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93
제394화
– …….
사람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조용히 아르카와 스카를 쳐다볼 뿐이다.
그들의 눈에서 탐욕이 질질 흘러나왔다.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제작한 무기를 갖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욕심에서 자유로운 건 단 두 사람.
교황 프란치스코 2세와 리롄제뿐이었다.
교황이야 그렇다 치고, 리롄제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을 줄은 몰랐다.
아….
생각해 보니 그의 유일한 관심 대상은 용이다.
아마 알루키노르의 송곳니로 만든 단검이나 비늘로 만든 방패쯤 돼야 그의 탐심을 흔들어댈 수 있으리라.
태천이한테 방패 보여줘 보라고 해볼까?
…아니.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리롄제라면 밤 중에 몰래 찾아올지도 모른다.
– …뭔가?
“네?”
– 왜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게냐?
“내가 뭘요?”
– 하여간 싹수없는 놈이로고.
리롄제는 못마땅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시치미를 떼는 내 얼굴에서 속마음을 읽어낸 모양이다.
– 해결 방법을 들었으니, 이젠 다들 이해하셨을 겁니다. 왜 백운천에게 맡겨야 하는지.
– …….
– 헤미스파이리움을 발견하는 즉시 백운천에 연락하십시오. 다들 알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 그러도록 하죠.
다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동의했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예외는 늘 있는 법으로 이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그런데… 우리에게 저 무기를 ‘대여’해주는 것도 방법 아니겠습니까?
한 남자가 정중한 목소리로 저렇게 말한 것이다.
지껄여댄 것은 굉장히 불손한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러시아 협회장이에요. 이름은 ‘안드레이 벨린스키’.”
도희가 바로 설명해줬다.
러시아 협회장이라….
역시 러시아.
실망하게 가만두지를 않는군.
어쩜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실망하게 하는지….
“지금 대여라고 했습니까?”
– 그렇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각 나라에 대여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개소리를 참 정중하게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 뭐, 뭐라고요?
“정말로 대여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지껄인 건 아니죠?”
– …….
벨린스키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정말로 그리 생각하진 않았겠지.
혹시나 하고 던져본 것에 불과하리라.
S급 헌터인 스미르노프도 옆에 있어 자신감도 있었을 거고.
저 썩어빠진 정신 상태부터 고쳐줘야겠군.
“다들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해두는데, 나는 지금 당신들한테 선의를 베풀고 있는 겁니다.”
– 선의…라고요?
“내가 지금 뭘 하는 것 같습니까?”
왼팔을 들어 올리며 묻는다.
나무뿌리 형태로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열심히 반복하는 팔을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뭘 하고 있는지 모르기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밀러나 리롄제는 눈앞에 있었다면 알아차렸을지도….
“여기엔 크라우드의 은신처에서 발견한 마족 에너지가 담겨있습니다.”
– 마족 에너지를, 담아 왔다는 건가요…?
“네.”
중얼거리듯 묻는 밀러에게 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왼팔과 아르카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마족 에너지를 굳이 짊어지고 온 이유가 정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차린 거다.
정화한 에너지를 나는 어떻게 사용할까?
밀러는 그것 또한 알아차렸으리라.
– 이제 알겠네요. 크라우드가 제주도를 습격해 미스터 백을 노렸던 이유를…. 당신은 마족의 천적이었군요?
“바로 맞혔습니다.”
– 드디어 알겠어요. 도운, 당신의 정체를….
하나를 아니 열을 아는군.
역시 대마법사.
그 별명이 허울이 아니었다.
“밀러.”
–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면서 밀러는 검지를 미소 짓은 입술에 갖다 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겠다는 뜻이다.
캐물었던 사람답지 않게 정상적인 반응인걸.
나한텐 좋은 일이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 밀러….
앨릭스가 곤란하다는 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자기 혼자만 다 이해하고 수긍하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밀러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꾹 닫은 채로.
“…핵심은 이겁니다. 내가 마족의 에너지를 정화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그걸 내 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
– ……?
