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27
제328화
톡톡, 쿵! 톡톡톡, 쿵!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와 박동하는 소리가 번갈아 가며 울렸다.
뱀파이어 로드의 재구성이 곧 끝나려는 걸까?
관 형태의 번데기에 박동이 굉장히 잦아졌다.
흐레이스가 예상했던 보름이 되려면 이틀 정도 더 남은 거로 아는데….
A+등급 몬스터라고 재구성이 빠른 모양이다.
톡톡, 쿵!
오늘 내일은 은마 매립지에 가지 말고 여기 있어야겠다.
스케쥴을 결정한 내게,
“오라버니.”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차가웠는지 한재임이 얼음 마법으로 공격한 것만 같았다.
얼어붙을 것 같은 몸을 일으키며 훈련실 문을 닫고 다가오는 도희를 바라봤다.
도희는 성녀가 아니라 마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섭게시리.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나 뭐 잘못했어?”
“뭐 잘못했느냐고요?”
“했나 보네.”
“지금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
도희가 내게로 오는 동안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골똘히 고민해 보았지만, 뭔가 저질렀을 게 분명한 잘못은 떠오르지 않았다.
우뚝.
다가오던 발이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와 동시에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시끄러워.
내가 한 모든 행동에 잘못은 없었어.
[관리인 관점에서야 그렇겠지만.] [도희로선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덧붙여 방금 한 말을 도희에게도 할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어허. 팩트 들이밀지 마.
반박할 말이 전혀 안 떠오르잖아.
툭….
새싹이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데, 도희가 신문들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웬 신문?
그것도 신문사마다 종류별로.
“…아.”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겠다.
신문들 각각 1면에는 S급 헌터들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내용은 읽을 것도 없었다.
그들에게 인터뷰해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엘릭서를 받았고 그에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이겠지.
“엘릭서 함부로 써서 화났구나?”
“그위친은 그렇다고 쳐요. 도움을 받았으니까. 밀러까지도, 우리에게 호의를 보였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스미르노프? 그 빌어먹을 놈에게까지 엘릭서를 줘요?”
“대신 편지도 동봉했어.”
“편지요?”
“응. 발목 잘 씻고 있냐고 했어.”
“…….”
도희는 신음을 흘리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갑자기 편두통이 찾아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괜스레 미안한걸.
“그러니까, 발목을 자르겠다면서 엘릭서를 준 거네요?”
“생각해 보니 그렇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스미르노프가 잘도 인터뷰했네요….”
“할 수밖에 없었을걸.”
“네?”
“생각해봐. 다른 S급들 모두 인터뷰하는데 혼자 안 하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
가뜩이나 폭군이라고 불리며 이미지가 안 좋은 놈이다.
나머지 셋이 받은 선물을 혼자 못 받았다?
세상 사람들은 놈이 내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거다.
안 좋은 이미지는 더욱더 하락했겠지.
“…그런데.”
“응?”
“백운천 금고는 어떻게 열고 엘릭서를 꺼낸 거예요?”
“몰라.”
“네?”
“방법은 나도 모른다고. 난 할 줄 아는 애한테 시켰을 뿐이니까.”
“할 줄 아는….”
순간 도희의 눈이 커졌다.
깨달은 것이다.
금고를 여는데 전문가인 사람이 나와 아주 가까이 있음을.
“블린더 흐레이스….”
“딩동댕.”
“오라버니. 지금 우리 길드 금고를 도둑에게 열게 했다는 거예요?”
“응!”
“지금 나랑 장난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면 어떡해!”
“괜찮아. 눈독 들이긴 했는데, 다른 못 훔쳐갔어. 내가 봤어.”
“하아아…!”
도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이라도 세계 헌터 협회에 흐레이스가 이곳에 있다고 가르쳐주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세계수 권속이 세계수 관리인의 부탁으로 도둑질하다가 감옥에 가게 된다?
그런 꼴불견이 또 있을까.
“진정해, 도희야. 걘 내가 시켜서 한 것뿐이야.”
금고를 열 때 희열에 찬 얼굴을 지어 보이긴 했지만….
그 얼굴만 봐서는 보석을 훔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금고를 열고 싶어서 도둑이 된 것 같았다.
도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죠. 오라버니가 주모자죠.”
“주모자인 건 인정. 그래도 좀 억울해.”
