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66
제267화
훈련실엔 총 10명의 남녀가 있었다.
그중 세 남녀만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절해 있었다.
최희석에게 문제아라고 불린 김서준과 채정연과 황시열이다.
김서준은 정좌하고 앉아 명상하고 있었는데, 채정연이 그 옆에서 명상하는 척을 하며 그를 훔쳐봤다.
황시열은 두 사람 앞에 대 자로 뻗어 누워 있었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가 김서준을 불렀다.
“김 형.”
“…….”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김서준이 천천히 눈을 뜨며 대답했다.
그를 훔쳐보던 채정연이 고개를 홱 돌려 피했다.
황시열이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왜 백 형이랑 안 싸운 거야? 질 싸움…. 그런 거짓말은 됐고.”
“…처음엔 그랬지. 근데 진심이 됐어. 그건 못 이겨.”
“헤에…. 순순히 인정하네?”
“마주 보고 나서 깨달았거든. 그건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런 걸 건드리다니, 크라우드라는 놈들이 불쌍할 지경이야.”
“하지만… 크라우드도 인간은 아닌 것 같던데요.”
채정연이 끼어들었다.
황시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그놈들 정체가 마족의 권속? 그런 거라며. 우릴 괴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고.”
“내 몸속에 그런 끔찍한 에너지가 담겨 있을 줄이야….”
“그러니까. 놈들도 절대로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구?”
“…그렇기는 하지.”
“그렇다면-”
“그런데도 난 크라우드 놈들이 더 불쌍해.”
김서준은 단언했다.
단호함마저 느껴져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죠?”
“백도운은 A+급 헌터니까요.”
“아….”
채정연은 탄성을 흘렸다.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A+급 헌터.
그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헌터 중 가장 강한 6인의 헌터에 포함된다는 뜻이었다.
4개월 전까지만 해도 5인의 헌터라고 지칭됐었지만….
“또 그 소리….”
황시열은 그녀와 달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와 김서준은 그를 바라봤다.
그는 지루한 얼굴로 김서준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알아, 김 형.”
“뭘?”
“세상엔 비공식 A+급들이 있다는 거.”
“……!”
“뭐,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세상에 비공식 A+급이 있다니?”
“뭐야, 누님은 몰랐어?”
“저 말이 진짜예요?”
“네. 정말입니다.”
“말도 안 돼….”
“기밀이니까 다른 데서 얘기하지 마십시오.”
“히히. 내가 알 정도니까 알 사람들은 다 알 테지만.”
“원래 이런 건 그 알 사람들만 알면 되는 거야.”
“아. 그런 거야…?”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원래 하던 얘기로 되돌아왔다.
“비공식 A+급들이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없다고?”
“그들이 있어도 백도운이 세상에서 여섯 번째로 강한 인간이니까.”
“…백 형이, 비공식 A+급을 통틀어 서도 더 강하다는 거야?”
“그런 거지.”
“…….”
황시열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백도운이 강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적어도 그가 평생을 수련에 힘쓴다고 해도 도운을 쓰러뜨리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공식 A+급이라고 불리는 7명보다도 더 강하다는 말은 쉬이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 7명 또한 그가 평생 수련해도 쓰러뜨릴 수 없는 존재들일 테니.
그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또 질문.”
“뭔데?”
“그걸 김 형이 어떻게 확신해?”
“마주한 적이 있으니까.”
“……!”
“비공식 A+급과 만난 적이 있다고요?”
“네. 한 번뿐이었지만요.”
김서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태도에 오히려 황시열이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가 김서준에게 물었다.
“그놈들 전부 제정신 아니잖아! 그런 놈 중 한 명과 만났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운이 좋아서.”
“운이 나빴다면 죽었을 거란 소리야?”
“…내가 싸움 자체를 포기한 건 오늘로 두 번째야.”
“백도운과 예전에 만났다는 비공식 A+급…?”
“맞아. 내가 만난 놈은 ‘질투’라고 불리는 놈이었는데,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싸움을 포기해야 했지.”
“아깝게 왜 그랬어?”
“그 싸움의 결말은 내 죽음으로 귀결될 테니까.”
