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조언을 따르지 않았더니 새싹이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두 이파리가 축 늘어졌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처럼 천천히 들썩이기까지 했다.
그걸 달래 주려고 워프 게이트를 타고 무주 개미굴 던전으로 넘어오는 동안 계속 새싹이를 어루만져 주었다.
축 늘어진 이파리는 원래대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 건 내가 이상한 걸까.
“여자친구입니까?”
“예?”
뱀눈의 남자는 뜬금없는 질문을 해 왔다.
하긴, 스마트폰을 보며 실실 웃고 있었으니 그런 착각을 할 만도 했다.
화면을 두드려 마나를 주던 것도 대화 메시지를 보내는 거로 보였겠지.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부정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고 워프 게이트에서 내려왔다.
이러다가 여자친구에 푹 빠진 바보라는 이미지를 남길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한 명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정말 아닙니다.”
“흠, 알겠습니다.”
[새싹은 남자의 시선이 못마땅합니다.]새싹이는 뱀눈 남자가 말을 할 때마다 불만을 토로했다.
얼마 전엔 불러 봐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더니, 오늘은 자기가 먼저 계속 의사를 전달해 왔다.
따스한 손길로 마나를 계속 줘서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걸까?
아니면 세계수 소환을 통해 내 머리에 한 번 있어서 친근함을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김정철! 역시 너였군!”
개미굴 던전 앞에 있던 던전 관리소에서 한 명이 나와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앞장서서 걸어가던 세 남자에게 아는 체를 했다.
2년 동안 완벽하게 청소해 온 베테랑이라고 자랑하더니, 밝게 웃으며 맞이하는 관리자를 보니 그 말이 맞긴 한 모양이다.
“관리소장님, 오랜만입니다!”
배불뚝이 남자가 이 던전 관리소의 소장이었나 보다.
김정철은 우릴 한 번 돌아보더니 “준비를 끝마쳐 두십시오”라고 지시했다.
그러고는 관리소장에게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버렸다.
마치 자신이 이 파티의 리더라도 되는 양 구는 태도에 한쪽 눈이 저절로 치켜떠졌다.
좀, 아니꼽네?
“눈 곱게 뜹시다.”
김정철 일행 중 덩치가 큰 남자가 내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내가 김정철을 아니꼬워하듯, 그들도 내가 아니꼬운 듯했다.
흠, 이놈도 말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파티를 잘못 골라 온 것 같다.
태천이한테 도망치려고 너무 마음을 급하게 군 내 잘못이다.
더 귀찮아지기 전에 상황을 무마해야겠다.
“곱게 안 뜨면, 어쩔 겁니까?”
“뭐?”
“…….”
하지만 내 입은 방정맞게도 의지와 상관없는 말을 내뱉었다.
분명 무마할 말을 하려고 했는데, 입에서 시비조의 말이 튀어나왔다.
후우, 인제 와서 그러려던 게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세계수 새싹이 지금이라도 흙을 뿌려 버리라고 조언합니다.]새싹이가 또 자기 생각을 슬그머니 전해 왔다.
그 조언처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웃음이 나왔다.
정말 지금이라도 흙 뿌려 버리고 딴 곳으로 가 버릴까?
실패 패널티를 받게 되겠지만, 다른 협회 퀘스트를 성실하게 해결하면 될 일이다.
“웃어?”
“이 새끼가 실성했나.”
내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두 남자가 아까보다 더 심하게 눈을 부라렸다.
그러고는 내 멱살을 붙잡으려는 듯 앞으로 다가와 팔을 뻗었다.
옆에 서 있던 신입 헌터가 말리려고 나와 남자들 사이에 끼어들었지만, 덩치 큰 남자의 힘에 밀려 뒷걸음질을 쳤다.
“저, 저기-”
밀려나면서도 청년은 말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이가 가장 어린 청년이 말리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파티 퀘스트 깨러 와서는 뭘 하는 건지.
살짝 자괴감도 밀려왔다.
일단, 여기선 어른스러움이란 걸 발휘해 봐야겠다.
“후우, 내가-”
“뭡니까? 왜 다들 준비하지 않고 멀뚱히 서 있는 거예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얼마 없는 어른스러움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어른스러움은 내보일 수가 없었다.
