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94
제395화
– 그럼, 자네 테스트는 12월 31일에 진행하는 거로 하겠네. 아마 그날 다른 친구도 함께 테스트를 치르게 될 거야.
그리 말하고 앨릭스 협회장은 통화를 끊었다.
다른 친구도 함께?
나 말고 또 S급 헌터 테스트를 치를 사람이 있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그러다 리롄제가 끌끌 웃는 낯을 보았다.
알겠군.
그의 수제자인 리우이호가 테스트를 치르는 모양이다.
A+급 테스트를 치를 줄 알았는데….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 그럼 나도 이만 끊네.
– S급 테스트 치를 때 봐요, 미스터 백. 아! 그위친한테 안부 전해줄게요.
– …….
뒤이어 S급 헌터들도 인사를 전하고는 통화를 끊는다.
스미르노프만이 몇 초간 나를 노려봤는데, 표정이 꼭 할 말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람?
서로 노려보는 동안 황정희 장관이 슬그머니 통화를 끊고 나갔다.
이제 남은 건 교황 프란치스코 2세뿐이다.
– 그녀는 만났나?
“못 만났습니다. 요즘 들어 워낙 바빠서.”
그가 말한 그녀란 원장 아줌마를 가리키는 거다.
교황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알지. 알고말고…. 그래도 이따금 들러주게. 우리처럼 한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손님은 늘 반갑거든.
“글쎄요. 우리 아줌마는 나보다 도희나 태천이를 더 반가워할 거 같은데.”
–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나.
“그런 말도 압니까?”
– 후후….
교황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교황 아니랄까 봐 사람이 참 좋아 보인다.
그의 말대로 원장 아줌마는 우리 중 누가 찾아가든 좋아하겠지.
“일 정리되면 찾아가 보겠습니다.”
– 잘 생각했네. 그럼, 나도 이만 끊네.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 자네도. 신의 축복이 깃들기 바라네.
그러면서 교황은 통화를 끊었다.
신의 축복이라….
안타깝게도 나한텐 신의 축복이란 게 깃들지 않는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았으니까.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 [세계수의 축복은 신의 축복에 밀리지 않는다고 전합니다.]그렇지.
직접 경험해본 내가 잘 알지.
톡톡톡…!
이젠 화면을 두드릴 필요도 없었음에도 부러 톡톡 두드린다.
가만히 갖다 대고 있는 게 편하기는 한데 정감이 안 간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
“…….”
“…나도 이만 가보도록 하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조용히 있던 최동훈이 말했다.
최희주와 박은섭이 당황하며 그를 쳐다봤다.
놀라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자리에 최동훈이 함께 있었다는 걸 깜빡했던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도 하지 않고 옆에 가만히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냥 가게?”
“그럼?”
“안 싸워? 우리 싸우기로 했잖아.”
“하…!”
최동훈이 코웃음을 친다.
반응을 보니 나와 싸울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는 내 양옆에 있는 무기와 임페일을 쳐다봤다.
“이무기와 뱀파이어 로드와 친구를 맺고-”
「짐은 납치당했다만.」
“-그래. 그쪽은 납치. 아무튼.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걸 들었을 때부터 싸울 생각은 버렸다.”
“에게. 이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한다고? 아이가이온의 최동훈이?”
“질문이 있다, 백도운.”
최동훈은 도발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도발을 걸려던 나만 머쓱해졌다.
처음 만났을 땐 이런 도발에 예민하게 반응했었던 거 같은데 말이지.
“해.”
“네놈과 한진환이 싸우면 누가 이기지?”
“나.”
“…크큭!”
“왜. 내가 못 이길 것 같냐?”
젊은 헌터의 치기쯤으로 생각했나 본데….
뭐,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최동훈은 한진환과 같은 세대 헌터니까.
한진환은 그 이름 앞에 붙은 별명만큼 절대적인 강자다.
그런데, 그의 입에선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아니. 정말로 네놈이 이길 것 같아 웃은 거다.”
“아하.”
“놀라운 일이지…. 그 한진환을 비교 대상으로 말했는데 말이야….”
그리 중얼거린 후 최동훈은 쓸쓸하게 웃었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년이 된 사람 같아 보였다.
내가 한 말에 충격을 받은 거겠지.
어쩌면 자신들의 세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동훈은 금세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동작하더니 내게 내밀었다.
[10,000,000,000원]100억…?
