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0
제30화
우리는 가족회의를 위해 서울 집으로 올라왔다.
개미굴 관련 일은 한재임에게 일임했고, 재식은 연락처를 교환한 후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족회의는 바로 시작되었다.
주제는 ‘백도운, 백운천으로 돌아오지 않고 솔로 헌터 생활을 해도 괜찮은가?’였다.
나는 도희와 태천을 설득시키기 위해 스마트폰에 세계수가 자라났다는 사실을 밝혔다.
업적으로 세계수의 열매를 얻게 되어 먹었다는 사실도.
그 말을 듣고 나서 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드디어 미친 건가.”
“지금이라도 정신 병원에 데려가는 게 좋겠어요.”
“그래, 그러자.”
“바로 알아볼게요.”
“…….”
미쳤나?
그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했다.
드디어 미쳤나?
그런 반응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말하는 거 보니 내가 언젠가는 미칠 거로 생각하긴 했었나 보지?
이거 아주 괘씸한 녀석들이네.
한숨을 내쉬며 둘에게 스마트폰을 꺼내 세계수를 보여 주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무리 말해 봤자 직접 보여 주는 게 더 빠르다.
태천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이거 네가 하던 스마트폰 게임이잖아. 뭐, 나무가 진짜 자라나긴 했네.”
“그래. 그게 바로 세계수야.”
“…….”
믿지 못하겠는 얼굴로 날 쳐다본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태천이 옆에 앉아 있던 도희도 스마트폰 속에 자라난 세계수 새싹을 들여다봤다.
“어머, 귀여워라.”
새싹이 귀엽다는 소리를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팔불출이 된 기분인걸?
“어? 마나가….”
화면을 톡 두드린 도희가 당황하며 손가락을 뗐다.
아마 자신의 마나가 스마트폰 속으로 옮겨가서 당황한 듯했다.
당황한 건 새싹이도 마찬가지다. 메시지창을 보내왔다.
[세계수 새싹이 너무나 순수한 빛의 마나의 소유자에게 감탄을 보냅니다.]“빛의 마나…?”
“오라버니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아, 그게-”
“설마, 내 마나를 느낀 거예요?”
새싹이가 말해 줬다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도희는 내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내 마나의 성질을 느끼다니, 대단해….”
중얼거리더니 생각에 빠졌다.
잘 됐다 싶어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날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어쨌든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내가 검지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자 도희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 새싹에게 마나를 전달해 주는 거예요?”
“응.”
“허! 진짜, 정말로 그게 세계수인 거야?”
“그렇대도. 이게 그 증거고.”
화면을 강하게 톡톡 두드렸다.
마나가 스마트폰 속의 새싹이에게로 전달됐다.
태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 그건 대체 왜 스마트폰 속에 자라난 거냐?”
“그건… 모르겠는데?”
그러고 보니,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진짜 세계수를 키우는 이 게임은 왜 스마트폰 게임 목록에 있었던 걸까?
이런 똥겜을 도대체 왜 만들었냐고 따지려 게임 제작사를 찾아 본 적도 있었다.
어떠한 관련 정보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게임 어플에 남겨진 ‘PG Corporation’이라는 이름만 확인할 수 있었다.
PG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그 의문만 남겼었다.
“음, 주제는 세계수가 아니니까 다음에 생각해 보자.”
“아, 참. 그렇지.”
“…난 반대예요. 오라버니가 다시 헌터를 하는 건 찬성. 근데 왜 길드를 나가요? 우리랑 함께하면 되지.”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태천이한테도 말했던 건데, 너희와 다시 파티를 맺을 생각은-”
“파티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솔로 헌터? 좋아요. 그렇게 해요. 누가 그거 반대한대요? 단, 백운천의 백도운으로.”
“그러기 싫어.”
“그러니까 왜요.”
내가 백운천에서 활동하면 도희와 태천이가 가만 내버려 둘 리 없다.
무기든 아이템이든 최고의 지원을 해 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 뻔하다.
하나뿐인 오빠이자 친구인 내가 너무나도 소중하니까.
또 그들의 마음에 담긴 부채감을 지우기 위해서.
