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76
제377화
배수현은 벽 한쪽 면을 가득 채운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떡 벌린 경악한 모습으로 보고 있었다.
“…….”
“…….”
“…….”
그리고 그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녀 주변에 있는 부하 직원들도 비슷했다.
깜짝 놀라 멈춘 모습으로 대형 모니터를 바라본다.
꼴깍….
모든 이의 말문이 막힌 탓에 그곳은 침 삼키는 소리가 가장 큰 소리일 정도였다.
“…국장님.”
“……?”
배수현 옆에 있던 직원이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천천히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직원을 바라봤다.
그리고 직원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아차렸다.
어느샌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알람 소리가 울리고 있었던 거다.
슥….
전화를 건 사람은 최희석이었다.
그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배수현입니다.”
– 음? 목소리가 좋지 않군. 무슨 일 있나?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멍청이가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긴 했죠.”
– 왜. 진환이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했는데?
“아. 다른 멍청이요.”
– 다른…? 아. 혹시 도운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 무슨 말을 했는데?
최희석의 질문에 배수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대형 모니터를 바라봤다.
모니터 속 도운이 분위기를 전화하려는 듯 손뼉을 한번 쳤다.
그러고는 “우리도 이만 왓쳐를 사냥해볼까요?”라고 말했다.
“…이무기 말입니다.”
– 음?
“현재 수행 중이랍니다.”
– 수행 중이라고? 의외군. 교황청에서 돌아올 때 힘이 없어 보여서 겨울잠을 잘 줄 알았는데.
“A+등급 몬스터가 그럴 리 없잖습니까.”
– 하하. 그렇긴 하군. 근데,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인가?
최희석의 목소리엔 의문이 가득했다.
테이머에게 조련된 몬스터가 주인과 함께 훈련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말이기는 했지만, 목소리가 낮게 깔리며 어두워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수현이 답변했다.
“평범한 수행이라면 그랬겠죠.”
– 평범하지 않은 수행이란 건가?
“용이 되기 위한 수행이라더군요.”
– ……뭐?
“…….”
– 지금 용이라고 했나?
“네.”
– 그러니까, 드래곤을 말하는 것 맞지?
“그렇습니다.”
최희석의 반복되는 반문에도 배수현 역시 반복해서 대답해주었다.
그의 놀란 마음과 의문을 완벽하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처럼 같은 질문을 백도운에게 하고 싶기도 했고.
배수현의 대답을 듣고 나서 최희석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 허! 허허…! 그게 사실인가?
“글쎄요. 이태천이나 하얀 성녀가 한 말이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믿었겠습니다만….”
배수현은 말끝을 흐리며 대형 모니터를 바라봤다.
모니터 속 도운은 “여러분. 눈 좀 감아보실래요?”라고 제안했다.
이어 “눈 뜨라고 할 때까지 감아주시고요.”라고 말했으나 모니터실에 있는 그 누구도 눈을 감지 않았다.
배수현 그녀를 포함해서.
“백도운이 한 말이라서요. 그냥 농담으로 던졌을 가능성도 무시하진 못하겠네요.”
– 하긴. 도운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진실일 것 같습니다.”
–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이무기니까요.”
– 이무기…. 여의주를 얻으면 용이 되는 존재다, 이건가?
“네.”
– 흠….
최희석은 짧게 콧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판단에 공감했지만, 수긍은 되지 않았다.
드래곤이 되는 이무기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지지도 않았다.
“…윽.”
– 왜 그러나?
“아, 아뇨.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요.”
– 저런. 그러니까 일 좀 줄이라니까.
“…피곤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배수현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그녀가 지금 어지러움을 느낀 것은 업무량 때문이 아니었다.
휙! 휙!
그런 소릴 내면서 대형 모니터의 화면이 자꾸만 바뀌는 것 때문이었다.
모니터를 보던 다른 직원들도 어지러움을 느낀 듯 고개를 가로젓거나 코를 막고 침을 삼켰다.
– 이무기 얘긴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야겠군.
“아, 네.”
– 우리 파티는 방금 안마도에 도착했네. 자네가 마련해준 숙소로 향하는 중이지. 자네가 바란 대로 허동휘 군도 데리고 왔고.
