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29
제330화
매립지 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통화한 다음 날 배수현은 곧바로 백운천을 찾아와 ‘난지도 매립지’의 사용 권리를 주었다.
그녀는 권리를 주면서 줄곧 의문을 품은 얼굴로 날 바라봤었다.
당연했다.
이미 은마 매립지를 사용 중인데 또 다른 매립지의 사용 권리를 원하고 있었으니….
매립지 두 곳을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었으리라.
물론,
[레디투스 숲의 엘프들이 지극정성으로 세계수를 보살피고 있습니다.] [블린더 흐레이스가 힘겹게 세계수를 보살피고 있습니다.] [임페일 크루오르가 열심히 세계수를 보살피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수에 대량의 영양이 공급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나뭇가지 하나가 자라납니다.]지금쯤 그녀는 알게 됐을 거다.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다는 걸.
대신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겠지.
똑같이 생긴 60명의 미소년이 누구인지.
아, 생각해 보니….
임페일의 정체는 뱀파이어 로드다.
이 사실을 배수현이 알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는걸…?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알려두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캐릭터 창을 열어 마나를 확인했다.
임페일이 작업에 착수한 지 이제 겨우 나흘째였는데….
[MP – 1525만130/3050만260(50% 상시 공유 중)]마나가 벌써 320만이나 올랐다.
나뭇가지가 하루에 한 가지 꼴로 자라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세계수는 많이 자란 어린나무 상태입니다.]상태가 변할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는데도 부족하단 거겠지.
대체 세계수 나무 상태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파묻어야 할까.
감도 잡히지 않는구만.
엘프들이 성역을 발견하지 못하고 알테라-쇼넴도 배우지 못했을 경우를 생각하니 끔찍하다.
화면을 두드리면서 비료나 찾아대고 있겠는….
“…아.”
톡….
화면을 두드리던 왼손 검지가 멈췄다.
나무뿌리로 변했던 오른손가락들도 동시에 멈춘다.
“도운 님?”
열심히 삽질하고 있던 메스트가 날 부른다.
비료라고 하니 개미굴에 들르지 않았던 걸 깜빡했다.
오늘은 그만하고 무주 개미굴에나 가봐야겠다.
“메스트.”
“네.”
“오늘은 그만하자.”
“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난지도 매립지에 온 지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나 어디 가봐야 할 곳이 생각났거든.”
“가봐야 할 곳…. 또 위험한 일을 하러 가시는 건 아니죠?”
“또라니…. 그런 거 아니거든. 시간으로 치면 1시간도 안 걸릴 일이야.”
그것도 느긋하게 움직였을 경우다.
최대한 빨리 움직인다면 30분쯤 걸리려나?
오히려 워프 게이트를 타기 위해서 협회에 들락날락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럼 저 혼자 하고 있을게요.”
“그러긴 미안하고.”
“저는 괜찮으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
“내가 안 괜찮아.”
흐레이스와 같이 있다면 몰라도.
메스트만 이곳에서 일을 시킬 순 없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지금껏 혼자였던 사람을 또 혼자 두면 외롭기도 할 테고.
“그러니까 오늘은 끝. 그만하고 백운천으로 돌아가서 쉬어.”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메스트는 평소처럼 밝게 대답했다.
그런데….
얼굴에 피어난 미소가 평소와 다르다.
마치 거짓말을 할 때 짓는 가식적인 미소 같달까?
메스트….
설마 백운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새려는 건가?
“…….”
“도운님…?”
…뭐.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해야겠다.
괜히 물어봤다가 민망할 수도 있으니.
흐레이스도 아니니 이상한 짓을 할까 걱정스럽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냐. 잘 쉬어.”
“네. 안녕히 다녀오세요, 도운 님.”
“응.”
메스트와 인사한 후 씨앗 심어놓기를 사용해 집으로 돌아왔다.
무주 개미굴로 가기 전에 씻기 위해서다.
땀을 흘리지 않았고, 별로 냄새도 나지도 않았지만….
쓰레기를 옮기는 작업을 한 탓인지 찝찝해서 씻고 싶었다.
그런데 메스트는 어디로 새려는 걸까?
“후후….”
샤워실로 들어가는데 문득 어릴 적이 떠올랐다.
나도 고등학생 때 원장 아줌마 말 더럽게 안 들었는데.
