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40
제341화
“후우….”
붉은숲 던전을 빠져나오자 마중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이성훈과 관리소 직원들로, 아무래도 첫째 날이라고 나와준 모양새였다.
그들 중 날 가장 활기차게 맞이해준 사람은 역시 아는 얼굴인 이성훈이었다.
그렇다.
“그냥 나오지 마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단 뜻이다.
저게 온종일 고생하고 온 사람한테 보일 태도인가.
하여간 시종일관 싹수없는 놈.
“어, 나오지 말라니까! 저기! 저기로 들어가서 제염(除染)부터 하시라고요!”
이성훈은 던전 앞에 설치된 대형 소독기를 가리켰다.
날 바라보는 두 눈이 몸을 소독하지 않을 거면 올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이 살벌했다.
뭐, 그럴 수 있지.
아무 설명도 안 해줬으니까.
“그럴 필요 없어, 멍청아.”
“필요가 없기는요! 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들어가서 제염하라고요…!”
“어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사능은 내게 아무런 해도 입힐 수 없었다.
체내에 흡수되기는커녕 나무껍질 스킬 덕분에 묻을 수도 없었다.
그뿐인가?
오늘 내내 트렌트를 트렌트리로 진화시키면서 일정 지역을 정화하기까지 했다.
설령 내 몸에 방사능이 묻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정화되어 사라진 지 오래일 것이었다.
녀석은 그걸 모르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지만.
“…….”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성훈처럼 걱정과 근심이 묻어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폭될까 걱정스러운 게 분명했다.
할 수 없지….
세계수 관리인이라 이런 건 하등 문제 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 불안함을 씻어주도록 하자.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형 제염기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기계가 작동했고,
푸쉬익…!
기체화한 제염액을 온몸에 뿌려댔다.
켁….
냄새가 생각보다 독한걸.
보호구에 묻은 방사능을 없애기 위한 기계니 당연한 건가.
원래는 이렇게 사람한테 직접 분사하는 게 아니었겠지.
제염액 분사가 끝나고 잠겼던 문이 열렸다.
그제야 이성훈은 안심이 된 듯 생글생글 웃으면서 다가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은 틀렸다.
주변에 지켜보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없었다면 분명 뱉었으리라.
“고생하셨어요, 팀장님!”
“그게 고생한 사람한테 보일 태도냐?”
“하하하! 제가 뭘 어쨌다고요? 열렬하게 환영해드렸잖아요.”
“아까 그게?”
“네!”
“하여간….”
녀석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돌아봤다.
마중 나온 사람 중 관리소장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 갔나?
내 시선의 이유를 알아차렸는지 이성훈이 설명했다.
“웨보이 관리소장은 던전에 들어갔다가 연구실로 갔어요.”
“던전에 들어갔었다고?”
“네. 30분 정도는 들어갔다 나올 방법이 있는 듯했어요.”
“흐음, 그래?”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팀장님이 트렌트를 나무로 바꿔버린 걸 보곤 연구열이 끌어 오른 모양이더라고요.”
“들어갔나 나왔다…. 설마 트렌트리를 베어버리고 나온 건 아니지? 그건 사양했으면 싶은데.”
진화시켜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그렇게 되자마자 베여버리면 너무한 처사잖아.
이성훈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처음엔 그럴 줄 알았는데, 나무가 아니라 웬 흙을 퍼왔던데요? 아. 이파리 몇 장 뜯어오긴 했어요.”
“이파리 정도라면야…. 근데, 흙을 퍼왔다고?”
“네.”
“헤에….”
눈썰미가 제법 좋은걸.
흙에 담겨 있어야 할 방사능이 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린 게 분명하다.
언젠가 눈치챌 거라곤 생각했는데, 첫날 만에 들킬 줄은 몰랐네.
어떻게 한 거냐고 질문하러 올지도 모르겠어.
“이유를 아시는 눈치네요?”
“알지.”
“설명 안 해줄 거예요?”
“어. 안 해줄 건데.”
“정말 너무하네…. 아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요? 어떻게 된 거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아는 게 없어서 아무 대답도 못 했었다고요.”
“그래도 잘 넘겼지?”
“대충 흐지부지 넘겼죠.”
“그럼 됐네. 잘했어.”
“하아아….”
“무기는?”
