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74
제375화
만티코어로 변태한 지상욱은 빠르게 활공했다.
그러면서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는 김재식을 의식했다.
김재식은 백도운이 선물로 준 창을 어깨에 둘러멘 채 내달리고 있었다.
“후훗….”
그는 그 꼴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사실 지상욱이 내기를 제안한 것은 그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데다가 만티코어가 된 이후 바람 마법까지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됐으니까.
왓쳐를 사냥하는 데에 자신이 김재식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거다.
그 판단이 옳다고 말하듯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왓쳐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그래, 이거지…!”
그는 쾌재를 부르며 김재식을 돌아봤다.
아까와 같이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었다.
목적 없이 내달리는 모습을 보니, 왓쳐를 발견한 자신과는 달리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예상한 대로 하늘을 날 수 있으니 두 발로 뛰는 녀석보다 사냥감을 찾는 데 유리했다.
후웅…!
상욱은 세차게 날갯짓을 한 번 했다.
날개에 담긴 마나가 바람 속성의 마법이 되어 왓쳐를 향해 돌진했다.
아무리 유리 대포라고 불리는 왓쳐라고 해도 전개하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은 간단한 바람 마법에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키에엑!”
왓쳐가 커다란 눈알을 부릅뜨며 상욱을 노려봤다.
돌풍에 갇혀 움직이지 못할 뿐, 왓쳐의 트레이드마크인 빔을 쏘아대는 데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왓쳐의 공격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에 쏘아져 오는 빔을 간단히 피했다.
바람 마법을 쓴 건 그저 왓쳐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로 쏴대는 빔은 뻔한 위치로 날아올 테니까.
“시끄럽게 울지 말고, 죽어…! 이 괴물 눈깔 새끼야!”
지익!
엄지발톱을 제외한 네 개의 발톱이 왓쳐의 커다란 눈알을 할퀴었다.
공격 수단이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한 눈알을 공격당한 왓쳐는 그대로 즉사(卽死)했다.
“…죽었어?”
상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별명이 유리 대포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한번 할퀴었다고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정도면….”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람 마법을 잘만 쓰면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사냥할 수도 있겠는데?”
그는 죽은 왓쳐의 시체를 챙기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서 눈을 빛내는 김재식이 보였다.
드디어 왓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좋아. 유리하다고 여유를 부릴 수는 없지!”
그러면서 상욱은 눈을 감았다.
몸의 감각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만티코어가 된 이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된 것으로 스킬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상대의 살기가 담긴 시선을 구분해내는 것처럼 본능에 더 가까웠다.
거리로 계산하면 50m 정도의 거리까지밖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와는 달리 김재식은 오로지 두 눈에만 의지해야 했으니까.
그것도 하늘이 아니라 땅에 서서.
“…오. 운이 좋은데!”
상욱은 뭉쳐 있는 왓쳐 세 마리의 미세한 기척을 느꼈다.
무리 생활을 하지 않는 놈들이 함께 있었으니 확실히 운이 좋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곧장 왓쳐 세 마리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아까 썼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강력한 바람 마법을 캐스팅했다.
움직임을 제한하는데 그치지 않고, 단번에 왓처를 절명(絶命)시키기 위해서였다.
“키익?”
“키에엑!”
“키엑!”
상욱을 발견한 왓처들이 날카로운 소리로 울어댔다.
또 곧장 빔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세 마리가 동시에 빔을 쏘았으나 이시형과의 하늘 데이트 덕분에 하늘을 나는 일에 굉장히 익숙해진 상욱은 손쉽게 피해냈다.
마법 캐스팅도 곧 끝이 났다.
“‘질풍의 칼날’!”
세찬 날갯짓을 한다.
날개에 담긴 마나가 바람 속성의 마법이 되어 쇄도하는 것은 아까와 똑같았다.
다른 점은 무수한 칼날 모양으로 날아갔다는 점이다.
직! 지직! 지지직!
빔을 쏴대던 왓쳐 세 마리는 지상욱의 질풍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죽었다.
범위가 너무 넓었기 때문에 미처 피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크크크…!”
눈에서 빛을 잃고 추락하는 왓쳐들을 보니, 지상욱은 입에서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식이라면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죽은 왓쳐들을 수거한 후 또다시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 순간,
“크윽…!”
지상욱은 신음을 흘렸다.
일순에 게이트의 분위기가 바뀌어버린 탓이다.
중력이 몇 배나 강력해진 듯 공기의 밀도가 달려진 것 같은 감각….
그 탓일까?
굳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날개로 인해 자연히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타악…!
그나마 날개가 조금이라도 움직여준 덕분에 지상욱은 곤두박질치지 않고 땅에 착지할 수 있었다.
“이건, 마나 압박…?”
그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어 현상의 이유를 생각했는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답이 도출되었다.
현재 이곳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한국의 두 번째 A+급 헌터, 백도운.
“도운 형님….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상욱은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뭘 하고 있기에 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압박이 느껴지는 것일까.
이해하지 못한 채로 도운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산을 올려다봤다.
산에서는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건 대체…?”
***
김재식은 게이트에 진입하자마자 초인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고는 지상욱이 나아간 방향의 반대쪽으로 달렸는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내기에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보통 상태라면 모를까.
만티코어로 변태했다면 몇 배나 강해지므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다.
그런 상황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지상욱이 사냥하는 꼴만 지켜보게 될 것이다.
“후우…. 저 녀석이 멍청해서 다행이라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사실 이 내기는 지상욱이 만티코어로 변태한 후 재식을 쫓아다녔다면 끝난 것이었다.
