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28
제329화
「…관리인.」
뱀파이어 로드가 나를 불렀다.
팔짱을 낀 채 선 모습에서는 못마땅함이 뚜렷하게 보였다.
내가 쳐다보자 로드는 은마 매립지의 쓰레기들을 가리켰다.
「지금 짐에게 저 쓰레기들을 전부 땅에 파묻으란 건가?」
“응.”
「짐이 그딴 짓을 할 것 같은가?」
“응!”
「…….」
로드가 나를 노려봤다.
눈빛에서 살의가 느껴지는 것 같다면 착각일까.
기분 나쁘지 말라고 최대한 밝게 대답했건만.
[세계수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방금 관리인은 누가 봐도 놀리려는 인간의 모습이었다고 전합니다.]어라.
내 진심을 곡해하지 말아줘.
다 널 위한 일인걸.
놀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장난은 그 정도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로드가 마나를 뿜어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새싹이가 D급 헌터 수준으로 힘을 제한했는데도 B급 헌터 수준의 힘이 느껴졌다.
역시 A+등급 몬스터….
“도운 님.”
메스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와 흐레이스가 삽을 내려놓은 채 내 쪽으로 걸어왔다.
“설명하면 그분께서도 납득하실 겁니다.”
「설명…? 쓰레기를 파묻는 일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지.」
로드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메스트는 못마땅해 보이는 로드를 보면서도 싱긋 웃었다.
설명을 듣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로드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뱀파이어 로드 님. 전 메스트라고 합니다. 성…은 버렸어요.”
「…….」
“요! 안녕, 로드 씨. 우린 구면이지? 저번에도 소개했듯, 난 블린더 흐레이스라고 해.”
로드는 두 사람 중 흐레이스를 빤히 쳐다봤다.
「…인간. 짐과 같은 세계수의 권속이로군?」
“맞아. 로드 씨처럼 억지로 붙잡혔지…. 이렇게 강제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됐고…. 불쌍하지?”
「그렇군….」
놀고들 있네.
임페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뱀파이어도 악수 같은 걸 하는 모양이지.
「짐의 이름은 ‘크루오르 임페일’이다. 잘 부탁하지.」
“그래. 잘 부탁해, 임페일 씨!”
임페일이 흐레이스와 손을 맞잡았다.
그 모습을 본 메스트도 악수를 나누고자 손을 뻗었는데,
「…….」
임페일은 그녀의 손을 맞잡지 않았다.
메스트의 손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는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결국, 그녀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손을 거둬야 했다.
둘 다 처음 보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저 행동에서 느껴지는 온도 차인 뭐람?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아마도 임페일은 메스트가 세계수의 권속이 아니어서 그리 행동하는 듯하다고 설명합니다.]즉, 권속끼리만 잘 지내겠다는 거?
이런….
그동안 원장 아줌마가 느꼈던 기분을 알 것 같다.
나도 지금까지 저런 짓을 하며 살아왔었으니까.
한재임을 비롯한 다른 녀석들이 싫어했던 것도 그럴 만했다 싶네.
“…야. 임페일.”
「왜 부르나…?」
“메스트랑도 잘 지내.”
「짐이 왜 그래야 하지? 이쪽 인간은 짐과 같이 세계수의 권속도 아니다만.」
“그녀는 내 사람이야.”
「관리인의 사람?」
“그래. 그리고 난 내 사람에게 함부로 구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해.”
그리 말하자, 임페일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봐주었다.
3초, 5초….
10초쯤 흘렀을까?
임페일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메스트를 바라봤다.
「…설명이란 걸 듣도록 하지. 해주겠나. 메스트.」
“아, 네! 바로 해드릴게요, 임페일 님!”
흐레이스한테 그랬던 것처럼 악수를 청하진 않았지만….
이름도 부르고, 메스트도 해맑게 웃으니 됐나.
아까까지만 해도 민망해서 얼굴을 붉혔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구만.
흐레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착해빠져서는…. 쟨 바로 조금 전에 무시당해놓고선 뭐가 좋다고 저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걸까요.”
“…아니. 메스트는 단순히 착해서 저러는 게 아니야.”
“착해서가 아니라고요?”
“무서워서 저러는 거야. 착하게 굴지 않으면 버림받을까 봐.”
“네? 뭘 그런 걸 무서워해요? 원래 다들 버리고 버림받는 건데.”
“너야 그렇게 말하겠지.”
“……?”
“하지만 메스트는 애거든.”
“애요?”
“그래.”
