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93
제294화
온 마나가 두 발을 통해 땅으로 흘러든다.
땅으로 흐른 마나는 눈앞에서 푸른 이파리들이 되어 솟구쳐올랐다.
검은 빛줄기를 뿜어내던 발사장치를 날려 보내며 상승한 이파리들이 천천히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모이고 모여 나무 한 그루가 된다.
웬만한 성체 나무보다도 큰 나무는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 어린나무 형태를 하고 있었다.
“와아….”
누군가 감탄을 흘렸다.
감탄이 주변으로 퍼지며 다른 이들의 감탄을 끌어낸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새싹이의 모습을 보고 누가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살랑입니다.]쏴아아…!
새싹이의 나뭇가지가 살랑이자 파도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푸른 마나가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그와 동시에 하늘을 검게 채워나가던 마족의 힘이 사라졌다.
또 날아갔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친 발사장치에 초록의 풀이 자라나 뒤덮었다.
푸! 푸쉭…!
이내 발사장치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윙윙거리며 가동하던 소리도 멈췄다.
장치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부품이 고장 난 것이 분명했다.
[어린나무는 이제 안전하다고 전합니다.] [이곳 백약이오름을 중심으로 모든 혐오스러운 기운을 정화했다고 설명합니다.] [서둘렀기에 마족의 권속처럼 변태화를 쓰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좋아.
수고했어, 새싹아.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혐오스러운 기운을 정화할 수 있어 좋았다고 전합니다.]쏴아아….
파도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마나가 흩뿌려졌다.
그럴 때마다 백약이오름은 초록의 풀숲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자. 끝.”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서인철을 포함한 녀석들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위로 올라간 눈동자는 내가 아니라 새싹이를 향했다.
날 쳐다보고 있지 않은데도 평소처럼 짜증이 나지 않는 건 역시 새싹이 덕분이겠지?
“너, 정말… 세계수 관리인이었냐….”
서인철이 중얼거렸다.
설마 지금까지 못 믿었던 건가?
지금껏 크라우드와 싸운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등신 보듯이 쳐다보지 말고.”
“아, 실례.”
“알고는 있었지. 있었는데, 실감을 못 했어.”
“아아.”
그런 거라면 이해한다.
녀석들에게 말한 거라곤 [세계수 키우기]라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세계수를 키워냈더니 관리인이 됐다고 말한 게 다였다.
나라도 바로 실감하지 못할 거다.
처음 말했을 때 태천이조차 “드디어 미친 건가.”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도희도 비슷하게 “지금이라도 정신 병원에 데려가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했었고….
언젠가 내가 미칠 거로 생각했다는 게 정말이지 괘씸하다니까.
[어린나무가 폭식이 숨은 위치를 발견했다고 전합니다.]“어디야?”
“뜬금없이 뭐가?”
“너한테 물은 거 아니야. 새싹이가 폭식 위치를 발견했대.”
“어, 그, 그렇구나….”
서인철이 목을 긁적였다.
갑자기 왜 당황하는 걸까?
알 수 없었지만, 녀석에게서 시선을 떼고 새싹이가 보내온 메시지창을 읽었다.
백록담?
거긴 지금 도희가 있을 텐데?
빛의 성역을 쓰기 위해서….
“아…. 이런 멍청이.”
탁!
이마를 세게 때린다.
왜 지금껏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도희는 빛의 성역을 쓰기 위해서 제주도 가운데에 있는 백록담으로 가길 원했었다.
그렇다면 폭식도 같은 이유로 그곳을 원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지금 바로 백록담으로 가야겠어.”
“백록담? 전망대랑 시청엔 안 들러? 거기도 발사장치가 있는데?”
“새싹이가 폭식이 그곳에 숨어 있었대.”
“뭐? 그곳엔 도희가 있잖아!”
“그러니까 바로 가야겠다는 거지. 이현욱.”
“…….”
이현욱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 건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어서다.
한번 다녀온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순간이동 마법을.
***
꼴깍꼴깍.
도희는 활력 포션을 마시며 검은 구체를 바라봤다.
푸른 하늘에 점처럼 떠 있는 그것엔 지상욱이 봉인돼 있었다.
「관리인 동생. 무사한가?」
무기가 빠르게 날아오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
백록담에서 폭식의 마나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무사해요.”
