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56
제257화
“안녕하십니까, 백도운 님. 무기 님.”
“당신은….”
「오. 아는 얼굴이로군.」
무기의 말대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는 얼굴이었다.
최희석이 협회의 에이스라고 소개했던 헌터, 안지민.
협회의 에이스는 명실상부 최희석 본인이었는데도 그는 안지민을 그렇게 소개했었다.
그가 후임으로 점찍어둔 사람이란 뜻이었을 테지.
안지민이 커피가 담긴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나와 무기에게 컵을 건네주고 나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3개월 만이죠?”
“그러네요. 중국 가기 전에 봤었으니까요.”
오른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안지민이 손을 몇 번 흔들고는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무기는 꼬리로 커피 믹스를 들고 마셨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커피 믹스였다.
안지민은 잠깐 무기를 쳐다봤다가 말했다.
“…또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듣기론, 홍유릉 게이트에서 얻은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최희석 선배님을 뵙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요?”
“그랬었습니다만, 이젠 괜찮습니다.”
“네?”
“당신을 만났으니까요.”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저를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높게 평가할 수밖에.
20년 동안 헌터 협회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해온 그 최희석이 후임으로 점찍은 사람이다.
그것 하나만으로 안지민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같은 이유로 협회에 영향력 또한 있겠지.
최소한 아까 만났던 두 직원보다는.
안지민은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내용은 전부 녹음됩니다.”
“네, 인지했습니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홍유릉 게이트에서 새로 얻은 정보가 무엇입니까?”
“새로 얻은 정보는 총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우담화가 자라는 곳이 또 있더군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묻는다.
하긴.
그 우담화가 여러 군데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믿을 일이 아니었다.
아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고했다면 반문하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 우담화를 스켈레톤 로드가 모아두고 있었습니다.”
“그…!”
안지민이 상체를 앞으로 확 내밀었다.
휘둥그레진 눈은 믿지 못하는 걸 넘어 경악에 차 있었다.
그럴 만한 정보긴 하지.
“그게 사실입니까? 스켈레톤 로드가 우담화를 모아뒀다고요?”
“네. 놈의 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비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서 마법으로 잠가놓은 낡은 함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 함 속에-”
“우담화가 담겨 있었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증거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여기요.”
마법 주머니에서 우담화를 꺼내 건넸다.
총 여덟 송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한 송이만 증거 제출용으로 가져왔다.
오래돼서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하급 포션 몇십 병쯤은 제조할 수 있을 터였다.
다른 재료와 섞는다면 중급 포션까지 제조할 수도 있겠지.
“진짜 우담화로군요….”
우담화를 건네받은 안지민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감정 스킬이 있는 건가?
역시 다재다능하기로 유명한 협회 헌터답군.
“바로 조사팀을 보내야겠군요…. 도운 님의 보고가 정확하다면, 우리나라는 이제 주기적으로 우담화를 얻을 수 있겠습니다.”
“네.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래서 최희석 선배님을 만나고 싶다고….”
안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최희석을 불러 달라고 한 이유가 높은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협회가 알아낸 정보를 대형 길드들이 훔쳐내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었으니까.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허다했으니 잘잘못을 따질 순 없었다.
“그런데….”
“……?”
“이 귀한 정보를 왜 그냥 가르쳐주시는 겁니까?”
“네?”
“백운천 길드라면 홍유릉 게이트를 독점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담화를 시기마다 꾸준히 얻을 수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텐데요…? 백운천은 수정 공방과도 밀접한 관계이니 여러 종류의 포션을 제조할 수도 있었을 테고요.”
아아.
궁금한 게 그런 거였나.
솔직히 말하면,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단순한 이유입니다.”
“단순하다고요?”
“네. 우담화가 필요 없거든요.”
“필요가… 없다고요? 우담화인데?”
“우담화 따위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으니까요.”
내 스마트폰엔 세계수가 자라나 있었다.
우담화 따위로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나무가.
[세계수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관리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전합니다.]새싹이가 있는데 뿌리 없는 우담화가 아까울 리 없었다.
“더 좋은 게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안지민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닫았지만.
그가 물어본다고 해서 내가 가르쳐줄 리 없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겠지.
톡톡 톡톡톡….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그의 말을 기다린다.
그는 이내 내 의중을 알아차리고는 원래의 화제를 이어나가고자 질문했다.
“세 번째 정보는 무엇입니까?”
“진화한 스켈레톤 로드에 관한 것입니다.”
“로드요?”
“네. 위험한 마법을 쓰더군요.”
“위험한 마법이라 하시면…?”
“놈은 사람을, 아니. 살아있는 존재를 스켈레톤으로 바꾸는 마법을 쓸 수 있었습니다.”
“네…?”
그의 얼굴은 의외로 변하지 않았다.
놀라거나 경악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거다.
도와줘야겠군….
“저한테 자꾸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절 스켈레톤으로 바꾸려고 하는 거였습니다.”
“잠…시만요.”
“네.”
안지민이 내 말을 멈추고자 손을 들어 올렸다.
다른 손으로는 제 이마를 문지른다.
컴퓨터의 팬이 돌아가듯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가 기억하기로… 스켈레톤 로드는 그런 엄청난 마법을 쓸 줄 모를 텐데요?”
“그랬죠. 아마 검은 뿔이 자라난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뿔이라면…, 로드가 진화하면서 새 스킬을 얻게 된 것으로 예상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과거에 홍유릉 게이트를 공략할 땐 진화한 상태가 아니었으니까요.”
“이런…. 그게 사실이라면 홍유릉 게이트에 관한 정보를 전면 수정해야겠군요. 관리 체계도요.”