“억울하다고요? 뭐가요?”
“재료가 된 세계수 꽃은 우리 새싹이가 피워냈잖아. 그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은 것도 나고.”
“그렇긴 하죠.”
“그러니 엘릭서 몇 개 정도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 아니야?”
“…맞아요.”
도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
생각보다 상황을 쉽게 무마할 수 있겠는걸.
도희가 부드럽게 말했다.
“당연히 저도 오라버니가 이러저러해서 엘릭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면 얼마든지 내어드렸을 거예요. 우리가 엘릭서를 갖게 된 건 모두 오라버니 덕분이니까.”
“앗….”
“그런데 오라버니는 제게 찾아오지 않았죠. 도둑년을 불러서 몰래 훔쳤지.”
“…….”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도희의 얼굴은 냉랭했다.
역시 도희….
핵심을 제대로 짚었는걸.
내어달라고 하면 됐을 것을 훔쳤으니 문제가 되는 거다.
애초에 도희가 엘릭서를 전부 챙겨갔던 것도 나와 태천이가 맛보려고 해서였고….
그 덕분에 홍수정이 엘릭서를 연구할 기회를 얻어 새싹이 꽃차를 제조하게 됐지만.
“…이번 한 번은 봐 드릴게요.”
“봐준다고? 왜?”
“수정 씨 봐서 참는 거예요. 가짜라느니 사기라느니 떠들어대는 걸 보고 이런 짓을 벌인 거죠?”
“오, 맞아. 어떻게 알았어?”
“오라버니 행동 방식이야 뻔한걸요, 뭐.”
역시 하나뿐인 내 동생….
척하면 척이구나.
“하지만.”
“응?”
“다음번에도 나 몰래 함부로 금고에 손을 댔다간….”
사라락….
도희의 흰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퍼지며 떠올랐다.
그야말로 백발 마녀 그 자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침이 절로 삼켜졌다.
꼴깍…!
“알았어, 알았어. 안 건드릴게.”
“부디 그러길 바라요. 또 건드리면 그날로 우리 백운천 간부들의 방어구는 뼈로 제작하게 될 테니까.”
“그 뼈…가 혹시 내건 아니지?”
“…….”
도희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나를 똑바로 바라보기만 했다.
꼴깍!
또다시 침이 절로 삼켜졌다.
내 뼈 맞네.
하여간 백발 마녀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니까.
어쩜 오빠 뼈로 갑옷을 만들겠다는 협박을 한담.
[어린나무는 모두 관리인 탓이라고 나무랍니다.] [이어 어린나무는 도희를 응원합니다.]너무하네?
새싹아, 너는 관리인인 내 편을 들어줘야지.
도희를 응원하면 어떡해?
[어린나무는 도희를 응원하는 것이 관리인을 정말로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합니다.]뭐야, 그게.
나쁜 길로 들어서는 걸 막는 착한 친구 같은 말은.
“…오라버니?”
“응?”
“저거, 원래 저런 거예요?”
“저거라니?”
도희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곳엔 뱀파이어 로드가 들어가 있는 흰 번데기가 있었다.
다만, 형태가 아까와 크게 달랐다.
곧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
벌떡 일어나 도희 앞에 섰다.
“박동하는 꼴이 곧 끝날 것 같더라니….”
“이상하네요. 흐레이스 땐 안 저랬잖아요?”
도희가 실드 마법을 전개했다.
그 말대로 흐레이스 땐 저렇게 폭탄처럼 폭발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흐레이스는 본인 마법이었기 때문에 제어할 수 있었다거나.
뱀파이어 로드가 흐레이스보다 훨씬 강해서 그만큼 부풀어 오른 것일 터다.
어느 쪽이든.
“폭발하면 훈련실이 엄청 더러워지겠는걸….”
“청소는 오라버니가 해요.”
“내 사전에 그런 건 없어.”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오른손 대신 왼손을 뻗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손가락은 나무뿌리로 변해 부풀어 오른 번데기를 덮었다.
이렇게 하면 폭발해도 훈련실 전체가 더러워지는 일은 없겠지.
설마 폭발력이 세계수의 뿌리를 뚫을 정도일 리도 없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니 이제 폭발한다고 해도 괜찮을-
푸슉…!
“…푸슉?”
의기양양하는데, 김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밥솥에 밥이 다 완성됐을 때 나는 소리보다도 작았다.