「…내가 느낀 건 봉인 마법이었나.」
“네. 오라버니의 의동생을 자처하는 남자가 대신 봉인됐어요. 이름이 지상욱…이었던가?”
「아아. 그 인간이로군.」
“알아요?”
「알고말고. 나의 귀한 비상식량이니.」
“…농담이죠?”
「…….」
무기는 빙긋 웃기만 했다.
거기서 웃으면 농담이 아닌 것 같잖아요.
도희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른 말을 물었다.
“탐지 결과는 어땠어요?”
「남쪽엔 아무것도 없더군. 오히려 백록담에서 강한 힘이 느껴져 서둘러 돌아온 참이었다.」
“아아…. 그랬군요.”
도희는 다시 검은 구체를 바라봤다.
무기가 느꼈다는 강한 힘은 저 봉인 마법이 분명했다.
“제주도에 크라우드는 없는 게 확실하네요.”
「남은 건 폭식뿐이지.」
“오라버니가 알맞게 도착했네요.”
도희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태양을 가렸던 검은 결계는 온데간데없어져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 만든 것은 도운의 아르카가 뿜어낸 마나 칼날이었다.
어째서 칼날이 몇백 미터나 됐던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문제는 폭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거지만요….”
「……음?」
무기가 머리를 홱 돌렸다.
그는 한낮의 하늘을 반사하는 푸른 호수를 바라봤다.
도희가 그를 따라 바라봤다.
“왜 그래요…?”
「이런 멍청한….」
“무기 씨?”
「폭식을 찾았다, 관리인 동생이여.」
“네…?”
「아니.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는 게 옳겠군.」
빠직…! 빠지직!
무기가 버스트 모드를 썼다.
푸른 비늘에서 벼락이 튀었다.
「성역의 크기를 줄이도록. 더는 제주도 전체를 덮을 필요가 없으니.」
“네…!”
도희는 바로 빛의 성역을 줄였다.
무기의 말마따나 유일하게 남은 적이 이곳에 있다면 크게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제주도 전체를 덮었던 빛의 마법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 순간, 푸른 호수가 거세게 요동쳤다.
잔잔했던 수면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었다.
“설마, 지금까지 저곳에…?”
「그 설마다. 호수 지하에 박혀 있어 몰랐던 것이지.」
“보조할게요.”
「음….」
무기는 침음을 흘렸다.
호수 밑바닥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마나의 크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혼자서 싸운다면 모를까.
관리인 동생과 다른 이들을 지키며 싸워서는 이길 수 없었다.
「관리인 동생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군.」
“네?”
「지금 당장 저 녀석들을 데리고 떠나도록.」
“아….”
도희는 금세 무기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김재식 일행처럼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해서,
“…미안해요.”
그녀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비행 마법을 써서 김재식 일행에게로 날아갔다.
물론 빛의 성역은 유지한 채였다.
도희는 김재식 일행을 허공으로 띄웠다.
그들은 그녀의 행동에 당황했으나 왜 그러는 거냐고 묻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물을 수가 없었다.
도희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기만을 쳐다봤다.
「…….」
무기도 그녀처럼 한 곳만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닿은 백록담의 소용돌이에서 곧 삐쩍 마른 남자가 올라왔다.
지금 당장 아사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남자는 에리크였다.
물론, 세간엔 이름보다도 폭식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알려져 있었다.
완전히 소용돌이 위로 올라온 그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배고파….”
그리 말하는 그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울릴 때마다 폭식은 발을 내디뎠다.
허공을 밟으며 무기에게로 걸어갔다.
“어떻게 할 것이냐?”
「……?」
“오늘 밤…. 나는 ‘칠죄종’ 중에서 최강이 될 수 있었다. 그걸, 너희가 전부 엉망으로 만들었어. 어떻게 보상할 거냐…?”
「웃기는 놈이군. 보상 같은 걸 할 것 같으냐?」
“해야지. 살고 싶으면.”
「네놈 따위에게 그럴 재주는 있더냐?」
“그래, 그래. 산 채로 잡아먹히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보자꾸나. 푸른 뱀아.”
「그거 기대되는군.」
“…….”
「…….」
무기와 폭식은 서로를 바라봤다.
싸움이 시작하기에 앞서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들은 방금까지 서로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지만, 실력 자체는 인정하고 있었다.