“숙소에 계세요. 역시 이곳이 추운가 봐요.”
“뭐?”
설마 기온이 떨어진 탓에 활동성이 저하된 거로 생각하는 건가?
뱀도 아니고….
무기가 들었다간 화낼 소리를 하고 있네.
그저 여의주에 담을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를 정제하고 있을 뿐인데.
숙소에만 있을 거면 뭐 하러 함께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녁부터 먹자. 배고프다.”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식당으로 안내할 생각이었어요.”
그리 말하며 이성훈이 앞장섰다.
그런 우리를 관리소 직원들이 따라왔다.
음….
이거 좀 부담스러운걸.
***
식사를 마친 후 숙소로 혼자 돌아왔다.
이성훈은 배부르니 좀 돌아다니겠다면서 떠났다.
그리 많이 먹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한국에 연락하고 싶은 거겠지.
“…….”
숙소로 들어가니 침대 위에 똬리를 튼 채로 가만히 있는 무기가 보였다.
자는 건가?
싶었으나 무기의 몸에서 푸른 마나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깨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를 정제하는 중이었다.
해서 마음 놓고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톡톡 톡톡톡.
「…왔나.」
무기가 천천히 눈을 떴다.
소리를 듣고 알아차린 듯 오른손을 쳐다봤다가 시선을 위로 올렸다.
톡톡톡….
「수고했다, 관리인.」
“종일 그러고 있었어?”
무기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를 정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한 가지….
쉬운 방법이 떠오르긴 했는데.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왜 방법을 말해주지 않느냐고 질문합니다.]…그런 게 있어.
[???]“…그보다, 식사는?”
「배고프지 않으니 괜찮다.」
“그럼 됐지만.”
풀썩.
침대 위에 드러눕자 무기가 질문을 던졌다.
「오늘치 소탕은 잘했나?」
“글쎄…. 그걸 소탕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네?”
「음?」
“아, 그게 말이야….”
던전에 있었던 일을 바로 설명했다.
무기는 듣는 동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세계수 관리인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역시 전대 세계수와도 알고 지내던 녀석답다.
“딱 트렌트리 100그루 만들고 돌아왔어.”
「그랬군. 녀석들이 좋아했겠어.」
“좋아했지. 고마워하더라.”
「얼마나 더 걸릴 것 같나?」
“음….”
오늘 정화한 지역이 아마 반경 500m 정도 될 거다.
붉은숲 던전의 크기가 10km였으니까, 이 속도로 진행한다면….
“20일…? 그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이번 일은 생각한 것보다 빨리 끝나겠군.」
“사막 때랑 비교하면 그렇지.”
그때랑은 면적 단위부터가 달랐다.
오히려 그 넓은 지역에 풀을 자라나게 하는 일이 겨우 3개월 만에 끝났다는 게 굉장한 거다.
다 무기 덕분이었지만.
하늘을 나는 무기의 머리 위에서 솔라빔을 쏘지 않았다면 3개월 만으로는 도저히 못 끝냈겠지.
나 혼자였다면 지금쯤 끝냈을지도 모르겠는걸….
“…아.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긴 해”
「사소한 문제라고?」
“지금까지 이곳의 보스 몬스터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거.”
한진환도 발견하지 못해 토벌하지 못했었다.
우크라이나 헌터들도 게이트가 폭발하기 전부터 발견하지 못했었고.
뭐, 그게 다 방사능 탓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그들과 달리 나는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데다가 탐색에 능한 새싹이가 함께 있었다.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트렌트를 트렌트리로 진화시키며 돌아다니다 보면 금방 보스 몬스터를 탐지해낼 것이라고 자신합니다.]새싹이가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 자신감에 힘을 싣듯 무기가 말했다.
「세계수라면 쉬이 찾아내겠지.」
그리 말하는 무기의 눈에선 신뢰가 느껴졌다.
보스 몬스터가 무엇이든지 간에 새싹이라면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을 보고 새싹이는 흐뭇해했다.
[어린나무가 흡족하게 무기를 바라봅니다.] [언젠가 나뭇가지에 앉게 해줘야겠다고 다짐합니다.]세계수 나뭇가지에 앉은 이무기, 라….
문장으로만 보면 꼭 신화에 나올 것만 같다.
지금 모습으로 앉는다면 그렇게까지 위엄 넘칠 것 같진 않지만.