핵심을 말해줬음에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완전히 이해한 밀러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는다.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알아먹을 생각인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는데, 커지고 작아지는 것을 반복하던 왼팔이 멈췄다.
마족 에너지 정화 작업이 멈춘 것이다.
얼씨구.
여기에서 두 번째 결실이…?
2820만이나 획득했는데 겨우 20%만 채워지다니.
첫 번째 결실하고는 양이 엄청나게 차이 나는걸.
하긴.
새싹이가 그렇게 커졌는데 필요한 마나 양이 늘어난 건 당연한 건가.
스르륵….
정화 작업이 끝나자 나무뿌리로 변했던 팔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 아…!
– 설, 설마…!
그 모습을 보고서야 사람들도 슬슬 알아차렸다.
마족의 에너지를 정화하고 내 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나는 헤미스파이리움으로 인해 한 국가가 마족의 땅이 된다고 해도 하등 문제 될 게 없다.
오히려 좋다고 볼 수도 있었다.
마족의 권속이란 게 많아지면 흡수할 힘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니까.
[세계수가 탐탁지 못한 시선으로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나뭇가지로 정수리를 후려갈길 거라고 전합니다.]하하.
설마 내가 그래도 세계수 관리인인데 정말로 그러겠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만 저 인간들에게 심어주려는 거야.
아르카와 스카를 대여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해대니까.
그런데 정수리를 후려갈길 거라니.
너 나 닮아가니?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칩니다.]끔찍하다니….
형 상처 받아, 새싹아.
“…이제 알겠습니까? 내가 지금 선의를 베풀고 있다는 거.”
– …….
벨린스키가 눈을 내리깔며 입을 꾹 다물었다.
콕 집어 그를 보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그 꼴을 보고 스미르노프가 언짢은지 혀를 쯧쯧 찼다.
내가 아니라 벨린스키를 향했기에 그는 어깨마저 움츠러뜨렸다.
예상컨대, 며칠 내로 러시아 헌터 협회장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에서 스미르노프의 영향력은 그 별명답게 황제의 그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 그럼, 처음 계획대로 헤미스파이리움을 발견하면 백운천에 알리는 것으로 하지.
앨릭스가 상황을 정리할 요량으로 말했다.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게 좋을 것 같군요!”라며 바로 수긍했다.
이어 앨릭스는 스미르노프를 바라봤다.
해결 방법에 대해 가장 처음 질문한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스미르노프는 그렇게 하겠다는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답지 않게 고분고분한걸?
저놈도 자기 나라가 위험에 빠지는 건 싫은 거겠지.
하여간 처음부터 말을 들으면 좀 좋아?
사람들은 왜 꼭 듣기 싫은 소릴 해야 알아듣는 건지 몰라.
[세계수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도희의 말을 결국 따르는 관리인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지적합니다.]그게 바로 내가 사람이라는 증거…!
“아, 그리고…. 우리 굳이 이렇게 모여 있을 필요가 있습니까?”
– 응?
“이렇게 통화하고 있는 거 쓸데없이 느껴져서요. 발견하고 연락하면 그만인데.”
– 하긴, 자네 말이 옳군.
앨릭스가 동의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른 나라의 관료들과 협회장에게 통화를 끊자고 제안했다.
영국, 일본을 시작으로 제안을 받아들인 각국 협회장들이 재빠르게 통화를 끊었다.
그들도 이런 불편한 자리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리라.
특히 영국과 러시아 같은 경우는 내 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싶지 않았겠지.
– 정말 고맙습니다. 백도운 헌터 님.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아일랜드의 킬리언 협회장도 감사 인사를 전한 후 통화를 끊었다.
끊기 전 “별일 없길 바란다”라고 말하자 그는 “한국과 백운천에 신의 자비가 있기를!”이라고 대꾸했다.
홀로그램 통화에 남은 건 이제 다섯 명.
교황과 앨릭스, 황정희 장관과 S급 헌터 세 명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전대 세계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푸르스름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평소와 다르게 등급이 쓰여 있지 않아 고개가 저절로 갸웃거려졌다.