둘 중 먼저 움직인 건 파악을 끝낸 폭식이었다.
쾅…!
폭식이 움직이자마자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
폭식은 오른손으로 벼락을 막아냈다.
그 탓에 탄내가 조금 풍겼지만 그뿐이었다.
손에 붙들린 벼락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이어 폭식이 다음 행동을 취했다.
“우걱우걱…!”
제 오른손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오독오독.
손가락뼈 마디마디까지 알뜰살뜰 씹어먹었다.
손을 전부 먹어 치운 폭식이 이내 멈췄다.
흰 뼈가 훤히 드러난 손목에 새로운 근육과 피부가 붙기 시작했다.
“…이거 실례.”
「…….」
“고기 탄내가 너무 좋아서 말이야….”
「이렇게 나사 빠진 놈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군.」
무기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폭식을 바라봤다.
폭식은 “실례”라고 말한 사람답지 않게 제 오른손을 바라봤다.
혀로 입술을 핥아대는 것이 또 오른손을 씹어먹고 싶은 듯했다.
「제대로 싸울 생각이 있긴 한 것이냐?」
“있기야 하지. 그런데… 너로서는 역부족이야.”
「허…. 누가 보면 폭식(暴食)이 아니라 오만(傲慢)인 줄 알겠구나.」
“오만, 이 아니다….”
「어떻게 봐도 오만으로 보인다만.」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같나? 백도운이 베어낸 그 결계가 내가 그간 준비한 전부인 것 같으냔 말이다.”
그리 말하는 것과 동시에 폭식의 등 뒤에서 커다란 입이 나타났다.
근육이 전혀 붙어 있지 않은 뼈로 된 입은 다물어져 있었다.
꽝…!
무기가 곧바로 폭식과 등 뒤의 입을 향해 벼락을 떨어뜨렸다.
이번엔 한차례로 끝나지 않고 장맛비처럼 계속 이어나갔다.
1분 정도 내리쳤을까?
폭식의 온몸이 다 타버려 살갗이 전혀 남지 않았다.
살갗 아래의 빈약한 근육만 남게 되어 마치 언데드 몬스터 구울을 연상시켰다.
반면, 등 뒤의 커다란 입은 멀쩡했다.
쩌어억….
커다란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동시에 입속에서 검은 혓바닥이 뱀처럼 구불거리며 튀어나왔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검은 결계에서 튀어나왔던 촉수처럼 여러 개였다.
「……!」
무기가 빠르게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검은 혓바닥들이 무슨 힘을 품고 있을지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도운의 세계수의 뿌리처럼 상대의 에너지를 빼앗는 힘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빈약한 근육만 남은 폭식이 말했다.
꽝꽝 떨어지는 벼락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정확히 들려왔다.
“A+급 놈들을 잡아먹기 위해 애써왔다…. 그중엔, 뇌제 한진환도 포함되어 있었지….”
「호오….」
“푸른 뱀…. 네가 한진환보다 강한가?”
「그건 나도 모르겠군. 나와 그는 우열(優劣)을 가릴 수 없으니.」
“더 강하지 않다면, 넌 날 이길 수 없어.”
「흠….」
무기가 버스트 모드를 풀었다.
그러자 줄곧 내리치던 번개들도 사라졌다.
폭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아듣고 포기한 거냐?”
「그런 게 아니다.」
“……?”
「네놈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가르쳐주려는 것뿐.」
“뭘 말이냐?”
「네놈 상대는 내가 아니다, 인간.」
“무슨…-”
폭식의 말을 끊어내듯 빛이 뿜어졌다.
그는 그 마법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순간이동 마법.
지금 이 순간, 이곳 백록담으로 올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백도운….”
도운이 백록담에 도착했다.
그는 폭식을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고 싶었던 친구와 만난 듯한 얼굴이었다.
폭식은 도운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갑다, 폭식.”
“…….”
반가워하는 도운과 달리 폭식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눈앞에 도운이 서 있는 게 못마땅했다.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가 강원도에 준비해뒀던 봉인 마법은 분명 6시간 동안 유지될 터였다.
“…….”
“…….”
도운과 폭식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와 무기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역량을 파악하는 시간을,
뚜벅뚜벅.
-갖지 않았다.
도운은 곧장 앞으로 걸었다.
역량 파악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