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4
제24화
안 돼! 절대 안 돼!
홍유릉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인간 흙 분수대가 돼야만 했던 잊고 싶은 창피한 기억이.
오른손에 쥔 스마트폰을 흔들면서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강하게 빌었다.
그 때문일까?
새싹은 흙을 전송하지 않고 의사를 전해 왔다.
[새싹은 의아해합니다.]의아해하고 싶은 건 네가 아니라 나라고.
날 보던 헌터들의 눈빛이 음울하긴 했다.
그렇다고 더러움을 느끼며 흙을 보내야 하는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새싹이 보낸 흙이 어떤 흙이던가?
세계수의 마나를 머금어 스켈레톤 수백 마리를 한꺼번에 정화해 버릴 정도로 강력하고 신성한 것이다.
그런 걸 이곳 헌터 협회에서 분수처럼 쏟아 내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 댈 테고, 사업 한 번 크게 해 볼 생각 없냐고 권해 올 것이 뻔하다.
어떤 식으로든 들들 볶일 테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 몸이 절로 떨린다.
아니, 그전에 웬 흙을 뿌려 대냐고 혼날 게 분명하다.
[새싹은 관리인의 의도를 존중해 주변의 흙을 우편함으로 전송합니다.] [또한, 더러운 시선이 여전히 느껴지니 필요할 때 아끼지 말고 쓸 것을 권합니다.]다행이다.
새싹은 의아해하면서도 내 말을 들어주었다.
화면으로 곧바로 보내는 게 아니라 우편함으로 전송한 거다.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하며 흙을 받았음을 알려왔다.
어쨌든 날 걱정해서 흙을 보내려고 했던 것이니 그 마음이 고맙고 기껍다.
히쭉 웃으며 새싹을 쓰다듬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열심히 두들겼다는 소리다.
따스한 손길이 좋았는지 새싹은 이파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나저나 이젠 이 새싹과 말까지 통하는 건가….
“…….”
2층에 올라서자마자 멈춰 서서는 스마트폰 게임을 해 댄 것이 이상하게 보였을까.
헌터들은 괴팍한 것을 봤다는 듯 쳐다봤다.
금방 흥미를 잃어 내게서 시선을 거뒀지만.
그들은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모니터에 고개를 처박고 퀘스트를 검색하는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헌터 협회 사이트에 로그인한 후 퀘스트를 검색했다.
〈헌터 협회 IP에서 접속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퀘스트 항목을 열람합니다.〉
퀘스트 창을 열기 위해선 꼭 헌터 협회에서 해야 했다.
신원이 확실해야 하기 때문인 듯하다.
어차피 컴퓨터로 하는 거라면 집이나 스마트폰으로 하면 안 되냐는 말들도 있었는데, 모두 기각됐다.
등급을 위조해 퀘스트를 받았다가 실패한 놈들이 있어서다.
정말, 쓸데없는 거로 성실한 놈들 때문에 사람들이 받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녕하세요, D급 헌터 백도운 님.〉
〈주의! 현재 백도운 님께서는 퀘스트 자격 제한 상태입니다.〉
〈D등급 이상의 퀘스트는 받으실 수 없으며, F등급부터 E등급까지만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 번 설명을 들었었기 때문에 화면에 떠오른 주의 창을 바로 껐다.
여러 종류의 퀘스트 목록이 떠올랐다.
〈F등급~E등급 퀘스트(총 353개)〉
〈남산 게이트 놀 가죽 채집(E등급) / (0/1)〉
〈‘무주 개미굴 던전’ 소탕(E등급) / (현재 인원 3/5)〉
〈‘송파 백제 고분 게이트’ 스켈레톤 소탕 (E등급) / (0/1)〉
〈‘산방산 게이트’ 약초 채집 (E등급) /(0/1)〉
〈‘치악산 게이트’ 흰 가시 도마뱀 독 채집 (E등급) / (0/2)〉
〈······.〉
협회 퀘스트 아니랄까 봐 채집이나 소탕같이 귀찮은 것들뿐이다.