조심스럽게 세계수의 뿌리를 거둔다.
손가락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부풀어 올랐던 흰 번데기도 푸시식 바람이 빠지며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번데기에서 뱀파이어 로드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로드는 진화 몬스터의 증거인 검은 뿔이 사라지긴 했지만, 들어가기 전과 모습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검은 머리, 기다란 귀, 등 뒤로 자라난 날개, 창백한 피부 등등….
제대로 세계수의 권속이 된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어린나무는 세계수의 권속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뱀파이어 로드에게서 흐레이스 때처럼 친근함이 느껴진다고 전합니다.]“…오라버니.”
도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방금 새싹이가 해준 말을 전달하자 도희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로드가 나를 바라봤다.
오, 이제 보니 달라진 점이 있긴 했다.
아주 붉었던 눈이 지금은 푸른빛을 띠었다.
두 눈에 새싹이 꽃으로 만든 엘릭서가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인간….」
“응?”
「세계수 관리인이었군?」
“바로 맞췄어. 인사해. 이쪽이 바로 세계수야. 이름은 새싹이고.”
스마트폰을 들어 로드에게 보여주었다.
새싹이가 바로 인사를 건넸다.
[어린나무는 로드에게 나뭇가지를 흔듭니다.]안타깝게도 로드는 새싹이의 인사를 보지 못했다.
시선을 화면에서 다시 내 쪽으로 올린 탓이다.
[어린나무는 의기소침하여 나뭇가지를 떨굽니다.] [다음번엔 더 활짝 인사를 건네겠다고 다짐합니다.]에고….
우리 새싹이의 인사를 무시하다니.
저 무례한 놈… 엇?
그러고 보니….
“야.”
「……?」
“너 왜 나한테 반말하냐?”
「뭐라고?」
“이전에 권속이 됐던 녀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존댓말을 사용했었어. 근데 넌 어떻게 계속 반말을 하는 거지?”
「흥….」
로드는 콧방귀를 끼었다.
그 태도에서 뱀파이어 로드다운 오만함이 드러났다.
「네놈 말대로 짐은 세계수의 권속이다. 관리인인 네놈에게까지 경어를 쓸 이유는 없다.」
“뭐? 그게 경어를 쓸 이유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
도희가 부정했다.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도희는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로드는 세계수의 권속이지 세계수 관리인의 권속인 건 아니니까요.”
“…아아!”
도희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간다.
세계수는 세계수고 관리인은 관리인이라는 것이로군.
하기야….
드래곤들도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기 때문에 존중해준 것에 불과했으니.
한 명의 인간으로 찾아갔다면 그런 정중한 대우는 받지 못했겠지.
그럼 흐레이스가 나한테 굽실거리는 건….
내가 세계수 관리인인 것 플러스 무서워서 그런 것일 가능성이 크겠네.
“어쨌든, 권속이니 세계수의 말은 들을 것 아냐?”
「…그렇다.」
권속이 됐는데도 흐레이스랑 완전 다른 반응인걸.
오히려 로드다워서 보기 좋으면 이상한 거려나.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관리인처럼 뱀파이어 로드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전합니다.] [인사를 무시한 건 너무하지만.]“흠….”
도희가 언짢은 듯 콧숨을 내쉬었다.
아마 나와 새싹이와는 달리 로드의 행동이 미심쩍은 것 같다.
제대로 세계수의 권속이 된 것인지 의심스러운 거다.
흐레이스 때와는 행동하는 게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 믿지 못할 만도 하다.
뭐,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새싹이 말을 따른다면.
“그럼 됐어.”
「되었다…고?」
“그래. 애초에 난 내 부하를 만들고 싶어서 널 권속으로 삼은 게 아니거든.”
「오로지 세계수를 위해 날 권속으로 만들었다는 거냐?」
“응.”
「그렇다면… 내게 시키고 싶은 일이 있는 거겠군.」
“똑똑한걸.”
「무엇이냐? 불쾌하지만, 들어는 주도록 하마. 권속이 된 자로서.」
오.
스스로 긍정적으로 나와주니 고마운걸?
태도 때문에 마지못해서 할 줄 알았는데.
“너, 혹시 삽질 잘하냐?”
「……?」
로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뭔 개소리를 하는 거지?
딱 그런 말을 하고 싶은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