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60
제261화
“끝난 것 같군그래.”
뒤에서 최희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어느새 2층에서 내려온 그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무기는 함께 오지 않았다.
여전히 2층 난간을 칭칭 감은 채 이쪽을 바라봤다.
곧 최희석이 내 옆에 섰다.
바닥에 떨어졌던 부러진 칼날을 주워 마법 주머니에 넣는다.
“수고했네.”
“수고는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한 걸요.”
“하하, 압도적으로 끝나기는 했지.”
최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내가 채정연의 기를 죽인 것이 썩 마음에 든 것 같다.
그는 몸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고 있던 채정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변태를 푸는 동안 계속 중얼거려댔다.
“괴물 자식….”
저 괴물…은 날 뜻하는 거겠지?
[세계수 어린나무는 그렇다고 전합니다.] [채정연의 불만이 관리인을 향해 있다고 전합니다.]웃기는 녀석이네.
변태하는 건 자기면서 누구보고 괴물이래.
날개가 뻗어 나온 모습은 확실히 괴물처럼 보이진 않았었지만.
지상욱처럼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게 되면 그 모습 때문에 인기가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채정연이 검은 날개가 완전히 사라진 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선 제 등을 어루만지고 싶은 듯했다.
“이 변태 능력은 다 좋은데, 너무 아픈 게 문제라니까….”
“그것도 해결될 거야.”
“…그러고 보니 네가 우릴 치료해준다고 했지. 정말 변신할 때의 고통도 없애줄 수 있어?”
“물론.”
지상욱은 변신할 때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같은 변태 능력인데 아픔을 느끼지 않는 건, 분명 세계수의 마나가 주입됐던 덕분일 거다.
신체가 개조된 거겠지.
채정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이곳까지 따라오길 잘했-”
“딱 한 번. 엄청 아파야 하긴 하지만.”
“뭐?”
우뚝.
그녀가 날 올려다본다.
날 보는 두 눈이 두려움으로 파르르 떨렸다.
“…어이쿠. 방금 말은 못들은 걸로.”
“잠까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발언을 들은 거 같은데!”
“아하하하하.”
채정연이 벌떡 일어나 내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내 몸을 마구 흔들며 따져대기 시작했다.
“웃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 너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죽은 놈은 없었으니까. 기절한 놈은 한 명 있긴 했지만.”
“히이익….”
그녀가 두려움에 신음을 흘렸다.
뭘 그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걸까.
말했던 대로 기절한 놈은 한 명밖에 없었는데.
이정근은 의식이 없었으니 넘어가고….
공우재는 버텨냈었고, 지상욱이 기절했었지.
채정연이 옷깃을 붙잡았던 두 손을 거두며 시선을 피한다.
나와 최희석의 뒤에 있는 문을 바라본다.
“…나, 난 이만 돌아갈래.”
“괜찮다니까 그러네.”
“웃기지 마! 네 말 따위 안 믿어!”
“그건 안 될 말이지.”
최희석이 끼어들었다.
채정연이 그를 바라봤다.
“지금 상태로는 크라우드에게 의지를 지배당하게 될 뿐이라는 걸 알지 않나.”
“흥. 그 말이 사실이란 증거도 없잖아.”
“그렇긴 하지.”
“그렇다면-”
“나는 최희석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절대 이런 일로 거짓을 말하지 않아.”
“…….”
채정연은 입을 다물었다.
시건방진 태도를 굴기는 했지만, 그녀도 눈앞의 최희석이라는 인간을 알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젊은 헌터라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헌터로 살아가며 들은 그의 업적만 해도 수십 건이 넘어가니까.
괜히 지상욱이 팬을 자처하는 게 아니다.
“…알았어. 안 돌아가면 될 거 아냐.”
“잘 생각했다.”
그리 말하며 그는 왼손을 뻗었다.
채정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악수라도 하자는 거야?”
“응? 아니. 무기 내놓으라는 거였다만.”
