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03
제304화
샤워하며 아르카를 닦아낸 후 마스터 실로 내려갔다.
도희에게 말했던 대로 딱 15분 후에 도착하자 다들 놀란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런 얼굴로 날 보는 사람들은 총 여섯 명이다.
최희석 일행은 날 향해 손을 들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해왔다.
대충 인사를 나누고 나자 상석에 앉은 태천이 손을 들어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
“도운아, 여기. 이쪽으로 와서 앉아.”
“…….”
한재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을 찌푸렸다.
엄연히 부길드 마스터인 도희가 함께 있는데 옆자리에 내가 앉는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장본인인 도희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지만.
태천이 가리킨 자리에 앉자마자 최희석이 맞은편에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바로 와줘서 고맙네.”
“최 선배님이 오셨다는데, 바로 돌아와야죠.”
스마트폰을 왼손을 바꿔 든 후 그의 손을 맞잡았다.
옆에 있던 한진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진 두 눈은 ‘저 새끼가 왜 저래?’라고 묻는 듯했다.
최희석의 반응도 얼추 비슷했다.
“하하. 자네가 립서비스를 다 하고…. 오늘 즐거운 일이라도 있었나?”
“흥미로운 정보를 듣고 오는 길이긴 하죠.”
“음?”
“그보다. 현상금이라고요?”
최희석은 정보를 듣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얼버무렸다.
어차피 정부와 협회에서도 뒤쪽 세계의 정세쯤 파악하고 있을 거다.
말해 주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내겠지.
“자네가 붙잡은 폭식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지.”
내가 말할 생각이 없는 걸 알아차린 그는 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예전 이정근 때도 딱 저런 봉투로 현상금을 담아 왔었다.
건네받은 봉투가 가벼운 걸 보니 역시 저번과 똑같은 구성인 듯하다.
인증서와 현상금과 QR코드가 새겨진 종이 한 장.
“얼마입니까?”
“5000만 달러. 한화로 696억이네.”
“달러?”
“한국 협회가 아니라 세계 헌터 협회가 보내온 것이거든.”
“아아….”
생각해 보니 그렇다.
에리크는 칠죄종이라고 불리며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범죄자였으니, 그 현상금을 한국 협회가 지급할 이유는 없었다.
봉투를 그대로 도희에게 건넸다.
“자. 크리스마스 선물.”
“벌써요? 아직 한 달 넘게 남았는데요?”
“그러니까. 그때쯤이면 선물 줬다는 거 까먹고 또 줄걸?”
“후후….”
도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현상금을 챙겼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저 현상금은 백운천을 위해 쓰게 될 거다.
전국 각지의 보육원으로 퍼지든가.
최희석이 말을 이었다.
“폭식, 아니. 에리크는 무기징역으로 판결 났네.”
“무기징역? 사형이 아니라요?”
“원래는 사형이었네만…. 모든 힘을 잃은 채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더욱 큰 벌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더군.”
“아아, 과연….”
“형량은 무려 14만1078년이 나왔지.”
“와우.”
감탄이 절로 나왔다.
형량을 듣고 태천이는 휘파람까지 불었다.
14만이라….
백골이 몇 번이나 진토가 되겠는걸.
머지않아 날 후회하게 할 거라는 말은 못 지키겠어.
도희가 물었다.
“딸은요?”
“그녀도 무기징역이네.”
“무기징역이요? 하지만 그녀는-”
“나도 아네. 그녀가 폭식의 명령을 따른 것에 불과하다는 걸….”
“그렇다면….”
“어쩌겠나. 그녀에게 피해를 받은 이들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아.”
“본인도 판결에 수긍해서 항소하지 않았고…. 도와주겠다고도 해봤네만, 자신한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하더군.”
“그런가요….”
도희는 눈을 찌푸렸다.
메스트가 무기징역으로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아마 부모에게 학대받고 보육원으로 오게 된 아이들이 떠오른 게 분명하다.
할 수 없지.
도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걸 바꿔주는 수밖에.
그리 결심했을 때,
“그만둬, 백도운.”
한진환이 나를 제지했다.
뭘 그만두라는 걸까.
“…대뜸 뭘 그만두란 겁니까?”
“뭐기는. 너 탈옥시킬 셈이지? 폭식 딸.”
귀신이네.
어떻게 알았지?
“내가요?”
“시침 떼지 마라. 이미 결심한 눈이구만.”
“흠….”
부정하지 않은 탓일까?
마스터실에 있는 모두가 당황스러움과 걱정이 묻어난 얼굴들로 날 바라봤다.