“수고하셨습니다.”
– 수고는 무슨. 그리고 진짜 수고는 내일 있을 것 같은데?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같은 장소에도 없는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최희석의 말에 100%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백도운과 김서준은 내일 안마도 게이트에 진입한다.
목적은 보스 몬스터인 인면오공주.
목적이 같았으니 그들은 당연히 대립각을 세울 터였다.
“물론, 둘이 제대로 한 판 붙지는 않겠죠. 백도운은 김서준의 은인인 데다가 둘 실력 차이는 확실하니까. 하지만….”
– 절대, 라는 건 없지. 둘 다 안마도 게이트를 노리는 이유가 있을 테니.
“그게 뭔지 안다면 중재할 수도 있을 텐데요….”
– 바로 그걸 원해서 날 이곳으로 보낸 것 아닌가.
“그렇죠. 아무리 그 둘이라고 해도 최희석 헌터 님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 걱정하지 말고 맡겨두게. 실망하게 하지 않을 테니.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배수현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그녀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함께했다.
그들 또한 내일 안마도 게이트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네?”
– 잠깐 딴소리를 좀 해도 되겠나?
최희석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무슨 딴소리를 하려고 이러시지?
배수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 허동휘 이 친구 말이야.
“그 친구가 무슨 실수라도…?”
그녀는 짐짓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신입 헌터들은 젊은 치기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었다.
– 아니, 그런 건 아니네. 그냥 좀 궁금해서. 이 친구 혹시 옛날에 지민이와 싸운 적이라도 있나?
“네…?”
– 지민이에 대해 과할 정도로 캐묻는 게, 꼭 원수 사이라도 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아…. 그건 그냥 일방적인 견제일 겁니다.”
– 견제라고?
“자기 멋대로 지민 씨를 라이벌로 여기는 것 같더군요.”
– 오?
“그만큼 재능은 있습니다.”
– 과연. 알겠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친구 자기 소개할 때 특기가 삽질이라고 하던데. 왜 이러는지 알겠나?
“그건 사실입니다. 허동휘는 정말 삽질을 잘하거든요.”
– 사실이라고…?
“네.”
– ……?
삽질이 특기라고 하는 젊은 헌터.
그걸 순순히 인정하는 직장 상사.
최희석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
김서준 일행은 한 방에 모여 왓쳐 캐스트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은인인 백도운이 출연했기 때문이었는데, 시청하고 있는 모니터에는 그의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어떨 땐 나무가 나왔고, 어떨 때는 하늘이 나왔으며, 어떨 때는 흙바닥이 나왔다.
여러 자연물이 규칙 없이 어지럽게 반복되길 몇 분.
“우욱….”
보고 있던 채정연이 입을 막았다.
자꾸만 바뀌는 화면에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어지러움을 느낀 것이다.
스윽….
옆에 있던 황시열이 팔을 뻗어 긴 소매로 채정연의 눈을 가렸다.
“누님. 그러게 나처럼 감으랄 때 감았어야지.”
“…장담하는데, 백도운이 감으라고 할 때 감은 놈은 네가 유일할 거야.”
“왜? 백 형이 감으라면 다 이유가 있는 걸 텐데.”
“그 이유가 궁금하잖아.”
“아아.”
황시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궁금해진 것이다.
그러나….
“늦었어. 이미 도착했거든.”
“산 정상이야?”
“산?”
채정연이 황시열의 팔을 치워 모니터를 바라봤다.
모니터 화면엔 초록의 숲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빠르게 달려서 올라가던데.”
“뭐야. 김 형도 안 감고 지켜봤어?”
“어.”
“왜?”
“도운 씨가 저럴 것 같았거든.”
“김 형은 괜찮고?”
김서준은 어깨를 으쓱여 대답을 대신했다.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보고, 두 남녀는 깨달았다.
그도 백도운이 저지른 짓을 비슷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꼴깍….
그녀는 새삼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A+급 헌터가 한 짓을 비슷하게 할 수 있는 남자를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자신을 향한 의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카메라가 자꾸 떨리네?”