“뭐?”
“완전히 돌려준 거 아니네. 도운과 대련해야 하니 잠깐 돌려준 거지.”
“…무기 압수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범죄를 저지르다가 붙잡혀온 것도 아니고 제 발로 따라온 건데.”
“미안하군. 규정은 규정이라서 말이야.”
“켁! 이래서 꼰대는 안 된다니….”
“…….”
“…알았어! 주면 되잖아, 주면!”
채정연은 단검들을 최희석에게 건넸다.
구시렁거리는 것치곤 의외로 말을 잘 듣는단 말이지.
그냥 솔직하지 못한 사람인 거려나.
최희석은 건네받은 단검들을 곧바로 마법 주머니에 넣었다.
“단검 두 자루는 받았고….”
그는 중얼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채정연이 던져버렸던 부러진 롱소드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부러진 롱소드는 머리 긴 남자의 다리 사이에 꽂혔었다.
그걸 말해주려고 할 때,
“……!”
곧 그의 고개가 멈췄다.
당황스러운 것을 본 듯한 시선을 따라가니 머리카락이 긴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앙녕?”
남자는 부러진 롱소드를 입고 물고 있었다.
마치 장난감을 물고 온 개 같은 모습이었다.
손은 어디에다가 두고 주둥아리로….
아.
구속복 입고 있었지, 참.
“앙녕?”
남자가 날 보며 또다시 인사했다.
부러진 롱소드를 물고 있어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저 말은 분명히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음….
날 왜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래?
부담스럽게시리.
잘 갖고 왔다고 턱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는걸.
***
캉!
카앙, 캉!
두 남자는 각각 서고 앉은 채로 앞을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도운과 채정연이 싸우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싸움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것을 싸움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그런 의문이 절로 떠오르는 행위가 계속 진행됐다.
채정연은 가만히 서 있는 도운에게 단검을 마구 휘둘렀으나 단검의 날은 그에게 전혀 닿지 못했다.
그녀의 단검은 도운의 피부 위에 나타난 나무껍질 형태의 실드를 뚫지 못하고 계속 막혔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던 머리 긴 남자가 중얼거렸다.
“…강한데, 백 형.”
“뭐? 아. 도운 씨를 말하는 거야?”
“저 누님의 검기는 웬만한 A급 헌터는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 저걸 어떻게 저렇게 손쉽게 막아내는 걸까?”
“글쎄….”
김서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머리카락이 긴 남자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김 형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아?”
“김 형…은 날 말하는 거 맞지?”
“그럼 누구겠어.”
“아, 미안.”
“괜찮아.”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김서준은 그런 남자를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가만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질문이 나와 도운 씨랑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은 지였지? 무슨 그런 질문을 해? 당연히 내가 지지.”
“의외네….”
“응?”
“김 형이 입에 발린 소리를 잘하는 줄 몰랐어.”
“입에 발린 소리라니. 도운 씨는 A+급 헌터.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강한 인간이야. 나 같은 게 상대가 될 리 없잖아.”
“그런가?”
“그렇고말고.”
“그래도….”
머리 긴 남자가 키득키득 웃었다.
갑작스러운 웃음에 김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약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 형이 최 선생보다는 확실히 강하지?”
“설마 저분을 말한 거야?”
김서준의 눈이 훈련실 2층으로 향했다.
그곳엔 키가 2m가 넘는 최희석이 무기와 함께 도운의 싸움 같지 않은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곳에 최 선생이 저 사람 말고 더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래? 김 형 81위였잖아.”
“사숙(師叔)께선 79위이시고.”
“난 김 형이 마인 길드에서 탈퇴하기 전의 순위를 말한 거야. 괴물로 변신할 수 있는 지금은 더 강해졌지?”
“…….”
김서준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머리 긴 남자가 또다시 키득키득 웃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도운 때와는 달리 “그럴 리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침묵엔 많은 것이 담겨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깜짝 놀랐어. 김 형이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거든. 방금 이유를 알았지만.”