그런 표정을 짓지 않은 건 한진환과 태천이뿐이다.
“도운, 정말 그럴 요량이라면 그만두게.”
“나 때문에 그래요? 난 괜찮으니까 하지 마요.”
“하지 마. 절대 하지 마. 하면 진짜 죽여 버린다.”
“이 격렬한 반응들을 보니….”
꼴깍.
도희가 침을 삼켰다.
하여간 걱정도 팔자라니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참을게. 탈옥 안 시키면 될 거 아냐.”
“…진짜요?”
“진짜.”
“진짜 진짜죠?”
“진짜 진짜.”
“나 오라버니 믿어요? 진짜 믿어요?”
“어휴. 믿어라, 좀. 내가 언제 너와의 약속을 어긴 적 있어?”
“…너무 많은데요?”
“그래. 그게 바로 나 백도운이지.”
“…….”
도희가 마른세수하듯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뭔가 포기한 것 같기도 한데….
앞서 말했듯이 탈옥시킬 생각은 정말로 관뒀다.
탈옥시키기만 할 생각은.
“푸흐흐….”
갑자기 태천이 실실 웃었다.
덕분에 날 향했던 시선들이 전부 녀석에게로 향했다.
태천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실례했습니다. 딴생각이 나서 그만….”
“…….”
도희가 아까 했던 행동을 되풀이했다.
활짝 펼친 두 손에 얼굴을 떨어뜨린 거다.
두 오라버니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어 절망스러운 모양이었다.
왠지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인걸?
최희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태천이를 보다가 천천히 물었다.
“…그래, 엘릭서는 어떻게 된 건가?”
“네? 그걸 왜 저한테 묻는 겁니까?”
“그럼 누구한테 묻나?”
“누구긴요. 그걸 제조한 사람은 홍수정이니 당연히 수정 공방에 문의를-”
“하지만 재료는 자네가 구해 주었겠지.”
“…….”
역시, 그냥 속여 넘기기엔 무리가 있었나 보다.
애초에 나와 수정 공방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니….
“대체 어떻게 구한 건가?”
“비밀입니다.”
“끄응….”
최희석은 앓는 소릴 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내가 순순히 말해 줄 거란 생각은 처음부터 안 했을 테지.
“대신 두 가지만 물어보겠네.”
“해보세요. 대답할진 모르겠지만.”
“엘릭서의 대량 생산이 가능한가?”
“아마도요?”
“그럼 판매도 가능하겠군?”
“그것도, 아마도요?”
꽉!
최희석과 안지민이 주먹을 쥐었다.
협회나 정부 차원에서 엘릭서를 사들이고 싶은 게 분명하다.
지금껏 바티칸에서만 구할 수 있었던 포션이니, 일단 구하고 나면 다른 곳에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다.
“정부에서-”
“잠깐만요. 여기에서 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음?”
“어쨌든 제조하는 사람은 수정 씨니까요.”
“아. 그렇군. 따로 자리를 만들어야겠어….”
최희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따로 만든다는 자리가 금방일 것 같다.
“일단, 내 용건은 끝났네.”
“그럼 제 차례군요.”
조용히 있던 안지민이 나섰다.
그는 차기 에이스란 말이 무색하게 지금까지 한 마디도 열지 못했다.
직속 상관인 최희석과 한진환이 있어서 그런 듯했다.
“도희한테 듣기로는 제게 돌려줄 게 있다고요?”
“네.”
“뭔데요?”
“바로 이것입니다.”
안지민은 마법 주머니에서 길쭉한 함을 꺼냈다.
예전에 헌터 협회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으로, 그걸 보고 나니 내게 돌려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톡, 달칵.
안지민이 함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열었다.
“얼씨구?”
“팔뼈…?”
“사람 팔 같은데. 아니, 뭔가 불쾌함이 느껴지는 걸 보니 스켈레톤의 팔인가?”
태천이와 도희, 한재임이 감상을 내뱉었다.
이어 세 사람은 갑자기 웬 사람 팔뼈를 꺼내나 싶은 얼굴로 안지민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불쾌함이 느껴진다니….
한재임이 날 싫어하는 건 이제 본능적인 영역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내 팔뼈야.”
“뭐라고요?”
도희가 당황해하며 내 왼팔을 바라봤다.
내 왼손은 평소처럼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톡톡 톡톡톡.
안지민에게 물었다.
“조사가 전부 끝난 겁니까?”
“네. 마법에 당해 뼈로 변이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스켈레톤의 것과 성질이 유사한 점도 발견했고요.”