김정철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제 동생들을 번갈아 가며 보더니 무슨 상황인지 단번에 알아차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곧바로 동생들을 노려보며 나무랐다.
“너흰 준비하고 있으라니까 왜 또 시비를 걸고 있어?”
“예? 억울합니다!”
“그게 아니라요, 이 새끼가 형님을-”
“권오석, 한기해. 말대답이냐?”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죄송? 시정?
무슨 군대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데, 김정철이 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내가 발휘하려던 어른스러움을 김정철이 발휘한 것이다.
“미안합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별일 아니었어요.”
“으음,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관리소장님 말 들어보니 아슬아슬하답니다. 지금 당장 토벌을 시작해 달라고 하네요.”
아슬아슬하다.
그건, 개미굴 속에 대왕 개미들이 득시글거린다는 뜻이다.
조금 더 내버려 두면 개미굴에서부터 대왕 개미들이 쏟아져 나오겠지.
이질적인 마나는 범람해서 던전의 영역을 넓혀 나갈 것이고.
확실히 시비가 붙어 싸움이나 해 댈 때는 아니었다.
동일한 생각을 했는지 그들은 각자 마법 주머니에서 무기와 방어구들을 꺼내 착용하기 시작했다.
김정철은 롱소드와 경갑을, 권오석과 한기해는 각각 대검과 한 손 검을 썼지만 둘 다 중갑을 입었다.
신입 헌터는 창을 꺼냈고 상체와 하의에만 방어구를 착용했다.
갑옷에 잔 상처가 많은 걸 보니, 다른 부위는 수리를 맡겼거나 파괴된 듯했다.
나는 롱소드를 오른쪽 허리춤에 찼다.
갑옷은 재이네 대장간에 수리를 맡긴 채였으므로, 오른팔에 낀 놀 가죽 팔뚝 보호대가 전부였다.
김정철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신입 헌터도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옷 착용 안 하세요?”
“아.”
날 왜 쳐다보나 했더니.
“대장간에 수리 맡겼어요.”
“네? 그럼-”
“괜찮아요.”
왓쳐의 광선에도 멀쩡하게 유지됐던 나무껍질 발동시킨 채였다.
A등급 게이트의 몬스터들이 물밀 듯이 공격해 온다면 모를까.
E등급에 불과한 개미굴 던전의 대왕 개미의 공격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신입 헌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김정철도 신입 헌터처럼 걱정이 되는 듯 “정말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어왔다.
그 와중에도 권오석과 한기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D등급 주제에 나대기는”, “내버려 둬, 큰코다치는 건 지니까” 따위의 말들을 중얼거렸다.
어휴. 다 들린다, 이놈들아.
“정말 괜찮아요.”
“흠…. 네,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김정철은 걱정된다는 듯 덧붙였다.
“진입은 우리가 먼저 하겠습니다. 두 분은 이곳에서 5분~10분 대기한 후 들어와 주십시오. 권오석, 한기해 가자.”
“네? 저희가요?”
권오석, 한기해는 왜 그래야 하냐는 얼굴로 김정철을 바라봤다.
물론, 그들의 반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김정철이 인상을 찌푸리자 곧바로 깨갱 해서는 개미굴로 뛰어갔다.
저 멍청한 꼴이 꼬리 내린 개 같아서 조금은 귀엽게 느껴졌다.
“그럼, 이따가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정철은 두 동생을 쫓아 개미굴 속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신입 헌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을까요?”
“괜찮겠죠. 그래도 C급 헌터들인데. 애초에 자기들끼리만으로도 충분하다 했었고.”
“…그렇겠죠?”
이제 1년 차인 신입 헌터라서 그런가?
참 걱정이 많은 친구다.
C급 헌터면 E등급 던전에서 위험에 빠질 일이 없었다.
실수나 방심 때문에 다치거나 진화 몬스터를 만나게 돼도 도망칠 수는 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요. 백도운입니다.”
“김재식이에요. 20살입니다.”
“26살입니다.”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밀자 김재식이 창을 옮겨 쥐곤 오른손을 뻗었다.
그렇게 악수를 하다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백도운? 혹시 우리 아는 사이인가요?”
“아뇨, 그럴 리가요.”
