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26
제327화
에디탓 그위친은 검은 풀숲이 길게 자란 언덕에 정좌하고 있었다.
풀숲을 눕힐 정도로 불어오는 바람에 그는 눈을 뜨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허공에는 지팡이에 걸터앉은 알레딩 밀러가 떠 있었다.
밀러를 보고 그위친은 해맑게 웃었다.
“오랜만이구나, 밀러.”
“…….”
그녀는 그러나 무표정했다.
놀람과 경악을 속으로 숨기며 질문을 던졌다.
“또, 강해졌네요. 그위친….”
“무얼. 밀러 너도 한 단계 성장했는걸.”
“……”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장하기는 했지만, 그와 비견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열 단계 더 성장했으니까.
“대체, 거기에서 얼마나 더 강해질 생각이에요…?”
“흐음…. 잘 모르겠는걸. 아직 부족해서 말이야.”
“하, 부족하다고요?”
밀러가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에디탓 그위친.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였다.
그것도 그와 비견할 인물이 아무도 없을 만큼.
독보적으로 강한 인간이 아직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겸손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위친은 말했다.
“마침 잘 됐어. 밀러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응?”
“왜 그래요?”
“도운이 선물을 보냈구나.”
“어머. 알겠어요?”
“네게서 그의 마나가 느껴지는걸.”
“정말 대단하다니까….”
밀러는 품에서 마법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를 받아든 그위친은 바로 안을 개봉하고 내용물을 꺼냈다.
맨 처음 손에 집혀 나온 것은 둥글게 말린 나뭇잎이었다.
“이건….”
“네, 맞아요. 엘릭서.”
“어째서 이렇게 귀한 선물을?”
“안에 보면 편지도 함께 있을 거예요. 엘릭서를 선물로 받았다는 인터뷰를 해달라는 내용이죠.”
“인터뷰?”
“아마 그 엘릭서가 진짜라는 걸 알려서 가짜라고 말하는 이들을 침묵하게 하고 싶은 거겠죠.”
“도운은 그런 거에 관심 없을 텐데. 후후, 아무래도 주변인이 힘들어했던 모양인걸?”
그위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안에 있을 거라는 편지를 꺼내고자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응?”
“왜 그래요?”
“편지 말고 다른 것도 함께 있어서.”
“어, 그래요?”
곧 마법 주머니에서 그위친의 손이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는 편지봉투와 예쁘게 포장된 상자가 함께 들려 있었다.
밀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 내 주머니엔 엘릭서와 편지가 다였는데.”
“그랬니?”
“뭐, 도운은 그위친한테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음….”
“예쁘게 포장된 걸 보니, 부탁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진짜 선물을 보낸 모양이네요.”
“무엇일지 궁금한걸.”
달칵.
그는 바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는 작은 꽃송이가 달린 가는 나뭇가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알아본 밀러가 바로 이름을 말했다.
“엇, 새싹이 꽃차네요.”
“새싹이 꽃차?”
“그위친은 몰라요?”
“음.”
“방금 본 엘릭서와 같은 맛이 나는 음료예요. 온갖 맛이 다 나는 거로 유명하죠.”
“아아…. 엘릭서는 함부로 먹을 수 없으니 만든 것이로구나.”
“그런 셈이죠. 근데 그것도 평범한 차는 아니에요.”
밀러가 오른손을 펼쳤다.
하나씩 차례대로 접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고혈압, 심혈관 질환, 면역력, 간 기능, 원기 회복, 피부에도 좋대요.”
“후후…. 과연 이름에 걸맞은 효능인걸.”
“…….”
밀러가 눈썹을 미세하게 치켜떴다.
그위친은 마치 ‘새싹이 꽃차’라는 이름의 뜻을 아는 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역시 찾아오길 잘한 것 같네.
그녀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그위친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곧 허공에 나뭇가지들 생성되더니 엮이면서 주전자와 잔이 되었다.