“그렇군요.”
“이게, 오라버니의 팔….”
도희가 중얼거렸다.
함을 향해 두 팔을 뻗더니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뭐지?
갑자기 왜 오한이 느껴지지?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어쩐지 관리인 동생에게서 께름칙함이 느껴진다고 전합니다.]그런 게 왜 느껴지는 건데.
무섭게시리.
“도운아. 실드 안 쓰고 있었냐?”
“아니, 쓰고 있었어.”
“그런데 저렇게 됐다고? 너 대체 뭐랑 싸운 거야?”
“진화한 스켈레톤 로드.”
“홍유릉 게이트에 간 거냐?”
“어. 갔더니, 존재를 스켈레톤으로 바꾸는 마법을 쓰더라고.”
“뭐야. 위험했던 거?”
“위험하진 않았고. 공격 범위가 두 손에서 그쳤거든.”
“아아….”
“그리고.”
안지민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잡담을 나누던 나와 태천이는 그를 돌아봤다.
그는 우리의 시선이 모이자 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 협회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도운님의 왼팔 뼈는 A등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엥? A등급이요?”
“네. 그러한 이유로, 협회에서 도운 님의 왼팔 뼈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어라, 재료 취급입니까?”
“물론 저도 실례인 건 압니다만, 협회 연구팀이 꼭 부탁해서요….”
그리 말하는 안지민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례인 걸 안다는 말대로 송구스러움을 느낀 거다.
아마 연구팀이 부탁하지 않았다면 저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겠지.
하여간….
어느 조직이든 연구팀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나 보다.
“절대 안 돼요.”
도희가 함을 마법 주머니 속으로 넣으며 말했다.
애초에 나도 팔 생각은 없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지민도 예상은 했던 대답이었는지 빙긋 웃으며 순순히 물러났다.
그런데….
도희야, 왜 네 마법 주머니에 넣는 거니.
그거 내 팔인데.
[어린나무가 여전히 께름칙함이 느껴진다고 전합니다.]오한은 왜 자꾸 느껴지고.
“A등급 재료….”
한재임이 마법 주머니로 들어가는 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내 두 눈동자가 내게로 올라온다.
날 쳐다보는 눈빛이 굉장히 아니꼬운걸.
저건 절대로 이상한 말을 하려는 눈이다.
“백도운.”
“왜?”
“우리 길드원들이 뼈 갑옷 세트를 맞추는 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진심이냐?”
“물론 진심이다만.”
“네가 같이한다면 함께 해줄 의향은 있는데.”
“아쉽군….”
한재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가….
내가 한재임을 째려볼 때, 또 다른 한 씨가 최희석과 안지민을 돌아봤다.
“…그럼 두 사람 용건은 끝?”
“난 끝났네. 아까 말했듯이.”
“저도 끝났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내 차례.”
한진환이 날 돌아봤다.
이 양반은 대체 뭐 하러 온 거야?
그런 의문이 담고 바라보자 그가 질문을 던졌다.
“백도운. 너 빛의 성역 없이도 폭식과 싸워서 이길 수 있냐?”
“네. 이길 수 있는데요.”
“단언하네?”
“단언하지 못할 정도로 세지도 않던데요, 뭘.”
“흐흐…. 지구상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냐?”
“글쎄요. 칠죄종 중 최약체니까 열 손가락은 넘지 않겠어요?”
“흠….”
“……?”
한진환이 턱을 쓸었다.
이 인간이 왜 이래?
평소답지 않게 생각이 많아 보이네.
“한 선배?”
“…사실, ‘앨릭스(Alex)’가 네게 제안을 보내왔어.”
“앨릭스? 그게 누군데요?”
“뭐? 너 앨릭스가 누군지 몰라?”
“모르는데요. 내가 알아야 해요?”
“어이, 어이….”
한진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흘렸다.
반응을 보니 유명한 사람인 듯하다.
설명해 주길 바라며 도희를 바라봤다.
도희도 적잖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보 취급하는 한재임의 눈이 볼만하군.
“앨릭스 매그너스(Magnus). 세계 헌터 협회 회장이야.”
그런 이유로 도희 대신 태천이가 설명했다.
살다 살다 태천이한테 설명을 듣는 경우가 다 있네.
세계 헌터 협회 회장이라….
“그 인간이 나한테 뭘 제안했는데요?”
“너 혹시 ‘S급 헌터 테스트’ 치를 생각 없냐?”
“오…?”
S급 헌터 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