학교 끝나면 바로 보육원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간단히 무시했던 게 부지기수였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또 이태천과 함께 오락실을 간 것이냐고 질문합니다.]태천이와 함께 간 건 맞는데.
오락실에만 갔던 건 아니야.
[어린나무는 그럼 어딜 갔느냐고 질문합니다.]일일 아르바이트.
우리 그것도 생각보다 자주 했어.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관리인이 그런 생산적인 일을 할 리 없다며 의심합니다.]생산적인 일을 할 리가 없다니….
새싹아. 넌 날 대체 뭐로 보는 거냐.
[관리인은 관리인이라고 전합니다.] [이해해줄 테니 진실을 털어놓으라고 전합니다.]“…….”
이것 참….
날 인정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너무하다고 해야 할까 모르겠네.
기억 안 나?
우리 도희 수학여행 때문에 알바한 적 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세차게 끄덕입니다.] [생산적인 일을 한 이유가 이해가 간다고 전합니다.] [아무리 관리인이라고 해도 동생을 위해서라면 가능하다고 덧붙입니다.]이게 진짜….
톡, 톡!
새싹이에게 꿀밤을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스마트폰 화면을 세게 두드렸다.
물론,
[어린나무는 따스한 손길에 만족스러워합니다.]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 손으로는 아무리 화면을 두드려봤자 따스한 손길일 뿐이니 통할 리 없었다.
어휴.
씻기나 하자.
***
톡, 톡.
그동안 쌓여 있던 대왕 개미 사체로 만든 비료를 새싹이에게 건넸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들어가자마자 비료의 등급이 떠오른다.
[어린나무가 A+등급 비료를 얻었습니다!]이어 화면에서 흰빛이 뿜어져 비료가 전부 전달됐음을 알렸다.
빛이 사그라들고 보인 화면 속 새싹이의 모습은 그대로다.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점을 알아보지 못할 뿐.
새싹이의 몸엔 새로운 가지들과 이파리들이 자라났다.
그 증거로 3050만260이었던 최대 마나가 3150만260으로 늘어났다.
총 100만이 늘어난 것이다.
무기와 공유를 하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늘어난 건 50만이었지만.
“비료를 먹였는데도 그대로라니….”
이렇게 하는데도 가지만 자라날 뿐인가.
상태가 변할 낌새는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전대 세계수가 퀘스트를 발주한 이유도 알 것도 같다.
평소처럼 엘프들에게만 맡긴 채로 느긋하게 화면을 두드려댔다면….
예상컨대 새싹이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데 몇 년이 걸렸으리라.
전대 세계수도 그런 미래를 보았기 때문에 퀘스트를 발주한 것이었겠지.
고개를 들었다.
사체 보관소에 있던 내겐 둥근 구멍밖엔 보이지 않았다.
서지혁이 와 있다고?
[부하인 최기정과 전명환도 함께라고 설명합니다.]최기정과 전명환도 함께?
흐음.
부하들까지 다 끌고 왔다, 라….
나와 한 판 붙어보기라도 할 요량인가?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전투나 함정의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평소처럼 대화할 생각인 듯하다고 전합니다.]하긴….
자기가 맺은 협의를 깨면서까지 나와 싸울 이유는 없지.
나태랑도 전명환의 입을 빌려서지만 서로 건드리지 말자는 협의를 했었고.
“좋아. 오늘은 또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들어나 볼까.”
개미굴 광장에 씨앗을 심은 후 빠져나갔다.
텅 빈 개미굴을 빠져나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깥에서 서지혁과 부하들이 보였다.
최기정의 수면 마법에 당한 걸까?
관리소 직원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풀숲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벌써 두 번째인데도 제대로 된 방비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저래도 해고당하지 않는 걸 보면 개미굴 던전 관리소가 참 편한 곳이긴 한가 보다.
그러니까 관리소장이 그놈….
[어린나무는 김정철이라고 가르쳐줍니다.]그래, 김정철이랑 편을 먹고도 몇 년간 걸리지 않은 거겠지.
직원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서지혁을 바라봤다.
그는 예전에 앉아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최기정과 전명환은 살짝 뒤에 물러나 있었고.
“…오랜만이다, 백도운.”
어라…?
그의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묻어났다.
이상하다.
날 앞에 두고 지쳤다는 걸 그대로 드러낼 놈이 아닌데.
톡톡.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말했다.
“뭐 반가운 얼굴이라고 계속 찾아오냐.”
“하하, 이제 슬슬 살갑게 대해줄 때도 되지 않았나?”
