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14
제315화
도희와 태천이 사이의 빈자리에 가 앉는다.
중년인지 노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덩치가 태천이만큼이나 컸는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과연 세계 헌터 협회장….
감탄이 절로 나왔다.
헌터로서의 실력도 상당할 것 같은걸.
양옆에 앉아 불만스럽게 날 쳐다보는 두 남녀를 포함해서.
“…드디어 주인공이 왔군.”
매그너스가 날 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웬 주인공…?
설마 날 뜻하는 거?
도희를 돌아보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태천이도 입꼬리를 씩 올려 웃는다.
혹시 성녀와 기사를 양옆에 두고 있으니 주인공으로 표현한 건가.
비아냥거리기는.
“반갑네, 드래곤 메이트 백도운.”
[어린나무가 불만을 전해옵니다.] [관리인에게 드래곤 메이트가 아니라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정정하길 요구합니다.]“갑작스러웠을 텐데도 시간을 내줘 정말 고맙네.”
그리 말하는 매그너스의 시선이 내 오른손으로 향했다.
톡톡톡….
아무래도 스마트폰을 쥔 채 화면을 연신 두드려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눈 끝이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그 탓일까?
시간을 내줘 고맙다던 말도 ‘왜 이렇게 늦게 왔냐?’라고 따지는 듯이 들렸다.
내가 그저 곡해(曲解)하는 거려나.
“…….”
아니.
도희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한 걸 보면 그저 곡해하는 건 아닌 듯하다.
아마 내가 없을 때도 저런 식으로 비아냥거려댔던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스마트폰을 집어넣을 수 없지.
톡톡톡…!
“오래 기다렸습니까?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
“…그리 기다리지는 않았네. 그런데. 궁금하긴 하군.”
“뭐가 말입니까?”
“날 기다리게 한 이유 말이네.”
“헤에….”
별걸 다 궁금해하네.
막무가내로 쳐들어온 주제에.
갑자기 찾아왔는데도 만나줬으면 만나줘서 고맙다고나 할 것이지.
[어린나무는 고맙다고 말하긴 했다고 전합니다.]아, 맞네.
하긴 했지.
오른손을 쳐다보던 시선 때문에 깜빡했어.
“누굴 좀 만나고 왔습니다.”
“지인을 만나고 왔다는 건가?”
“지인…은 아니지만, 아무튼 만나고 오긴 했습니다.”
“놀랍군. 세계 헌터 협회장인 나를 만나는 건데도 취소하지 못하는 만남이었나?”
“네.”
“…….”
너무 즉답이었을까?
매그너스가 입을 다물었다.
반면, 그 옆에 있던 그의 부하들과 황 장관 일행은 입을 떡 벌렸다.
한 마디 덧붙여주면 볼만하겠군.
“워낙 중요한 분이셔서요.”
“…….”
“…….”
예상한 대로, 두 무리의 표정이 볼만해졌다.
중요한 분.
그 단어가 심히 거슬리는 게 분명했다.
아무렴 그렇겠지.
매그너스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니까.
그가 천천히 와인잔을 들어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중요한 분이라…. 대체 누구기에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가?”
머릿속에서 그의 말이 또 번역됐다.
나한테 이렇게 싹수없게 굴면서 ‘중요한 분’이라고 높여 말하는 놈이 대체 누구냐?
매그너스는 그리 묻고 있었다.
어차피 이름을 들어도 모를 텐데 말이다.
말할 생각이 없는 내 표정을 읽은 걸까?
그가 재촉했다.
“그리 중요한 사람이라면 나도 만나고 싶어 그렇네. 부디 가르쳐주게.”
사람이 참 겉과 속이 다르구만.
방금 한 말도 다른 뜻이 있었다.
아마도….
별것도 아닌 사람이라면 오늘 늦은 걸 기억해 두겠다.
그리 말하고 있는 것일 테지.
기억해 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겠냐만.
