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59
제260화
난간을 뛰어내렸다.
톡톡 톡톡톡.
검지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채정연이 인상을 찡그렸다.
“백도운. 그거 안 집어넣어?”
“그럴 필요 있어?”
“…….”
꽈악….
롱소드를 쥔 채정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시에 마나도 뿜어져 나왔다.
지금껏 상대한 마족의 권속들에게서 자주 느꼈던 탁한 마나였다.
대체 바이올렛 바이올런스를 얼마나 처먹은 거야?
하긴, 그러니까 괴물화가 진행됐겠지.
홱…!
채정연이 검 끝을 내게 겨눴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다가갔으면 목에 닿았을지도 모르겠는걸.
“어서 검을 꺼내시지.”
“검?”
“마나 칼날을 뿜어내는 검 말이야!”
“아, 그거? 안 꺼낼 건데?”
“뭐?”
아르카는 지금 내 수중에 없었다.
유재이의 손에서 열심히 개조되고 있을 터였다.
있다고 해도 꺼내 들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채정연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꺼내지 않을 거라고?”
“어.”
“설마, 지금 여유를 부리는 거냐? 날 상대로?”
“널 상대로라고 해도…. 네가 누군데?”
뭘 알아야 대우를 해주지.
아는 거라곤 채정연이라는 이름 석 자와 검 세 자루를 사용한다는 것뿐인데.
자신만만한 걸 보니 헌터 등급은 A급 정도는 될 거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채정연이 가만히 바라봤다.
“…….”
“…….”
나도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마주 보았다.
톡톡톡, 톡톡,
톡톡, 톡….
톡….
검지가 화면에 닿았을 때 채정연이 롱소드를 횡으로 휘둘렀다.
깡…!
“……!”
그녀의 롱소드는 정확하게 내 목을 베었다.
물론, 세계수의 나무껍질로 보호받고 있는 목은 베이지 않았다.
채정연이 오른손에 쥐어진 롱소드를 바라봤다.
“검이….”
정확히는 칼날이 부러진 롱소드를 허망하게 바라봤다.
과연….
제 실력에 자신이 있을 만한걸?
방금 채정연이 롱소드를 휘둘렀을 때 팔의 힘이 부족했더라면 날은 부러지지 않았을 거다.
휘두르는 도중에 가로막혀 멈췄을 테지.
“평상시에도 실드 마법을 쓰고 있는 거냐….”
“그렇지, 뭐.”
“쳇….”
채정연은 짧게 혀를 차고는 롱소드를 뒤로 던졌다.
노리기라도 한 걸까.
부러진 롱소드가 머리카락이 긴 남자의 다리 사이에 꽂혔다.
그런데도 천장을 쳐다보던 남자의 눈빛은 여전히 멍했다.
저 상태라면 다리 사이가 아니라 다리에 꽂혔어도 신경을 쓰지 않았겠는걸….
두둑.
그녀가 손목을 돌리며 말했다.
“방금 공격에도 멀쩡한 실드라면…, 확실히 마나의 양만큼은 대단하네.”
“뭐야. 벌써 인정하는 거?”
“흥. 헌터 등급이 마나의 양으로 결정되면 마법사들은 다 A+급이게?”
“그건 그렇네.”
마법사는 보통 검사들보다 몇 배에 달하는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검사의 마나가 100만을 넘어서면 엄청나게 많은 거지만, 마법사의 마나가 100만이라면 크게 놀랄 만큼 많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네가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것만큼은 인정해주마.”
“저런. 하나도 안 고마운걸.”
“흥.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야!”
그리 말하며 채정연은 허리춤의 단검들을 뽑았다.
하얗고 검은 단검을 손에 쥐고는 꼽추처럼 등을 굽혔다.
뿌드득, 뿌득!
등을 굽히자마자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세계수 어린나무는 나뭇잎을 휘젓습니다.] [혐오스러운 기운이 강력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크라우드 놈들이 변태할 때마다 몸에서 나던 소리였다.
몸에서 뼈가 빠지는 소리였고, 몸속에서 튀어 오르고 돌아 대는 소리이기도 했다.
곧 채정연의 등에서 흰 날개가 튀어나왔다.