뭐, 그래도 한번 보고 싶긴 하네.
[어린나무는 보게 될 것이라고 전합니다.]그러려나?
***
붉은숲 던전 관리소의 연구실은 조용했다.
올레나 웨보이 관리소장만이 홀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붉은숲 던전에서 직접 채집해온 것들을 살피고 있었다.
지금은 나무가 돼버린 A등급 몬스터 트렌트의 나뭇잎과 그 주변의 흙이었다.
끼이익….
연구실의 문이 열리며 한 연구원이 들어왔다.
연구원은 그녀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소장님!”
“……?”
웨보이 관리소장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마주 보길 5초.
“…지금 몇 시야?”
“8시요.”
“벌써 그렇게 됐어? 백도운은?”
“이미 돌아왔죠. 방금 저녁 먹고 숙소로 들어갔어요.”
“이런…. 첫날이라서 마중 나가려고 했는데….”
찰싹….
그녀가 제 이마를 때리듯 짚었다.
“어때 보였어?”
“화가 난 것 같냐고 묻는 거라면, 다행히 그런 모습은 아니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휴, 다행이다…. 옆 나라의 어떤 황제라면 무시하는 거냐고 노발대발했을 텐데. 그치?”
“황제는 무슨! 그렇게 던전 소탕해달라고 부탁해도 무시하는 놈한텐 폭군이면 족해요.”
“우후후….”
그녀는 웃음을 흘렸다.
사실 스미르노프가 그들의 부탁을 무시하는 걸 탓할 수는 없었다.
보통 던전과 다르게 방사능이 가득했으니까.
상식적으로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었다.
“백도운이 이상한 거야.”
“그렇긴 하죠.”
연구원이 즉시 동의했다.
두 사람은 오늘 도운이 보여 준 모습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방사능에 피폭될 걱정도 하지 않고 붉은숲 던전을 거니는 사람을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요?”
“한진환은 그가 엘릭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엘, 엘릭서요?”
“응. 크리스탈 공방 말이야. 그게 백도운 길드의 공방이래.”
“헉….”
“오늘 모습을 봐선 엘릭서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스킬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지만.”
“관리소장님이랑요?”
“태연하게 온종일 들어가 있는 걸 보면, S등급 스킬이겠지?”
“S등급….”
꿀꺽….
연구원이 침을 삼켰다.
살면서 S등급 스킬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지만.”
“네?”
“이게 뭔지 알아?”
관리소장은 앞에 놓인 초록의 나뭇잎을 집어 들었다.
대뜸 나뭇잎을 들고 뭔지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하나 연구원은 오늘 내내 잊을 수 없는 모습을 지켜봤다.
붉은숲이라고 불릴 정도로 온통 붉은 곳에서 초록의 나뭇잎은 하나밖에 없었다.
“트렌트의 나뭇잎…인가요?”
“맞아.”
“그걸 왜 맨손으로….”
“그래도 괜찮으니까.”
“네?”
“모르겠어?”
그리 물으며 나뭇잎을 흔든다.
그녀의 손바닥만 한 나뭇잎이 손길을 따라 팔랑거렸다.
연구원은 고민해 보았지만, 답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관리소장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어.”
“…네?”
“나뭇잎뿐만이 아니야. 흙에서도 검출되지 않았어. 0.000…00001%도.”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고요…?”
“그렇대도.”
“전혀요?”
“전혀.”
그녀는 손에 든 나뭇잎과 흙을 입으로 무는 시늉을 했다.
연구원이 깜빡 속아 몸을 움찔거렸다.
검출되지 않았다고 해도, 붉은숲 던전에서 채집해온 것으로 장난치는 모습을 여유롭게 넘길 수 없었다.
만에 하나가 있었으니까.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을 정화했다는 거예요?”
“그것도 순수하고 완전하게.”
“말도 안 돼…. 그가 무슨 신도 아니고….”
“혹시 모르지? 이런 이적(異蹟)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사람인걸?”
“…….”
연구원은 입을 다물었다.
농담으로 던진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일 줄 몰랐기 때문이다.
관리소장은 나뭇잎을 흔들었다.
“현재로서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
“……?”
“백도운은 분명 붉은숲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관리소장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붉은숲 던전이 마침내 공략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