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25
제326화
팡, 파앙! 팡!
운동장보다도 넓은 훈련실에선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연신 울려댔다.
빠르게 내질러지는 주먹의 주인은 러시아의 S급 헌터 막심 스미르노프였다.
짝…!
“힘이 너무 넘쳐요, 황제! 파워를 더 줄이세요!”
레게 머리를 묶은 여자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그녀는 옆에서 지켜보며 스미르노프가 주먹을 내뻗는 것을 계속 지적했다.
힘이 너무 넘치는 실수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스미르노프는 묵묵히 넘치는 힘을 절제했다.
그에 따라 허공을 가르는 소리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여자는 과하게 넘치던 힘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흡족한 듯 웃었다.
“좋아요! 그렇게 천 번만 더 질러보죠!”
“…….”
팡, 파앙!
스미르노프는 주먹을 내뻗으면서 여자를 바라봤다.
천 번만?
그게 꼭 쉬운 일이라는 듯 말하는군.
그리 말하는 듯한 얼굴에 여자는 빙긋 웃었다.
“그렇게 절 쳐다보는 걸 보니 역시 여유로우시네요. 2천 번으로 올릴까요?”
“…흥.”
쾅!
순간 허공이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주먹을 휘둘렀는데 비행기가 지나간 듯한 굉음이 울린 것을 보고, 빙긋 웃었던 여자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겨울이라 옷을 조금 두껍게 입었음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을 스미르노프에게 들켰을 터였다.
“…그러니까, 너무 과하시다니까요.”
“이것도 참은 거야. 선생 얼굴로 향할 뻔한걸.”
“아하하, 농담도 참 짓궂게 하신다니까.”
“…….”
“…농담 맞죠?”
팡! 파앙!
스미르노프는 대답하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여자는 여전히 웃는 낯을 했지만, 등 뒤로 숨긴 두 손을 자꾸만 꼼지락거렸다.
혹시 나 방금 죽을 뻔한 건가?
그런 의문이 절로 떠올랐는데, 사실 여자의 걱정은 정확했다.
그녀가 스미르노프와 몇 개월 전에 만났더라면.
정확히 그가 한국에 다녀오기 전에 만났다면 방금 주먹에 몸통이 꿰뚫려 죽었을 터였다.
절대적인 강자를 만나 조금이나마 폭군에서 탈피한 것이 그녀가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
“…황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미르노프와 여자는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봤다.
투명한 문 바깥에는 스미르노프의 통역사 파빌 보고리스가 서 있었다.
보고리스는 문을 열며 들어왔다.
그걸 보고 여자가 따져 물었다.
“잠깐만요, 보고리스! 훈련 시간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미안합니다, ‘다닐로바’ 선생. 황제가 이걸 꼭 봐야 해서요.”
“선생이 이해하지. 보고리스가 저렇게 행동한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란 뜻이니.”
“…쳇. 알았어요.”
다닐로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발 물러났다.
S급 헌터가 꼭 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니 한낱 훈련 코치인 그녀로서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보고리스가 갖고 온 것이 궁금해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비밀 유지 계약서를 작성했으므로 훈련실에서 본 것을 다른 곳에서 떠들어댈 수도 없겠지만.
“백도운이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백도운?”
“기억 안 나십니까? 왜 한국에서 만났지 않습니까. 천공의 기사 옆에 있던 자요. A+급 헌터가 돼서-”
“알고 있다. 그놈이 나한테 ‘선물을 보냈다’라는 것 때문에 당황한 거야.”
“아아….”
보고리스가 긍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말과 행동에 다닐로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드래곤 메이트와 사이가 안 좋으신가 보죠?”
“황제가 천공의 기사를 동료로 포섭하려다가 실패했거든요.”
“겨우 그런 거로요?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거야 당연한 거잖아요.”
“…실패한 황제가 기사를 죽이려고 했거든요.”
“…….”
다닐로바는 스미르노프를 바라봤다.
