 주변을 빠르게 훑는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모여들었다.
도운을 알아본 거다.
텔레비전과 왓쳐 캐스트에서 쉬지 않고 송출하는 얼굴이었으니 알아보지 못하는 게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관련 종사자들만 모여 있는 시험의 탑 앞이었으니 더더욱.
“백도운이다…!”
“백도운? 그 백도운?”
“야, 백도운이 여길 왜 와? 닮은 사람이 흉내 낸 거겠지.”
“아니! 확실해. 저걸 봐. 오른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헉, 진짜다! 스마트폰 두드리고 있어!”
“와, 진짜 게임 중독자구나….”
“잠깐! 백도운이 왔다는 건….”
“…이무기도 왔다는 소리!”
“어, 어디?”
“어디에…!”
사람들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어디에도 무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사람들은 동시에 고개를 쳐들었다.
무기가 하늘을 유영한다는 간단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푸른 무기는 건물 옥상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와, 와아!”
“이무기다, 진짜 이무기….”
하늘을 올려다본 이들이 침을 삼키며 감탄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김재식과 비슷한 등급의 헌터들이다.
A+등급 몬스터를 실물로 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고, 그들 중 몇몇은 평생 볼 일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백도운이 여긴 왜 와?”
“설마 S급 시험을 치르려고 왔나?”
“에이, 그건 아니지.”
“지인 때문에 왔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겠어?”
“그거다!”
“지인 때문이라면….”
“저거?”
“저건가 본데.”
“저게 누군데?”
“몰라, 처음 봐.”
졸지에 ‘저거’가 되어버린 재식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느 쪽을 보든 사람들이 그와 도운을 보고 있었다.
그를 향한 시선이 없는 곳은 오직 바닥뿐이었다.
도운이 물었다.
“뭐야, 너 자신 없어?”
“있, 있을 리가 없잖아요…. 겨우 3개월밖에 훈련 못 했는데….”
“흠. 그래?”
대답하는 도운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기계가 녹음한 듯한 목소리에 재식은 당황해 고개를 들었다.
도운은 이미 그가 아니라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또다시 주변이 부산스러워졌다.
두 사람을 향해 익숙한 얼굴이 달려왔다.
“공철이다!”
“우리 공철이 형!”
“와, 형 많이 컸네! 백도운 마중도 나오고.”
곧 공철이 도운 앞에 섰다.
도운은 공철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전 ‘협회 홍보2팀 팀장’ 공철입니다.”
“그런데요?”
“…혹시, 오늘 이곳엔 어쩐 일 때문에 오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지인이 이번에 시험을 치를 거라서요.”
“지인이라 하시면….”
공철이 고개를 돌려 재식을 바라봤다.
시선이 닿자 재식은 몸을 움찔거렸다.
왓쳐 캐스트에서 보던 ‘공철이 형’을 바로 눈앞에서 보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안, 안녕하세요, 전-”
“C급 헌터 김재식 님이군요.”
“헉! 절 아세요?”
“그럼요. 당연히 알죠.”
공철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재식은 그 미소를 보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우리 형이 나를 알아.
우리 형이 내 이름을 알아…!
“…….”
그 모습을 보고 도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철이 김재식을 알고 있는 이유는 뻔했다.
협회는 도운의 지인에 대해 조사를 끝마쳤을 터였다.
그런 간단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재식은 긴장하고 있었다.
공철이 도운에게 말했다.
“도운 님, 절 따라오시겠습니까?”
“따라오라고요?”
“네. 편히 지인분을 보실 수 있는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됩니까?”
“네, 그래도 됩니다.”
A+급 헌터시니까요.
공철은 뒷말을 잇는 대신 빙긋 미소를 지었다.
도운은 어깨를 으쓱이며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시죠.”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잠시만 시간 좀 주겠습니까?”
“아, 네. 그럼요. 기다리겠습니다.”
도운이 엄지로 재식을 가리켰다.
공철은 대화 도중이었다는 걸 인지하고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도운은 재식을 바라봤다.
“재식아.”
“네, 형.”
“출발선 앞에 섰으면 달리는 수밖에 없어. 멈춰 있어 봐야 실격이야.”
“그런 건 저도 당연히 알-”
따악!
도운이 재식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딱밤 소리가 어찌나 청명했는지 재식은 자신이 목탁이 된 것만 같았다.
또 왠지 모르게 이마에서부터 따듯한 온기를 느꼈다.
마치 어릴 적 그가 아플 때 그의 엄마가 따듯한 손길로 이마를 어루만져 준 듯한 기분이었다.
차갑게 식었던 몸이 따듯해졌다.
“…잘 해. 기대하고 있으니까. 우리 둘 다.”
“우리… 둘이요?”
도운은 대답 대신 검지를 들어 보였다.
검지의 끝은 하늘을 향했고, 재식은 곧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차렸다.
건물 옥상에는 똬리를 튼 무기가 있었다.
“…….”
재식은 고개를 숙였다.
이어 두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핏기가 돈 주먹은 더는 해쓱하지 않았다.
자꾸만 어깨를 짓누르던 긴장감도 없었다.
재식은 고개를 들었다.
도운에게 “잘하겠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 혀, 형?”
도운은 없었다.
그는 이미 공철의 안내를 받고 떠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