부정했는데도 김재식은 나를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괜히 알아보면 귀찮아질 것 같아 얼른 얼굴을 돌렸다.
***
바깥에서 10분 정도 대기한 후 개미굴로 들어왔다.
개미굴은 어두웠는데, 김재식이 마법 주머니에서 발광석을 꺼내 주변을 밝혔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다며 내게도 1시간짜리 발광석을 주었다.
고마운 친구다.
“…오?”
개미굴 안에는 대왕 개미 사체가 즐비했다.
사체들은 전부 단번에 베이고 찔려 죽어 있었다.
제법인걸?
솔직하게 그들의 실력에 놀랐다.
옆의 김재식도 죽은 대왕 개미들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마냥 감탄하는 건 아니다.
창을 꽉 쥔 손에서 ‘자신도 할 수 있을까?’ 하는 호승심이 엿보였다.
[세계수 새싹이 혐오스러움에 몸서리를 칩니다.]혐오까지?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니다.
새싹이는 가장 부정한 몬스터 중 하나인 스켈레톤 로드조차 혐오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겨우 대왕 개미 사체를 보고 혐오스럽다고?
…식물이라서 벌레가 싫은 건가?
보통 식물과 개미는 공생 관계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대왕 개미는 평범한 곤충이 아니라 몬스터라서 다른 걸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의문을 느끼면서 걷다 보니 여러 갈래로 나뉘는 갈림길이 보였다.
그 앞에 김정철 일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아뇨, 두 분 다 금방 오셨습니다.”
“그나저나 갈림길이라니, 개미굴답네요.”
그리 말하자 옆에 있는 김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철은 뒤에 걸어온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시면서 확인하셨겠지만, 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함께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
“나누자는 겁니까?”
“네. 1명씩 흩어져서 사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 길을 골라잡아야겠습니다.”
갑작스러웠다.
갑작스럽지만, 무턱대고 반박할 수 없기는 했다.
김정철의 말에 따르면 이곳 개미굴 던전은 곧 마나가 범람한다.
개미의 수를 최대한 빨리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아마 개미굴 전체를 쓸어 버리고 여왕개미도 잡고 나서야 청소가 끝이 날 거다.
그렇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나 혼자였다면 그랬으리라.
고개를 돌려 김재식을 봤다.
그는 갑자기 혼자 대왕 개미들과 싸워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
자기를 끌어들일 때 했던 말과 다르지 않냐고 반박하고 싶은 듯하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반박할 수가 없어 보였지만.
아무래도 내가 나서 줘야겠다.
김재식은 이제 막 헌터가 되었다.
그 혼자서 범람하는 대왕 개미들을 사냥하라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다.
“세 분은 혼자 도십시오. 나는 재식 씨와 함께 돌겠습니다.”
“도, 도운 형….”
갑자기 형이야?
김정철 일행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재식 씨는 1년 차 E급 헌터입니다.”
나를 설득하려는 김정철의 말을 끊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건데, 들을 가치가 있는 말이 아니었다.
C급 헌터가 3명에 D급 헌터가 1명이다.
이 4명이 E등급 던전의 범람을 막지 못해 신입 헌터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관리소로 돌아가 퀘스트를 포기하고 협회 소속 헌터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게 낫다.
사람이라면 낯부끄러운 줄은 알아야지.
“혼자 보내는 건 죽으라는 소리랑 같아요. 혹시 죽이는 게 목적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리 대답하면서 김정철은 김재식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와 다르게 양옆으로 선 권오석과 한기해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얼굴이 시뻘게진 게 성질을 부리고 싶다는 걸 뻔히 알 수 있었다.
“내 생각이 짧았군요. 미안합니다.”
“아, 아뇨! 제가 약해서 죄송합니다….”
“우린 각자, 두 분은 함께. 그게 좋겠습니다.”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김정철이 날 보는 표정은 좋지 못했다.
동생 놈들처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진 않았지만, 살짝 굳어 있었다.
마치 ‘감히 네까짓 게 내게 대들어?’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보였다.
그 모습에서 권오석과 한기해가 그에게 형님 형님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끼리끼리 노는 법이다.
[세계수 새싹은 인간 남자의 시선이 혐오스럽다고 전합니다.]그래, 나도 막 그렇게 생각하던 차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