흰 날개만 돋아난 것 때문인지 마치 천사의 모습이 연상됐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처음 느낀 감상은 ‘엄청나게 안 어울리네’였다.
천사는커녕 마족의 권속의 권속이 된 거였는데 천사라니….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지금, 이라도… 검을 꺼내시지…!”
“안 꺼낼 거라니까.”
“…후회하게, 될 거야.”
“글쎄. 네가 과연 할 수 있을까.”
“……!”
채정연이 빠르게 단검을 휘둘렀다.
오른손의 흰 단검과 왼손의 검은 단검이 차례차례 내 몸을 벴다.
당연히 내 몸은 베이지 않았다.
아까와 똑같이 나무껍질 형태의 실드가 빛날 뿐이었다.
다른 점을 굳이 찾자면, 두 단검의 칼날이 롱소드와는 달리 부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검이 롱소드보다 훨씬 품질이 좋은 무기여서는 아니다.
칼날에 검기가 둘려 있어서다.
그리고 그 검기는 점점 더 커져갔다.
처음엔 칼날을 간신히 덮을 정도였는데, 휘두를 때마다 커져선 이젠 내 팔뚝 길이만 했다.
마치 칼날이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
이해가 가지 않는걸.
검기를 크게 두를 수 있다면 처음부터 그러면 될 일이었다.
아니면 공우재가 그랬던 것처럼 비장의 한 수로 숨겨 놓든가.
휘두를 때마다 크기를 키울 필요는 없었다.
[어린나무가 날개를 보라고 전합니다.]날개?
새싹이의 말에 따라 시선을 옮겨 날개를 바라본다.
“……!”
과연.
방금까지만 해도 천사의 날개가 연상될 만큼 하얗던 날개가 절반쯤 검게 변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생각이 빠르게 회전했다.
색깔이 변하는 날개.
점점 커지는 검기.
날개 색깔이 변할 때마다 단검에 둘린 검기가 커지는 건가?
그렇다면….
채정연의 변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알아차렸나 보네.”
“두 날개가 완전히 검게 변했을 때가 네가 가장 강해진 상태라는 거잖아?”
“정답.”
“단검들을 새로 구매한 이유는 공격 횟수를 빠르게 늘리기 위해선가?”
“…뭐?”
채정연이 공격을 멈췄다.
내게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서가 아니다.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멈춘 거다.
놀란 얼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맞나 보네. 빠르게 움직이거나 공격할 때마다 날개 색깔이 변하는 거.”
“그,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딱 보니 알겠더구만. 통하지도 않는 공격을 마구 하는 이유가 뭐겠어?”
“…….”
“누굴 이태천으로 아나.”
내가 도희나 한재임 만큼 좋은 머리를 갖지 못했다는 건 인정한다.
그래도 태천이처럼 바보 멍청이는 아니다.
상황을 보면 파악할 줄 아는 머리 정도는 갖고 있다.
태천이는 그걸 못하니까 상황 파악 같은 거 하지 말고 움직이라고 조언한 거였고.
채정연이 가만히 날 바라봤다.
“…….”
“뭐해? 계속 공격 안 해?”
“…그걸 알면서, 가만히 서 있겠다는 거야?”
“그런데.”
“대체 어째서…?”
“네 날개가 검게 변한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뭣…?”
“너 말이야. 네 날개가 완전히 검게 되고 검기를 최대치로 뽑아낸다고, 내 실드를 뚫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당연하지!”
“…그래. 그럼 해보면 되겠네.”
“…….”
“자, 계속해. 가만히 서 있어 줄 테니.”
“이 자식이…!”
까앙!
채정연은 다시 단검을 휘둘렀다.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러지 못할지도 모른다’라는 의심이 싹을 틔웠지만, 그녀로서는 계속 단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고 단검을 내려놓는 수밖엔 없었으니까.
당연히 그녀의 헛된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거다.
깡, 깡!
따라서 훈련실에는 채정연의 단검이 세계수 나무껍질에 막히는 소리와,
톡톡, 톡톡톡….
내가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어린나무는 가소로움을 느낍니다.] [절대로 뚫리지 않을 것이라고 덤덤하게 전합니다.]그럼, 그럼.
백날 해봐도 나무껍질은 뚫리지 않겠지.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백날은커녕 백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허억, 허억….”