그러다 보니 인원 제한이 1명인데도 퀘스트를 당장 골라 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해한다.
채집은 철저하게 운의 영역에 있는 일이다.
의뢰자가 원하는 양질의 재료를 빨리 얻으면 1시간 만에도 완수할 수 있지만,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며칠이고 사냥과 해체를 반복해야 한다.
소탕의 경우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도록 게이트 내 몬스터를 소탕하는 것이기에 최소 100단위에서 크게 1000단위까지 사냥해야 했다.
힘들다고 퀘스트를 쉽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포기하면 헌터 평가에 ‘퀘스트 포기’라는 좋지 않은 꼬리표가 붙게 된다.
그런 이유로 헌터들은 조금이라도 더 쉬운 퀘스트를 골라잡으려고 애썼다.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경쟁자가 싫은 것이다.
“산방산, 아니. 무주가 좋으려나?”
물론, 나는 그들과 다른 이유로 고민하고 있었다.
애초에 퀘스트를 하려는 목적이 장비가 완성되는 목요일까지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시간이 소모되는 면에서는 뭘 고르든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내가 퀘스트를 고르는데 우선 고민한 건 최대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는가였다.
태천이 있는 서울과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지역은 피해야 한다.
거리상으로 따지자면 제주도에 있는 산방산이 가장 적당하겠지만, 비행기가 있어 쉽게 찾아올 수 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탈락이다.
그런 점에선 무주 개미굴 던전이 괜찮아 보인다.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고 비행 편이나 기차 편도 없어 쉽게 찾아올 수 없다.
실패한 헌터나 피해자가 없는 것을 보면 난이도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문제는 개미굴은 대왕 개미의 서식지로 소탕해야 하는 몬스터의 수가 매우 많다는 것과 나 말고도 인원 1명이 더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주 개미굴 던전’ 소탕(E등급) / (현재 인원 3/5)〉
새로 고침을 눌러 봤으나 인원은 여전히 똑같았다.
흠, 무주 개미굴은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혹시 다른 좋은 퀘스트가 없나 찾아보았다.
아니고,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딱 알맞다고 생각되는 퀘스트가 보이지 않아서 마우스 휠을 빠르게 돌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짓을 하게 됐다.
어떤 퀘스트가 있는지 흥미 위주로 훑어보기 시작한 거다.
심지어 받을 수조차 없는 A+등급 퀘스트까지 보기 시작했다.
〈드레이크의 심장 습득 (A+등급) / (???)〉
〈울릉도 미개척 게이트 탐색 (A+등급) / (???)〉
〈홍유릉 게이트 우담화 채집 (A+등급)/ (???)〉
〈…….〉
“어라, 우담화도 있네?”
낯익은 단어가 보이자 마우스를 쥔 손이 바로 움직였다.
클릭하자 떠오른 건 ‘경고! A+등급 퀘스트입니다. 수락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였다.
다시 한번 클릭해 봤지만, 경고 표시만 떠오를 뿐 정보를 열람할 수는 없었다.
간단한 정보라도 보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안 되는 모양이다.
쩝,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남자 네 명이 다가와 내 앞에 섰다.
위쪽 눈꺼풀이 내려앉은, 뱀눈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
“파티 퀘스트 제안하러 왔습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E등급까지밖에 못 받아서요.”
“잘됐네요. 저희가 제안하려던 게 E등급 퀘스트입니다.”
오?
파티 퀘스트를 제안하러 온 네 명….
설마?
“혹시 무주 개미굴 던전 소탕 퀘스트를 함께 깨실 생각 없습니까?”
설마 했던 것이 맞아떨어졌다.
개미굴 관련 퀘스트는 아까 3명이 대기 중이던 거다.
아마 뒤에 조금 떨어져서 서 있는 청년이 네 번째로 들어온 사람이지 않나 싶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세 남자는 한 패거리고 청년은 모르는 사이인 것 같다.
나잇대도 10살가량 차이가 나 보였고.