그는 나무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소환해 담은 후 상자에 있던 꽃차 스틱을 넣었다.
“음. 향이 깊네. 밀러. 그만 내려와 여기 앉으렴.”
“앉으라고요?”
“응?”
“그곳에요?”
“그럼 계속 그렇게 날고 있을 생각이니?”
“…….”
밀러는 그위친이 앉아 있는 자리를 바라봤다.
검은 풀숲이 무성하게 자라난 언덕….
「…….」
그곳은 사실 언덕이 아니었다.
A+등급 몬스터 ‘킹 콩’의 배 위였다.
당연히 검은 풀 또한 그리 보였을 뿐 풀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검은 털의 주인과 눈을 마주했다.
“…내가 앉아도 될까?”
「…….」
“쳐다만 보지 말고. 대답해줘야 앉든 말든 하지.”
「…….」
킹 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앉든지 말든지 네 알아서 하라는 듯 심드렁한 태도에 밀러는 헛웃음을 흘렸다.
탁, 탁.
그위친이 킹 콩의 배를 두드렸다.
“부끄러워하는 거니, 밀러 네가 이해하고 여기 앉으렴.”
“저게 부끄러워하는 거라고요?”
밀러는 지팡이에서 내리며 되물었다.
그위친은 빙그레 웃었다.
“귀엽지?”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
“솔직하게 귀엽지 않니.”
“…….”
밀러는 말하기를 포기했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A+등급인데다가 덩치가 웬만한 건물보다도 큰 킹 콩을 보고 귀엽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 어떤 인간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위친.”
“응?”
“대체 미스터 백과는 무슨 사이예요?”
“무슨 사이냐니?”
“그위친은 숲을 순식간에 자라나게 하죠. 미스터 백도 사막을 풀숲으로 바꿔버리는 짓을 손쉽게 하고요. 그리고….”
말끝을 흐리며 방금 만들어진 나무 주전자와 컵을 바라봤다.
그위친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것들을 봤다.
“온갖 식물에 관련된 마법들을 쓰기도 해요.”
“흠….”
“그런 두 사람이 아무 관계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미안해, 밀러.”
“말…해주지 않을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 말해줄 수가 없는 거란다.”
“네?”
“나도 모르겠거든. 내가 왜 도운과 비슷한 건지.”
“아….”
그 순간, 밀러는 깨달았다.
도운과 그위친이 비슷한 마법을 쓰는 이유가 궁금한 건 본인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위친도 그녀처럼 이유를 알고 싶으며, 어쩌면 도운도 궁금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가 천천히 말했다.
“다만….”
“……?”
“도운을 처음 보았을 때, 멀리 떨어져 살던 형제를 만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었어.”
“형제요?”
“마치 고향에 있는 내 가족들을 만난 기분이었지.”
“설마…. 두 사람 조상님이 같은 분인 건 아니겠죠?”
“후후, 그럴지도 모르지?”
그위친은 웃음을 흘리며 긍정했지만, 밀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인이 말했음에도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디언인 그와 동양인인 도운의 조상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물어보렴. 대답해 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미스터 백은 정체가 뭐예요?”
“응? 내가 그걸 어떻게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한국에서 그의 허무맹랑한 부탁을 들어줬잖아요. 그 탓에 이런 곳에 갇히게 될 걸 알면서도.”
“오해야, 밀러. 나는 이곳에 갇힌 게 아니라 나가지 않는 거니까.”
“정체를 알기 때문에 그런 부탁을 들어줬던 것 아닌가요?”
그녀는 그위친의 말을 깔끔히 무시했다.
대꾸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곳에서 나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감히 누가 막아설 수 있을까.
드래곤이라도 날아오지 않는 한 무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드래곤…과 관련돼 있나요?”
“드래곤?”
그위친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밀러의 입에서 드래곤이라는 단어가 나올 거라고는 예상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의 반응에,
“……?”
오히려 밀러가 당황했다.