생각해보면, 홍유릉 게이트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독기와 냉기가 담긴 안개가 떠다니고, S등급 채집 스킬이 없으면 건드릴 수조차 없는 우담화가 자라나고….
도저히 B등급 몬스터들이 출현하는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뭐죠?”
“도운 님은 로드가 그런 스킬을 쓸 줄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아. 실험해봤습니다.”
“실험이요?”
“네. 제 왼팔로요.”
“왼팔…?”
안지민의 시선이 내려간다.
내 왼팔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당연히 팔은 정상적인 상태였다.
스켈레톤처럼 뼈다귀만 남아 있지 않았다.
“……?”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험해봤다면서 팔이 말끔했으니 당연했다.
역시….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단 한 번 보여주는 게 빠르겠군.
왼손을 앞으로 뻗어 인벤토리에 있는 그것을 꺼냈다.
“무슨, 헉…!”
안지민이 의자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오른손이 허리춤을 향하는 걸 보니 검을 쥐려던 것 같다.
검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라 다행이다.
허리춤에 검이 있었다면 뽑았을지도 모르겠다.
「…….」
“…흠, 흠!”
커피 믹스를 음미하던 무기가 그를 쳐다본다.
무기의 시선은 뭘 그런 걸 가지고 놀라냐고 따지는 듯했다.
안지민이 허리로 향했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보고 있는 나도 민망할 정도로 너무 민망해했다.
물론, 난 그의 편이었다.
내가 꺼내긴 했지만, 나도 다른 사람이 대뜸 사람의 팔뼈를 꺼내면 놀라고 말 것이다.
달그락….
뼈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게 실험의 증거입니다.”
“증거, 라면…. 이 뼈가 도운 님의…-”
“네. 제 왼팔입니다.”
“…….”
꼴깍.
안지민이 침을 삼켰다.
이어 그는 내 왼팔을 바라보았다.
왼팔은 테이블 위에 놓인 것과 달리 보드라운 가죽으로 덮여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운 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실례가 안 된다면 이… 도운 님의 왼팔? 을 가져가, 검증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가져가서 검증해보십시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저 같아도 팔이 멀쩡히 달린 놈이 자기 팔이라면서 팔뼈를 꺼내면 쉬이 믿지 못할 겁니다.”
“하하, 정말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분이 도운 님이 아니었다면 장난치는 거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 말하며 안지민은 내 왼팔 뼈를 챙겼다.
마법 주머니에서 길고 네모난 함을 꺼내 뼈를 넣는다.
함을 항시 갖고 다니는 건가?
저 정도면 직업병일 수도….
탁.
그는 팔뼈를 담은 함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를 건네왔다.
“이번에 알아낸 정보를 알려주셔서 협회를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의 보상은 정보를 확인한 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기대하겠습니다.”
아마 오래 걸리겠지.
이번에 갖다 준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스켈레톤 로드가 진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담화가 여러 군데에서 자라난다는 정보쯤이야 탐험대를 보내 구석구석 찾아보면 될 테지만….
나머지 두 정보는 로드의 머리에 검은 뿔이 자라나야만 확실하게 조사할 수 있었다.
특히, 스켈레톤화 마법은 로드가 진화하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진화하기 전의 로드는 그 마법을 쓰지 못했었으니까.
“혹시 먼저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네?”
“도운 님께서 알아내신 정보를 서둘러 조사하고 싶어서요.”
그리 말하는 안지민의 얼굴에서는 설렘이 느껴졌다.
최희석이 후임으로 점찍어둔 사람이라 항상 진중한 성격일 거로 생각했는데….
새로운 정보에 설렘을 느끼고 그걸 드러내는 걸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그러고 보니, 한진환이 최희석의 이미지는 만들어낸 거라는 식으로 말했었지.
최희석도 사석에선 안지민과 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2m도 넘는 남자가 설렘을 느끼는 모습이라….
음, 보고 싶지 않군.
“당연히 되죠.”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먼저 나가보도록-”
안지민의 주머니 속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가 온 것이다.
그는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나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탁.
“…역시 후임 에이스. 바빠 보이는걸?”
「관리인.」
“응?”
「아까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다.」
“궁금한 거? 뭔데? 스켈레톤 로드에 관한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럼 뭔데?”
「그 아메리카노 안 마실 건가?」
“…….”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냐….
누가 보면 여기까지 커피 마시려고 온 줄 알겠네.
그런 말을 내뱉으려다가 관뒀다.
무기에게 아메리카노를 들이민다.
“마셔.”
「음. 잘 마시도록 하지.」
무기는 꼬리를 뻗어 아메리카노를 들어 음미했다.
영국 신사의 모습이 떠올라 실크햇이라도 사줘야 하나 싶다.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거 다 마시면 돌아가자.”
「최희석은 안 만나는 건가?」
“극비 퀘스트 중이라잖아. 연락이 닿으려면 며칠 더 걸리지 않겠어?”
「그도 그렇군.」
무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고는 음미하던 아메리카노를 단번에 들이켰다.
“천천히 마셔도 되는데.”
「역시 커피보다는 홍수정이 만든 적맥주가 더 맛있는 듯하군.」
“그럼 마시러 가야지.”
「음.」
무기가 컵을 내려놓고는 몸을 움직였다.
능숙하게 내 목을 휘감고 머리를 정수리에 올려놓는다.
「가지.」
“응.”
수정 씨, 축하합니다!
우리 무기가 드디어 당신을 만날 생각을 했어요.
당신이 아니라 적맥주가 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피하지 않고 만날 생각이라는 점에서 크나큰 발전이에요!
문을 열고 나가고자 손을 뻗는다.
끼익….
하지만 내 손이 붙잡은 건 문고리가 아니라 허공이다.
바깥쪽에서 문을 연 탓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