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58
제259화
“이곳이네.”
최희석이 문제아들을 모아뒀다는 곳의 문을 열었다.
그곳은 사람을 감금하기 위한 방이 아니었다.
백운천에 만들어 놓은 훈련실과 견줄 정도로 커다란 훈련실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두 층으로 나뉘어 있어 아래층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난간으로 걸어가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세계수 어린나무는 혐오스러운 기운들을 느꼈습니다.] [방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총 세 개라고 설명합니다.]새싹이가 보낸 메시지처럼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도 세 명이었다.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으로, 그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단발머리 여자는 맨 앞쪽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것이 꼭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두 남자 중 머리카락이 짧은 남자는 훈련실 한가운데에 정좌하고 명상 중이었고, 반대로 머리가 긴 남자는 훈련실 끝에 벌러덩 누운 채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또 머리가 긴 남자만이 유일하게 사복이 아니라 구속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자해나 타인에게 상해를 입힐 우려가 있어 입혔다는 소리인데….
혹시 브이피에 중독된 환자려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가운데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서 기이한 기운을 느꼈습니다.]기이한 기운이라니?
혐오스러운 기운이 아니라는 뜻이야?
[어린나무는 혐오스러운 기운은 확실하게 느껴진다고 전합니다.] [다만.] [혐오스러운 기운 속에서 역겨운 기운도 느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역겨운 기운이 함께 느껴진다니?
눈을 찌푸리며 메시지창을 바라봤다.
새싹이의 메시지 대신 무기와 최희석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관리인?」
“왜 그러나?”
“…저 남자, 말입니다.”
새싹이와 대화 중입니다.
그리 말하지 않고 머리가 짧은 남자를 가리켰다.
무기와 최희석의 시선이 내 검지 끝을 따라갔다.
“정체가 뭡니까?”
「…….」
“역시. 자네라면 알아볼 줄 알았지.”
흠?
나라면 알아볼 줄 알았다고?
새싹이가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걸 알아차렸을 리는 없고….
알아볼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녀석이란 뜻으로 한 말이겠지.
그렇다면 최희석이 왼팔에 깁스하게 한 사람이 저 남자인지도 모르겠다.
“‘김서준’. A급 헌터로, 마인 길드의 전 차기 에이스였지.”
“에이스였다고요?”
“윤건이 조주현을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네.”
“아….”
새로운 에이스가 출현해 원래 에이스가 버려진 건가.
경쟁하는 식의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건….
조주현의 재능이 저 남자의 재능보다 월등하다는 뜻일 테지.
그런데….
[…역겨운 기운도 느껴진다고 설명합니다.]새싹이의 메시지를 다시 읽는다.
역겨운 기운….
새싹이는 조주현에게서도 그 기운을 느꼈었다.
같은 길드의 사람에게서 똑같은 기운을 느낀다?
이걸 과연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아니.
마인 길드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그 무슨 짓이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걸 알아보라고 한재임한테 시킨다면….
“…….”
음, 관두자.
차라리 아는 뒤쪽 세계의 길드를 부려먹는 게 낫겠다.
한재임 그놈이 해줄 리도 없고.
쓸데없는 짓 저지르지 말라고 핀잔이나 먹겠지.
“지금은 길드를 탈퇴했지만, 그래도 그 마인 길드의 차기 에이스였던 남자. 실력은 확실하지.”
「그 말대로 훌륭한 재능이 느껴지는군.」
무기가 동의했다.
그렇겠지….
마인 길드의 차기 에이스는 리롄제조차 이름을 기억해둔다.
김서준의 실력은 분명 지금까지 상대했던 크라우드 놈들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날 것이다.
그런 실력자가 바바 같은 것에 빠져들었다는 게 참 아쉬운걸….
이곳으로 와서 날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는 언젠가 자유의지를 잃고 권속의 권속이 되어 조종당하는 신세가 됐겠지.
버섯에게 조종당했던 이정근처럼.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향한 역겨운 시선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과연, 명상하고 있던 김서준이 눈을 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날 보는 그의 눈은 왠지 이지적으로 느껴졌다.
그 눈빛 때문일까?
더더욱 바바에 빠진 이유를 모르겠다.
“오. 저쪽에서도 자네의 시선을 느꼈나 보군.”
“그런가 보네요.”
“내려가서 대화를 나눠보겠나?”
“그래야겠죠. 어차피 앞으로 할 일 설명해줘야 하니까.”
“그도 그렇군.”
최희석이 바로 동의했다.
그때,
“흥.”
아래쪽에서 여자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엔 불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고개를 내려 아래쪽을 본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단발머리 여자가 목을 뒤로 젖힌 채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마음에 안 드네. 지금 나는 완전히 무시하는 거?”
“무시하는 건 아니고, 그냥 무관심한 거지. 너한테.”
“어쭈. 말 잘하네?”
“그쪽만 할까.”
“뭐?”
“마약 처먹다가 이런 곳에 끌려온 주제에 어디서 잘난 척이야?”
“누구 보고 약쟁이래! 마약 한 건 저놈이야!”
여자는 머리 긴 남자를 가리켰다.
그 남자는 관심이 없는 듯 여전히 멍하니 누워 있기만 했다.
역시 구속복을 입은 게 마약의 금단 증상을 통제하기 위해서였군.
“내가 한 건 바바! 버프 포션이라고!”
“그러니까 관심 없대도.”
“…….”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더 떠들어댈 줄 알았는데.
가만히 날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후….”
웃음을 짧게 흘렸다.
명백하게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말은 잘하네. 이무기 덕분에 A+급이 된 주제에.”
“흠….”
저걸 지금 도발이라고 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난 저런 도발에 걸려들 만큼 순진하지 못하다.