[퀘스트 내용 – 세계수 관리인 백도운은 유럽 ‘S등급 베르동 협곡 게이트’에 있는 ‘블랙 드래곤’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블랙 드래곤과 만나 대화를 나누십시오.] [성공 보상 – 전대 세계수의 굵은 나뭇가지.] [실패 시 인류 멸망.]“뭐…?”
순간, 사고(思考)가 멈췄다.
실패 페널티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래곤을 만나지 못하면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무맹랑한 소리였으나 이건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전대 세계수가 보낸 퀘스트였다.
내가 블랙 드래곤을 만나러 가지 않는다면, 인류는 정말로 멸망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오라버니, 왜 그래요…?”
도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처질 대로 처진 두 눈썹을 보고 내 얼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도희뿐만이 아니다.
태천이를 비롯한 백운천 녀석들, 무기와 임페일, 아직 통화를 끊지 않은 사람들까지.
모두 근심이 담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리롄제와 스미르노프는 제외다.
둘은 다른 이들과 달리 호기심이 동한 얼굴일 뿐이었다.
툭….
왼손을 들어 올려 도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 오라버니…?”
“…앨릭스.”
– 듣고 있네.
“이른 시일 내에 베르동 협곡 게이트에 들어가야겠습니다.”
– 뭐…?
앨릭스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갑자기 S등급 게이트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니 당황한 것이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같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이 되어 날 쳐다봤다.
홍수정은 비몽사몽 졸고 있는 유재이를 퍽퍽 때려 깨우기까지 했다.
재이는 신음을 흘리면서 깨어났다.
곤히 자는데 뭐 하러 깨운담.
– 도운. 그곳은 S등급 게이트네. 다른 곳이랑 헷갈린 것 아닌가?
“아뇨. 블랙 드래곤이 사는, 그 베르동 협곡 게이트를 말한 것 맞습니다.”
– 이것 참…. 내 살다 살다 그곳을 산책하러 가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거긴 갑자기 왜 가려는 건가?
“어,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요.”
– …….
앨릭스의 눈이 짜게 식었다.
내가 한 말이 농담처럼 들렸나 보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말했다는 것을 백운천은 이해했다.
나라는 놈이 평소 인류 어쩌고저쩌고하는 놈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인간 백도운이 아니라 세계수 관리인 백도운으로 한 말이란 걸 느낀 거겠지.
– 저는 찬성이에요. 개인적으로, 함께 들어가고 싶고요.
– 나도 같은 생각이네.
밀러와 리롄제가 내 편을 들어주었다.
밀러는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걸 눈치챘고, 리롄제는 레드 드래곤와의 만남을 주선까지 해줬었다.
별문제 없을 거로 생각하는 것이리라.
드래곤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도 충족하고.
– 아니, 두 사람이 찬성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이 아닙니다만.
– 나는 어떻소?
– 교황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앨릭스가 진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교황은 허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앨릭스는 고개를 돌려 스미르노프를 쳐다봤다.
–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스미르노프 자네 생각은 어떻지?
– 관심 없다. 그곳에 가서 죽든 말든 알아서 하도록.
– 그래. 자네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음.
앨릭스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S급 헌터 수준이라는 걸 아는 데다가, 다른 S급 헌터 2명도 함께 가겠다는 뜻을 내비쳤으니까.
– …좋아. 도운 자네가 그곳에 진입하는 걸 허락하지.
“고맙습니다.”
– 단. 자네가 진입하는 건 S급 헌터가 된 이후여야 할 거네.
“끈질기시네. 그렇게 날 S급 헌터로 만들고 싶어요?”
– 오해네. 난 단순히 법을 말했을 뿐이야. 헌터란 자고로 각 등급에 해당하는 게이트에 진입하는 게 순리 아니겠나.
“그렇기는 합니다만….”
– 자. 테스트 언제 치를 건가?
앨릭스가 해맑게 물었다.
확 그냥 몰래 들어가 버릴까?
무기와 임페일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데 말이야.