김재식은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하고 지상욱이 왓쳐를 사냥하는 꼴만 손가락 빨며 지켜보았을 테니까.
게이트 진입 후 스킬을 발동하고 달린 것도 그래서였다.
탁….
한참을 달린 재식이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멀리 떨어진 탓에 팔 크기와 비슷하게 보이는 지상욱이 방금 막 왓쳐의 눈을 손톱으로 베어냈다.
“벌써 한 마리….”
꼴깍….
그는 침을 삼키며 주변을 돌아봤다.
벌써 왓쳐를 사냥한 지상욱을 보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서둘러 왓쳐를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한 그의 시야에 웬 주먹만 한 것이 둥실 떠다니는 게 띄었다.
그것은 시야에 간신히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왓쳐였다.
김재식은 재빠르게 옆의 나무에 몸을 숨겼다.
왓쳐가 눈이 좋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먼저 발견해서 망정이지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면 왓쳐가 그를 발견하고 움직였으리라.
“어떡할까….”
운 좋게 발견한 왓쳐였다.
어떻게든 놓치지 않고 잡아야 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창을 쓰는 그가 왓쳐를 잡을 방법은 역시 하나뿐이었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구요, 선생님!”
방법을 결정한 그가 생각을 정리했다.
왓쳐는 눈이 좋으므로 나무에서 튀어 나가 창을 던지면 발견하고 말 것이다.
단번에 맞추는 것이 베스트.
피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다.
왓쳐가 피한 상황에서도 수단이 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그가 속으로 숫자를 센다.
3, 2….
“1…!”
재식이 바로 나무 바깥으로 튀어 나간다.
꽉!
창을 쥔 오른손을 뒤로 당기자 근육이 부풀어 오르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다행히 왓쳐는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고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지상욱이 시선을 잡아끈 것 같았다.
“운이, 좋네…!”
재식은 창을 던졌다.
은빛으로 빛나는 창이 왓쳐를 향해 빠르게 쇄도해갔다.
“키익? 키엑!”
안타깝게도 재식이 던진 창을 왓쳐를 맞추지 못했다.
창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것을 시야가 좋은 왓쳐가 알아차리고 옆으로 피한 것이다.
왓쳐는 몸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창을 던진 재식을 발견하곤 비웃기 시작했다.
그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식은 창을 던지느라 앞으로 뻗었던 오른손을 뒤로 당겼다.
그러자마자, 왓쳐의 눈알이 피를 뿜어냈다.
재식이 던졌던 창이 되돌아오면서 왓쳐를 꿰뚫은 것이다.
“키엑…?”
비웃던 왓쳐는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도 하지 못한 채 죽었다.
또 허공에 부유하고 있었던 탓일까?
꼬치구이처럼 꽂힌 채로 창과 함께 재식의 손에 쥐어졌다.
“생각보다 엄청 크네….”
재식은 창에서 왓쳐를 뽑아냈다.
멀리서 봤을 땐 주먹만 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왓쳐는 그의 키만 했다.
몸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 눈은 께름칙하게 보였다.
빛을 잃은 커다란 눈을 보다가,
“아.”
재식은 고개를 들었다.
방금 왓쳐가 하늘을 올려다보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상욱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왓쳐의 시선을 끌어당긴 걸까 궁금했다.
“……!”
재식은 왓쳐처럼 시선을 빼앗겼다.
지상욱이 바람 마법을 써서 왓쳐 세 마리를 한꺼번에 사냥했다.
크크크…!
들릴 리 없는 지상욱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김재식 이 멍청아…!”
까득!
재식은 이를 악물었다.
한 마리를 잡았다고 해서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이번 사냥 내기는 만티코어로 변태한 지상욱이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다시 박아넣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의 발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 섰다.
초인 스킬을 발동했는데도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고 굽혀지는 무릎을 내려다봤다.
“도운 형…?”
재식은 그 현상의 원인이 백도운에게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도운이 끝을 알 수 없는 마나를 발산해서 마나 압박 현상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대체 뭘 하려고 마나 압박이 일어날 정도로 마나를 발산한 걸까.
꼴깍…!
지금껏 도운이 보여준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린 재식은 침을 삼켰다.
그러면서 마나 압박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높이 솟아오른 산이 보였다.
도운이 저 위에서 마나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게이트 입구 쪽에 있었건만 어느새 저기까지 간 걸까.
“대체 얼마나 빠르면….”
재식은 가늠할 수 없는 속도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왓쳐 한 마리를 사냥하는 동안 도운은 산 정상에 올라가 있었으니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 지상욱과의 내기가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산에서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푸른 빛이 뿜어졌다.
게이트 안을 온통 푸르게 채운 빛은 재식의 어깨에도 내려앉았다.
“…따듯해?”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는 따스한 온기….
재식은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따악!
아마 시험의 탑 앞에서였을 것이다.
B급 헌터로 승급했었던 그 날, 도운은 테스트를 치르기 전 긴장감에 짓눌렸던 재식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청명했는지 그는 자신이 목탁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차갑게 식었던 몸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끼며 김장감을 훌훌 털어내기도 했었다.
“…잘 해. 기대하고 있으니까.”
이어 김재식의 머릿속에 도운의 목소리가 울렸다.
기대하고 있으니까.
기대하고 있으니까.
재식은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짜악!
두 손바닥으로 뺨을 후려쳤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두 뺨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네…!”
재식은 뜬금없이 우렁찬 대답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전과 달리 마나 압박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형은 대체 뭘 하시려는 거지?”
그는 의문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