“……?”
“김 형의 스승님과 최 선생이 친구 사이라는 게 방금 기억났어.”
“…….”
“참. 김 형은 뭐로 변신해?”
“글쎄?”
김서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머리 긴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궁금하면 본인부터 먼저 뭐로 변신하는지 말하라는 은근한 압박이었다.
홱…!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끝났다. 누님이 결국 뻗었어.”
“…놀랍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끝나다니 말이야.”
“다음은 내 차례인가…!”
“도운 씨에게 도전하려고?”
“응. 보고 있으니 싸우고 싶어졌어.”
“섭섭한걸?”
머리 긴 남자가 다시 김서준을 바라봤다.
김서준의 얼굴에서는 스스로 말한 대로 섭섭함이 묻어났다.
그 때문에 남자는 어리둥절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섭섭하다니?”
“나하고는 싸우고 싶다고 말한 적 없잖아. 역시, 너한테 나로서는 역부족이었던 걸까?”
“…….”
남자는 입을 떡 벌렸다.
그 입이 다시 다물어진 건 금방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완전 속았어. 김 형 진짜로 입에 발린 소리 잘하네.”
“응?”
“싸우자는 말을 하지 않은 건 내가 싸움을 좋아해서야.”
“……?”
“김 형은, 나 살려줄 생각 없잖아.”
“뭐? 설마. 어째서 그런 오해를 한 거야?”
“오해라고?”
“당연히 오해지! 난 그런 생각한 적 없어.”
“…그래, 그럼. 그런 거로.”
“…….”
머리 긴 남자가 벽에서 등을 뗐다.
곧바로 바닥에 박힌 부러진 롱소드를 입에 물며 일어났다.
구속복을 입었는데도 남자의 움직임은 매우 부드러웠다.
두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능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남자는 롱소드를 입에 문 채로 말했다.
“다녀오께.”
“그래, 조심히 다녀와.”
“응.”
남자는 짧게 인사를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홀로 남게 된 김서준은 남자를 지켜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아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냥 약쟁이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감이 좋네?”
김서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
“…….”
“…….”
머리카락이 긴 남자는 개같이 날 바라봤다.
부러진 롱소드를 입에 문 채로 빤히.
아까부터 부담스럽게 왜 이래?
“…가져다줘 고맙네.”
최희석이 왼손을 뻗었다.
툭….
남자는 커다란 손바닥에 부러진 롱소드를 놓았다.
칼자루에 침이 묻었는데도 최희석은 불쾌해하지 않고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히려 기분 나빠한 사람은 그것의 주인인 채정연이었다.
그녀가 남자를 노려보지만, 남자는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백 형.”
“…나 부른 거냐?”
“여기 백 형이 백 형 말고 또 있어?”
“…….”
“나랑도 한 판 붙자.”
“뭐?”
“누님이랑 한 것처럼 나랑도 싸워 보자고.”
당황스러운걸….
싸우려고 이곳까지 온 게 아닌데.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인 최희석이 남자를 말렸다.
“안 되네.”
“왜 안 돼요?”
“도운은 이곳에 일하러 온 거야. 자네들 몸속에 있는 것을 제거해주려고. 놀려고 시간 내서 와준 게 아니란 말이네.”
“아….”
머리 긴 남자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나와 싸우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오늘 처음 본 놈이 아쉬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
“이무기와 함께 싸우지 못해서 겁먹은 건 아니고…?”
“허….”
또 이런 되지도 않는 도발을….
채정연과 싸웠던 것 때문인가?
저런 하급 도발이 내게 통할 거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게 통할 리가 없었는데.
[어린나무가 분개합니다.]나한테는 말이다.
새싹이한테는 너무나도 잘 통하는 도발이었다.
할 수 없군….
이번엔 단호한 모습을 좀 보여줘야겠다.
내가 이렇게 보여도 그 백도희를 키운 오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