손님으로 갔던 한국에서 한국의 가장 인기 있는 헌터 중 한 명을 죽이려고 했었다고?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야?
그녀의 당황스러운 눈초리를 보고서도 스미르노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려고 했을 뿐.”
“그거나 저거나요. 천공의 기사가 아니었다면 그날 큰 사달이 났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상하긴 하네요. 드래곤 메이트는 그 천공의 기사랑 엄청 친하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 짓을 저지른 황제한테 선물을?”
“흔히 선물이나 뇌물은 뭘 부탁하기 위해서 보내오곤 하지.”
스미르노프는 심드렁하게 손을 뻗었다.
그는 황제라는 별호가 붙은 헌터답게 수많은 선물과 뇌물을 받아왔다.
그에 따른 부탁도 수도 없이 들어준 경험이 있었다.
보고리스가 선물을 건네며 물었다.
“백도운이 황제한테 뭘 부탁하려고 선물을 보냈다는 겁니까?”
“그것 말고는 선물을 보낸 이유를 알 수가….”
마법 주머니를 연 스미르노프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그를 보고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보고리스. 내용물 확인 안 했나?”
“네. 전해 받을 때 아주 귀한 것이니 개봉하지 말고 당장 황제한테 전달하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대체 내게 뭘 요구하려고 이런 걸 보냈는지 궁금하군.”
“무엇이기에 그러십니까?”
“엘릭서다.”
“……네?”
“딸꾹!”
보고리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법 주머니 속을 훔쳐보려던 다닐로바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들어 딸꾹질이 한번 나왔다.
스미르노프는 마법 주머니를 보고리스에게 건넨 후 편지를 받아들었다.
보고리스는 두 손으로 마법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마치 갓난아기를 안아 들듯 아주 조심스러웠다.
바스락….
스미르노프는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글쎄. 모르겠군.”
“네?”
“한국어로 쓰여 있다.”
“아….”
스미르노프는 편지지를 건넸다.
편지를 받아든 보고리스는 바로 번역해 읽었다.
“야. 발목은 깨끗이 씻고 있냐?”
“…큭! 크크큭!”
스미르노프가 웃음을 흘렸다.
웬 발목 얘기인가 싶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봤다.
동시에 큭큭 웃어대는 스미르노프를 보면서 실례되는 생각을 했다.
이놈이 미쳤나?
“…황제?”
“그놈이 이걸 보낸 게 확실하군.”
“확실하다고요? 이딴 내용이요?”
“선생은 모르겠군. 이놈이 내 발목을 자르겠다고 경고했었거든.”
“……?”
다닐로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엘릭서가 담긴 마법 주머니를 쳐다봤다.
“정리하자면, 드래곤 메이트는 지금 황제 발목 자르겠다면서 엘릭서를 보냈다는 말이에요?”
“그런 셈이 되겠군.”
“미친놈 아니에요?”
“정확히 봤다. 나도 딱 그리 생각했었지. 크큭….”
“하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스미르노프는 폭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제멋대로 사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정도라니.
백도운은 대체 얼마나 미친 짓을 일삼는 인간일까?
머릿속엔 그 의문과 함께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
편지지 아랫부분을 보던 보고리스가 탄성을 흘렸다.
접혀 있던 탓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랫부분에 추신이 있습니다.”
“추신?”
“황제의 예상대로입니다. 부탁을 전해왔는데…. 으잉?”
“왜 그러나, 보고리스?”
“이건, 너무 시답잖은 부탁인데요?”
보고리스는 편지지를 팔랑였다.
그의 얼굴은 시답잖다는 말처럼 당황스러워 보였다.
“엘릭서를 보내면서 한 부탁이 시답잖다고?”
“네. 너무나도 간단해서 황당할 정도입니다.”
“무슨 부탁인데 그래요? 그만 뜸 들이고 좀 말해봐요.”
“그러니까….”
보고리스는 편지지를 다시 바라봤다.
자신이 읽은 게 정확한 것인지 재차 확인할 요량인 듯했다.