“카메라맨도 나처럼 어지럼증을 느낀… 아니. 나보다 더 심하겠네. 직접 경험했을 테니까. 오히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게 대단한걸? 역시 백운천의 A급 헌터야.”
“역시 도운 씨는 솔라빔을 쏘기 위해서 올라간 거였나.”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화면 속 도운은 푸른 꽃을 소환하고 있었다.
허공에 떠오른 꽃봉오리가 푸르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카메라로 다 담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곧 빛의 세기가 누그러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음?”
“어머, 귀여워.”
“꽃이… 작아졌네?”
화면엔 작디작은 꽃송이가 떠올랐다.
도운이 소환한 푸른 꽃의 크기는 손바닥을 활짝 펼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백도운이 실수했나?”
“설마. 백 형이 저런 실수를 할 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데에 내 전 재산을 걸게. 넌 뭘 걸래?”
“으으음….”
채정연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황시열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잠깐 고민해봤지만 반박할 말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때,
“실수가 아니에요.”
화면을 보고 있던 김서준이 끼어들었다.
“실수가 아니라고요?”
“네. 일부러 출력을 줄여서 소환한 겁니다. 원래 크기로 소환하고 빔을 쏴대면 왓쳐의 눈알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
“왓쳐의 눈알을 얻으려고 저길 직접 갔다는 거예요? A+급 헌터인 백도운이 뭐가 아쉬워서요? 스마트폰 화면이라도 개조하려는 것도 아닐 텐데.”
“어, 그거 말 된다. 백 형 화면 엄청 두드려대잖아.”
톡톡 톡톡톡…!
황시열히 킥킥 웃으며 검지로 제 무릎을 마구 두드렸다.
하지만 채정연은 긍정을 받으려고 한 말이 아니었으므로 무시했다.
김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유재이나 홍수정이 부탁한 것일지도 모르죠.”
“아…. 그건 가능성 있네요.”
“오. 백 형 솔라빔 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황시열이 중얼거렸다.
두 남녀는 곧바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푸른 꽃이 도운의 검지를 따라 빔을 뿜어냈다.
순식간에 숲으로 떨어지는 꽃 모양의 빔을 보고 도운은 히죽 웃었다.
“저 새끼 께름칙하게 웃는 것 좀 봐….”
“맞춰서 그런 거겠지? 대단하네. 저게 보이나?”
“마나의 흐름으로 느낀 걸지도 모르지.”
“저렇게 먼데?”
“A+급 헌터잖아. 그런 짓도 할 수 있지 않겠어?”
“누님 말인데, 설득력이… 있어?”
“이게.”
황시열이 싹수없게 인정해서 얻어맞는 동안, 화면 속 도운은 계속 솔라빔을 쏘았다.
또 그는 왓쳐 사냥에 성공한 증거를 직접 가져왔다.
솔라빔의 방향을 지정하는 오른손과 달리 놀고 있던 왼손을 나무뿌리로 바꾸더니 멀리 떨어진 왓쳐의 사체를 들고 온 것이다.
“…큰일 났군.”
김서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김 형? 뭐가?”
“배 국장님이 말해줬잖아. 도운 씨도 내일 안마도 게이트에 진입한다고.”
“그랬지. 그게 왜?”
“바보야. 백도운이 인면오공을 저렇게 사냥하면 우리가 어떻게 상대하냐? 손가락만 빨고 지켜봐야 할 수도 있어.”
“앗…!”
황시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마저 깨닫고 나자 방 안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저런 짓을 저지르는 백도운을 상대로 안마도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인 인면오공주를 먼저 사냥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기도 했다.
“방법을 고찰해봐야겠네요.”
“고찰한다고 방법이 있겠어요? 저 백도운인데.”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기는 한데요….”
채정연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바로 그때, 모니터 속에서 도운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운은 북한산 인수봉 게이트에 있는 왓쳐를 전부 소탕해버리겠다는 듯이 솔라빔을 끊임없이 쏘아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녀는 고찰해봐야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
그리고 그건 김서준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닭 쫓던 개 꼴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런 생각만 자꾸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