메스트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상식적이지 않은 쓰레기였기 때문에 몸만 크고 정신적인 성장이 멈춰버린 거다.
자존감이 높아질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저렇게 되곤 한다.
도희와 태천이 없었다면, 우리 보육원에서도 메스트처럼 자란 녀석들이 아주 많았겠지.
괜히 한재임이나 최희주 같이 제 잘난 맛에 사는 녀석들이 잘 따르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너도 잘해줘. 요령 피울 생각만 하지 말고.”
“흥. 버림받는 게 뭐 대수라고….”
흐레이스는 입술을 샐쭉 내밀었다.
왜일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메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까지와 달라진 것 같은 건.
뭐….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도 크라우드한테 버림받아서 죽을 뻔했으니까.
그녀 또한 크라우드를 버리려고 했다는 점이 메스트와는 확실히 다른 점이었지만.
「…이해했다.」
잠자코 설명을 듣던 임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내 오른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본 거다.
톡톡 톡톡톡….
「과연 세계수로군. 알테라-쇼넴. 그런 신비로운 위업을 이뤄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설명 다 들었어?”
「그래. 짐이 무엇을 하면 되는지 잘 알았다.」
그리 말하며 임페일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푸른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은마 매립지를 뒤덮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발산되었다가 이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어라?”
“어머.”
“헉…!”
빛이 사그라든 곳엔 임페일이 여전히 서 있었다.
방금과 다른 점은 임페일 혼자가 아니라 임페일‘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대충 훑어봐도 60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분신 마법…인가?”
「비슷하지만 다르다.」
임페일들이 대답했다.
다르다더니만 동시에 대답하는 걸 보니….
“임페일. 이거 혹시…?”
「예상대로다, 관리인. 정신과 힘을 균등하게 나눴기에, 그저 분신이 아니라 전부 나인 것이지.」
“오….”
60명의 임페일들이 전부 진짜란 소리다.
단순히 분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바랐던 대로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상황이 되었다.
다만.
한가지 걱정스러운 점이 새로 생겨났다.
“흠….”
“귀여워요, 임페일 님.”
“힘을 쓸 수 있긴 한 거야?”
바로 임페일들의 외형이 문제였다.
힘을 균등하게 나눈 탓인지 몸집이 아주 작아져서 꼭 어린 소년 같았다.
등 뒤에 검은 날개가 달리지 않았다면, 아이들한테 일을 시키는 것 같아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임페일은 쯧쯧 혀를 차고는 흐레이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쓸모없는 걱정이다, 흐레이스. 이런 상태라고 해도 삽질하고 쓰레기를 땅에 파묻는 일쯤 간단히 수행할 수 있으니.」
“그으래…?”
「못 믿는 눈치로군?」
“생긴 게 생긴 거니까. 그치?”
“저도, 조금 걱정이 되긴 해요. 임페일 님….”
「알았다. 그럼 직접 보여 주도록 하지.」
그리 말하고는 임페일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정신이 균등하게 나눠진 덕분인지 각자 어떤 일을 할지 의논도 하지 않았다.
땅을 파는 임페일들.
쓰레기를 옮기는 일페일들.
땅을 다시 묻는 임페일들 등등.
3명이 한 팀이 되어서는 본인 말마따나 아주 간단히 일들을 수행했다.
이어 60명의 임페일이 흐레이스를 바라봤다.
「자. 끝났다. 알테라-쇼넴을 쓰도록.」
“…켁.”
가만히 지켜보던 흐레이스가 목 막힌 소릴 냈다.
깨달은 거다.
앞으로 땅 파묻고 쓰레기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 대신 임페일의 일 처리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알테라-쇼넴을 쉬지 않고 연달아 쓰게 됐다는 걸.
즉.
그녀는 앞으로 생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 않고 뭘 하는 거지?」
“하, 할 거야. 지금….”
흐레이스가 임페일들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걷는 동안 나를 슬쩍 쳐다봤는데,
살려줘요.
팔자 모양으로 꺾인 눈썹은 내게 그리 말하는 듯했다.
후후후….
얼굴을 보아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해서, 해맑게 웃으며 그녀를 응원했다.
“화이팅!”
“제길….”
흐레이스는 욕을 중얼거리며 걸어갔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이해가 안 가는구만.
이제 앉아서 알테라-쇼넴만 쓰면 되는데 뭘 저렇게 좌절하고 그러는 걸까.
힘든 일을 오히려 임페일이 다 할 텐데.
“아….”
메스트가 아쉬운 듯 탄식을 흘렸다.