갑자기 웬 돈 자랑이지?
눈을 찌푸리자 최동훈은 네가 그런 얼굴을 지으면 어떡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기부하라면서?”
“아.”
“지금 당장 보낼 수 있는 액수가 이 정도뿐이로군.”
“당신의 기부에 우리 아이들이 따듯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호갱, 아, 아니. 후원자님.”
“…나머지 100억은 금방 또 보내도록 하마.”
“나머지?”
“두 번 하라면서?”
최동훈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생각해보니, 해골의 은신처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세계수의 뿌리로 마족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기부하는 것도 놀라운데, 정말로 두 번이나 하네.
왜 이렇게 말을 잘 들어?
혹시 뭐 다른 생각이라도 품었나?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최동훈에게선 흑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관리인을 향한 진실한 감사만 느껴진다고 설명합니다.]뭐야….
정말 고마워서 이러는 거였어?
자기가 무슨 은혜 갚은 까치도 아니고.
흑심을 품은 게 아니라면….
지금이 적당할 듯하다.
“최동훈.”
“……?”
“받아.”
인벤토리에서 칼립스를 꺼내 건넸다.
대검을 손에 쥔 그가 그것을 몇 초간 바라본다.
눈에서 회한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걸 보니, 아마 그의 머릿속에선 김무연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버렸다더니?”
“내 인벤토리에 뭐가 가장 많이 들어있는지 아냐?”
“대뜸 무슨 소리냐?”
“바로 쓰레기야.”
알테라-쇼넴을 쓰기 위해 챙겨둔 것들이다.
물론, 현재 쓰레기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해골의 은신처에서 찾은 것들이었다.
최동훈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이해 못 하네.
“인벤토리에 버려뒀었다고.”
“…하! 세상에선 그걸 꿍쳤다고 말하기로 합의했을 텐데.”
“다시 인벤토리에 버려줄까?”
“사양하지.”
최동훈은 칼립스를 빼앗길세라 뒤로 숨긴다.
그런다고 내가 못 빼앗을 것 같나?
“…돌려줘서 고맙다.”
“본래 주인을 찾아간 건데, 뭐. 그걸 나한테 맡긴 김무연도 지금의 너라면 인정하겠지.”
“그래, 그럴 거다….”
그는 다시 칼립스를 바라봤다.
회상에 빠지려는 것 같아서 못 하게 말리려고 하는데,
“이봐-”
“그럼, 나도 이만 가보도록 하지.”
본인 스스로 그리움에서 빠져나왔다.
칼립스를 몇 번 휘두르다 어깨에 둘러메곤 머리를 까딱인다.
내 옆에 있는 무기와 임페일에게도 시선을 보냈다.
자길 구하러 함께 와줘 고맙다는 뜻이었다.
타악….
이내 최동훈이 문을 닫고 나갔다.
“오라버니.”
“응.”
“갑자기 웬 베르동 협곡 얘길 꺼낸 거예요?”
“알면서 묻는 거야? 당연히 이것 때문이지.”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면서 대답했다.
도희가 화면 속 커다랗게 자란 새싹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엄청 성장했네요?
그리 물을 줄 알았는데, 도희는 앞서 하던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 세계수 퀘스트…란 것 때문이에요?”
“맞아. 블랙 드래곤과 만나 대화를 나누라네.”
대답하면서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유재이가 목을 축이라는 듯 와인을 건넸다.
고마움을 전하며 레드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달콤하네.
“퀘스트에 다른 설명은 없었어요?”
“내용상으로는 없었어. 대화를 나누라는 게 끝이었거든.”
“내용…상으로는?”
“성공 보상이랑 실패 페널티가 엄청나더라. 특히, 실패 쪽이.”
“뭐였는데요?”
“…….”
와인 잔을 재이 앞으로 내밀었다.
또 와인을 따라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녀는 와인 잔을 가져가더니 병째로 쥐여주었다.
어서 빨리 말하란 뜻이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날 보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참지 못할 궁금증이 담겨 있었다.
“성공 보상은 전대 세계수의 나뭇가지였어.”
“또?”
“대신 ‘굵은’ 나뭇가지더라.”
“오오….”
재이가 눈빛을 빛내며 감탄을 흘렸다.
옆에 앉아 있던 홍수정도 마찬가지.
그녀는 재이보다 심하게 혀로 입술까지 핥아댔다.
저게 어딜 봐서 감정사 겸 포션 메이커야?