둘은 2년 전 그날 둘이 도망칠 수 있도록 혼자 끝까지 남아 싸운 내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오빠가 동생을 살리고자, 친구가 친구를 구하고자 목숨을 건 거다.
그것에 부채감을 느끼는데 내가 어떻게 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뭘 노리고 그리 행동했던 것도 아니다.
불편해서 절대 못 받는다.
더군다나 그렇게 성장하는 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다.
나는 나의 힘으로 두 사람 옆으로 가고 싶다.
“너희도 내 도움 없이 성장했으니까 나도 그러고 싶-”
“무슨 소리야? 네 도움이 없었다니, 네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줬는데!”
“맞아요. 오라버니가 없었으면 우린 2년 만에 A급 헌터가 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딴 생각 하지도 마!”
음….
내가 없었으면 A급 헌터가 될 수 없었을 거다?
그리 말해 줘서 고맙긴 하지만….
두 사람이 날 동생이자 친구로서 좋게 봐주는 것일 뿐이다.
나는 2년 동안 정말로 한 게 없었다.
해체업자 아저씨들을 관리하고, 세계수 키우기를 하고.
그게 다다.
“해 준 게 많기는? 그래서 내가 낙하산이나 등골 브레이커 소리를 듣고 있냐?”
그렇다.
그런 이유로 현실의 평가는 정반대다.
괜히 낙하산이나 등골 브레이커 같은 거로 불리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의 파티원들도 날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던 그들은 과거의 내가 얼마나 몰상식한 놈이었는지도 안다.
아주 잘….
“뭘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떠드는 소리 따위 신경 쓰지 마요!”
“그래! 우리 길드에 해체업자 아저씨들 데려온 것도 넌데, 한 게 없긴 뭐가-”
“아, 정말!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어!”
역시 2대1이 되니 설득하기 힘들다.
지금은 백운천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뒤에서 도망칠까?
지구 반대편인 남미 쪽으로 튀면 아무리 둘이라도 쉽게 못 쫓아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태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희야, 이렇게 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도운이가 괜히 백운천의 ‘운(雲)’을 맡고 있겠냐.”
“알아요. 아는데…!”
뭔 소리래?
갑자기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천의 말마따나 내가 백운천에서 운을 담당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그냥 우리의 이름을 땄을 뿐이다.
백도희의 백.
백도운의 운.
이태천의 천.
거기에 무슨 역할이 있거나 하지는 않다.
그러나 도희는 대뜸,
“혼자 하세요.”
라고 말해 왔다.
뭐야? 무섭게 갑자기 왜 너희끼리 납득하고 그래?
좀 떨떠름하지만, 일단 허락해 줬으니 된 건가?
도희가 지팡이 끝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갑자기 지팡이는 왜 내게 겨누는 걸까.
“실드 발동해 볼래요?”
“켜 뒀는데?”
“그때부터 계속 발동해 둔 거예요?”
“응.”
“정말 웬만한 공격은 다 막겠네요.”
그러는 도희의 지팡이에서 하얀 마나가 날 향해 쏘아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랐지만, 나무껍질을 켜 둔 채여서 가만히 있었다.
콩!
“…아파?”
흰 마나가 내 이마를 콩 때렸다.
꿀밤을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러다가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며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이거 설마,
“힐링이에요.”
“진짜로? 힐링이 왜 아파?”
힐링으로 아프게 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지?
아니, 그보다, 도희는 대체 힐링으로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기술을 왜 터득한 걸까.
…나랑 태천이 때문인가?
“실드만 믿다가 큰코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요. 그걸 우회하고 오라버니만 공격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니까.”
“알았어. 그래도 걱정하지는 마. 나무껍질이 뚫려도-”
“걱정돼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오라버니는 작정하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인데!”
쩝.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짓이 있다 보니 할 말이 없었다.
작정하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옳은 말이고.
일단, 안심시켜 주어야겠다.
“태천이한테 들었겠지만, 나 이젠 웬만한 상처엔 끄떡도 안 해. 머리가 박살 나도-”
“머리가, 박살…?”
“어?”
도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날 바라봤다.
마치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고개를 돌려 태천이를 보자 그는 인상을 팍 구긴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그날 일 말 안 했구나.
“멍청이, 네가 비밀로 해 달라며!”