뭐랄까….
흐레이스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어린나무가 관리인의 생각이 옳다고 전합니다.] [메스트는 지금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또 흐레이스를 부러워하고 있다고 덧붙입니다.]정말 그런 거라고…?
설마 지금 일을 못 하게 돼서 아쉬운 거?
흐레이스처럼 일을 하고 싶은 거냐고.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얼씨구….
일을 하고 싶어한다니.
정말 메스트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구나.
이것도 다 에리크 그놈 때문인 거겠지.
“…걱정하지 마, 메스트.”
“네?”
“우리나라엔 이곳 말고도 쓰레기 매립장이 또 있어.”
“…네? 아! 네!”
내 말뜻을 알아들은 메스트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흐으음….
밝은 모습이 보기 좋기는 한데….
쓰레기 매립장 또 있다고 좋아하는 게 올바른 일인지는 잘 모르겠네.
뭐, 본인이 좋다면 된 거겠지.
***
“하아….”
옥상 난간에 기댄 배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에 꼬나문 담배 연기가 한숨과 함께 허공으로 내뿜어졌고, 그녀는 그걸 멍하니 바라봤다.
얼마 만에 이런 여유로움을 가지는 걸까.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느낌상으로는 적어도 몇 개월은 지난 듯했는데….
“끄응….”
그 여유 속에서도 그녀는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을 고민했다.
현재 그녀의 머릿속을 괴롭히는 건 ‘백도운을 어떻게 부려먹어야 할까’였다.
도운이 은마 매립지에 하루가 멀다고 가는 이유를 알아냈으니, 어떻게든 쓰레기 처리 문제에 힘쓰게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도저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매립지를 사용할 권리를 준다면?
백도운은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터였다.
그녀가 권리를 주는 목적을 알아내고는 오히려 무언가 뜯어내려고 할 게 분명했다.
설령 매립지의 쓰레기가 본인에게 필요하다고 해도.
헌터란 그런 인종이었다.
“아….”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며 손을 주머니로 넣었다.
방금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자 화면엔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백도운 헌터]대한민국의 두 번째 A+급 헌터.
한진환에게 S급 헌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들은 헌터.
더불어 백운천이라는 길드를 한국 10대 길드의 상위에 오르게 한 헌터.
그 이름을 보고,
“씨발….”
배수현은 욕을 내뱉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이 바로 그녀가 바쁜 삶을 보내도록 만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든 휴식 시간인데….
“여보세요?”
– 배 국장님?
“네. 백도운 헌터. 말씀하세요.”
– 부탁 좀 드려도 될까 싶어서요.
“그야 어떤 부탁인지에 따라 다르겠죠?”
– 별건 아니고. 매립지 사용 권리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매립지요?”
배수현의 눈빛이 빛났다.
사냥감을 노려보는 헌터의 시선보다도 더욱 날카로웠다.
– …네. 다른 매립지도 사용하고 싶어서요.
“아, 그러셨군요….”
그녀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흥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꽈악….
스스로 옆구리를 열심히 꼬집었다는 소리다.
“아마 가능할 거예요. 혹시 서울에 있는 매립지여야 할까요?”
– 아뇨. 어디든 상관은 없습니다.
그렇겠지.
배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씨앗을 심는다는 해괴한 짓거리로 장소를 왔다 갔다 했다.
서울이 아니어도 일단 한 번 들르기만 하면 씨앗을 이용해 언제든 순식간에 그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렇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조금 찾아본 후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저희도 어느 매립지의 사용 권리를 대여해드릴 수 있을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요.”
– …그러시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런데.
“네.”
– 오래는 안 기다릴 겁니다.
“…….”
그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도운이 모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녀가 그에게 매립지 사용 권리를 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내일 중으로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뚝….
통화는 5분도 채 안 돼 끊겼다.
배수현은 히죽 웃었다.
속셈을 다 알고 있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알아냈기에 잘된 일이었다.
도운은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뜯어낼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고 솔직하게 사용 권리를 요구했다.
즉.
그에게 매립지를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뜻이었다.
어째서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데….”
동시에 그녀에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도운이 다른 매립지의 사용 권리를 요구하는 이유다.
그걸 요구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은마 매립지의 쓰레기를 전부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설마…. 다, 처리할 수 있다는 건…?”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른 바를 중얼거렸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피곤하긴 한가 보네. 아무리 백도운이라도 그건 말이 안 되지.”
앞으로 정확히 사흘 후.
배수현이 본인이 생각한 것이 아주 말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