“던전 소탕이라고 해서 크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더니 뱀눈의 남자는 자신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장황하게 떠들어 댄 자랑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기들은 C급 헌터로서 개미굴 던전을 2년 동안 피해자 없이 완벽하게 청소해 온 베테랑이며, 셋이서도 충분히 소탕할 수 있으니 지금 참여하면 공으로 퀘스트를 완수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무주 개미굴 던전이 괜찮아 보이던 차긴 했다.
1명이 더 필요하다는 문제도 해결됐고, C급 헌터인 그들이라면 E등급 던전쯤이야 충분히 청소할 수 있을 거다.
“혹시 너무 멀다고 생각한다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걱정?”
음?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뭔가 오해를 한 눈치다.
멀면 멀수록 좋았다.
태천이가 날 찾는 데 그만큼 더 오래 걸릴 테니까.
그래도 설명하려는 눈치니까 한번 들어 보기로 했다.
“무주 개미굴 앞까지 연결된 워프 게이트가 있습니다.”
“엥? 워프 게이트라니, 그 귀한 게 왜 개미굴 따위에 있습니까?”
“내버려 두면 끝없이 늘어나는 개미들 특성 때문입니다. 꾸준히 소탕하지 않으면 던전의 범위가 계속 넓어질 거니까요.”
던전은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면서 환경이 게이트처럼 변한 곳을 뜻한다.
게이트 마나가 퍼져 평범한 사람은 살 수 없게 됐고, 대신 게이트에 살던 몬스터들이 그 땅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 몬스터를 전부 처치한다고 해도 원래의 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게이트에 땅을 빼앗긴 거다.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던전은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키듯 마나가 모이면 영역을 넓혀 나간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몬스터를 소탕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즉, 한 번에 수백 마리를 낳는 여왕개미가 있는 무주 개미굴 던전은 청소 주기가 잦은 특별 관리 구역이었다.
그런 이유로 전국 각지에서 의뢰를 받고 올 수 있도록 협회에서 워프 게이트를 설치해 놓은 것이리라.
“퀘스트 전용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 전용…?
그 말이 내 귓가에 박혔다.
나는 퀘스트 전용인 워프 게이트를 타고 지금 당장 서울을 떠나 개미굴 앞까지 갈 수 있었지만, 태천이는 그럴 수 없다.
왜?
워프 게이트를 쓸 수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녀석은 한 길드의 마스터로서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다.
내게 이보다 좋은 퀘스트는 없었다.
“좋네요. 참가하겠습니다.”
“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전하자 세 남자가 동시에 방긋 웃었다.
뒤에 있는 청년도 옅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모니터에서 무주 개미굴 던전 소탕 퀘스트를 찾아 클릭했다.
곧바로 내 눈앞에 있는 네 남자의 얼굴이 대기 인원으로서 떠올랐다.
세 남자는 자기들이 말했던 대로 8년 차 C급 헌터였고, 청년은 이제 막 E급이 된 1년 차 헌터였다.
아마도 청년은 공으로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다는 말에 참여한 것 같다.
C급 헌터와 인맥을 쌓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겠지.
퀘스트 수락 버튼을 누른 후 인쇄 버튼을 누른다.
컴퓨터 옆의 인쇄기에서 퀘스트 참가서가 뽑혀 나왔다.
“바로 출발할까요?”
“네, 그러시죠.”
인쇄된 퀘스트 참가서를 집어 들자 뱀눈 남자는 뭐가 그리 바쁜지 물어왔다.
뭐, 나도 최대한 빨리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남자의 뜻에 따라 주었다.
하지만 내 오른손의 새싹은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푸른 홀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해 왔다.
시선이 못마땅하다고 흙을 뿌리라니….
[새싹은 흙을 뿌리기를 강하게 조언합니다!]새싹이 내게 또 한 번 조언했다.
무턱대고 사람한테 흙 뿌리면 내가 곤란해져, 새싹아.
그래도 일단 생각은 하고 있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