채정연이 지쳐서는 숨을 거칠게 헐떡였다.
등에 자라난 두 날개는 완전히 검게 변해 있었으나 아까와는 달리 축 늘어져 있었다.
가장 강해진 상태였는데도, 그녀는 조금 전처럼 공격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숨을 헐떡여댔다.
하얗고 검은 단검들을 각각 쥔 손도 부르르 떨렸다.
“끝이야?”
“허억, 헉…!”
그녀는 날 노려봤다.
대답하는 대신 숨소리를 거칠게 낸다.
그 모습이 마치 지쳐서 손 하나 까딱일 힘도 없다고 토로하는 듯하다.
제풀에 지쳐 쓰러진 거면서 누가 보면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한 줄 알겠네.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서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려대고 있었는데.
톡톡톡, 톡톡.
“자, 그럼….”
“후우, 후우우….”
톡톡, 톡….
스마트폰을 두드리던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활짝 편 검지에 마나가 모인다.
채정연이 내 검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 내 차례지?”
“후우, 후…? 뭐…?”
“끝이라며. 그럼 이제 내 차례 맞잖아.”
“잠깐, 후웁! 잠깐만! 지금 나는 완전히 지쳤다고! 이런 나를 공격할 셈이야?”
“어. 그럴 셈인데?”
“미친…!”
빠악!
검지로 채정연의 머리를 때렸다.
그녀는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에 울부짖었다.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했다.
이제 겨우 한 대 때렸는데 엄살은.
“아아악! 내 머리! 머리가 깨진 것 같, 응…?”
채정연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구르다가 멈췄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내려다본다.
주먹을 죔죔 쥐고,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한다.
제 몸에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체력이… 회복됐어…?”
“그럴 거야.”
“설마, 너 날 회복시켜준 거야? 어째서?”
“널 위해서 그런 거 아니니까 기대하지 마.”
“뭐?”
“생각해봐.”
“뭐, 를…?”
“때릴 때마다 회복하면 영원히 팰 수 있잖아?”
“……!”
채정연의 두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조금만 더 커지면 눈알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커졌다.
아.
알겠다.
도희가 고통스러운 힐링을 쓸 수 있게 된 이유.
방금 내가 했던 말처럼 오랫동안 고통을 주기 위해서일 거다.
그 대상자는 물론 말을 듣지 않는 나와 태천이겠지.
백도희, 이 무서운 아이…!
“…자, 이제 내 차례 맞지?”
“그만! 그만해! 내가 졌어!”
채정연이 두 손을 마구 휘저었다.
그러다가 단검을 쥐고 있던 사실을 깨닫곤 바로 내려놓았다.
단검을 내려놓은 손으로 다시 휘젓기 시작했다.
졌다, 라….
패배를 시인한다고 해서 내가 멈출 줄 아나?
“어쩌라고?”
“어, 어?”
“내가 더 강한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네가 졌다는 말 따위가 중요해?”
“……!”
착각하면 안 된다.
이 싸움은 누가 더 강한지 알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나와 채정연 중 누가 더 센지는 겨뤄보지 않아도 확실했으니까.
오른 검지를 다시 들어 올렸다.
그러자마자 채정연이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히익…!”
“자, 머리를 내밀어.”
“알았어, 알았다고! 인정할게! 넌 A+급 헌터야! 이무기 덕분이 아니라 너 스스로 A+급 헌터가 된 굉장히 대단한 놈이야!”
“흐음?”
“진심이야! 진정으로 인정한다니깐!”
“흐음….”
[어린나무는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전합니다.]그럼 그렇지.
계속 후려쳐야겠군.
[어린나무는 관리인을 말립니다.] [충분히 만족스러우니 이만 멈춰도 된다고 전합니다.]어라, 그래?
우리 새싹이가 그렇다면야.
“좋아. 받아들여 주지.”
“후, 후우우….”
채정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따스한 손길로 때린 게 그렇게 아팠나?
하긴, 고통에 몸부림친다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댔으니….
마냥 엄살을 부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으, 무식하기 그지없는 놈….”
채정연이 작은 목소릴 구시렁거렸다.
얼씨구.
내가 뭘 했다고 무식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