“어머? 태천 오라버니도 알고 있었나 봐요?”
“…….”
“가족회의는 방금 끝났어요.”
도희는 얼음보다도 차가운 눈빛으로 우릴 노려봤다.
후, 여기서 또다시 가족회의를 제안하면 무지하게 화내겠지?
할 수 없다.
여기선 그냥 도희의 분노를 받아들여야겠다.
“살려는 드릴게.”
제발 그래 주라….
***
목요일 날이 밝자마자 재이네 대장간을 찾았다.
너무 이르게 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서 빨리 장비들을 보고 싶었다.
문에는 여전히 ‘작업 中, 주방용품은 알아서 가져가세요’라는 푯말이 달려 있었다.
설마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 그날처럼 유재이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쪽에서부터 망치질하는 소리 따위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밤새 작업하다가 잠이라도 든 건가 싶어 조심히 작업실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라?”
유재이는 작업실에도 없었다.
“또 계란이라도 사러 나간 건가?”
혼잣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는 없더라도 장비는 만들어 놨을 테니 먼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작업실 한가운데에 내 어깨 높이까지 오는 거대한 검이 서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 검은 모양이 참 특이한 양손 검이었다.
가늘고 긴 이파리 모양에 칼자루가 거의 절반에 달했다.
날 부분에는 선을 따라 무늬가 그려져 있었는데, 마나를 주입하면 발동될 것으로 보였다.
아마 저 무늬는 왓쳐의 눈알로 새겨 넣은 것이 아닐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칼자루 부분에 메모지가 붙은 게 보였다.
메모지를 떼서 읽어 보니 아이템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아르보르 카풀루스Arbor cápŭlus(S등급), 줄여서 ‘아르카’.] [공격력 A등급, 내구도 S등급, 최대 마나 5만↑] [마나 주입 시 공격력 상승.]“아니, 이름만 달랑 적어 넣고 뭔 뜻인지 말 안 해 주면 어떡해?”
라틴어 같기는 한데, 정확하게 어느 나라 말인지는 모르겠다.
최대 마나 증가가 붙은 걸 보니, 세계수 수액도 들어간 것 같다.
아르보르 카풀루스.
너무 멋을 부린 것 같긴 하지만, 마음에 든다.
아르카라고 줄여서 부르는 것도.
아르카 옆에는 경갑이 놓여 있었다.
스켈레톤 로드에게 파손돼서 수리를 맡겼던 그것이었다.
수리하면서 개조를 한 듯 생김새가 조금 변했다.
갑옷 속에 원래 없었던 검은 천이 덧대어 있다.
검은 천은 갑옷 위쪽으로 튀어나와 머리를 덮는 후드가 되기도 했다.
아마 검은 천은 스켈레톤 로드의 그림자 망토가 아닌가 싶다.
[그림자의 눈(A등급)] [방어력 A등급, 내구도 B등급.] [그림자 밟기(A등급) – 하루 3번 자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상대 그림자에서 나올 수 있음.]그림자 밟기가 붙어 있는 걸 보니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다.
나는 그림자의 눈과 아르카를 챙겨 들고 작업실을 나왔다.
그러다가 계산대에 메모지가 놓인 걸 발견했다.
내용을 읽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메모지 위쪽에 쓰인 ‘백도운’이라는 내 이름이 눈에 띄었다.
아마 일이 있어 자리를 잠시 비우겠다는 내용을 남긴 것이겠지.
확인해 보니 내 예상이 얼추 맞아떨어졌다.
그렇다, 얼추다.
[백도운에게] [또 크라우드가 찾아왔어.] [자기들을 따라오면 아빠에 관한 정보를 가르쳐 주겠대.] [그 증거로 아빠가 쓰던 망치를 가져와서 보여 줬고.] [음. 아마 함정일 거야. 분명 그렇겠지….] [그래도 따라가려고. 정말, 정말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추신, 바보 같이 대비도 하지 않고 따라갈 수는 없으니까.] [헌터 백도운 님에게 의뢰를 부탁합니다.] [27일 자정, 유재이가 대장간으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찾으러 와 주십시오.] [의뢰 보수는, 재이네 대장간 평생 이용권… 정도면 되려나?]“…가족은 건드리면 안 되지. 가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