한재임 덕분에 너무나도 많은 비아냥과 빈정거림을 들어왔으니까.
단단하게 단련된 내 멘탈은 이따위 하급 도발에 절대 걸려들지 않는-
“…….”
그러고 보니 있었지.
나 말고 순수하고 순진한 녀석이 하나….
“…내려와. A+급 헌터, 백도운.”
단발머리 여자가 당당하게 말했다.
여자의 눈빛에선 지금 당장 한 판 붙어보자는 의지가 강렬하게 내비쳤다.
날 A+급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만만하다니….
아무래도 내가 정말 무기 덕분에 A+급 헌터가 된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네 현실이 무엇인지 이 ‘채정연’ 님께서 친절하게 가르쳐주마.”
“내 현실?”
“그래. 이무기가 없으면 백도운 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흐음….”
역시.
무기가 없는 나는 A급 헌터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거다.
여자의 말마따나 내가 A+급 헌터로 불릴 수 있게 된 것은 전부 누구 덕분이었다.
그 누구는 절대로 무기가 아니었지만.
그 장본목인 새싹이는 지금,
[세계수 어린나무가 분개합니다.] [관리인에게 눈앞의 인간 여자의 말을 정정하길 요구합니다.] [정정하지 않으면 토라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단발머리 여자의 말을 정정하지 않으면 토라질 거라는 경고까지 하면서.
메시지로 보내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후우….”
“신경 쓰지 말게.”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지 않고 내뱉는다.
옆에 서 있던 최희석이 말했다.
돌아보니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곳에 투덕거림이나 하러 온 건 아니지 않나. 일하러 온 거니, 일만 하면 되네. 저런 말에 일일이 맞장구쳐줄 필요는 없어.”
“뭐, 그렇기는 하죠….”
“음?”
아무래도 착각한 것 같다.
그는 내가 단발머리 여자 때문에 한숨을 내쉰 줄 안 모양이다.
한숨을 내쉰 건 오로지 새싹이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토라질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합니다!] [토라질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합니다!] [토라질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합니다!] [토라질 것이라고….]새싹이의 경고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이지, 새싹이가 목소리로 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목소리로 전했다면 지금쯤 엄청 시끄러웠을 게 분명하다.
“…괜찮습니다.”
“응? 설마 그녀에게 맞장구쳐줄 셈인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
최희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야 할 것 같다”라는 말에서 내 의지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무기도 그것을 느꼈는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혹시…?」
“…….”
무기는 ‘세계수 때문이냐’고 묻지 않았다.
바로 옆에 최희석이 서 있는 탓이다.
나 또한 새싹이를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스르륵.
무기가 곧바로 내 목에서 떨어졌다.
앞의 난간으로 건너가더니 몸을 칭칭 감는다.
난간의 창살에 몸을 감은 무기의 모습은 마치 성서에 나오는 놋뱀처럼 보였다.
기도라도 드려야 할 것 같은 모습이다.
[어린나무가 관리인의 결정에 흡족해합니다.]새싹이의 경고 메시지가 드디어 끝났다.
내가 지금 갓난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아니, 싹 틔운 지 이제 겨우 반년 정도 됐으니 애가 맞긴 한가?
새싹아.
대신 한 번만이다.
다음엔 토라진다고 해도 안 들어줄 거야.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좋아.
새싹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는데, 최희석이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붙을 생각인가?”
“그런데요. 아…. 혹시 문제가 됩니까?”
“흠….”
최희석은 손으로 턱을 쓸었다.
그의 말대로 이곳엔 일하러 온 거였다.
딴짓하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딱 3초가 지나고 결정을 내렸다.
“괜찮겠지…. 내가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일이니.”
“오.”
“대신 힘 조절만 좀 해주게. 깔려 죽고 싶진 않으니.”
“하하, 그러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산 밑에 지어진 건물이었지.
건물 안이라서 지하라는 사실을 깜빡했네.
솔라빔이나 세계수 휘두르기 같은 스킬은 쓰지 말아야겠다.
애초에 쓸 생각도 없긴 했지만.
“좋았어! 그렇게 나와야지!”
짜악!
채정연이 소리치며 손뼉을 쳤다.
손뼉을 친 두 손을 마구 문지르다가 최희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저씨, 내 무기들 내놔.”
“뭐?”
“어서. 그것들 비싸게 주고 산 거라고.”
“…….”
최희석이 채정연을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한진환을 바라보던 눈빛과 비슷했다.
즉, 빡친 거다.
아저씨라고 해서 화가 난 걸까.
건방지게 반말해서 화가 난 걸까.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기다리게.”
그는 마법 주머니를 열었다.
불쾌함을 드러내는 눈빛과는 달리 그의 태도는 어른스러웠다.
점잖게 마법 주머니에서 무기들을 꺼내 채정연에게 차례대로 던진다.
특색이 없어 보이는 롱소드 한 자루와 하얗고 검은 단검 두 자루다.
두 자루의 단검은 세트인 듯 형태가 같기도 했다.
채정연이 허리춤에 무기를 착용하며 훈련실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가운데에 정좌하고 있던 김서준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채정연에게 자리를 비켜주면서 뒤쪽에 멍하니 누워 있던 머리 긴 남자를 질질 끌고 갔다.
서로 쳐다보지도 않기에 친하지 않은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은가?
“어이, 내려오지 않고 뭐해?”
훈련실 한가운데에 선 채정연이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롱소드를 뽑아 든 채였다.
그야말로 싸울 생각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귀찮게 됐지?
[어린나무가 흡족하게 관리인을 바라봅니다.]…그래.
우리 새싹이가 만족스러우면 된 거지, 뭐.
손을 뻗어 난간을 붙잡고 바로 난간을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