“엘릭서를 받은 감상 좀 인터뷰해달랍니다.”
“……?”
스미르노프와 다닐로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릭서까지 주면서 한 부탁이 겨우 그딴 거라고?
그들은 도운의 저의(底意)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속뜻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렇기에,
“큭…. 역시 내 생각에 틀림이 없었군.”
스미르노프는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
“로미네.”
“네, 협회장님.”
“내가 지금 들은 게 맞아? 백도운이 엘릭서를 선물하면서 부탁한 게 겨우 인터뷰 좀 해달라는 거였다고?”
“…제대로 들으셨어요.”
“허!”
매그너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재차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부탁과 비교하면 너무 과한 선물이 아닌가.”
“비교하기가 민망하죠….”
“밀러는? 인터뷰한다고 하던가?”
“하겠다네요.”
“그럼 그게 진품(眞品)이라는 뜻인데…. 흐음.”
톡, 톡….
매그너스는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테이블 위에는 사진이 놓여 있었다.
초록의 나뭇잎으로 감긴 엘릭서의 사진이었다.
“이게 진짜라…. 세계 포션 시장이 크게 변하겠어.”
“그보단 바티칸이 걱정이죠.”
“아아. 그래. 그쪽이 어떻게 나올지도 지켜봐야겠군.”
“설마 막무가내로 나오진 않겠죠?”
“막무가내? 뭐, 자기들 이권을 위해 그 포션 메이커를 암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바티칸의 높은 분들이시잖아요. 능히 그런 잘못된 선택도 할 것 같은데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못할 테니까.”
“못할 거라니요.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에요. 자기들 이권을 빼앗기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위인들이 아니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
매그너스는 로미네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는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바티칸이 암살한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협회장님?”
“포션 메이커는 백운천 건물에서 나오질 않는다고 했지.”
“네. 조사한 바로는 이사하고 나서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온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암살하기 위해 건물로 직접 들어가야겠군. A+급, 아니. 비공식 S급 헌터인 백도운과 그의 동료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아….”
“백도운의 비호를 뚫고 암살을 할 수 있는 놈이 세상에 과연 있기나 할까.”
“암살하지 못할 거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군요.”
“그런 거지.”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만일의 상황도 덧붙였다.
“뭐, 바보는 늘 있는 법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일리스에게 바티칸의 동태를 살피라고 전해.”
“네, 알겠습니다.”
“바티칸 얘긴 이만하면 됐고…. 밀러는 언제 인터뷰한다던가? 그녀 성격이라면 바로 한다고 했을 것 같은데.”
“아뇨. 자기보다 먼저 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서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먼저 해야 할 사람?”
“…네.”
로미네는 아까 매그너스가 그랬던 것처럼 빤히 쳐다봤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 보다 깨달았다.
밀러가 말한 먼저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그위친을 말하는 건가.”
“네.”
“…날 재촉하는 것이겠고.”
“정확해요.”
“후우….”
매그너스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이어 반대쪽 손으로는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엔 곧 ‘에이든 녹스Aiden Knox’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밀러한테 연락해. 그위친 만나러 갈 준비하라고.”
“지금 바로요?”
“그래. 지금 바로.”
“괜찮으시겠어요?”
로미네가 걱정스러운 듯 묻자 매그너스는 씩 웃었다.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는 듯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서 나온 목소리와 말 또한 당당했다.
“괜찮고말고. 난 매그너스니까.”
“그럼 좀 빨리하시지 그러셨어요….”
“뭐?”
“예전부터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데, 제발 쉽게 하실 수 있는 일은 빨리빨리 처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매그너스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 표정이 흡족했는지 로미네는 빙긋 웃었다.
“그럼 저는 이만 기쁜 마음으로 밀러님에게 연락 드리러 가볼게요.”
그녀는 활기차게 말하고 협회장실을 떠났다.
홀로 덩그러니 남은 매그너스는 당황스러움에 허허 웃었다.
그러고는 헛헛하게 중얼거렸다.
“미합중국 대통령한테 부탁하는 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