귀찮으니 말해주고 넘어가야겠다.
말해봐야 그가 뭘 할 수 있을 리도 없었고.
“알루키노르 루모스, 라는 분입니다.”
“알루키노르…?”
매그너스가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왼쪽에 앉은 부하를 쳐다봤는데, 부하는 자기도 모른다는 듯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인물 중에 그런 이름을 지닌 헌터는 없을 테니 당연했다.
혹 있다 하더라도 우연히 이름이 같은 사람에 불과하겠지.
알루키노르는 심해에 있으니까.
“…….”
매그너스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본인이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오느라 늦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는 듯했다.
정말 시간 아깝게 구는 놈이네.
차라리 이 순간 은마 매립지의 쓰레기를 파묻었더라면 몇 톤분의 영양이 새싹이에게 갔을 텐데….
“…자, 자.”
황 장관이 시선을 모았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중요한 건, 이 깊은 밤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만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또한 매그너스처럼 겉과 속이 달랐다.
황 장관이 방금 한 말에 담긴 속뜻을 해석하자면….
늦은 밤 여러 사람 고생시키면서까지 만났으면 용건이나 서둘러 말해라,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아마 이런 게 아닐까.
“…밤이 늦긴 했지.”
매그너스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앞에 놓인 레드 와인을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드디어 본론을 말할 생각이 든 모양이다.
탁…!
그가 와인병을 내려놓고는 질문을 던졌다.
“자네, S급 헌터 테스트를 거절했다지?”
“네. 실력에 부족함을 느껴서요.”
“과연…. 진환의 말에 틀림이 없군.”
“뭘 말입니까…?”
진환? 한진환?
그 인간이 뭐라고 말했기에 틀림이 없어?
매그너스가 큭큭 웃었다.
“뭘 모르는 척인가.”
“……?”
“그렇게 자신이 넘치는 얼굴로 실력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고 하면, 대체 누가 믿겠냔 말이야.”
“…내가 그렇게 자신감 넘쳐 보여?”
“그걸 질문이라고 해? 숨길 생각이 있긴 했고?”
“쩝, 그 정도야?”
“숨길 생각이었으면 스마트폰이라도 그만 두드렸어야지.”
“아.”
“어휴….”
태천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희도 태천이와 반응이 비슷했다.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도 동생이라고 날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조금 담겨 있다는 거였다.
아주 조금의 자랑스러움과 함께.
“이, 이유…. 이유가 뭔가?”
황 장관이 떠듬거리며 물었다.
보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한 매그너스의 부하들이 황 장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매그너스는 황 장관을 탓하지 않았다.
그 또한 같은 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도 실로 궁금하군.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면서 왜 S급 헌터 테스트를 치르지 않는 거지?”
“흠….”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것이니, 솔직히 말해보게.”
“그렇다면야.”
내가 테스트를 치르지 않는 이유.
그건 아주 간단하다.
“바빠서요.”
“…뭐?”
“바쁘다고요. 메리트도 없고.”
“…….”
매그너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원탁에 있는 모든 입이 다물어져 열리지 않았다.
도희와 태천이도 마찬가지였는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서라는 점이 달랐다.
“바쁘다…. 아니. 메리트가 없다고…?”
“네.”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S급 헌터가 되면 자넨 엄청난 부와 명예를-”
“지금도 충분한데요.”
“충분하다고?”
“네. 스스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내가 A+급 헌터거든요.”
“아….”
한진환과 더불어 세상에 둘밖에 없는 A+급 헌터.
그것만으로 내 이름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세계 헌터 협회장인 매그너스가 내 이름을 알고 직접 찾아왔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부 또한 마찬가지다.
새싹이를 통해 S급 헌터들조차 감히 갖질 수 없는 온갖 재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가져다 팔기만 해도 막대한 부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데, S급 헌터가 되어 얻을 부에 관심이 갈 리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테스트를 치렀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건 딱 하나.