그리 말하며 그는 황시열을 똑바로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한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그들이 웃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채정연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시열이 물었다.
“그럼 백 형도 그랬어?”
“아니…. 죽음이 문제가 아니었어.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태고 때부터 자라온 고목(古木)을 보는 것 같다 해야 하나….”
“뭔 소리래?”
“내가 뭘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지구에 주먹질하는 것처럼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느낌이었어. 스승님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은 안 했었는데….”
“아아. 나 알 것 같아. 그 실드 진짜 끔찍했어요.”
채정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김서준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가 말한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은 백도운의 실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무껍질 형태의 실드는 대단했으나 김서준은 실드보다도 백도운 그 자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나 굳이 더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누님은 좋겠다. 백 형 실드를 때려보기라도 했으니….”
“근데 넌 왜 아까부터 나한테 누님이라고 불러? 너 몇 살인데.”
“나? 24살.”
“…아, 그래.”
“누님은?”
“…….”
“누님? 몇 살-”
“역시…. 자네들은 괜찮아 보이는군.”
채정연에게 나이를 묻는 황시열의 목소리가 파묻혔다.
최희석이 훈련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전히 기절해 있는 모범생들을 훑어본 그는 이어 김서준 일행을 한 명씩 훑어보았다.
그녀가 뽐내듯 머리카락을 넘기며 대답했다.
“흥! 당연하지. 그런 놈들과 비교하지 마.”
“기절한 주제에 말은 잘하네. 누님 안 쪽팔려? 백 형한테 살려달라고 빌기까지 해놓고선.”
“시, 시끄러워! 아픈 걸 어떡해! 기절한 것도 잠깐이었고! 저놈들처럼 지금도 기절해 있진 않잖아!”
“한 건 한 거지.”
“그걸 받으면서 웃어댄 네가 이상한 거거든! 서준 씨조차 고통스러워했다고! 그쵸? 서준 씨도 아팠죠?”
“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거봐!”
“그래? 후후후…. 난 신선한 경험이어서 좋았는데….”
그리 중얼거리는 황시열의 눈은 몽롱했다.
약에 취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하면 편견인가….
최희석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옆에 있던 채정연의 머릿속엔 ‘미친 새끼’라는 욕만 떠올랐다.
김서준이 질문을 던졌다.
“도운 씨는 돌아갔습니까?”
“방금 돌아갔네. 흠….”
“왜 그러십니까?”
“도운이 이번 일에 대한 보수로 이상한 걸 원해서 말이야….”
“무엇을 원했는데요?”
“그게….”
최희석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들 앞에서 말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운이 보수로서 달라고 한 것을 주기로 확정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돌렸다.
“도운 얘긴 됐고.”
딱…!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커다란 손가락만큼이나 큰 소리가 훈련실에 울려 퍼졌다.
“자네들은 좀 어떤가? 몸속의 폭탄이 사라진 기분이?”
“가벼워! 좋아!”
통통…!
황시열이 슬라임처럼 제자리 뛰기를 하며 대답했다.
그의 몸은 본인이 말한 대로 정말 가벼워 보였다.
채정연도 등을 곧게 펴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최희석은 마지막으로 김서준을 바라봤다.
“…….”
그의 얼굴은 앞의 두 사람과 달리 심란해 보였다.
최희석이 팔짱을 끼며 그를 바라봤다.
깁스한 팔 때문에 팔짱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민이 있는 얼굴이로군.”
“…그렇습니다.”
“노력 없이 얻게 된 힘이기 때문이라서 그런가?”
“……!”
김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놀란 눈치였다.
최희석은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가 친구 제자의 마음도 못 알아차릴 것 같나?”
“그 친구분께선 제자의 마음을 끝까지 못 알아차리셨는데요.”
“허, 흠, 흠!”
당황스럽게 헛기침을 했다.
그걸 보고 김서준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노린 건 아니었으나 그가 웃는 것을 보고 최희석은 흡족한 얼굴을 지었다.
최희석은 아까와 같이 부드럽지만 조금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바이올렛 바이올런스 같은 것에 빠져 버린 건 분명 잘못이었네.”
“…….”
