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30
제331화
“네가 무슨 공처가냐?”
“…그게 내 미래가 될 것 같긴 하군.”
“켁….”
놀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순순히 인정하니 오히려 당황스럽다.
당황스러운 건 전명환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놈은 눈을 찌푸린 채로 서지혁을 바라봤다.
나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잠시만 있도록 하지.”
“내 시간을 빼앗을 셈이라면 정보라도 내놔.”
“정보?”
“나태와 분노.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지?”
“아. 그런 것쯤이라면.”
서지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날 몸 상태에 따라 다를 거다. 3대7 혹은 4대6으로 나태가 질 거로 예상하고 있지.”
“역시….”
그럴 것 같기는 했다.
나태는 칠죄종에서 가장 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으니까.
에리크가 날 노리고 있다고 귀띔을 해줬던 것도 자신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놈을 치우기 위해서였고….
서지혁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승산은 충분히 있다.”
“승산이 있다고?”
“그래. 세력 면에선 나태 쪽이 더 우세거든.”
“세력이라면….”
물끄러미 서지혁을 바라봤다.
그는 날 마주 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역시나.
나태 세력은 천칭 길드를 뜻하는 거였다.
뒤쪽에 서 있는 최기정과 전명환은 별로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하긴, 두 사람 입장으로선 당황스러울지도.
갑자기 칠죄종 중 하나와 싸우게 됐으니….
“저울은 수평을 이뤘고. 결과는 눈금을 재봐야 알 수 있을 거다.”
“수평이라….”
“거기에 네가 추가된다면 완전히 기울겠지.”
“여기에서도 쫓겨나 볼래?”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항복하겠다는 듯 두 손을 쳐들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미 한 번 거절한 제안이니 당연하겠지.
“다른 칠죄종들은 어때?”
“음?”
“무너진 균형에 움직이기 시작한 건 나태와 분노뿐만이 아닐 텐데.”
“아. 나머지 네 명의 동태가 궁금한 건가?”
“뭐….”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별로 관심 없다.
요즘 내 관심사는 새싹이를 빨리 성장시키는 데에 있으니까.
칠죄종의 동태가 어떻든 알 바도 아니다.
그런데도 물어본 것은….
“심심풀이야.”
이곳에서 볼일이 끝났으므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남아 있는 이유는 오로지 서지혁 때문이니, 나와 함께 있길 바라는 그는 떠들어댈 수밖에 없다.
들을 가치가 있거나.
흥미를 끌만 한 정보들을.
“누구부터 말해줄까….”
“마스터.”
최기정이 끼어들었다.
정보들을 손쉽게 내어주고 싶지 않은 듯했다.
후드를 푹 눌러쓴 탓에 유일하게 보이는 입이 꾹 다물어져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지혁은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야. 알아내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
“…안 그래? 푸른꽃 백도운.”
“오….”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한껏 쳐듭니다.] [어린나무는 서지혁이 마음에 든다고 전합니다.] [선물로 아침이슬이라도 건네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놓습니다.]선물을 주고 싶을 정도야?
드래곤 메이트라는 별호가 정말 싫었나 보네.
“…왜 그러지?”
“아무것도. 네 의견에 동의했을 뿐.”
그러면서 최기정을 바라봤다.
칠죄종 정보 따위.
서지혁의 말마따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둘밖에 없는 A+급 헌터니까.
심지어 칠죄종 중 하나를 없앤 전적이 있는.
그런 내가 또다시 칠죄종 중 하나를 없앨 계획이라고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정부와 협회는 좋다고 자기들이 수집하고 정리한 정보를 있는 대로 털어놓을 거다.
“난 이대로 가도 아무 상관이 없어.”
“…….”
내게서 진심을 느낀 걸까?
최기정은 순순히 한발 뒤로 물러났다.
입은 여전히 꾹 다물어져 있었지만, 더는 자신의 마스터를 막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서지혁이 말했다.
“탐욕과 질투는 현재 오만을 노리고 있다.”
“둘이 동시에 노리고 있다고?”
“그렇다.”
“꼭, 그 둘이 동맹을 맺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정확하다.”
“헤에….”
오만을 노리기 위해 탐욕과 질투가 동맹을 맺었다.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오만이 그렇게 강해?”
혼자서는 오만을 쓰러뜨릴 수 없다고 판단한 거다.
서지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대답했다.
“강하다. 리롄제조차 그와 제대로 승부를 내지 못했거든.”
“그 영감이?”
“알아본 바로는 리롄제가 도중까진 압도했다고는 하는데…. 그러다가 동시에 싸움을 멈췄다더군.”