백도운은 드래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녀는 그리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위친이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 이무기를 보호하던 그 고차원적인 마법은 대체 누가 건 거죠? 미스터 백에겐 왜 똑같은 마법이 걸려 있는 거고요. 난, 당연히 드래곤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요…?”
“잘못 생각했어. 드래곤이 아니야.”
“역시…. 그위친은 아는 거군요? 미스터 백의 정체를.”
“알지만, 말해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도운도 네게 밝히지 않았지?”
그리 말하며 그위친은 밀러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깊은 눈동자는 도운을 마주 보던 과거의 그녀에게로 향하는 듯했다.
“설마…. 두 사람 조상님이 같은 분인 건 아니겠죠?”
그런 말을 했던 탓일까?
어쩐지 밀러는 그위친의 얼굴이 도운과 닮은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피부색이나 세월 때문에 생긴 주름 등 다른 점을 훨씬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위친…. 이건 프라이버시 같은 걸 따질 사안이 아니에요!”
“이해해. A+등급 몬스터인 이무기에게 걸려 있던 마법이 도운에게도 걸려 있으니 당연히 불안하겠지.”
“그렇다면-”
“향이 좋은걸.”
“네? 뭐라고요?”
“향이 좋다고.”
그위친은 되묻는 밀러에게 똑같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주전자를 들어 잔에 차를 따랐다.
주전자에서 푸른빛을 띤 새싹이 꽃차가 쪼르륵 흘러나왔다.
“…….”
밀러는 갑작스러운 말을 듣고 나서야 대화가 완전히 끝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그가 말해줄 생각이 없다면 이어 나갈 수 없는 대화였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찻잔을 들고 차를 받았다.
찻잔에 담긴 푸른빛이 야속해 보이는 것은 그녀가 그위친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너무 우렸나 봐요. 떫어요.”
“그래? 나한테는 단걸.”
“네? 달다고요?”
호록….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다시 새싹이 꽃차를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서는 조금 전과 아예 다른 맛이 느껴졌다.
“달아…?”
“이번엔 내가 떫은걸.”
“네에?”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연거푸 새싹이 꽃차를 들이켰다.
차는 마실 때마다 맛이 변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그위친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피식 웃었다.
“과연…. 떫다고 생각하고 마시니 떫고, 달다고 생각하고 마시니 달군.”
“…정말 그러네요. 방금은 소금물을 마신 것처럼 짭조름했어요.”
“도운이 재미있는 차를 만들었는걸.”
“네? 아뇨. 이 차를 만든 건 홍수정이라는 포션 메이커예요. 도운은 그걸 선물로 보낸 거고요.”
“…아. 그랬었지, 참.”
그위친이 긍정하며 다시 차를 마셨다.
이번엔 고소한 맛을 느낀 그는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참. 아까 마침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그랬잖아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요?”
“아, 맞아.”
탁….
그위친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사뭇 진지한 얼굴에 밀러도 잔을 내려놓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어떤 일이요…?”
“응. 별일 아니니 밀러 네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네? 그럼 뭐하러 말하는 건데요?”
“일이 벌어진 이후…. 혹시 너에게 버거운 일이 생긴다면, 도운을 찾아가도록 해. 그는 분명 널 도와줄 테니까….”
“……?”
밀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위친이 한 말을 이해하려고 곱씹어도 의문만이 떠올랐다.
그녀가 왜 버거운 일이 생겼을 때 도운을 찾아간단 말인가?
오늘처럼 그위친을 찾아 도움을 구하는 게 더 빠른 길인데.
그렇기에 밀러는 머리에 떠오른 의문을 물었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해요?”
“응?”
그위친이 찻잔을 다시 집어 들었다.
시선이 마주 닿자 밀러는 계속 말했다.
“왜, 그위친 당신이 없을 것처럼 말하냐고요….”
“…….”
“그위친? 아니죠…?”
“…….”
밀러의 질문에 그위친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새싹이 꽃차를 따르고 호로록 마셨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번엔 맛이 쓴걸….”
그위친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