S급 헌터라는 타이틀뿐이다.
그리고 그 타이틀은….
“우리 새싹이를 성장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데, 뭐 하러 지금 S급 헌터가 됩니까?”
“새싹이…?”
“이 아이 말입니다.”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화면 속 새싹이가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새싹이 주변으로는 엘프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쉬고 있었다.
몇몇은 쉬지 못하고 여전히 엘릭서를 제조했다.
다들 고생이 많다니까.
“…….”
“…….”
원탁에 침묵이 깔렸다.
메리트가 없으니 S급 헌터가 되지 않겠다.
그와 다름없는 말을 들은 이들은 큰 충격에 빠진 듯했다.
도희와 태천이만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다.
“후…. 실로 놀랍군. S급 헌터가 되는 일을 보고 메리트가 없다고 말하다니….”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해두죠.”
“타이밍?”
“네.”
엄밀하게 따져보면 S급 헌터라는 타이틀 자체는 메리트가 되기는 한다.
그런데도 테스트를 치르지 않겠다고 대답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새싹이를 성장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수를 서둘러 성장시키라는 말을 연거푸 들은 상황에서 테스트를 치르는 등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S급 헌터가 되면 업적을 달성할 가능성도 있기는 했지만, 달성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럴 바엔 차분히 화면을 두드리고 알테라-쇼넴을 쓰는 게 낫다.
매그너스가 흰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다른데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쁘다는 뜻인가.”
“그런 셈이죠.”
“그렇다면 내가 준비한 A+등급 퀘스트도 받아들이지 못하겠군. 아쉽게 됐어….”
“퀘스트…?”
“자네가 테스트를 치르겠다고 하면 실력을 좀 볼 겸 퀘스트를 제안하려고 했었거든.”
“…….”
실력을 볼 겸 퀘스트를 제안하려고 했었다니.
내가 당연히 테스트를 치르겠다고 말할 줄 알았나 보다.
오만한 거야.
자신이 넘치는 거야?
“흠, 흠!”
배수현이 주의를 끌 요량인 듯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러고는 매그너스를 불렀다.
“저, 협회장님.”
“음?”
“준비하신 퀘스트가 A+등급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만.”
“잘됐군요.”
“잘됐다?”
“백도운 헌터.”
배수현이 해맑게 웃으며 날 불렀다.
그녀의 미소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 뻔했다.
A+등급 퀘스트 다섯 건 해결해주기.
그걸 생각해내라고 웃는 게 분명했다.
확실히 약속하긴 했었지만….
세계수를 서둘러 성장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거절해야겠다.
“미안하지만-”
“오라버니.”
거절하려는데, 도희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퀘스트를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아, 그런 건가.
배수현은 이번 기회에 세계 헌터 협회장에게 빚을 지우고 싶었다.
도희는 그런 배수현에게 빚을 지우고 싶은 거고.
물고 물리는 야생의 세계도 아니고, 원.
“…안 될까요?”
그리 물으면서 도희는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얘가 갑자기 왜 연기를 한담.
무섭게시리.
“…매그너스. 제안하려던 퀘스트가 뭡니까?”
“응? 자네 할 생각인가?”
“할 생각은 아니고요. 일단 보고 정할까 합니다.”
“허…?”
매그너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딴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한 게 바로 조금 전인데 말이 바뀌니 황당한 모양이다.
우선 못부터 박아둬야겠다.
“확인만 하려는 겁니다. 도움이 될만한 곳일 수도 있으니까.”
도움이 될만한 곳.
개미굴 던전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왕 개미 같은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이라면 비료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손을 뻗자 매그너스가 품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건네받고 바로 읽는다.
“흠….”
A+등급 퀘스트라서 그런가?
확실히 흥미를 잡아끌기에 충분한 던전이었다.
물론 아쉽게도 개미굴처럼 비료를 얻을 수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거절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치우쳤을 때,
“어라…?”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거….
잘하면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