“갑자기 왜 멈췄는데?”
“나야 모르지.”
그리 말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그가 만난 적도 없는 리롄제의 의중을 어떻게 알겠나.
유추하자면 끝도 없으니 나중에 만났을 때 넌지시 물어봐야겠다.
“또 너와 싸웠던 폭식도 오만에게 졌지.”
“그랬다더라. 날 먹으려고 한 것도 힘을 얻어 오만에게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고.”
“결국, 그 꼴이 되고 말았지만.”
“순서가 틀렸으니까.”
“순서?”
“에리크는 판단을 잘못했거든.”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러니까, 에리크 그놈은 오만을 상대하기 위해 날 먹을 게 아니라, 날 상대하기 위해 오만을 먹었어야 한다는 소리야.”
“…….”
서지혁은 입을 다물었다.
반면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입을 쩍 벌렸다.
황당하고 기막히다는 얼굴들이다.
알게 뭐람.
진실인데.
그치, 새싹아?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오만이든 뭐든 우리 상대는 되지 못한다고 전합니다.]“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짝.
손뼉을 한번 쳤다.
세 사람의 얼굴에서 황당하단 표정이 사라졌다.
“나태가 분노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던 것도 놈들의 동맹 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봤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같은 급의 실력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
“그걸, 네가 망쳤다는 거네.”
“또다시, 정확하게 봤다….”
서지혁은 인정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뒤의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왜 자꾸 집에서 쫓겨난 아버지랑 아들들 같아 보인담.
친근해지려고 하네.
그럼 이제 남은 칠죄종은 하나.
음욕인가.
“음욕은?”
“모른다.”
“어라?”
“활동을 멈춘 지 오래돼서 아무 정보도 들어오지 않고 있거든. 정부와 협회에서도 모를 거다.”
“그 정도면 어딘가에서 죽은 거 아니냐?”
“아니. 어딘가에서 숨어 있다고 보는 게 옳겠지.”
그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절대로 죽었을 리 없다는 얼굴이었다.
아무 정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면서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걸까.
내 얼굴에서 의문을 읽었는지 그가 말했다.
“그녀는 모든 정보가 끊기기 전, 이곳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도망쳤지. 그녀가 마지막으로 싸웠던 헌터도 죽이지 못하고 놓친 실력자야. 그런 실력자가, 어딘가에서 소리소문없이 죽었을 것 같지는 않군.”
마지막으로 싸웠던 헌터….
서지혁의 확신은 그 헌터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대체 누구기에 저렇게까지 말하는 거지?
“…….”
“왜?”
“설마 모르는 건가?”
“뭘?”
“정말 모르나 보군. 그 헌터는 너도 아는 남자다.”
“……?”
나도 아는 헌터라고?
내 주변에 오래전 정보가 끊긴 칠죄종을 상대할 만한 인간은….
아.
한 명 있구나.
“한진환….”
“그래. 바로 그다.”
“과연…. 설득력 있는데그래.”
“그렇지?”
한진환이 놓쳤다고 생각하니, 서지혁의 말에 긍정이 갔다.
음욕이 어딘가에서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었을 수야 있겠지만, 최소한 ‘소리소문없이’ 죽진 않았을 듯하다.
칠죄종 중 가장 약한 에리크도 싸울 때 퍽 일을 크게 벌였었으니까.
한국에서 전투를 벌이고 도망쳤다, 라….
설마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힘을 모으고 있는 건 아니겠지?
“…….”
서지혁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입꼬리가 히쭉 올라가 있다.
쫓겨서 온 주제에 웃기는.
“…왜?”
“감상이 어떤가 싶어서.”
“갑자기 무슨 감상?”
“네가 힘의 균형을 깨뜨린 장본인이지 않나.”
“아….”
그의 말대로 깨뜨린 건 나였다.
정보가 끊긴 한 명과 여섯 명으로 유지되던 균형을.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어쨌거나.
감상을 물어봤었지….
“솔직하게 말하면 잘됐다 싶은데.”
“잘되었다?”
“그래. 나쁜 놈들끼리 싸우겠다는 거잖아. 다 같이 공멸(共滅)이나 했으면 좋겠네.”
“신랄하군.”
“글쎄다. 비단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걸?”
오만이건 뭐건….
칠죄종이라고 불리는 놈들은 하나 같이 세계가 지정한 범죄자들이다.
자기들끼리 싸우다 함께 멸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아주 많을 거다.
“맞는 말이긴 하다만…. 그 말을 네가 하니 조금 황당하긴 하군.”
“내가 왜?”
“넌 원래 이쪽에 있었어야 할 인간이니까.”
휙, 휙….