아무리 봐도 사냥감 노리는 사냥꾼이구만.
“성공 보상은 됐어요. 실패 페널티는요?”
“보상은 됐다니. 전대 세계수 씨가 들었으면 토라졌겠다.”
“오라버니!”
“흠….”
“도운아. 그렇게 심각한 거야?”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태천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심각한 거였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이들이 꼴깍 침을 삼킨다.
얼마나 심각하기에 말을 아끼는 건지 궁금한 눈치다.
“실패하면….”
“하면…?”
“인류가 멸망한다네?”
“뭐, 뭐라고요…?”
도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을 지어 보이면서도 허튼소리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동안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어도 내가 이런 일로 농담하는 놈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농담 같이 말하는 놈이긴 하지만.
“인류가 멸망한다니….”
“너무 뜬금없잖아.”
“생각지도 못한 얘기가 튀어 나와버렸는데…?”
“정말로 실패 페널티가 그거냐, 백도운?”
다들 당황해서 중얼거리는 가운데, 한재임이 물었다.
이것 참….
권속인 임페일과 흐레이스도 못 보는 퀘스트 창을 보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하는데, 사실이야.”
“하아…. 사실이라고….”
한재임이 관자놀이를 거칠게 문질러댔다.
인류 멸망.
그 단어는 분위기를 심각하게 가라앉혔다.
원래부터 크라우드 놈들이 벌일 짓거리 때문에 좋지도 않았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군….」
무기가 꼬리로 턱을 살살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한 번 감긴 꼬리 끝엔 홍수정이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넨 적맥주가 들려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모이자 무기는 꼬리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퀘스트 내용과 실패 페널티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드래곤을 만나러 가는 것뿐인데, 만나지 못한다면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니?」
“무기 씨 말대로 괴리가 심하긴 하군요.”
“페널티는 엄청난데 성공 보상이 나뭇가지에 불과하다는 것도 이상해요. 아무리 ‘굵은’ 나뭇가지라고 해도.”
한재임과 도희가 동의했다.
도희는 한 마디를 덧붙였는데, 내가 아까 전대 세계수 어쩌고 해서 그런 것 같다.
어깨만 한 번 으쓱여줬다.
「드래곤을 찾아가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미친 짓이긴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관리인이 없을 경우다. 관리인과 함께라면 산책 가는 것과 마찬가지지.」
“위험할 게 없다는 거죠?”
「알루키노르를 함께 만났으니 잘 알 텐데.」
“음….”
도희가 콧숨을 짧게 내쉰다.
태평양 던전에서 알루키노르를 만났을 때를 떠올리는 것이 분명하다.
그린 드래곤은 반말로 일관하다가 유재이가 나와 친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존댓말을 썼었다.
아무튼!
알루키노르가 재이한테 반말하지 않았다는 게 핵심!
말을 조심했다는 건, 관리인인 날 대우한다는 뜻이니까.
괜히 무기가 산책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 게 아니다.
문제는… 그런 별일도 아닌 일에 전대 세계수가 성공 보상으로 전대 세계수의 굵은 나뭇가지를 내걸었다는 거다.
실패 시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 엄청난 경고와 함께.
「역시, 고민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저도요. 왜 그런 퀘스트가 뜬 건지 전혀-”
우르르 꽝…!
도희의 말을 뭉개버릴 정도로 강렬한 벼락이 쳤다.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순간 크라우드가 공격해온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세계수가 순수한 번개의 마나를 느꼈습니다.] [도희의 실드와 격돌한 건 한진환이라고 설명합니다.]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벼락이 울렸었지…?
“한진환…?”
“이 인간이 왜 이런 짓을?”
나와와 도희가 동시에 중얼거렸다.
실드를 친 장본인이었으니 도희가 알아차리는 건 당연했다.
[세계수는 한진환이 현재 도희의 결계를 뚫어내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이 양반이 미쳤나.
갑자기 날아와선 왜 우리 길드 결계를 뚫으려고 해?
도희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실드를 유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마나를 들이붓고 있어서다.
“윽…! 오, 오라버니! 결계가 뚫려요!”
“괜찮아. 나한테 맡겨.”
“네? 맡기라고요?”
“응.”
대답하면서 바닥에 검지를 갖다 댄다.
이어 마나를 바닥으로 끊임없이 흘려보냈다.
진화한 스킬을 이런 식으로 선보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세계수의 나무껍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