“하지만. 그 때문에 변신 능력을 얻어 강해질 수 있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그렇긴 합니다만…. 노력 없이 얻게 된 힘인지라….”
“그러면 뭐 어떤가?”
“……예?”
김서준은 깜짝 놀라 최희석을 바라봤다.
최희석이 “그러면 뭐 어떠냐”라는 식의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최희석은 언제나 노력을 강조하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노력 없이 얻게 된 이 힘을 부정할 줄 알았다.
툭.
최희석은 손을 뻗어 김서준의 가슴팍을 살살 쳤다.
“방법이야 어쨌든 이제 그건 자네 힘이야. 그걸 어떻게 쓰는지는 자네에게 달렸지.”
“…….”
“그러니 그 행운에 감사하도록 하게.”
“감사…입니까?”
“그래. 자네가 진심으로 감사한다면, 최소한 아무 대가도 없이 얻게 된 그 힘에 휘둘리지는 않겠지.”
그러면서 최희석은 황시열을 바라봤다.
힘에 휘둘린 대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황시열은 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이 제대로 불리지 않아 입에서는 자꾸 바람 빠지는 소리만 휘휘 났다.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대표인 채정연도 “나, 날씨가 좋네…”라며 듣지 못한 척 딴청을 피웠다.
“…….”
“…내 말이 그리 와닿지 않나 보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김서준은 고개를 쳐들었다.
훈련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숙 덕분에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았습니다.”
“그게 뭔가?”
“길드를 만들 겁니다. 바바와 브이피를 복용해 변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이들로 구성된.”
“……!”
김서준이 황시열을 바라봤다.
황시열은 흠칫 놀라며 최희석 때처럼 다시 시선을 피했다.
또 불지도 휘파람을 자꾸만 휘휘 불어댔다.
“분명, 그 힘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나올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실한 건 여전하군.”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김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어 최희석의 말이 틀렸음을 짚었다.
“제가 예전처럼 성실했다면, 바이올렛 바이올런스 같은 걸 복용하지도 않았겠죠.”
“그건…, 아니. 말해봐야 소용없겠군.”
“…….”
“그런데 그들을 한데 모을 수는 있겠나? 저들을 모범생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자네들에 비하면, 이란 뜻이었어. 저들도 자네들처럼 한 성질 하는 이들이야.”
“상관없습니다. 할 수 있으니까요.”
“단언하는군그래?”
“네. 전 김서준이니까요.”
“그런가….”
김서준은 흡족한 얼굴의 최희석에게서 시선을 뗐다.
황시열과 채정연을 바라보자, 두 사람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못 부는 휘파람을 휘휘 불어대지도 않았고, 헛소리하며 딴청을 피우지도 않았다.
“시열. 정연 씨. 나와 함께 길드를 만듭시다.”
“좋아!”
“나도요.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시열, 네가 우리 길드의 부 길마를 맡아줘.”
“내가? 누님은? 나이로 따지면 누님이 해야 맞지 않나?”
“난 괜찮아. 자리 같은 거 앉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나이 얘기하지 마라. 죽는다, 진짜.”
콩!
채정연이 황시열의 정수리에 꿀밤을 때렸다.
그는 얻어맞았는데도 키득키득 웃었다.
웃는 얼굴로 김서준을 바라본다.
“좋아. 부 길마 맡을 게. 대신.”
“조건이 있는 거야?”
“응. 나랑 싸우자, 김 형.”
“……!”
김서준의 눈이 커진다.
황시열의 입에서 “나랑 싸우자”라는 말이 나올 줄 몰랐다.
그는 김서준의 속마음을 완벽하게 알아차렸었다.
“…괜찮겠어? 날 오해하고 있었으면서.”
“그건 오해가 아니었어, 김 형.”
“…….”
“내 눈은 옹이구멍이 아니라구.”
“그렇다면 어째서 싸우자는 거야?”
“옹이구멍 아니니까.”
“……!”
김서준은 황시열이 싸우자고 말하는 바를 깨달았다.
즉.
황시열의 말은 이런 뜻이었다.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김서준의 눈에는 살의가 담겨 있지 않는다는 것.
통통…!
황시열이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싸우자, 김 형.”
그리 말하며 해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