서지혁이 검지로 아래를 가리켰다.
정말로 땅바닥을 가리킨 게 아니다.
그가 말한 ‘이쪽’이란 것을 가리킨 것이다.
“네가 그쪽에 있는 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백도운. 어릴 적 네 옆에 이태천이 있었다는 것.”
“…….”
“그가 없었다면 과연 네가 그쪽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
흠….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의 말대로다.
태천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분명 지금과는 크게 달랐을 거다.
새싹이를 자라나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고, 저쪽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마스터.”
최기정이 서지혁을 불렀다.
그러고는 귓속말로 짧게 대화를 나눴다.
대화가 끝나자 서지혁이 앉아 있던 바위에서 일어섰다.
“이만 가봐야겠군.”
“응? 생각보다 빨리 떠나네?”
“불청객들이 오고 있어서 말이야.”
“불청객?”
[어린나무가 여러 사람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전합니다.] [협회 소속 헌터들인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확실히….
천칭 길드는 범죄자 조직이니까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겠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이곳으로 왜 오는 거지?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땅바닥을 보라고 전합니다.]땅바닥?
새싹이의 말에 따라 고개를 내렸다.
최기정의 수면 마법으로 곤히 자는 관리소 직원들이 보였다.
“…아.”
과연.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나 보다.
저렇게 잠들면 협회에 전달된다거나.
혹은 일정 시간 연락이 되지 않으면 출동하는 식의 대비를 한 모양이다.
문제는 하나….
천칭 길드 세 사람이 방금 순간이동 마법으로 떠나서 나 혼자 남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거. 누가 봐도 내가 그런 것 같은데.”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오해하기 딱 좋은 모습이라고 긍정합니다.]이걸 어쩐다?
어떡하면 오해하지 않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냥 심어놓은 씨앗으로 떠날까.
하지만 관리소 직원들이 내가 개미굴로 들어갔다는 걸 봤다.
이대로 돌아가면 오해만 더 커질 게 분명한데….
차분히 고민하는 동안,
“……!”
협회 소속 헌터들이 개미굴 앞으로 도착했다.
그들은 단번에 내 얼굴을 알아보았는데, 앞서 걱정했던 대로 날 의심했다.
“…저기, 이거 다 오해입니다.”
방긋…!
난 착한 사람이에요.
선량한 시민이에요.
그런 뜻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내 미소를 곡해했다.
“전부, 전부 뒤로 물러나!”
“백도운… 헌터! 가만히 있으십시오!”
“더 이상 위협을 가하시면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언제 위협을 가했어?
방긋 웃은 게 다구만….
***
도운이 귀찮은 일에 휘말린 시각.
메스트는 은마 매립지에 가 있었다.
두 손에는 그녀의 손자국이 새겨지기까지 한 삽을 쥔 채다.
푹…!
제법 깊이 땅을 판 그녀는 삽을 땅바닥에 박아 넣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펴기 위해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끄응…!”
그녀는 도운이 예상한 대로 백운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샜다.
다만.
그 다른 곳이 설마 은마 매립지일 것이라고는 도운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리라.
임페일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왔다.
「…다 팠나?」
“아, 네.”
「그럼 나오도록. 곧 다른 내가 올 것이다.」
“네!”
메스트는 활기차게 대답하며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마자 다른 임페일이 날아와 쓰레기들을 쏟아붓고는 떠났다.
쓰레기가 다 부어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바로 땅을 덮었다.
「흐레이스…!」
“…왜!”
「이곳으로 와서 알테라-쇼넴을 쓰도록!」
“싫어…!”
「싫다고?」
“그래! 벌써 며칠째인지 알아?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메스트 저년까지 와선…!”
흐레이스가 메스트를 노려봤다.
메스트는 설마 흐레이스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사흘 동안 도운과 난지도 매립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임페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흐레이스. 너도 참 악취미로군.」
“뭐?”
「짐에게 또 거꾸로 매달아달라고 요구하다니….」
임페일이 손을 뻗었다.
자신을 향한 고사리 같은 손을 보고서 흐레이스는 기겁했다.
“하, 한 적 없어, 그런 요청! 지금 바로 갈 테니까 매달지 마!”
흐레이스는 울상을 지으며 내달렸다.
동시에 메스트를 노려보았다.
백도운이 쉬라고 했으면 쉴 것이지 왜 와서 날 더 힘들게 하냐.
그런 말을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물론,
“쉬라면 쉴 것이지! 왜 와서 지랄이야, 넌!”
흐레이스는 그런 얼굴로만 끝나지 않았다.
메스트는 그 모습을 보곤 즐거운 듯 아하하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