“신소리 그만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건가?”
“농담 나눌 사이는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서지혁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본론이 아니었다.
“요즘 매우 바쁘더군.”
“…뭐, 그렇지.”
생각해 보니, 서지혁은 알고 있던가?
내가 땅으로 파묻은 쓰레기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
“S급 헌터라도 될 생각인가?”
“별로? 지금 내 관심사는 그딴 게 아니라서.”
“그딴….”
서지혁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처구니없는 얼굴을 보니 내가 허세를 부리는 거로 생각하는 듯하다.
진짠데.
지금 당장이라도 S급 헌터는 될 수 있었다.
그러니 매일매일 알테라-쇼넴을 쓰고 이렇게 비료를 찾아 헤매는 건 S급 헌터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치, 새싹아?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세계수 나무 상태로 성장하면 S급 헌터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게 될 거라고 전합니다.]문제는 그 성장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거지만.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늘어뜨립니다.] [자신도 전혀 가늠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습니다.]쩝….
나뭇가지라도 계속 자라나서 다행이지.
그마저도 자라지 않았다면 벌써 맥이 풀려버렸을 거다.
손가락 하나로 세계수를 피워낸 사람으로서 포기하진 않았겠지만.
“그런 거나 물어보려고 온 건 아니잖아. 할 말이나 하고 가지 그래.”
“…동맹을 맺자.”
“푸하!”
그의 말을 듣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저 소리 왜 안 하나 했다.
오랜만에 들어서 그러나?
놀랍게도 반갑기까지 하다.
“맺겠냐?”
“거절인가?”
“당연한 소릴. 나와 동맹을 맺고 싶으면 먼저 해야 할 게 있잖아?”
그리 말하며 전명환을 바라봤다.
녀석은 나와 시선이 닿자 갑자기 딸꾹질해댔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워하다니….
대체 저놈에게 난 어떤 이미지인 거야.
서지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거절하도록 하지.”
“이렇게 찾아와선 동맹을 맺자는 걸 보니, 칠죄종을 만난 게 잘 안됐나 보지?”
“그 말대로다. 보기 좋게 협의에 실패했지.”
“누굴 만나고 왔는데?”
“분노.”
흐음….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노하고 협의가 가당키나 한가?
이름만 보면 실패하는 게 당연한 듯한데.
그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대뜸 말했다.
“알고서도 간 것이다.”
“그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지.”
“리턴이 뭐였는데?”
“가장 바라던 건 놈과 동맹을 맺는 것이었다.”
“너 진짜 동맹 좋아하는구나?”
“강자와 싸우지 않고 같은 편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그야 그렇다만.”
생각이야 지당하다.
지당한데.
분노가 과연 동맹이란 걸 맺을 위인일까?
만난 적도 없지만 붙어 있는 별호에서 알 수 있듯 그럴 놈은 아닐 것 같다.
이번에도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신과 나태는 대등하지 않다면서 분노하더군.”
“날 찾아온 걸 봐서, 단순히 분노한 거로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네 말이 맞아. 바라지 않던 하이 리스크를 뽑고 말았지.”
“싸우게 된 거냐?”
“부하로 들어오라는 명령 같은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거든.”
서지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나 같아도 그런 제안 따위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음?”
“나와 동맹을 맺자고 쪼르르 찾아왔다?”
“…그렇지 않다.”
“아니긴. 딱 그렇게 보이는구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이곳으로 도망쳐 온 거다.”
“도망?”
“나태에게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답이었다.
서지혁과 나태는 협의 관계였다.
심부름까지 할 정도로 사이도 좋아 보였고.
그런데 왜 도망을…?
“분노와 협의하는 걸 누가 부탁했겠나.”
“그야, 당연히….”
천칭은 뒷세계에서 제법 명성이 높다.
물론, 분노를 찾아가 동맹을 제안할 정도는 아니었다.
부하로 받아달라고 청하는 거면 모를까….
당연히 서지혁은 나태의 부탁으로 분노를 찾아간 것이다.
문제는 보기 좋게 실패해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것.
그뿐인가?
심지어 분노와 맞붙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태로서는 가장 바라지 않던 일이었을 터.
“즉, 나태한테서 도망쳤다?”
“…그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 중 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거든.”
그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뒤에 서 있던 최기정과 전명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일까.
녀석들에게서 집에서 쫓겨난 남편과 아들들의 모습이 보이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